영적인 우상 숭배 (왕하17,24-33)
본문
1,이방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게 된 동기 "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그러나 19 번째의 왕인 호세아가 다윗의 길로 행하지 않고 악한 왕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다가 결국 악한 왕으로 그리고 나라를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주는 비참한 왕으로 낙인이 찍히고 이스라엘은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은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지역은 어찌되었는지를 함께 살펴 보고자 한다. 여기 사마리아는 갈릴리 호수와 남쪽의 사해 바다의 중간지점이 위치하고 있는 비교적 비옥한 성읍이다. 사마리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오므리왕에 의하여 건설되었고 그의 아들 아합왕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어 이스라엘이 망하기까지 계속되었다. 오무리와 아합왕이 사마리아를 나라의 수도로 세운 것은 그만큼 전략적으로도 요충지였고 통치면에서도 이스라엘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엇다. 그러나 호세아 왕때 무참하게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만다. 사마리아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략적 요충이엇고 나라의 심장부였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니 하실 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이 자기들의 실력과 경험과 지리적인 이점만을 너무 의존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관계로 계속해서 악한 왕들만 나왔고 하나님 없는 나라는 결국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다. 앗수르왕은 사마리아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앗수르의 변방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맛보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앗수르는 사마리아 성읍에다 24절의 말과 같이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 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저희가 사마리아를 치리하여 그 여러 성읍에 거하니라" 하나님만을 섬결야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멀어질 수 밖엔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멀리 떠나심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꾸 하나님을 마음에 기를 멀리 멀리 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심정에는 자연적으로 다른 그 어떤 것들로 채워지게 되 있는 것이다.
눅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벙어리되고 귀신들린 한 사람을 고쳐주신 일이 있다.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신다고 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다가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절 와보니 그 집이 소재되고 수리 되었거늘 26절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비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다름 어떤 것들로 가득차 있게 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른 어떤 것들이 하나님보단 좋은 것일 순 없다. 그래서 사마리아 성읍에는 이방인들로 가득차게 되엇다, 사마리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싫어 했기에 앗수르에게 포로신세가 되었는데 하물며 여기에 새로 이주해 온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리가 없다. 택한 이스라엘일지라도 벌하신 하나님이신데 어찌 이를 용납이나 하실것인가 그래서 하루는 하나님께서 산짐승의 왕인 사자들을 사마리아로 들어 보내 어 사람들을 해치게 하시었다. 사자들에게 몇 사람이 물려 죽게되자 이곳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 앗수르 왕에게 호소하기를 이곳의 신을 우리가 올바로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있게된 것이니 이 땅의 법과 신을 섬기는 방법을 알게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래서 앗수르 왕은 포로로 잡아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 중에 한 사람을 사마리아로 보내게 되고 그곳 사람들은 비로써 하나님을 섬기기에 이르는 것이다.
2,하나님도 우상도 함께 섬김 "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던 이유는 참으로 기이한 방밥이었다. 저들이 사마리아로 이주해 오지 않앗다면 저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들어 보지도 못할뻔 하였다. 또 이주해 왔더라도 사나운 사자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았다면 역시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 볼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 알게된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나 각자가 생각해도 너무나 신기한 방법들로 나를 이끌어 예수 믿게 하신게 아닐까요
그런데 본문 29절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의 지은 여러 산당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의 거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 바벨론 사람 = 숫곳브놋 =말둑신의 배우신인 여신 굿 사람 = 네르갈= 바벨론의 신으로 화성을 그 신으로 하며 전쟁,수렵,명부를 지배하는 신이다. 아와 사람 = 닙하스 = 다르닥 = 앗수르의 여신 스발와임 =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자녀를 불살라 바쳤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아니였다. 32절에 "저희가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절엔 "이와 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 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고 했다. 여호와도 섬기고 전에 섬기던 신들도 섬기고 . 이 이야기를 오늘날 우리들이 일고 들어야 하는 것일까 이 이야기를 왜 우리들에게 들려 주시고 있는 것일까
3,오늘까지 그대로 하니라 오늘 본문 맨 마지막절인 41절에 이런 말이 있다. "그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배하고 또 그 아로 새긴 우상을 섬기더니 그 자자 손손이 그 열조의 행한 것을 쫓아 오늘까지 그대로 하니라오늘까지 그대로 하니라"는 말이 있다. 이 성경을 쓰신 분이 아지까지 살아 게신다면 역시 오늘도 그때와 같이 "오늘까지 그대로 하니라"고 말할 것이다. 오늘까지 그대로 하고 있는 일이 바로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는 예전의 신에게 경솔할 수 박에 없고 또 전의 신을 경외할려면 하나님께 소홀할 수 박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또 크게는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작게는 일개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그 나라에 잡다한 종교가 많이 들끌는 증거는 나라의 장래가 어지러움을 초래할 것이라는 징조이다. 또 개인의 마음에도 섬김의 대상이 하나가 아닐때는 혼란과 갈등이 가득차게되어 방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들면 그것이 아내이거나 남편이거나 관계 없이 사랑해야할 상대가 둘이라면 그 가정은 볼장 다 본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을 섬겨야할 마음에 두 가지 신이 함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이 성경을 주어서 자세히 읽고, 듣고, 배워서 한 하나님만 섬기기를 힘쓰라는 것이다. 그럼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말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 하분만 계시는 것일까 정말 내 가정엔 전능자 유일신 하나님만 모시고 사는 가정일까 그렇다고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들이 입술로는 하나님만 섬기노라고 말은 잘 하지만 또 동시에 세상의 부와 쾨락과 허영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비록 그것들이 숙곳브놋이나 네르갈이나 아시마나 아드람멜렉이란 이름을 가진 것들만 아닐뿐이지 우리들도 하나님과 함께 그것과 비슷한 것들을 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두 마음을 가진 자를 싫어하신다. 주님은 이렇게 섬기라고 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시었다. 모든 것들이 다 라고 했다. 마음도 다이고 뜻도 다이고 성품도 다이고 목숨도 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김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호리라도 소흘이 할 수 없음을 말함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마10;37절에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라는 말도 하셨다. 참으로 여러분들은 하나님만을 위하여 마음을 내어 드리면서 살고 있는가 정말 여러분들의 마음은 하시라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다면 하나님께 드릴 준비가 되었는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만 향하기를 원하신다. 지금 결단을 하자 일관성 있게 행동을 하자 적극적으로 행하자. 여러분의 온 마음으로 하나님만 섬김으로 하나님만의 삶을 살고 있음을 증명하자. 만약의 경우 사랑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두 마음을 품으신다고 가정을 해 보라. 오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내일은 여러분께 저주를 내리고. 오늘은 주시고 내일엔 다시 빼았아 가신다고 가정을 해 보시라. 우리들이 하나님께 이랬다 저랬다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조롱함이다. 말씀을 맺는다. 사마리아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에 노예가 되어 앗수르 변방으로 쫓겨 났던 것은 저들의 마음에 하나님만을 모시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으로 이주해 온 이방 백성들도 똑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래서 본문은 "오늘도 그대로 하니라" 고 한탄하고 있음이다. - 우리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만을 두시기를 소흘이 한다면. 우리들의 가정에 하나님만을 모시기를 경솔히 한다면 . 이스라엘을 흩으셨던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 하실까 오늘의 말씀 35절부터 다시 본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저희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치 말며 그를 숭배하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만 너희가 경외하여 그를 숭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너희가 지켜 영원히 행하오 다른 신들을 경외치 말며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치 말고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리라 하셨으나" 수24;15절에서 여호수아는 믿음의 후배들을 앞에 두고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 얼마나 멋있는 고백인가 사도 바울처럼 예수에게만 미칠 수 있어야겠다. 옇와만 섬기는 가정이 되시어 모든 원수와 시험에서 건지심을 받는 복된 한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눅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벙어리되고 귀신들린 한 사람을 고쳐주신 일이 있다.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신다고 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다가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절 와보니 그 집이 소재되고 수리 되었거늘 26절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비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다름 어떤 것들로 가득차 있게 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른 어떤 것들이 하나님보단 좋은 것일 순 없다. 그래서 사마리아 성읍에는 이방인들로 가득차게 되엇다, 사마리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싫어 했기에 앗수르에게 포로신세가 되었는데 하물며 여기에 새로 이주해 온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리가 없다. 택한 이스라엘일지라도 벌하신 하나님이신데 어찌 이를 용납이나 하실것인가 그래서 하루는 하나님께서 산짐승의 왕인 사자들을 사마리아로 들어 보내 어 사람들을 해치게 하시었다. 사자들에게 몇 사람이 물려 죽게되자 이곳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 앗수르 왕에게 호소하기를 이곳의 신을 우리가 올바로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있게된 것이니 이 땅의 법과 신을 섬기는 방법을 알게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래서 앗수르 왕은 포로로 잡아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 중에 한 사람을 사마리아로 보내게 되고 그곳 사람들은 비로써 하나님을 섬기기에 이르는 것이다.
2,하나님도 우상도 함께 섬김 "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던 이유는 참으로 기이한 방밥이었다. 저들이 사마리아로 이주해 오지 않앗다면 저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들어 보지도 못할뻔 하였다. 또 이주해 왔더라도 사나운 사자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았다면 역시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 볼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 알게된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나 각자가 생각해도 너무나 신기한 방법들로 나를 이끌어 예수 믿게 하신게 아닐까요
그런데 본문 29절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의 지은 여러 산당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의 거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 바벨론 사람 = 숫곳브놋 =말둑신의 배우신인 여신 굿 사람 = 네르갈= 바벨론의 신으로 화성을 그 신으로 하며 전쟁,수렵,명부를 지배하는 신이다. 아와 사람 = 닙하스 = 다르닥 = 앗수르의 여신 스발와임 =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자녀를 불살라 바쳤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아니였다. 32절에 "저희가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절엔 "이와 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 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고 했다. 여호와도 섬기고 전에 섬기던 신들도 섬기고 . 이 이야기를 오늘날 우리들이 일고 들어야 하는 것일까 이 이야기를 왜 우리들에게 들려 주시고 있는 것일까
3,오늘까지 그대로 하니라 오늘 본문 맨 마지막절인 41절에 이런 말이 있다. "그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배하고 또 그 아로 새긴 우상을 섬기더니 그 자자 손손이 그 열조의 행한 것을 쫓아 오늘까지 그대로 하니라오늘까지 그대로 하니라"는 말이 있다. 이 성경을 쓰신 분이 아지까지 살아 게신다면 역시 오늘도 그때와 같이 "오늘까지 그대로 하니라"고 말할 것이다. 오늘까지 그대로 하고 있는 일이 바로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는 예전의 신에게 경솔할 수 박에 없고 또 전의 신을 경외할려면 하나님께 소홀할 수 박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또 크게는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작게는 일개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그 나라에 잡다한 종교가 많이 들끌는 증거는 나라의 장래가 어지러움을 초래할 것이라는 징조이다. 또 개인의 마음에도 섬김의 대상이 하나가 아닐때는 혼란과 갈등이 가득차게되어 방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들면 그것이 아내이거나 남편이거나 관계 없이 사랑해야할 상대가 둘이라면 그 가정은 볼장 다 본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을 섬겨야할 마음에 두 가지 신이 함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이 성경을 주어서 자세히 읽고, 듣고, 배워서 한 하나님만 섬기기를 힘쓰라는 것이다. 그럼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말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 하분만 계시는 것일까 정말 내 가정엔 전능자 유일신 하나님만 모시고 사는 가정일까 그렇다고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들이 입술로는 하나님만 섬기노라고 말은 잘 하지만 또 동시에 세상의 부와 쾨락과 허영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비록 그것들이 숙곳브놋이나 네르갈이나 아시마나 아드람멜렉이란 이름을 가진 것들만 아닐뿐이지 우리들도 하나님과 함께 그것과 비슷한 것들을 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두 마음을 가진 자를 싫어하신다. 주님은 이렇게 섬기라고 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시었다. 모든 것들이 다 라고 했다. 마음도 다이고 뜻도 다이고 성품도 다이고 목숨도 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김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호리라도 소흘이 할 수 없음을 말함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마10;37절에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라는 말도 하셨다. 참으로 여러분들은 하나님만을 위하여 마음을 내어 드리면서 살고 있는가 정말 여러분들의 마음은 하시라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다면 하나님께 드릴 준비가 되었는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만 향하기를 원하신다. 지금 결단을 하자 일관성 있게 행동을 하자 적극적으로 행하자. 여러분의 온 마음으로 하나님만 섬김으로 하나님만의 삶을 살고 있음을 증명하자. 만약의 경우 사랑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두 마음을 품으신다고 가정을 해 보라. 오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내일은 여러분께 저주를 내리고. 오늘은 주시고 내일엔 다시 빼았아 가신다고 가정을 해 보시라. 우리들이 하나님께 이랬다 저랬다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조롱함이다. 말씀을 맺는다. 사마리아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에 노예가 되어 앗수르 변방으로 쫓겨 났던 것은 저들의 마음에 하나님만을 모시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으로 이주해 온 이방 백성들도 똑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래서 본문은 "오늘도 그대로 하니라" 고 한탄하고 있음이다. - 우리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만을 두시기를 소흘이 한다면. 우리들의 가정에 하나님만을 모시기를 경솔히 한다면 . 이스라엘을 흩으셨던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 하실까 오늘의 말씀 35절부터 다시 본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저희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치 말며 그를 숭배하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만 너희가 경외하여 그를 숭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너희가 지켜 영원히 행하오 다른 신들을 경외치 말며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치 말고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리라 하셨으나" 수24;15절에서 여호수아는 믿음의 후배들을 앞에 두고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 얼마나 멋있는 고백인가 사도 바울처럼 예수에게만 미칠 수 있어야겠다. 옇와만 섬기는 가정이 되시어 모든 원수와 시험에서 건지심을 받는 복된 한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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