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열심과 잘못된 열심 (왕하10,16-36)
본문
오늘의 설교 제목을 보시고 의아해 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열심은 열심이지 열심에 무슨 참된 열심이 있고 잘못된 열심이 있느냐고 말 하실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세상에는 이 두열심이 함게 있다. 진정으로 성도라면 주님을 위한 열심이나 복음의 진리를 위한 열심 또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열심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한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나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주님의 진지한 열심은 두드러지게 나타나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상의 희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열심이 개인적인 수준에서 머문다면 잘못될 수도 있다. 그 잘못된 열심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없게되고 우리 자신에게도 아무 유익이 않되며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에 진정한 열심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도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잘못된 열심이란 무었이며 진정한 열심은 무었인가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후를 살펴 보면서 함께 발견하고자 한다.
1,잘못된 열심 '"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후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보았다. 16절에서 "나와함게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고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에게 자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의 사람은 자기의 신앙을 남들에게 떠벌릴지 않는다. 예후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 세례 요한은 단지 자기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만 만족한 사람이었다. 요3;30절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1),예후의 열심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것이었다.-
(1),어떤 일을 하는데는 반듯이 그 동기가 있다. 일을 하는데는 반듯이 그 동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 동기야 말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예후는 바알을 없이하고 아합의 집을 소탕함에는 매우 열심이었으나 예후 의 열심 배후에는 자기의 감추어진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중세에 십자군이란게 있었다. 십자군병의 모집 동기가 무었이었나 십자군들은 성지를 회복한답시고 회교도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수도 없이 전개했다. 저들에겐 성지 회복이란 좋은 명분이 있었다. 그리고 대단한 열심도 있었다. 왜 무었을 위한 열심이었나 그리고 누구를 위한 열심이었나 그렇게 열심한 동기가 무었이었나 그 동기의 깊숙한 이면을 보아야한다. 거기에는 당시 영주나 기사 계급의 사람들의 자기 이익과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성지 회복은 하나의 명분이었고 실상은 저들의 사치스러운 생활로 인하여 실추된 지위를 다시 승격시키는 것과 바닥이 드러난 국고를 채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러나 결국 십자군의 원정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싸움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 결과는 엄청난 실패였다.
2),자기만의 만족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의 열심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의 열심은 자기의 편의에 따라서 변화 되기도 하므로 오래 동안 지속될 수 없다. 이기적인 동기를 갖고 있는한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하나님의 축복은 기대할 수 없다.
3),자기의 인기를 위한 열심은 쉬 들통이 난다.-예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답시고 사람들에게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십을 보라고 하면서 떠벌렸으나 그 결과는 금방 드러나고 말았다. 예후의 열심은 여호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다.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기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 수많은 바알의 무리와 아합의 집을 소탕했던 힘을 가진 예후가 금송아지를 없이 할 수 없었단 말인가 금송아지가 어떻게 여호와를 위한 것인가 금송아지를 그대로 남겨둔 일이 어떻게 여호와를 위한 열심인가 예후는 여호와를 위한 열심이란 명분을 세워 놓고 온갓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이기심만을 위하여 살았던 것이다.
2,참된 열심 "
1),참된 열심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예후는 열심은 있었지만 그의 온 마음을 받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길을 가기를 원치 않았다. 이는 평소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2),참된 열심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겸손히 봉사한다.-- 우리들은 교회 사람을 가리켜 믿는자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믿는"다라는 말은 충성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믿는다라는 말은 충성한다는 말이 됨으로 교회에서 충성이 없는 자는 엄격하게 말하면 오랜 세월 예수를 믿었어도 초신자나 다를바가 없다는 말이다. 믿는자라는 말을 듣을려면 충성을 다하는자가 되어야 한다. 믿는자가 충성을 하자면 언제자기 자신을 자랑할 여유가 있겠는가 그래서 참된 열심에는 자기 과시가 아니다.
3),참된 열심은 내적인 마음에 근거한 것이다.-참된 열심은 예후처럼 외적으로 떠 벌리는게 아니라 자기 내적으로 결심하는 위대한 헌신인 것이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후처럼 자기의 해야할 일을 떠 벌리지 않았다. 고전9;26-2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을 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 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다" 라고 했던 것이다. 바울은 16절에 계속해서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 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복음을 전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의 마땅한 본분이고 의무였지 결코 자랑할 것이 아니라고 했다.
4),참된 열심은 주님을 향한 열심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참된 열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여호와의 영광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게 경배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사는 것이다. 빌1;20절에서 바울은 이런 말을 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런데 예후는 주님이 원하는 그런 열심이 아니었다. 자기의 열심을 통하여 자기가 영광을 받고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후는 여호와를 위한 열심이라는 거룩한 명분을 내어 걸고 자기의 이익을 취한 사람이었다.
5),참된 열심은 하나님을 위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우리 구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어서 목숨을 다하여 충성을 하시었다. 예수님께 우리들에게 무었을 보여 주셨는가 주님께서 보여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열심이 있는가 어떤 열심인가 예후와 같은 자기 자신을 위한 열심인가 사도 바울과 같은 주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형제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열심인가 어떤 사람은 참된 열심으로 헌신을 잘 하다가도 남의 눈을 의식하여 슬며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열심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를 본문에서 우리들이 배워야하는 교훈은 . 예후의 열심에서 얻는 교훈은 . 참된 성도의 참된 열심은 자기 편의에 의한 자기 감정의 충족이 아니라 자신의 온 마음을 바쳐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 세상에 확대하면서 사는 것이다. 자기를 위한 열심쟁이가 되지 말고 우리 모두다 예수님의 열심처럼 세례 요한의 열심처럼 또 사도 바울의 열심처럼 날날로 믿음들이 성숙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열심이 개인적인 수준에서 머문다면 잘못될 수도 있다. 그 잘못된 열심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없게되고 우리 자신에게도 아무 유익이 않되며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에 진정한 열심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도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잘못된 열심이란 무었이며 진정한 열심은 무었인가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후를 살펴 보면서 함께 발견하고자 한다.
1,잘못된 열심 '"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후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보았다. 16절에서 "나와함게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고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에게 자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의 사람은 자기의 신앙을 남들에게 떠벌릴지 않는다. 예후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 세례 요한은 단지 자기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만 만족한 사람이었다. 요3;30절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1),예후의 열심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것이었다.-
(1),어떤 일을 하는데는 반듯이 그 동기가 있다. 일을 하는데는 반듯이 그 동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 동기야 말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예후는 바알을 없이하고 아합의 집을 소탕함에는 매우 열심이었으나 예후 의 열심 배후에는 자기의 감추어진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중세에 십자군이란게 있었다. 십자군병의 모집 동기가 무었이었나 십자군들은 성지를 회복한답시고 회교도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수도 없이 전개했다. 저들에겐 성지 회복이란 좋은 명분이 있었다. 그리고 대단한 열심도 있었다. 왜 무었을 위한 열심이었나 그리고 누구를 위한 열심이었나 그렇게 열심한 동기가 무었이었나 그 동기의 깊숙한 이면을 보아야한다. 거기에는 당시 영주나 기사 계급의 사람들의 자기 이익과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성지 회복은 하나의 명분이었고 실상은 저들의 사치스러운 생활로 인하여 실추된 지위를 다시 승격시키는 것과 바닥이 드러난 국고를 채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러나 결국 십자군의 원정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싸움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 결과는 엄청난 실패였다.
2),자기만의 만족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의 열심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의 열심은 자기의 편의에 따라서 변화 되기도 하므로 오래 동안 지속될 수 없다. 이기적인 동기를 갖고 있는한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하나님의 축복은 기대할 수 없다.
3),자기의 인기를 위한 열심은 쉬 들통이 난다.-예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답시고 사람들에게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십을 보라고 하면서 떠벌렸으나 그 결과는 금방 드러나고 말았다. 예후의 열심은 여호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다.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기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 수많은 바알의 무리와 아합의 집을 소탕했던 힘을 가진 예후가 금송아지를 없이 할 수 없었단 말인가 금송아지가 어떻게 여호와를 위한 것인가 금송아지를 그대로 남겨둔 일이 어떻게 여호와를 위한 열심인가 예후는 여호와를 위한 열심이란 명분을 세워 놓고 온갓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이기심만을 위하여 살았던 것이다.
2,참된 열심 "
1),참된 열심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예후는 열심은 있었지만 그의 온 마음을 받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길을 가기를 원치 않았다. 이는 평소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2),참된 열심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겸손히 봉사한다.-- 우리들은 교회 사람을 가리켜 믿는자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믿는"다라는 말은 충성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믿는다라는 말은 충성한다는 말이 됨으로 교회에서 충성이 없는 자는 엄격하게 말하면 오랜 세월 예수를 믿었어도 초신자나 다를바가 없다는 말이다. 믿는자라는 말을 듣을려면 충성을 다하는자가 되어야 한다. 믿는자가 충성을 하자면 언제자기 자신을 자랑할 여유가 있겠는가 그래서 참된 열심에는 자기 과시가 아니다.
3),참된 열심은 내적인 마음에 근거한 것이다.-참된 열심은 예후처럼 외적으로 떠 벌리는게 아니라 자기 내적으로 결심하는 위대한 헌신인 것이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후처럼 자기의 해야할 일을 떠 벌리지 않았다. 고전9;26-2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을 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 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다" 라고 했던 것이다. 바울은 16절에 계속해서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 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복음을 전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의 마땅한 본분이고 의무였지 결코 자랑할 것이 아니라고 했다.
4),참된 열심은 주님을 향한 열심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참된 열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여호와의 영광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게 경배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사는 것이다. 빌1;20절에서 바울은 이런 말을 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런데 예후는 주님이 원하는 그런 열심이 아니었다. 자기의 열심을 통하여 자기가 영광을 받고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후는 여호와를 위한 열심이라는 거룩한 명분을 내어 걸고 자기의 이익을 취한 사람이었다.
5),참된 열심은 하나님을 위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우리 구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어서 목숨을 다하여 충성을 하시었다. 예수님께 우리들에게 무었을 보여 주셨는가 주님께서 보여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열심이 있는가 어떤 열심인가 예후와 같은 자기 자신을 위한 열심인가 사도 바울과 같은 주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형제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열심인가 어떤 사람은 참된 열심으로 헌신을 잘 하다가도 남의 눈을 의식하여 슬며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열심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를 본문에서 우리들이 배워야하는 교훈은 . 예후의 열심에서 얻는 교훈은 . 참된 성도의 참된 열심은 자기 편의에 의한 자기 감정의 충족이 아니라 자신의 온 마음을 바쳐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 세상에 확대하면서 사는 것이다. 자기를 위한 열심쟁이가 되지 말고 우리 모두다 예수님의 열심처럼 세례 요한의 열심처럼 또 사도 바울의 열심처럼 날날로 믿음들이 성숙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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