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왕상12:13-15)

본문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인간은 어떤 정치적인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 얻기를 구했 습니다. 저 먼 고대나 중세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최근의 세계 역사 를 살펴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 민족들은 물론 어떠한 웅변적인 연설문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정치적인 억압에서 벗어나 기를 갈구했습니다. 그래서 르호보암 왕을 찾아가 '멍에를 가볍게 해 주옵소서' 라고 아뢰었습니다. 그때 르호보암 왕은 포악한 말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너희 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하리라." 본문배경 솔로몬 왕은 아주 모범적으로 통치를 시작하여 그 영광과 명예와 권세가 극에 달 했으나 결국에는 비극과 비통 속에 치세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왕은 그의 힘을 펼쳐 보이기 위해 주변 이방국가들과 많은 동맹 관계를 맺었습니다. 당시에는 동맹을 맺은 나라의 왕이 또다른 동맹국 왕에게 자신의 딸을 주는 풍습이 유 행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솔로몬 왕 에게는 700명의 부인과 300명의 첩들이 있었습니다(왕상11:3). 솔로몬의 이방 아 내들은 그들이 섬기던 이방 신상들을 들고 이스라엘로 왔는데 어리석게도 솔로몬 은 그녀들이 자신들의 신상들을 숭배할 수 있도록 신당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이방 아내들은 그의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쫓게 하였고 그의 마음은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온전치 못했습니다(왕상 11:4). 문제는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호화스러운 생활을 좋아했던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부 과하고 많은 이들로 그를 섬기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그들중에 여로보암이라는 한 청년을 그들의 지도자격으로 세웠습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을 떠나던 여로보 암은 과거 하나님의 멧세지를 자신에게 전달해 주었던 선지자 아히야를 들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아히야는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12지파중 10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을 알려 주기 위해 새옷을 취하여 12조각으로 찢고 그 조각중 10조각을 그에게 주었습니다(왕상11:26-31). 여로보암이 아주 위험한 적수로 부상하고 있음을 깨 달은 솔로몬은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왕상11:40). 그러나 여로보암은 애굽으로 피신하여 솔로몬이 죽기까지 그곳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 보암이 왕좌에 올랐을 때 이스라엘 북방 사람들은 애굽에 있던 여로보암을 불러 와 르호보암에게로 보내 멍에를 가볍게 해 줄 것을 건의케 했습니다. 그러나 아 비야의 예언을 이루기나 하려는 듯 거만한 르호보암은 그 건의를 묵살해 버렸습니다.
1.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행동(왕상12:13-15) 대관식을 위해 세겜에 갔을 때 르호보암은 북쪽 지파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 데 그들은 그의 아버지 솔로몬 당시 부과되었던 고역과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르호보암은 3일 후에 그 요청에 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먼저 아버지 솔로몬을 모셨던 장로들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들은 백성들의 요청을 들어 주어야 왕의 명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지혜로운 조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 조언에 만족하지 않고 실제적인 경험이나 지혜가 없는 젊은 친구들의 조언을 다시 구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백성에게 솔로몬 때 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우라고 충동질했습니다.
1-1. 르호보암의 포악한 대답(13, 14절) 13."왕이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젊은 르호보암 의 어리석은 대답에 대해 읽을 때마다 우리는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세워 놓았던 이스라엘 제국의 통치권을 이제 거 의 빼앗겨 버릴 순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백성들을 관대하게 통치하겠 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장로들의 충언을 거절해 버렸던 것 같 습니다. 르호보암이 그같은 못된 성품을 갖게 된 데에는 솔로몬의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즉, 막강한 권력가의 아들로 성장했던 르호보암이 못된 성품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의 성장 과정 중 그에게 감히 도전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의 모든 욕심은 충족되었습니다. 그렇게 자란 그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리 없습니다. 결 코 무거운 짐을 져보지 않았던 자가 짐을 지는 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르호보암의 이 비극적인 예를 오늘을 사는 모든 부모들은 하나의 경 고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합니다. 그 결과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복 받지 못한 다른 또래들에 대해 거의 무관 심 합니다. 14.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 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 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르호보암의 과거 경력을 살펴본 사람이라면 한 아버지의 죄가 아들대에 이르러 재앙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10지파에 대한 통치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부른 솔로몬의 어리석음은 아들 르호보암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르호보암은 암몬 여인 나아마와 솔로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왕상14:21). 따라서 르호보암은 무자비한 이방 인의 품성과 음모와 사치를 좋아하는 솔로몬의 첩들의 일반적인 특성을 한 몸에 지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르호보암이 북쪽 지파의 대표자들에게 보였던 무자비한 반응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2. 르호보암의 교만(15절) 15."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르호보암의 교만한 행동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 이었습니다. 물론, 왕국의 분열은 이미 선지자 아히야에 의해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극을 맞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장로들의 충고를 따 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물론 3일 후에 응답을 해 주겠 다고 약속했지만 백성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 리어 백성들의 마음을 더 자극시킬 수 있는 대답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가 자유롭게 택한 그 태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성취하셨습니다.
2. 백성들의 반응(왕상12:16, 17) 2-1 이스라엘의 반역(16절) 왕의 오만한 말에 백성들은 즉각 만장일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백성들의 반응은 오랜 세월 동안 북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 존재했던 불화를 반영해 줍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넬이란 사람은 이스보셋(사울의 아들)을 경쟁자로 세 웠으며 북이스라엘과 베냐민까지도 얼마 동안 이스보셋을 추종했다(삼하 2:3-4,8-9). 그 후 모든 지파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옹립하기까지 내전은 끊이 지 않았으며(삼하3:1,5:1-5), 그가 즉위한 후에도 세바를 따르는 반란군들이 있 었습니다(삼하20:1-2). 북방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미 르호보암에 대한 반역을 신 중히 검토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은 그들이 이미 여로보암을 데려오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무거운 세금과 막중한 노 동을 부과했을 때 백성들의 마음에는 반역의 장작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고, 르호보암 왕의 오만한 말이 그 장작 위에 불을 그어 댄 것입니다."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백성들의 결단을 촉구하는 외침입니다.(삼하 20:1). 항의했던 백성들은 이제 행동을 취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외침은 왕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권고의 음성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제 반역을 평정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할지 모르는 르호보암을 생각하고 전쟁 준비 를 촉구하는 외침으로 간주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2-2 유다 지파의 충성(17절)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 왕이 되었 더라." 어떤 주석가는 이 구절을 단순히 르호보암에게 충성하기 위해 남은 유다 족속에 대한 언급으로 봅니다. 또 다른 주석가는 여기의 "이스라엘 자손"을 유다 영역 내의 도시에 거주하는 다른 족속들의 일부로 봅니다. 여기의 "이스라엘 자 손"에는 시므온 지파(수19:1-9)와 오랫동안 유다와 경계를 이웃했던 베냐민 지파 가 포함됩니다. 왕국 분열 이후 "이스라엘 자손"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같은 표현은 거의 항상 북왕국 거민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3. 분열된 왕국(왕상12:20,26-29)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반란이 일어난 뒤 르호보암이 취한 행동은 솔로몬을 위 한 강제 노역의 감독이었던 아도니람을 파송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아도니람을 파송한 행위는 르호보암 쪽에서 취한 어떤 화해의 제스처였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르호보암처럼 오만한 자가 그처럼 빨리 올리브 가지를 내밀리 없기 때문입니다.(당시 사람들은 회해를 청할 때 올 리브 가지를 내밀었음). 아도니람을 파송했던 이유는 분명히 "전갈"로 다스리겠 다던 말을 상기시키기 위한 위협이었을 것이다. 아도니람이 어떤 의도에서 파송 되었든간에 백성들은 또 다른 억압이 시작되는구나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자 그 들의 끓어 오르던 분노가 폭발하여 돌을 던져 아도니람을 죽여버렸습니다. 그 소 식을 전해 들은 르호보암은 마차를 빨리 몰아 예루살렘으로 도망해 버렸습니다. 3-1 백성들이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음(20절) 20."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함을 듣고 보내어 저를 공회로 청하여다 가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으니 유다 지파외에는 다윗의 집을 좇는 자가 없으니 라." 백성들은 여로보암을 이스라엘 북쪽 지파의 초대 왕으로 삼았는데 그 이유는 솔로몬 때부터 왕가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고 있던 그가 왕으로서 적격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여로보암의 대관식이 어디서 거행되었는지 확 실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 역사 가운데 유명한 지역인 세겜이 아니었겠는가라고 생각해 봅니다. 백성들은 그 대관식이 가능한 한 좀더 합법적 인 대관식이 되게 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왕국이 분열될 때 다윗의 지파 인 유다 지파만이 르호보암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훗날 베냐민 지파도 유다 지파 와 합세했습니다.(21절 참조). 3-2 여로보암이 백성들의 불충성을 염려함(26,27절) 26,27.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 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백성들이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여로보암은 좀처럼 백성 다스리기를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여로 보암은 세상에는 군사력보다 더 강한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 었습니다. 백성들은 예배하러 정기적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습관을 하루 아침에 뿌리 뽑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교훈은 오늘날의 독재자들이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교훈입니다. 러시아에서는 거의 70여 년 동안, 중공에서는 반세기 이상 동안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를 말살 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엄격한 통제 속에서도 기독교는 계속 성 장해 왔습니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한 예배 중심지와 한 제도를 인식하고 있는 한, 두 왕국의 상태로는 오래가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백성들이 갑자기 난폭해져서 자신을 거역하면 자신도 아도니람처럼 당 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배 행위를 말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배 행위를 변질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3-3 두 금송아지(28, 29절) 28,29.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여로보암은 그 문제를 놓고 자신의 정치 고문관들과 함께 최선책을 강구했을 것입니다. 그 결론 은 두 금송아지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직 세력을 규합하는 중에 있던 여로보암이 우상 숭배를 드러내고 도입시킨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여전히 표방했 지만 금송아지란 가나안과 그곳 타 민족의 숭배 대상이었으므로, 결국은 실제적 인 우상 숭배로 이끌어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두 금송아지가 여로보암이 통치 하는 왕국의 남북 중심지에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인 벧엘에 그 하나를 두었는데,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이란 뜻으로, 야곱이 꿈을 꾼 바로 그곳이거나 그 근처에 위치해 있었습니다(창 28:10-22). 이 역사적인 성역이 정 치적 이권을 위해 더럽혀졌다는 것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지요. 다른 하나는 헤르 몬 산 기슭의 "단"이라는 성읍에 세워졌는데, 이곳은 북쪽에 사는 지파들에게 편 리한 곳이었습니다.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얼마나 영 리한 말인지요.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려 하고 있으면서도 여로보암은 자 신의 행위가 그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믿게했습니다. 이같은 속임수는 오늘날에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사단에 이끌려서 편리주의에 입각한 종교 결정을 합니다. 즉, 어떤 종교지도자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인간들의 편 익을 위해 어떤 명령을 내리고 순종을 요구할 때 너무도 쉽게 동의해 버리고 맙니다. 교회 나가는 것이 귀찮으니까 하나님은 어느 곳에든 계신다는 주장을 가지 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고집합니다. 솔로몬이 이방 신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국에서 10지파를 분리해 내서 여로보암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여호보암은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이스라엘 가운데 우상 숭배가 성행할 여 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그의 집은 이스라엘 족속들로부터 끊기 울 것입니다(왕상14:7-11,20/15:25).
4. 결론
한 사람이 한 그릇된 결정을 내릴 때 그 사람 스스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 을 깨닫기 전까지 제 2, 제 3의 그릇된 결정을 내릴 여지는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여로보암이 바로 그런 처지에 있었습니다. 예배 처소에 금송아지 형상을 만 들어 세우자, 그곳에서 예배를 주도할 제사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레위 인들은 르호보암 왕국 영역 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대하 11:13-14). 그래서 불 행히도 여로보암은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팔월 십 오일을 이스라엘의 절기로 정했습니다. 그것은 한달 일찍 지켰던 초 막절을 생각하고 만들었음이 분명합니다. 여로보암 자신은 금송아지를 숭배할 의 도가 없었다고 해도 백성들은 금송아지와 이방 우상의 차이를 곧 잊어버리게 되 었습니다. 얼마되지 않아 백성들은 이방 가나안 민족처럼 노골적으로 금송아지를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위험 천만한 역사를 오늘날 시대에 적용해 볼까요 맨 처음 TV는 국민들의 문화 생활을 돕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의 TV 프로그램은 비도덕성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교를 위해 가끔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술 때문에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사회는 사생아에게 동정을 보내고 이해하 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사생아 문제는 사회의 도덕성을 위협할 정도의 문제로 발전했습니다. 이 악한 추세가 언제나 멈추게 될까요 우리가 내딛었던 그릇된 발걸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전까지 그 추 세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천천히 산 꼭대기를 출발한 썰매가 산 비탈을 내려갈 수록 점점 가속되듯이 일단 그릇된 결정을 내리면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 되고 파멸의 수렁을 향해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연구시리즈 2 이스라엘 북왕국의 멸망(왕하17장) 지난 주일까지 우리는 B.C. 931년, 이스라엘이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나뉘는 과 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처럼 이스라엘이 분열되도록 허용하신 이유는 솔로몬 왕이 그의 치세 말기 많은 이방 아내들이 가지고 있던 이방신들을 숭 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북왕국의 왕인 여로보암은 황금 송 아지 신상을 세웠는데 그로 인해 북왕국은 멸망할 때까지 이방신을 숭배하게 되 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내분으로 상당한 고통을 당했는데 그 내분으로 왕도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오모리(885-874 B.C.)와 여로보암 2세(789-748 B.C.) 때에는 번영을 누리기도 했지만 불행히도 하나님과 여러 이방신을 동시에 섬기는 것이 가능하구나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태평성대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여 로보암 2세 치세 때 이스라엘의 종말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시기 위해 앗수르 족을 일으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앗수르는 북왕국을 침 입해 포로를 잡고 조공을 요구했습니다. 여로보암 2세 사후 12년 동안 다섯 번 왕이 바뀌었는데, 이는 당시가 얼마나 불안정한 시대였는가를 암시합니다. 이스 라엘 마지막 왕인 호세아가 앗수르 왕 살만에셀을 대적했을 때 앗수르는 이스라 엘 성을 함락시켰고 3,000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이로써 이 스라엘 북왕국은 종말을 고했습니다.
1. 포로된 이스라엘(왕하17:6-8) 1-1 포로자 앗수르(6절) 사마리아 성이 함락되기 몇 해 전 이스라엘은 유다에 대항하여 수리아와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위험을 느낀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 셀은 수리아를 침공해 다메섹을 정복하고 수리씀 왕을 죽였습니다. 그는 또한 이 스라엘도 공격해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상황이 그와 같 이 전개되자 용기를 얻은 호세아는 디글랏 빌레셋을 믿고 이스라엘 왕 베가를 죽 이고 왕권을 쟁취했습니다(왕하15:29-30). 그러나 B.C.727년 디글랏 빌레셋이 죽 었을 때 그 때를 앗수르의 지배에서 벗어날 기회로 본 호세아는 할당되어 있던 조공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디글랏 빌레셋을 계승해서 앗수르 왕이 된 살 만에셀은 사마리아를 치기 위해 군대를 파송했고 호세아는 다시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일단 앗수르의 신임을 잃자 호세아는 애굽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더 이상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았으므로 앗수르는 다시한번 사마리아를 공격 해 왔습니다(왕하17:1-4). 5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고통을 받았던 3년 동 안의 포위 시절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국 살만 에셀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잠시 그의 연대기를 살펴 보겠습니다. "나는 사마리아를 포위하여 이를 취했다. 나는 주민 27,290명을 잡 아왔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사람들이 디글랏 빌레셀과 살만 에셀에 의해서 끌려 갔었습니다. "호세아 9년"이란 B.C.722, 혹은 721년을 말합니다. 성경은 호 세아의 이후의 운명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사르곤에 의해 죽임을 당했거나 백성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 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할라"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터어키의 남동쪽에 위치한 유프라테 스 강의 지류인 하볼 강 부근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대 문서에 의하면 고산은 그 할라의 인근지방의 이름입니다. 포로들의 일부는 페르시아 만 북방에서 극동 쪽으로 160KM 떨어진 메대에도 머물렀습니다. 이와 같이 앗수르 사르곤 왕이 포 로로 잡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방에 분산 정착시킨 것은 그들이 힘을 모아 반 역할 기회를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1-2 백성들이 포로된 이유(7,8절) 7-12절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켜 놓았던 몇 가지 죄에 대해 상세히 열거하고 있는데, 한가지 두드러진 죄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던 죄입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고 새로운 땅 을 소유지로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감사하는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이 방신들을 쫓아 숭배했던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와 동일한 상황이 오늘날 에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6.25 동란 이후 대한민국은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집 집마다 TV, 냉장고, 전화 등을 다 구비해 놓고 있고 이제는 마이카 시대를 이야 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모든 번영은 스스로 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외치면서 자만해 있는 것입니다. 8절, 이방 사람들의 규례 란 이방국가의 관습과 습관, 특별히 그들의 종교적인 관습을 말합니다. 여러 차 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와 같은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셨 습니다(레 18:3, 30/신 12:29-31/18:9-14). 이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 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했던 데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여호수아 영도 아래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그 땅에 살던 가나안 족속과 통혼하 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통치자들이 그들에게 우상을 소개하거나 우상을 숭배하도 록 강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솔로몬 왕 같은 사람은 이방인 아내들 의 꾀임에 빠져서 이방 신상들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여 로보암 왕은 아예 단과 벧엘에 왕금 송아지 신상을 세웠습니다. 심지어 아합과 이세벧은 이방신 숭배를 장려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충성된 자들을 박 해하기까지 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그와 같은 상황을 우리의 세대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세대는 어떤 형체가 있는 우상을 숭배하지는 않지만 돈이나 재산 그리고 쾌락 같은 것을 우상으로 섬기고있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마약과 알콜 신에게 몸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이방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경고를 내리고 있는 선지자들을 구체적으로 박해하지는 않지만 그들 을 비난과 조소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의 반역(왕하17:13-18) 2-1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들을 무시함(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였던 사실을 변명할 수 없었 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이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과 선 견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선지자란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도록 영감받은 자로 서, 미래의 일을 예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 상황에 어떤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달하기도 했으며,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환상을 보던 자였습니다. 이 두 낱말은 성경에서 흔히 번갈아가며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익 숙한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와 같은 선지자들과 그들 외에도 덜 알려진 선지자들을 북왕국에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요구한 것은 새로운 어떤 도덕성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께 받았던 율법으로 돌아오는 일이 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 사실은 중요한 교훈을 제시해 줍니다. 즉, 오늘날 참 하나님의 사자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인간적인 도덕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돌이킬 것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2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을 곧게 함(14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로 유지했던 어떤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을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대로 그 특성은 결코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자주 그들을 가리켜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출32:9, 신31:27, 느9:16,17,29)
여기서는 그들을 목이 굳은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들은 멍 에를 거부하느라 목을 뻣뻣하게 세우는 황소와도 같았습니다. 2-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거역함(15,16절)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조들과 한 언약을 맺으셨고 그 언약은 그 이후 여러 차례 갱신되었습니다. 언약을 맺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의 선조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행하겠다"고 맹세했지만 결국은 그 맹세 를 어겼습니다. "허무한 것"이란 무가치한 우상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상이 무가치한 주된 이유는 생명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허무한 우상을 섬기는 자들 또한 우성처럼 공허하며 생명을 소유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명령 순종하기를 그치고 이방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과 통혼하고 그들의 길을 좇았읍니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중단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쉽게 하나님이 요구하신 고 상한 도덕 기준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 선지자들인 아모스, 호세아를 통해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존 , 도둑질, 간음, 가난한 자 압제 등의 죄를 범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종교와 도덕성은 서 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아도 고상한 도덕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 겠지만 그런 경우는 이미 전 시대에 믿음의 사람들로서 도덕적으로 모범적인 삶 을 살았던 선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선조의 영향력은 세월이 흐를수록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마치 따뜻한 기운을 전해 주던 태양이 서산으로지고 나면 추운 밤이 오듯이 그 선조의 영향력이 약해져 사라지고 나면 그들은 다시 부도덕 성의 늪속으로 빠져 들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영이시고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했을 때 백성들은 여러 가 지 우상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우상이 아세라 목상입니다. 아세 라 목상은 가나안 산당 제단 앞에 세운 나무 기둥으로 하나 혹은 둘은 돌기둥과 함께 세웠습니다. 이것은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으로서, 이 신을 경배하는 의식에는 음란한 행위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일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신 4:19, 17:2-5) 바알 또한 가나안의 대표적인 신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신을 숭배하도록 끊임없이 유혹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에 굴복했습니다(삿 2:11, 13, 3:7, 6:25, 10:6, 삼상 7:4). 아합 통치 때는 바알 숭배를 공식화하기도 했습니다. 2-4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악습을 답습함(17절)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한다"는 것은 이방신들에게 자녀를 제물로 바쳤던 행위 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차례 이 행위에 대한 경고를 받았 습니다(레 18:21, 신 18:9, 10). 이쯤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을 심판하신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의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매해 백만 명이상되는 태아가 죽임을 당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술과 사술을 행했습니다. 복술은 무슨 표적을 보고 신 의 뜻을 알아내는 행위를 말하고, 사술은 마술을 걸어 신의 뜻을 나타내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는 미신에서 자유했다고 자랑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미신은 유행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서울 미아리 점치는 집이 즐 비한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압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부끄러움없이 이방 악습을 답습 했던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무지하거나 오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항하기 위해 고의로 그같은 악을 행했습니다. 2-5 하나님의 진노(18절) 바로 앞절까지 피고 이스라엘의 범죄 사실을 열거하신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구 체적이고 무거운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남왕국인 유다를 제외하고 이스라 엘을 땅위에서 쓸어 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3. 결론 사무엘 시대 때 대제사장 엘리의 며느리는 블레셋과의 전쟁터에서 전해 온 비 보를 듣고는 총격을 받아 고통 중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죽기 전 그녀는 그 아들 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는데 그 이름의 뜻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삼상 4:21) 그후 몇 해동안 이스라엘의 죄는 점점 더 쌓여가 이제 인내하실 수 있는 정도를 넘었을 때 하나님은 방자한 이스라엘을 블레셋을 들어 치셨습니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후 선지자들은 이가봇이란 이름의 뜻처럼 북왕국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것을 선포했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빠 르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예는 쇠퇴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북 왕국 백성들로부터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성이 함락되기 40여 년 전 하나님께서는 경고의 음성을 들려 주기 위해 선지자 아모스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솔로몬 치세 이후 견줄 바 없는 대 번영을 누렸기 때문에 이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름 뿐인 선택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번영을 누렸 지만 속속들이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 호세아도 역 시 날카롭게 이스라엘을 비판했습니다. 사실 멸망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 와는 별반 다를게 없었습니다. 우리의 종교 생활은 흔히 우리의 위선을 숨기기 위한 가면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 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역사의 페이지 위에 '이가봇'이라고 쓰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성경연구시리즈 3 이스라엘 남왕국의 멸망
둘째, 남왕국이 가졌던 또 다른 이점은 북왕국이 망하던 그 시기의 남왕국 왕 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선한 왕들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북왕 국 멸망 당시 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 같은 이는 자주 선지자 이사야의 자문을 구했고 광범위한 종교개혁을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남왕국의 선한 왕으 로는 B.C. 614-610까지 통치했던 요시아가 있습니다. 요시아는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유월절 규례를 재 입법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시아는 성전 복구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복구 작업 중 율법 책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성전 복구 작업은 종교 개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몇몇 왕들의 행실을 지켜보 신 하나님께서는 당분간 징벌의 손을 멈추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시아의 후계자는 요시아의 모범을 따르지 않았는데, 그 결과 종교적, 정치적 상황은 급 속도로 악화되어 결국 파국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시아는 애굽과의 전투에 서 치명타를 입어 사망하게 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 위를 계승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3 개월후 애굽은 그를 폐위시키고 그의 형 엘리야김을 왕으로 삼은 후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었습니다. 바로 이 여 호야김은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왕하 23:27).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박해하고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B.C. 605년 당시의 세계의 강자인 앗수르를 누르고 신흥 세계 강국으로 부상한 바벧론 은 유다를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힘없는 여호야김은 바벧론 왕인 느부갓네살의 종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벧론은 조공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여호야김을 포로로 잡아 끌고 갔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후 여호야김이 다시 반역하자 느부갓 네살은 유다 본토를 재공격했습니다. 죄수가 된 여호야김은 바벧론으로 끌려가기 전 죽고 말았습니다. 여호야김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아주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죽은 것은 분명합니다(렘22:18-19). 여호야김의 왕위 를 계승한 사람은 그의 18살 난 아들 여호야긴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긴 역시 그의 재위 3개월 만에 유다를 침공한 느부갓네살의 포로가 되어 바벧론으로 잡혀 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후 요시야 왕의 또 다른 아들 마타니야가 왕이 되었는 데 그의 이름은 시드기야로 바뀌었습니다.
1. 시드기야의 치세(왕하24:18-20) 1-1 시드기야의 치세 성격(18-19절) 또한 이것은 유다 백성들을 보호하고 지켜줄 방어벽이 사라져 버린 것을 의미 하기도 합니다. 그의 통치 4 년째 되던 해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재 다짐하기 위해 바벧론을 방문했습니다(렘51:59). 그러나 유다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그는 바벧론 왕을 대적하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수차에 걸친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한 채 시드기야는 어리석게도 애굽과 동맹을 맺고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2. 포위된 예루살렘 성(왕하25:1-4) 2-1 포위가 시작됨(1-3절) 우리는 유다의 반역의 시작을 알리는 정확한 사건 혹은 일련의 사건들이 무엇 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건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시드기야 통치 9년째 되던 해 느부갓네살은 유다에 대한 군사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공격 하기 전, 성전 앞 몇 성읍들을 점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렘34:1-7). 성을 포위 한 뒤 느부갓네살은 공격용 요새와 망대를 건축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던 당신의 상황은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 애굽은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구하려고 했습니다(렘 37:5,겔 17:17). 위기에 직면한 바벧론 군대가 애굽 군대와 싸우기 위해 포위를 풀자 백성들은 기뻐하지만 예레미야는 바벧론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되돌아와서 다시 포위망을 구축했 습니다. 바벧론 군대가 성을 둘러 싼지 얼마 되지 않아 유다 백성들은 식량 고갈 로 고통 받았으며 성 안에는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전략은 도성 사람들을 굶겨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일년 그리고 그 후 반년이 지나자 느부갓네살 의 전략의 효력이 입증이나 하듯이 굶은 유다백성들은 기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애가서는 예루살렘 성 포위 말기 당시 성 내의 백성들의 참담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2-2 예루살렘 성의 붕괴(4절) 유다 군대의 방어력이 약화되자 느부갓네살은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느부갓네 살 군대는 성벽이 낮았던 북쪽성곽으로부터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느부갓네살 군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을 깨달은 시드기야와 그의 호위병 들은 야음을 이용해서 성 남쪽 문을 통해 도성 밖으로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시 드기야는 사해 남쪽 요단 계곡을 돌아 여리고 평지로 가던 중 추격대에게 붙잡혔 습니다.
3. 시드기야의 운명(왕하25:5-7) 3-1 사로잡힌 시드기야(5절) 왕 시드기야의 도피 노력은 허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왕을 호위하던 호위 병들이 뿔뿔히 도망쳐 버렸기 때문에 왕은 쉽게 붙잡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3-2 고통받는 시드기야(6-7절) 신중한 전략가인 느부갓네살은 직접 예루살렘에 주둔하지 않고 본부를 수리아 의 립나, 즉 리블라에 두고 거기서 지휘했습니다. 느부갓네살에 대한 맹세를 어 겼기 때문에 시드기야는 심문을 당하고 바벧론으로 포로로 잡혀갈 수 밖에 없었 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어졌던 하나님의 경고를 경홀히 여겼던 시드기야는 그 댓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38:17-18). 시드기야 자신은 목숨을 건졌지만 눈 앞 에서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또한 예레비야 39장 6절 에 의하면 많은 시드기야의 신하들이 두 아들과 동시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 은 아마 시드기야의 반역을 부추기고 예레미야의 충언을 막았던 자들일 것입니다. 이상의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던 때는 시드기야의 나이가 고작 32세 때였는데 그 사실에 비추어볼 때 그의 두 아들은 아주 어린 아이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 어린 아이들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의 죄가 얼 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함과, 그 죄는 자손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는 것을 절감 하게 됩니다. 강제로 그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뒤, 오래 전에 삼손이 그랬던 것처럼,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묶힌 채 바벧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그리하여 바벧 론으로 끌려가되 바벧론 성을 보지는 못하리라는 그에 대한 에스겔의 예언이 성 취되었습니다(겔12:13).
4. 예루살렘의 멸망(왕하25:8-9) 본장 8-10절은 예루살렘의 멸망 상황을 총괄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11-12절은 그 상황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4-1 바벧론군의 엄습을 당한예루살렘 우리가 예루살렘 성의 함락과 멸망시기에 한 달이라는 간격이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바벧론군 야전 사령관들은 행동을 취하기 전에 예루살렘 성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결정을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아뭏든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 성을 파괴할 책임을 맡은 한 부하 장관을 보냈습니다. 본 절은 그를 시 위대장관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의 뜻은 "느부갓네살로부터 예루살렘 성에 대한 형을 집행할 임무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 성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4-2 불타버린 예루살렘(9절) 성은 느부사라단이 오기 전에 이미 점령군에 의해 약탈당했지만 성 건물 자체는 느부사라단에 의해 무너진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전은 제일 먼저 느부사라단 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성전의 놋바다(예배 정결의식 때 사용되는 물이 담겨져 있는 청동대야)는 너무 커서 운반하기에 힘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놋바다를 깨뜨 려 나눠들고 바벧론으로 돌아갔습니다. 예배 때 사용하는 그릇들과 기명들 역시 가져 갔으며(13-14절), 그 모든 귀한 물건들을 들어낸 다음 점령군은 전 건물에 불을 놓았습니다. 그 다음 점령군들이 향해 간 곳은 성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웠 던 솔로몬의 궁전이었습니다. 궁전건축 때 백향목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궁전은 쉽게 불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외의 집들, 특히 부자들의 집들 을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10절은 성벽이 헐려졌던 사실을 알려 줍니다. 분명히 점령군들은 유다 백성들이 방어할 수 없을 정도로만 성벽을 헐었습니다. 그것은 유다백성들이 포로지에서 돌아왔을 때 어떤 성벽은 여전히 서 있었던 사실이 증 명합니다(느2:13-15).
5. 결론 5-1 우유부단함이 부르는 비극 여러 가지 면에서 시드기야는 고대 그리이스 연극에 등장하는 한 비극의 주인 공과 비슷했습니다. 그는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이리저리 흔들리는 우유부 단한 자였으며, 사악한 자는 아니었지만 여호야김을 닮아 교만한 자였습니다. 여 호야김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멸시하고 죽이려고까지 한 데에 반해 시드기야는 자 주 예레미야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예레미야의 충언을 듣고도 이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가 예레미야의 충고를 따랐다면 그의 왕국이 멸 망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시드기야의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을 약속하고 성경과 성경 교사들을 통해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그같은 확신을 굽히거나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죄를 범합니다. 시드기야의 비극적인 종말을 기억하며, 타협과 우유부단의 대가 가 얼마나 큰가를 생각합시다. 5-2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 유명한 시인인 키플링(R.Kipling)은 영국이 전쟁 무기만을 자랑하고 믿는다면 어느 날엔가는 니느웨와 두로의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그는 영국이 세계 강국으로 남아 있으려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처럼 겸손과 회개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 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을 첨가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부요를 누리면서 편안히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유보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핵무기나 로케트 같은 것이 인간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해 볼 때 그와 같은 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를 제공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한 나라는 그 나라의 백성들이 공의를 행하고 사랑하고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만 강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준비가 되어 있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준비 를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성경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입니다. 그 리고 하나님의 뜻이 어떠할지라도 따르겠다는 용기도 요구됩니다. 옛 이스라엘 역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키플링의 싯구를 상기시켜 줍니다.
성경연구시리즈 4 포로 귀환의약속 어떠한 상황에 직면해도 놀라울 정도로 평온을 유지하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어떤 근심스러운 상황을 만나 안달하는 사람에 게 그 분은 으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안달하지 말라. 어떤 일이 벌어 졌다고 해도 다음 날 아침 여전히 태양은 솟아 오르지 않니" 그리고 때때로 이렇 게 말을 덧붙이십니다. "설령 태양이 솟아오르지 않는다 하자. 그렇다고 해도 네 가 안달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국이 분열 된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대해 죄를 범했 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움을 겪은 것 외에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된 이후 바벧 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오랫동안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와 같은 고통 속에서 그들은 점점 낙망하고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절망 속에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스가랴를 보내셨습니다. 스가랴는 머지 않아 폐허가 되어버 린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그들 손으로 다시 수축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려 주었습니다. 마치 경건한 그 그리스도인처럼 "내일 아침도 태양은 동쪽에서 떠 오른다"라는 소망의 말씀을 들려 준 것입니다. 본문 배경 앞 과에서 우리는 예루살렘 성의 함락, 성전의 멸망, 바벧론에서의 유다백성의 초기 포로 시절 등을 다루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질 것을 상상하기란 힘들 정도의 상황에 있었습니다. 오 랜 세월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내리셨으나 그들은 여러 번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고 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즉각 심판하 지 않으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의 멧세지를 보내셨으나 끝까지 악을 고수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처럼 고통스러운 결과를 당하게 되었기 때문에 유다 백성들은 누구도 탓할 수 없었습니다. 바벧론에게 정복당한 이후 유다 백성들의 희망은 완 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들의 왕과 장관들이 바벧론으로 끌려 갔고 그 외의 많은 백성들이 역시 포로의 운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특별한 재주나 기술이 없는 자는 그대로 본국에 남아 바벧론 점령군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포로지에 에스겔과 다니 엘 같은 구원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벧론으로 부터 구원할 메대 바사 왕국을 준비하셨습니다. 드디어 B.C. 538년 경 유다의 포 로 귀환령을 선포한 바사 왕에 의해 바벧론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유대 인들은 귀국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룹바벧의 인도하에 약 5만 명의 유대인들 이 1차로 귀환하였습니다. 귀국한 백성들은 예배드릴 전을 짓기 위해 전의 기초 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의 반대와 방해로 인해 성전건축은 약15년동안이나 중단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B.C. 520년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셔서 성전 건축을 계속하도록 자극하셨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완 공을 본 성전이 봉헌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저자인 스가랴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베레갸였으며 그의 할아버지가 잇도였다는 사실 정도가 고작입니다(슥1:1,7). 또한 스가랴는 포로 귀환한 유다 백성들에게 소망과 용기 를 주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고 그들 가운데 강림한 메시야에 대한 언급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포로 귀환에 대한 확약(슥8:3-8) 바벧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은 제 5월의 성전 훼파 사건을 기억하며 애통하며 금식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바벧론에서 들어와 성전을 재건하는 중에 있었기 때문에 바벧론의 유대인들은 스가랴에게 사람을 보내어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지의 여부를 물었습니다(렘 52:12-13). 분명 바벧론에 거주하던 유 대인들은 금식 기도가 중지되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 의 금식이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스가랴에게 계시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스 가랴는 보냄을 받은 자들이 금식 계속의 여부를 물었을 때 형식적인 의식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의 조상들이 징계를 받아 바벧론 포로 가 되었던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4-14절).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을 위해 질 투하신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8장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너무 커서 그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8 장에는 "여호와가 말하노라"라는 표현이 10번이나 등장하는데, 이 사실을 통해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스가랴의 예언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1 시온에 거하실 하나님(3절) 바벧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훼파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버려 두셨습니다(겔10: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바벧론에서의 오랜 포로 생활을 통해 연단받았던 유다백성들에게 현현하심으로 그 분의 축복을 회복하셨습니다. 본 절 에서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고 불리워졌는데 이 호칭은 유다 백성들이 전 에 하나님께 대해 불신실했음을 암시합니다. "여호와의 산"은 성전이 세워졌던 산을 가리킵니다. 그 산에 다시 하나님께서 임하실 것이고 백성들은 그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1-2 복이 되어질 하나님의 임재하심 전쟁 기간 동안 노인과 아이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노인이 많이 사는 세대는 오랫동안 전쟁이 없었던 세대를 의미합니다. 비슷한 의미에서 아이들이 가득하다는 말도 평화와 번영의 세대가 올 것을 예언한 말입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노인과 아이들을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스가랴와 동일한 견해를 가 지고 있지 않습니다. 생산을 중요시하는 오늘날의 사회는 노인과 아이들을 짐스 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노인들이 여생을 평안히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들을 섬기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차 나라의 기둥들인 아이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제도와 구체적인 방안들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1-3 기이한 하나님의 능력(6절) "남은 백성"이란 유다 본토에서 살아남았거나 바벧론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너무도 괴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염세주의자들이 되어버렸 습니다. 그래서 바로 앞절의 약속이 선포되었을 때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보기에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남은 백성"들과 같은 생각을 갖습니다. 완성해야 할 일의 규모와 자 신의 능을 비교해 본 후 불가능하다고 선언해 버립니다. 그러나 좁은 시야를 가 지고 그같은 결정을 내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 일에 개입하실 수 있는 기회를 막아버리는 것이 됩니다. 1-4 귀환할 하나님의 백성들(7-8절) "내 백성" 이 얼마나 확신을 주는 말씀입니까 그들의 사악함을 보고 크게 징 벌하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거절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의 멧세지는 그들을 동방(메소보다미아와 바사)과 서방(애굽, 많은 유대인들이 바벧론 사람들을 피해 애굽에 내려가 살았음)에서 구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이 세상 어느 곳에 흩어져 살고 있어도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인 도하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귀환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현현이 임재하실 예배처소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상징적인 의미로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한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이 귀환을 소망하는 모든 사람들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좁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의 되리라" 선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처음 그분의 원하 셨던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회복하실 것입니다(레26:12). 바울은 이 특별 한 관계를 이방신을 섬기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이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 계에 비유합니다(고후6:16). 요한 역시 예수님 재림 때 그분을 맞이할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를 묘사할 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계21:3). 일찌기 이 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에서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실과 정의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다시 받게 될 것입니다.
2. 미래에 대한 소망(슥8:9-13) 2-1 성전 건축사역을 격려함(9절) B.C. 520년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는 백성들의 성전 건축 사역을 고무하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본절은 그 후로부터 2년이 지난 B.C. 518년의 성전 건축 재건 상 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앞 몇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은 백성들이 성전 건축 을 완성했을 때 성취될 것입니다. 2-2 과거를 생각함(10절) 성전 건축을 시작한 후 15년 동안 그 사역은 중단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 상태가 좋지 않아 인부나 그들의 짐승에게 삯을 지불할 수 없었으며 인근 민족들 은 안전하게 공사할 수 없도록 방해했을 뿐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 불화가 생겨 서로 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2-3 약속된 밝은 미래(11-13절) 본 절에서 스가랴는 3절에서 언급했던 주제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백성들이 성 전 건축 사역을 잊고 있었던 동안 그 땅에는 저주가 임했었습니다. 학개는 당시 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 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 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 1:6). 그러나 이제 모든 상황은 바뀌어질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살며 하나님의 전을 떠났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수고가 열매를 거두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곤핍한 땅이 풍요로와질 것입니다. 여기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동시에 언급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두 왕국이 똑같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이방 민족의 포로생활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 엘의 죄가 더 악했으므로 그 왕국 백성들은 더 긴 포로생활을 했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 유다 두 나라는 이방 민족들의 수 치거리며 조롱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방 민족들은 그 두나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을 생각 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땅 위의 모든 나라가 축복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12:2). 성경을 보면 수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두려워말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너기 직전 백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어가기 직전 여호수아에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계속 건축해 나가 고 하나님에 대해 신실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3. 거룩한 삶을 요구함(슥8:16-17) 3-1 이웃에게 진실하라(16)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조건적입니다.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대 로 축복을 누리려면 백성들은 몇 가지 의무들을 이행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웃 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며 화평을 위해 진실한 재판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서 "성문"이 언급된 이유는 고대시대 성문이 법정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입니다. 3-2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17) 여기서 스가랴가 바벧론 유수 전 유다 가운데 횡행했던 우상 숭배의 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그 죄에서 어느 정도 떠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벧론 유수 후 유다 사회에는 거짓말과 사기가 유행했습니다(호 12:1, 7/암 5:10-12/8:4-6). 아마 포로 시대 때 이방 민족과 상업적인 거래를 하면서 그들의 악습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들을 미워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는 정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결론 오늘날 많은 보험회사들이 생명 보험회사를 겸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운전자의 아내는 그 생명 보험회사를 통해 어떤 안도 같은 것을 느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 보험회사가 주는 확신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 로 얻게 되는 확신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어떤 문제, 어떤 상황에 부딪히게 되더 라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그 절박한 상황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큼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보험회사는 언 젠가 파산할 수도 있고 은행 역시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기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3-4)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스라엘과 유다백성들은 국가적인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그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유지했던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통 중에서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은 더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갈길을 잃고 참 소망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이 사회 속에 서 충성스러운 그루터기들로 남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29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