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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샤의 야심과 최후 (왕하14:1-22)

본문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었을 때에 유다왕 요아스가 엘리사를 병문 왔다. 그럴때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몇가지의 명을 내린다. 화살을 취하여 땅을 치라고 했을 때 유다왕 요아스는 세번만 치고 그친다. 그것은 자기 마음에 드는 명령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요아스는 성공적인 왕이 못되고 만다. 요아스가 죽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된다.
그런데 아마샤 왕은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하나님 편에 서서 일하는 듯 십더니 얼마 못가서 비참한 최후를 고하는 왕으로 전락하고 만다.
1,하나님 앞에 정직했던 아마샤 " 3절에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니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대로 다 행하였더라"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말이 있다. 사람 앞에도 아니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한 것이다. 아마샤왕이 어떻게 살았기에 무었을 했기에 그렇게 성경에 기록을 했을까 여기에 그렇게 기록하고 있음은 그의 전체적인 삶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다는 말이 아니다. 5절에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이 말을 보니 아마샤의 아비 요아스왕은 신하들에 의하여 암살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들인 아마샤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복수할 때에 전래되로 그들의 가족가지 멸하지 아니하고 율법에 있는대로 당사자만을 처형케 했던 것인데 바로 그 점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다는 말이다. 3절을 다시 본다.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하였더라" 정직은 정직이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않았다고 했고 그 부친과 같았다고 했다. 그럼 그 부친인 요아스는 어떻게 살았는가 왕하13;10-11절에 잘 나타나 있다. "유다 왕 요아스의 37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 라엘 왕이 되어 16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졛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 그래서 역대하25;2절에서는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 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샤와 같은 정직함은 누구에게도 다 있는 것이다. 일시적인 정직, 순간적인 정직, 부분적인 정직, 이런 것들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정직함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다윗처럼 살아야한다. 우리들은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을 많이 보아 왔다. 히스기아 임금 같은 이는 죽을 병에 걸렸을 때에 이렇게 기도를 했다.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여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아사 왕도 그다 유다 왕으로 있을 동안에 남들이 그를 보고 하는 말이 "저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여" 라고 칭송을 했었다. 다윗왕의 정직함은 너무도 많아서 다 열거할 수도 없다. 구원 받은 사람은 교회의 교적부에 등록된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성별된 사람은 그가 부름을 받는 그 날까지 성별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이 있노라 하는 사람들 중에도 아마샤 같은 일시적인 믿음의 사람들이 가끔 있다. 교회 입구에 화분이 몇개 있다. 그 중에 포인세치아라는 게 있는데 매년 크리스마스때면 잎사귀가 빠알간 색으로 물들어야하는데 물도 들기 전에 낙옆이 지고 있다. 왜 계속적으로 물의 공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믿음의 생활도 마찬가지 이다. 내 생활에 어떤 일시적인 아니 부분적인 것이 성경의 말씀과 같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은혜 안에서 계속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사람을 감화를 끼칠 수 없다. 참 봉사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매일 그리스도와 걸어가는 희열도 맛보지 못한다.
2,세상 유혹에 흔들리는 아마샤 아마샤가 일시적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자기 개인의 어떤 야심 때문이었다. 이웃 나라인 에돔 사람을 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아마샤는 이스라엘 중에서 20세 이산 창과 방패를 잡을 수 있는 사람 30만명을 섬발하고 또 은 일백 달란트를 주고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10만명을 동원했다. 그때 역대하25;7절에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로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 여호와게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8절에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대적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9절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만일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꼬 ," 아마샤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동의는 하지만 자기가 들인 미쳔을 더 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 선지자의 말대로 안되는 경우. 적군을 치기위한 자기의 작전계획은. 일만 달란트의 거금을 드린 댓가는. 9절 하반절에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게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라고 하니 아마샤는 마지 못해서 순종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마지 못한 순종의 결과이지만 . 7절 "아마샤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어늘까지 그러하니라" 아마샤의 순종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3,우상을 숭배하는 아마샤 아마샤의 순종은 할까 말까 망서림중의 순종이었다. 그렇기 대문에 그 순종의 결과로 얻은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지도 아니했음은 물론 그것 대문에 우상숭배자가 되고 만다. 왕하14;4절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이 말은 적과 사우러 나갈대에도 산당을 헐어 버리지 못하고 나갔다, 그런데도 승리로 전쟁을 막을 내렸던 것이다. 그래서 아마샤는 산당을 헐기는 고사하고 한 술 더 뜨고 있다. 대하25;14절이다.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 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하더라" 고 했다. 이 얼마나 기절초풍할 일인가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선물이었것만 아마샤는 하나님께 단 한마디의 감사도 없다. 아마샤의 아비가 어떻게 죽었나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 방법되로 순종하다가 제명에 죽지 못하고 신하의 손에 암살된것이데 그 아들이 지금 그 아비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대하25;27절 "아마샤가 돌이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리니 여호와께서도 아마샤를 버렸던 것이다.
4,하나님을 모독하는 아마샤 한 가지만 더 생각을 하고 마치고자 한다. 아마샤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할 때에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아마샤에게 보내었던 것이다. 대하25;15-16절 "그러므로 여호와게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나아가 가로되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선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16절 "선지자가 오히려 말할대에 왕이 이르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살았던 다윗 왕은 하나님의 사람 나단이 나타나 책망을 할때에 겸손하게 그 책망을 달게 받고 눈물을 흘리면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회개했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 두기를 싫어 했던 아마샤에겐 하나님의 사람의 말이 가시처럼 들렸던 것이다. 오늘에도 마찬가지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으면 어떠한 말씀이라도 달게 받아 들여지고 그렇지 못한 심령이라면 모든게 가시처럼 들려질 뿐이다. 한때 경건한 모습이 있기는 있었지만 그것이 지속적인 것이 되지 못될때 자기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마음에 참되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있거든 계속적으로 실천에 옮기시길 바란다. 마음에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말씀이 있거든 즐거운 마음으로 아멘하시길 바란다. 강단에서 말씀이 주어질때 절대적인 순종과 아멘의 사람이 되시길 바란다. 왕하13;12절에 이미 아마샤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런데 14장에서 또 다시 아마샤를 거론한 이유가 무엇일까 왕하14;15-17절을 보면 아마샤는 자기를 쳐서 승리한 요아스보다 15 년을 더 살았다. 오래 살았으니 영광일까 여러분 아마샤의 치욕스러운 15 년을 상상을 해 보라 !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패망한 나라의 군주를 보라 ! 결국 라기스에서 비참하게 살해되는 아마샤를 보라 ! 15 년을 더 살면서도 회개가 없는 아마샤이다. 그 속에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없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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