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순종은 이렇게 (왕하5:13-19)

본문

막10;22절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고전6;19,20절에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게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마6;21절엔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1,복음이란 우리는 지난 시간에 내 생각으로만 살았던 나아만을 보았습니다. 내 생각으로의 결과가 끝내는 문등병신이 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순종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지난번에 하나님의 사람의 명령이 떨어 졌을 때 나아만은 그 멸령을 기뻐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명령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첫 번째의 이유였고
둘째는 그 명령이 너무나 쉬운 것이기에 신뢰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을 향하여 내려진 명령은 나아만을 시험키 위한 것이었읍니다. 이런 시험의 명령은 오늘에도 같은 방법으로 내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들은 복음이 무었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냥 복된 소식입니까 인간을 기쁘게하기 위한 좋은 소식입니까 그것도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복음의 진수를 말함이 아니고 복음의 한 면을 설명했을 뿐입니다. 복음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반역을 중지 하라는 명령입니다. 선포입니다. 행17;30절에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마3;2절에서도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느니라"고 했습니다. 마4;17절에 예수님게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가 왔느니라"고 선포했습니다. 다시 말씀 들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선포요 명령입니다. 그 멸영의 요지는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곧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히5;9절에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이 내 마음에 맞을 것인가 아니가가 아닙니다. 복음은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내 마음에 맞든지 말든지 온전히 순종해야하는 하나님의 명령일 뿐입니다. 복음이 명령이기에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 일 두길 외에는 없습니다. 지금 나아만에게 내려진 명령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나아만의 문등병은 지금 회개를 해야할 사람들의 죄악의 결과들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이 복음에 순종을 하게되면 사죄함을 받을 것이요 불순종이면 그 병으로 죽는 일만 남았을 뿐입니다. 노아 시대에 그 많은 사람들 중 노아 식구 8명만 방주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고 그 외엔 다 죽었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죽은 이유가 무었입니까 벧전3;2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 복음은 명령입니다. 그리고 명령엔 순종뿐입니다. 순종만이 사는 길입니다.
2,하나님의 사람의 말슴대로 순종 " 왕하5;13,14절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 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끝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이에 내려가는 일은 나아만이 필연코 해야할 일입니다. 깨끝하길 원한다면 필연코 내려가야합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으로 내려갔습니다.
1),병거에서 내렸습니다.
2),물로 걸어 갔습니다.
3),물에 몸을 잠그었습니다. 그때 일곱 번 몸을 씻었습니다. 14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개끝하게 되었더라" 여기에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시종들이 강권함에 따라서 몸을 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몸을 잠그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보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대로는 무었입니까 그것은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는 것입니다. 다섯 번도 아니 됩니다. 여섯 번도 아니 됩니다. 일곱 번을 다 채워야합니다. 순종에는 오직 100%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 주님게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남김 없이 다 들렸던 것처럼 순종에는 100%뿐입니다. 100%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입니다. 100%이것이 곧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 99.9%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개도 남겨가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꺼번에 다 털어 놓으면 좋은데 두고 두고 봐가면서 회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아만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끝하게 된 것은 와전한 순종인 일곱 번을 다 채웠을 때의 일입니다. 순종의 100%가 마치는 순간 나아만의 살은 깨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명령에 100% 순종할 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대로 다 준행할 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용서도 순간적입니다. 노아 모세 여호수아 이젠 나아만에서 문등병의 흔적이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언제 그런 흉칙한 불치의 병이 있었느냐는 듯이 순식간에 말끔이 살아 졌습니다. 오늘 우리의 요단강은 어딥니까 요일1;7절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모든 죄에서 깨끝하게 하실 것이요"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의 보혈의 샘에 말씀대로 100%의 순종의 사람들이 다 되어서 작은 죄 큰 죄 할 것 없이 우리의 모든 죄악을 맑끔히 씻고 돌아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다섯 번 아니 일곱 번까지 완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3,종으로서의 순종 15절입니다.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 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왔습니다. 예수님 당시 열 분둥이가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을 때 병나음을 받은 자는 열 문둥이가 다입니다만 주님께 돌로 와서 사례한 사람은 이방인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왔습니다. 돌아 올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나아만이 돌아만 온 것이 아닙니다. 변화된 나아만의 말을 들어 보십시요 여기서 나아만이 자기를 가리켜 엘리사에게 무어라고 하고 있습니까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고 자기는 당신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만 아닙니다. 17절에서도 두번이나 자기를 종이라고 했습니다. 18절에서도 자기를 두 번씩이나 종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몰라보게 달라진 나아만의 모습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살던 나아만이 아닙니까 그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올 때 비록 문둥이지만 얼마나 보무도 당당하게 엘리사를 향하여 왔던 것입니까 엘리사가 내다 보지도 않고 게하시를 통하여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잠그라고 한다고 무례하게 돌아서던 나아만이 아닙니까 그렇게도 교만 했던 사람 나아만이 이렇게 겸손한 순종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자기를 종의 자리에까지 낯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이게 원래의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종이 되기를 싫어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말슴의 종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가 섬겨야하는 종들입니다. 15절을 다시 봅니다.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게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 청컨데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나아만은 비로서 하나님만이 온 천하에 신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들에게 역경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시는 것입니다. 15절 하반절입니다. ".청컨데 당신의 종에게 예물을 받으소서" 나아만은 감사를 아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시116;12,13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었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만은 고국을 떠나 올때 가지고 왔던 모든 것을 감사의 예물로 들이고 가려고 도라 왔던 것입니다. 그 모든 종자와 함께 도라 왔습니다. 전 날의 그 흉악함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찾아 왔습니다. 이젠 숨기고 자시고 할 게 없습니다. 눅19; 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 갔던 사깨오가 있습니다. 삭깨오가 예수를 만나서 구원의 복음을 믿게 된 후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나의 재산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워 주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남의 물건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갑겠나이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행22장에선 사도 바울이 주님은 다메섹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었을 하리이까" 나아만은 받은바 은혜의 보답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16절에서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 여기서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었인가를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어짐을 배우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으로부터 하나님게서는 그의 문둥병 밖에는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은과 금이 쓸데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9절입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나아만은 말씀대로의 순종의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나아만은 자기를 종의 신분으로 불었습니다. 나아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나아만은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은 건강을 회복하고 평안히 축복 가운데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읍니다. 순종의 사람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29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