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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는 왕이다 (왕하9,12-20)

본문

아합이란 왕은 선지자들의 피를 보기를 즐겨했던 왕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상을 섬기는 이방 나라의 딸인 이세벨 과 결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방 나라의 딸인 이세벨은 시집을 오면서 바알이란 우상과 아세라라고 하는 우상은 물론 우상의 제사장들도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아합은 하나님의 종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했으며 타락한 왕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악한 왕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부인 이세벨은 남편인 아합보다 더 악했습니다. 그의 자손들도 다 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악함을 오래 두고 보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선지자들의 피흘림의 신원을 반듯이 배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그 피흘림의 값을 갚아 주시는 과정을 함께 살펴 봄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철저한 임무 수행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집을 징벌하시기 위하여 오래 전부터 한 사람을 준비했었습니다. 왕상19;15,1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 시대에 오늘에 있어야 할 일을 다 지정해 두셨던 것입니다. 오래 전에 준비했다함은 어쩌면 오래 참아 회개하고 돌아서기를 기다렸던 기간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엘리야의 후계자였던 엘리사 선지는 또 자기의 제자인 젊은 선지 생도에게 이를 위한 임무를 부여합니다. 그것이 지난 시간의 내용이었습니다. 엘리사의 젊은 선지 생도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아므런 영광도 취하지 않은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사명을 완수함에 마치 미친 사람마냥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엘리사의 젊은 선지 생도가 그의 사명을 다하고 막 나서자 왕궁에는 엄청난 사건이 진행됩니다. 12-13절입니다. "무리가 가로되 당치 않은 말이라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대답하되 저가 이리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 엘리사의 젊은 선지 생도가 기름을 그의 머리에 붙고 나오자마자 예후는 이스라엘의 왕의 권좌에 오른 것입니다. 무리들은 자기들의 옷을 급히 버섰다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급하게 왕이되었습니다. 나팔을 불며 "'예후는 왕이라"고 외쳐댔습니다. 예후는 왕이되기가 무섭게 신속하게 그의 임무 수행에 착수합니다.
1),저도 죽이라 (왕하9 ;27) - 왕하9 ;27절을 보면 "유다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저를 내려 던지라 - 왕하9;33절엔 "가로되 저를 내려 던지라 하니 내려 던지매 그 피가 담과 말에게 뛰더라 예후가 그 시체를 밟으니라" 내어 던짐을 당하여 죽임을 당한 사람은 아합 왕의 부인인 이세벨입니다.
3),몰수이 죽이고 ` 왕하10;7절 "편지가 이르매 저희가 왕자 칠십인을 잡아 몰수이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 보내니라" 아합의 자식들입니다. 70인이 하루 아침에 몰수이 죽임을 당합니다.
4),사로 잡으라 왕하10;14절 "가로되 사로 잡으라 목자가 얄털 깍는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 이인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에 사로 잡혀와 양털 깍는 웅덩이 곁에서 죽은 42명은 아하시아왕의 형제들이었습니다. 예후는 왕이되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명을 따라 그의 임무를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여기에 예후의 잔인함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분명한 목적을 향한 확고한 추진력도 있습니다. 예후는 자기 개인의 어떤 계획 완수를 위함이 아니라 마땅히 이루어야 할 받은바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악마적인 모습도 있으나 반면 그의 철저한 신앙의 깊은 행동임을 봅니다. 오늘 세상에는 이런 철저한 행동의 신앙인이 없는 것 갔습니다. 말들은 잘하는데 철저한 신앙의 행동이 결여된 삶들을 살고 있습니다.
2,오만한 예후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 예후에게서 두번째 우리에게 보여 주는 교훈은 너무도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찾아 오는 무서운 시험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뭔가를 위하여 열심을 낼때 마귀가 틈을 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열심히 그리고 철저하게 그의 임무를 충성되히 수행하고 있을 때 마귀가 예후에게 시험을 가지고 찾아 왔습니다. 예후가 이것 까지 이기고 승리를 한다면 완벽한 임무 수행인 것입니다. 다시 13절로 돌아 갑니다.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 위에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더라" 본문의 말씀 그대로 졸지에 왕이된 사람이 예후입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졸지에 왕관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처리해감에 있어서 모든 일이 너무나 순조롭게 잘 진행되가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예후의 마음에 마귀가 속삭였습니다. "참으로 잘한다 너야말로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왕이다.백성들을 보라 옷을 벗어 던지며 나팔을 불면서 너를 향해 왕이라 하지않느냐.그뿐이냐 이렇게 부정부패의 잔재를 처리해 나갈 사람은 오직 너 밖엔 아무도 없다 "는 음성이 어느날 예후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잘 되다 보니 하나님은 간데 없고 모든 일이 자기의 능력이 자기의 실력이 자기의 잘남이 이 일을 감당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다 이런때 실수를 하게 됩니다. 어려울 때 믿음의 길에서 이탈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려울 땐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 말씀과 더불어 살기 때문입니다. 반면 잘 나갈 때 믿음의 길에서 이탈되는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신앙과 멀어진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되는 사람이 솔로몬 왕입니다. 삼손입니다. 오늘의 예후입니다. 예후는 자기가 잘나서 잘되는 줄 알고 오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3,영광을 자기가 취함 왕하10;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 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 하였더라" 마귀가 사람을 시험하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말씀과 기도로 그 시험을 이기기만 하면 우리들의 신앙은 또 새롭게 한 단계 더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예후에게도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예후는 시험에 지고 말았습니다. 예후는 시험을 이기김으로 하나님께서 한 단계 올려 주심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도 얼마든지 올라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올려 주심보다 더 높이 올라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전에는 전심으로 섬겼다는 말입니다. 그럼 10;31절의 말씀대로 전심으로 섬기지 않은 일이 무었입니까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음입니다. 또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죄를 행하게한 일입니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일은 우상숭배입니다. 왕하10;18절 이하의 사건을 보면 예후는 백성들에게 한 날을 정합니다.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이 말을 곶이 들은 바알의 선지들이 많이 몰려 왔을 때 80명의 무사들로 하여금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잡아 죽인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함으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를 멸한 일은 역대 어느 왕보다도 잘한 일입니다.
그런데 남은 한 가지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왕하10;29절입니다.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바알의 선지와 산당을 없이하는 것 보다는 금 송아지를 없이하는 일이 더 쉽고 간편했을 것 같은데 예후는 바알은 잘 없이 했으면서도 왜 어째서 금송아지는 없이 하지를 못했는지 이해가 가질 아니합니다. 문제는 금송아지를 백성들 앞에 자기 자신으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영광 받을 구실을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후는 금송아지를 끝까지 버리지 못한 못난 왕이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찢으셨습니다. "예후는 왕이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립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낳다고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까 우리는 왕이 아닙니다. 나의 금송아지는 무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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