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 음 (왕상19:9-14)
본문
지금까지 말씀더린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속사람과 겉사람이 있습니다. 겉사람은 눈에 보이지만 속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속사람을 알아야 신령과 진정으로 예 배드릴 수 있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성령님은 속사람과 함께 일을 하십니다 (롬 7:18-25). 우리가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겉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인 영, 즉 속사람을 두고 말씀합니다.거듭나는 것은 성령님으로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믿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게 하고 부활 에 동참하게 하여 거듭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요한복음 3:5에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님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뿐만 아니라 베드로전서 1:23에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위의 두 구절이 거듭난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성령님이 역사하 실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십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성령님이 복음의 말씀을 들고 우리의 영에서 일한 소산이 영생입니다. 그래서 " 성령님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 의 말씀을 들을 때 또한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 았느니라"(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하게 되는 통로가 되며 예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 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6-17).
첫째, 속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음으로 강건해집니다. 이같이 탄생된 속사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음으로 성 장하여 강건해지며 범사에 잘 됩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 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 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2:2). 속사람이 성장하며 강건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형 상을 닮아 내 영과 혼과 육이 온전해지는 것을 가리켜 구원을 이룬다 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work out your salvation:NKJV)" (빌 2:12). 이것은 곧 성화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속에서 태어난 속 사람은 혈과 육으로 된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 난 자이기에 죄가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 3:9).
1) 속사람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속사람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있 기에 죄가 속사람에게 침범할 수 없도록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지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 라"(요일 5:18).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속사람 안에서 역사함으로 악한 자가 만지지 도 못하는고로 속사람에게는 평안과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영은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속사람이 생명의 말씀을 먹고 사니 자연 그 속에서 생명이 약동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속사람이 생명의 말씀을 먹지 못하면 힘을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한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이며 생명이기에 속사람과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 요 생명이라"(요 6:63).
2) 꿀보다 더 단 생명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속사람에게 들어갈 때 영에게 생명이 되고 기쁨이 되 고 능력이 됩니다. 주린 영혼에게 생명의 말씀은 배고플 때에 맛있는 음식과 같아 꿀과 꿀송이보다 더 단 것임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주린 영혼에게 생명의 말씀이 임할 때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0).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 다"(시 119:10
3). 또한 아가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입술에서는 꿀방울이 떨어지고 내 혀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아4:11). 꿀이 있다는 것은 말씀이 맛이 있다는 것이며, 젖이 있다는 것은 상 대편에게 힘을 주고 성장시킬 수 있는 말씀의 능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3) 속사람을 통한 입술의 말에는 불이 있습니다. 속사람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강건해진 사람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는 불이 있습니다. 불은 소멸하는 역사, 능력의 역사 및 화목의 역사가 있습니다. 속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고 추진력이 있습니다. 이 속사람이 하나님과 교통을 하비다. 인간의 혼, 지식, 감정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속사람에 말씀의 신호등을 세우고 파란 불이 켜질 때 비록 내 이성과 감정에 맞지 않아도 전진하 며 하늘의 복이 임합니다. 다윗은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께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다윗은 그의 속사람에 신호등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군사 모두가 블레셋의 골리앗을 두려워하여 떨고 있으리 때 매끄러운 돌 다섯 개로 그와 맞섰습니다. 사울 왕은 전쟁터에 한 번도 나간 적 이 없는 이 소년이 골리앗을 대적하려고 나섰을 때 심기가 편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를 대적하는 악의 두목을 여호와께서 제거해주실 줄 믿고 사울 왕이 주는 갑옷과 검을 버리고 돌 하 나로 쳐서 죽였습니다 (삼상 17:49). 다윗의 속사람이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졌으므로, 상대편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고 전진했을 때 하나님 께서 대신 싸움을 치러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파란 불로 응답하시면 마음에 평안함과 부드러움과 확신이 옵니다. 신호등에 파란 불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 교통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로써 교통하는 방법은 성경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기도하고,영으로 기도(고전 14:14-15) 하고, 성령님으로 기도(유1:20)합니다.
둘째, 속사람은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우리는 보통 기도를 마음으로 합니다. 마음(mind) 즉 우리의 의식으 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기도하면 마음이 열매를 맺고, 영 (spirit) 으로 기도하면 영이 열매를 맺으며, 성령님(Holy Spirit)으로 기도하면 마음과 영이 열매를 맺습니다. 속사람, 즉 영이 기도하는 것을 방언 기도라고 합니다. 방언 기도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고전 14:2).따라서 마음으로는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 방 언 기도는 영에는 도움이 되나 마음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에도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방언 통역의 은사를 구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고전 14:13). 방언 기도는 하나님께 하므로 속사람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복이 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속사람이 강건해지기 위해 누구보다도 방언 기도를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고전 14:18). 마음으로 기도하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는 길이 열 려지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만 하는데 가지 못하면 내 속사람과 겉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겨 여러가지 혼란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뿐만 아니라 영으로도 기도해야 합니다.방언 기도 를 많이 할때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나 하나님은 알아들으시고 영이 원 하는 바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영에 응답이 오면 마음에 영향 을 주어 범사에 잘되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3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했습니다. 미국 교인 중에서는 방언을 하면 통역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그러나 우리 한국인 중에서는 방언 통역하는 분들이 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은사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일부 교 계에서 막아 소멸시켰기 때문입니다. 방언 통역이란 무엇입니까 자신 이나 다른 사람이 방언을 말할 때 그 뜻이 무엇인지 성령님으로 인해 알 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입을 열어 말하면 그때부터 주님께서 직 접 주장해 줍니다. 성경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세상에는 뜻없는 소리가 없으므로 (고전 14:10)주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셔서 분명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셋째, 방언 통역은 곧 예언이 됩니다. 방언을 통역할 수 있는 분은 예언의 은사가 동시에 임했다고 생각해 도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 을 알려주고 장래 일을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요16:13-14). 방언 기도를 할 때 방언의 뜻이 자기의 생각으로 들어오는 때에 바로 입을 열 어 말하면 그것이 통역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때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그 은사를 받지 못합니다. 또 체면 을 존중하는 의심하기 때문에 그 은사를 받지 못합니다. 또 체면을 존 중하는 우리의 유교 사상으로 인해 다른사람에게 나타내기를 꺼려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씀에 따라 강하고 담대 하여 성령님의 역사하심대로 훈련을 받아 하나님의 복을 누릴 줄 아시기 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방언의 통역이 곧 예언이 되는데, 이 예언은 우리 마음속에 숨은 것 을 드러내고 장래 것을 알려주고 문제 해결의 열쇠도 됩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철없는 어린 아이가 칼을 갖고 놀려고 할 때에 어머니가 주지 아니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을 주시지 아니하는 것도 응 답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범죄하는 것을 알려주는 예언이 오면 조심해야 합니다. 받은 예언을 다른 사람에게 알림으로 문제가 되어 마귀의 장 난에 빠지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예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취급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권위와 자랑을 나타내려는 자신의 교만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오직 본인에게만 주님이 주신 것을 그대로 이 야기해 줄 때 그 사람 마음속에 숨은 곳이 드러면 본인이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바꾸어집니다 (고전 14:25).
넷째, 하나님의 사랑으로 에언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 줄 확신하는가 사도 바울은 사랑을 따라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말합니다(고전 14:1). 예언하는 자의 인격이 주님의 사랑에 젖어 있어야 하니다. 구약에 나 타난 예언자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사랑에 젖어져 이스라엘 민족을 위 하여 눈물흘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사랑없는 예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예언하는 자는 교회 에 덕을 세우고 듣는 자도 교회에 덕을 세워쟈 합니다(고전 14:2-4). 예언하는 사람은 상대편을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 권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언은 꾸정하고 책망하기 전에 권면과 안위가 있습니다(고전 14:3,참고 계 2,3장).성령님은 꾸중하는 자가 아니라 위로가자-보혜사 (Comforter)-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칭찬 가운데서 내 잘못 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위로 가운데서 내 잘못을 깨닫게 하셔서 스스 로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사랑의 방법입니다. 방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사랑 을 따라 모두에게 덕을 세워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는 방언하는 자, 방언 통역자 및 예언자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지체는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모두 소속되어 있기에 상호 혀조 관계가 잘 이루어져 합니다. 다섯째, 방언은 은사 중 하나입니다. 방언을 처음 할 때는 속에서 솟구쳐 나와 안하려고 입을 막아도 계속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러는 어린 아기가 말 배우는 식으로 한 마디씩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의심하기도 하는데 이런 식 으로도 방언이 나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십시오. 열심히 방언 기도를 하면 우리의 마음과 의식이 잠잠해지고 세상 것에 대한 염려가 점점 사라지면서 영적인 사람으로 바꾸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누 구보다도 방언을 더 많이 한다고 한 것처럼 (고전 14:18) 여러분도 방 언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방언 기도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분들은 일만 마디 알아듣지 못하는 해석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19을 보면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 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방언 기도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남을 가르칠 때" 깨달은 다섯 마디 가 일만 마디 방언보다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같이 이 구 절은 방언을 금지하는 구절이 아니므로 잘못된 이론적인 비판에 귀 기 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방언을 못하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원받음과 방언을 말함은 별개의 것입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방언 못하면 성령님 세례 못받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성경적이 아 닙니다. 성령님 세례받은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지체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첫째는 사도요,둘째는 선지자요,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 12:27-28).
특히 30절에 "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한 것은 못하는 성도 도 있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은사 중 하나입니다(고전 12:10). 여섯째, 성령님으로 하는 기도의 역사 성령님으로 기도할 때는 영과 마음과 육이 하나가 되어 역사합니다. 서 령으로 기도할 때, 즉 성령님의 새 술에 취하여 기도하는 것같이 내 생각이 아닌데도 기도가 나오는데 이때는 마치 수도 꼭지를 틀 때에 물 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기도가 나옵니다. 이때의 기도는 얼마나 은 혜가 되고 좋은지 모릅니다. 한번은 어떤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갑자기 성령님으로 기도가 나오면서 기도받는 분들에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중의 한 분이 축농증으로 15년 동안 매일 약을 먹고 고생을 해왔는데 깨끗이 나았습니다. 한번은 저녁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서 피곤하여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저의 영이 계속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육신이 있는 인간 이니까 영도 좀 쉬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저으 가 영이 계속 가운데서도 속에서 찬송이 계속 흘러 나왔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 예배에 나와서 찬송을 부르는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제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완전히 다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속사람이 겉사람을 이길 때 주님과 저 사이에 큰 교통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영으로,성령님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을 갖는 복이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일곱째, 예언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언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언자가 있고 성령님으로 한번씩 예언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언자적인 은사를 받은 분은 언제든지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과 교통하며 예언을 받습니다. 성령님 충만한 분도 예언자는 아니지만 한번씩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언을 합니다. 영적으로 주님 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들은 육신적인 면과 흔적인 면이 감사합바니다. 육신적인 것과 흔적인 것이 강해지는 것은 세상 뉴스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며 따라서 육적이고 흔적인 것이 잠잠해야 주님과 나와의 교통 이 깊어집니다. 내 육신이 살았고 머리가 세상 일로 복잡해지면 내 영 은 점점 약해집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세상일에 관심 이 적어집니다.
여덟째,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기도로 주님과 교통하는 이외에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세미한 음성 을 듣습니까성경 본문에 엘리야 선지는 하나님께 영적 교통이 더 깊 고 많기 때문에 더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씀을 보면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 라"(딤후 1:8) 하였고, 또한 갈라디아 교회에도 말씀하기를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님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 하도다"(갈 4:29) 하였습니다. 아합왕의 부인 이세벧에게서 도망한 엘리야는 호렙산 동굴에서 기도 하던 중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본문 말씀 열왕기상 19:11-12을 다시 보면,많은 사람들이 12절 후반 에 있는 "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하신 말씀을 두고 조 용한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하면서, 예배 시간에 큰 소리로 통성 기도하고 찬송을 크게 하면서 손들고 손뼉치는 것을 비난합니다. 위의 말씀을 보충 설명하기 위해서 출애굽기 19:16-19을 보면 하나님 께서 모세에게 임재하실 때 일어난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와 의 대화 이전에 우뢰와 번개가 치고, 구름이 산을 둘러싸고 진동이 일 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불가운데서 하나님이 임하셨습니다. 비슷한 현상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에게도 일어났습니다 (행 2:1-4). 성령님이 급하고 강한 바람과 불의 형상으로 임하시자 모두 가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나라는 존재, 내 자아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역사가 운행할 때에 진동 이 일어나고, 우뢰,번개, 바람이 일어나고 또는 불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내 자아가 깨어지는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물 론 진동이나,불이나, 바람과 같은 급하고 강한 역사 없이도 성경 말씀 을 통하여 자아가 깨어질 수도 있고 점진적으로 자아가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자아가 깨어지면 나의 속사람이 주님과 교통할 수 있고 주 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저는 어느날 새벽 기도회에 가기 전에 육신이 너무 피곤하여 '주님, 한 시간만 더 자게 해주십시요' 하였을 때 주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지 않으려고 하였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세미한 음성으 로 들려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 게 하였노라"(고전 2:5). 그리고 자세하게 저에게 설명하여 주셨습니다.그때 저는 세미한 음성 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저를 말씀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통하여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 러던 어느날 주님께서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를 내려 놓으시는 마지막 장면을 보여 주시면서 저에게 주신 세미한 음성을 기억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히기 직전 비참한 모습으로 "나는 너를 위해 몸버려 피 흘리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얼 하느냐" 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목 이 메어 울고 말았습니다. 아홉째, 세미한 음성을 들읍시다. 세미한 음성에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나의 속사람이 말하는 세미한 음성이 있고,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미한 음성이 있습니다. 속사람 의 세미한 음성은 성령님과 함께한 내 속사람이 감동을 받아 나에게 전 달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나에게는 피곤했던 육체에 새 힘이 소생하는 생기가 역사됩니다. 이 힘으로 내가 승리를 하게 됩니다. 속사람이 하는 것은 성경 말씀과 일치하므로 사단의 장난과 구별이 됩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나에게 적용시킬 때 내 욕심을 위하여 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인지 잘 구별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바로 깨달음이 많아야 합니다.
첫째, 속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음으로 강건해집니다. 이같이 탄생된 속사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음으로 성 장하여 강건해지며 범사에 잘 됩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 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 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2:2). 속사람이 성장하며 강건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형 상을 닮아 내 영과 혼과 육이 온전해지는 것을 가리켜 구원을 이룬다 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work out your salvation:NKJV)" (빌 2:12). 이것은 곧 성화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속에서 태어난 속 사람은 혈과 육으로 된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 난 자이기에 죄가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 3:9).
1) 속사람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속사람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있 기에 죄가 속사람에게 침범할 수 없도록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지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 라"(요일 5:18).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속사람 안에서 역사함으로 악한 자가 만지지 도 못하는고로 속사람에게는 평안과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영은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속사람이 생명의 말씀을 먹고 사니 자연 그 속에서 생명이 약동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속사람이 생명의 말씀을 먹지 못하면 힘을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한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이며 생명이기에 속사람과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 요 생명이라"(요 6:63).
2) 꿀보다 더 단 생명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속사람에게 들어갈 때 영에게 생명이 되고 기쁨이 되 고 능력이 됩니다. 주린 영혼에게 생명의 말씀은 배고플 때에 맛있는 음식과 같아 꿀과 꿀송이보다 더 단 것임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주린 영혼에게 생명의 말씀이 임할 때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0).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 다"(시 119:10
3). 또한 아가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입술에서는 꿀방울이 떨어지고 내 혀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아4:11). 꿀이 있다는 것은 말씀이 맛이 있다는 것이며, 젖이 있다는 것은 상 대편에게 힘을 주고 성장시킬 수 있는 말씀의 능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3) 속사람을 통한 입술의 말에는 불이 있습니다. 속사람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강건해진 사람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는 불이 있습니다. 불은 소멸하는 역사, 능력의 역사 및 화목의 역사가 있습니다. 속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고 추진력이 있습니다. 이 속사람이 하나님과 교통을 하비다. 인간의 혼, 지식, 감정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속사람에 말씀의 신호등을 세우고 파란 불이 켜질 때 비록 내 이성과 감정에 맞지 않아도 전진하 며 하늘의 복이 임합니다. 다윗은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께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다윗은 그의 속사람에 신호등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군사 모두가 블레셋의 골리앗을 두려워하여 떨고 있으리 때 매끄러운 돌 다섯 개로 그와 맞섰습니다. 사울 왕은 전쟁터에 한 번도 나간 적 이 없는 이 소년이 골리앗을 대적하려고 나섰을 때 심기가 편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를 대적하는 악의 두목을 여호와께서 제거해주실 줄 믿고 사울 왕이 주는 갑옷과 검을 버리고 돌 하 나로 쳐서 죽였습니다 (삼상 17:49). 다윗의 속사람이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졌으므로, 상대편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고 전진했을 때 하나님 께서 대신 싸움을 치러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파란 불로 응답하시면 마음에 평안함과 부드러움과 확신이 옵니다. 신호등에 파란 불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 교통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로써 교통하는 방법은 성경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기도하고,영으로 기도(고전 14:14-15) 하고, 성령님으로 기도(유1:20)합니다.
둘째, 속사람은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우리는 보통 기도를 마음으로 합니다. 마음(mind) 즉 우리의 의식으 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기도하면 마음이 열매를 맺고, 영 (spirit) 으로 기도하면 영이 열매를 맺으며, 성령님(Holy Spirit)으로 기도하면 마음과 영이 열매를 맺습니다. 속사람, 즉 영이 기도하는 것을 방언 기도라고 합니다. 방언 기도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고전 14:2).따라서 마음으로는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 방 언 기도는 영에는 도움이 되나 마음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에도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방언 통역의 은사를 구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고전 14:13). 방언 기도는 하나님께 하므로 속사람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복이 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속사람이 강건해지기 위해 누구보다도 방언 기도를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고전 14:18). 마음으로 기도하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는 길이 열 려지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만 하는데 가지 못하면 내 속사람과 겉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겨 여러가지 혼란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뿐만 아니라 영으로도 기도해야 합니다.방언 기도 를 많이 할때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나 하나님은 알아들으시고 영이 원 하는 바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영에 응답이 오면 마음에 영향 을 주어 범사에 잘되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3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했습니다. 미국 교인 중에서는 방언을 하면 통역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그러나 우리 한국인 중에서는 방언 통역하는 분들이 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은사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일부 교 계에서 막아 소멸시켰기 때문입니다. 방언 통역이란 무엇입니까 자신 이나 다른 사람이 방언을 말할 때 그 뜻이 무엇인지 성령님으로 인해 알 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입을 열어 말하면 그때부터 주님께서 직 접 주장해 줍니다. 성경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세상에는 뜻없는 소리가 없으므로 (고전 14:10)주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셔서 분명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셋째, 방언 통역은 곧 예언이 됩니다. 방언을 통역할 수 있는 분은 예언의 은사가 동시에 임했다고 생각해 도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 을 알려주고 장래 일을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요16:13-14). 방언 기도를 할 때 방언의 뜻이 자기의 생각으로 들어오는 때에 바로 입을 열 어 말하면 그것이 통역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때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그 은사를 받지 못합니다. 또 체면 을 존중하는 의심하기 때문에 그 은사를 받지 못합니다. 또 체면을 존 중하는 우리의 유교 사상으로 인해 다른사람에게 나타내기를 꺼려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씀에 따라 강하고 담대 하여 성령님의 역사하심대로 훈련을 받아 하나님의 복을 누릴 줄 아시기 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방언의 통역이 곧 예언이 되는데, 이 예언은 우리 마음속에 숨은 것 을 드러내고 장래 것을 알려주고 문제 해결의 열쇠도 됩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철없는 어린 아이가 칼을 갖고 놀려고 할 때에 어머니가 주지 아니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을 주시지 아니하는 것도 응 답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범죄하는 것을 알려주는 예언이 오면 조심해야 합니다. 받은 예언을 다른 사람에게 알림으로 문제가 되어 마귀의 장 난에 빠지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예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취급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권위와 자랑을 나타내려는 자신의 교만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오직 본인에게만 주님이 주신 것을 그대로 이 야기해 줄 때 그 사람 마음속에 숨은 곳이 드러면 본인이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바꾸어집니다 (고전 14:25).
넷째, 하나님의 사랑으로 에언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 줄 확신하는가 사도 바울은 사랑을 따라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말합니다(고전 14:1). 예언하는 자의 인격이 주님의 사랑에 젖어 있어야 하니다. 구약에 나 타난 예언자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사랑에 젖어져 이스라엘 민족을 위 하여 눈물흘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사랑없는 예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예언하는 자는 교회 에 덕을 세우고 듣는 자도 교회에 덕을 세워쟈 합니다(고전 14:2-4). 예언하는 사람은 상대편을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 권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언은 꾸정하고 책망하기 전에 권면과 안위가 있습니다(고전 14:3,참고 계 2,3장).성령님은 꾸중하는 자가 아니라 위로가자-보혜사 (Comforter)-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칭찬 가운데서 내 잘못 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위로 가운데서 내 잘못을 깨닫게 하셔서 스스 로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사랑의 방법입니다. 방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사랑 을 따라 모두에게 덕을 세워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는 방언하는 자, 방언 통역자 및 예언자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지체는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모두 소속되어 있기에 상호 혀조 관계가 잘 이루어져 합니다. 다섯째, 방언은 은사 중 하나입니다. 방언을 처음 할 때는 속에서 솟구쳐 나와 안하려고 입을 막아도 계속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러는 어린 아기가 말 배우는 식으로 한 마디씩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의심하기도 하는데 이런 식 으로도 방언이 나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십시오. 열심히 방언 기도를 하면 우리의 마음과 의식이 잠잠해지고 세상 것에 대한 염려가 점점 사라지면서 영적인 사람으로 바꾸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누 구보다도 방언을 더 많이 한다고 한 것처럼 (고전 14:18) 여러분도 방 언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방언 기도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분들은 일만 마디 알아듣지 못하는 해석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19을 보면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 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방언 기도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남을 가르칠 때" 깨달은 다섯 마디 가 일만 마디 방언보다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같이 이 구 절은 방언을 금지하는 구절이 아니므로 잘못된 이론적인 비판에 귀 기 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방언을 못하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원받음과 방언을 말함은 별개의 것입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방언 못하면 성령님 세례 못받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성경적이 아 닙니다. 성령님 세례받은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지체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첫째는 사도요,둘째는 선지자요,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 12:27-28).
특히 30절에 "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한 것은 못하는 성도 도 있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은사 중 하나입니다(고전 12:10). 여섯째, 성령님으로 하는 기도의 역사 성령님으로 기도할 때는 영과 마음과 육이 하나가 되어 역사합니다. 서 령으로 기도할 때, 즉 성령님의 새 술에 취하여 기도하는 것같이 내 생각이 아닌데도 기도가 나오는데 이때는 마치 수도 꼭지를 틀 때에 물 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기도가 나옵니다. 이때의 기도는 얼마나 은 혜가 되고 좋은지 모릅니다. 한번은 어떤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갑자기 성령님으로 기도가 나오면서 기도받는 분들에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중의 한 분이 축농증으로 15년 동안 매일 약을 먹고 고생을 해왔는데 깨끗이 나았습니다. 한번은 저녁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서 피곤하여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저의 영이 계속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육신이 있는 인간 이니까 영도 좀 쉬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저으 가 영이 계속 가운데서도 속에서 찬송이 계속 흘러 나왔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 예배에 나와서 찬송을 부르는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제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완전히 다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속사람이 겉사람을 이길 때 주님과 저 사이에 큰 교통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영으로,성령님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을 갖는 복이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일곱째, 예언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언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언자가 있고 성령님으로 한번씩 예언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언자적인 은사를 받은 분은 언제든지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과 교통하며 예언을 받습니다. 성령님 충만한 분도 예언자는 아니지만 한번씩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언을 합니다. 영적으로 주님 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들은 육신적인 면과 흔적인 면이 감사합바니다. 육신적인 것과 흔적인 것이 강해지는 것은 세상 뉴스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며 따라서 육적이고 흔적인 것이 잠잠해야 주님과 나와의 교통 이 깊어집니다. 내 육신이 살았고 머리가 세상 일로 복잡해지면 내 영 은 점점 약해집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세상일에 관심 이 적어집니다.
여덟째,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기도로 주님과 교통하는 이외에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세미한 음성 을 듣습니까성경 본문에 엘리야 선지는 하나님께 영적 교통이 더 깊 고 많기 때문에 더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씀을 보면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 라"(딤후 1:8) 하였고, 또한 갈라디아 교회에도 말씀하기를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님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 하도다"(갈 4:29) 하였습니다. 아합왕의 부인 이세벧에게서 도망한 엘리야는 호렙산 동굴에서 기도 하던 중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본문 말씀 열왕기상 19:11-12을 다시 보면,많은 사람들이 12절 후반 에 있는 "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하신 말씀을 두고 조 용한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하면서, 예배 시간에 큰 소리로 통성 기도하고 찬송을 크게 하면서 손들고 손뼉치는 것을 비난합니다. 위의 말씀을 보충 설명하기 위해서 출애굽기 19:16-19을 보면 하나님 께서 모세에게 임재하실 때 일어난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와 의 대화 이전에 우뢰와 번개가 치고, 구름이 산을 둘러싸고 진동이 일 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불가운데서 하나님이 임하셨습니다. 비슷한 현상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에게도 일어났습니다 (행 2:1-4). 성령님이 급하고 강한 바람과 불의 형상으로 임하시자 모두 가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나라는 존재, 내 자아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역사가 운행할 때에 진동 이 일어나고, 우뢰,번개, 바람이 일어나고 또는 불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내 자아가 깨어지는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물 론 진동이나,불이나, 바람과 같은 급하고 강한 역사 없이도 성경 말씀 을 통하여 자아가 깨어질 수도 있고 점진적으로 자아가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자아가 깨어지면 나의 속사람이 주님과 교통할 수 있고 주 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저는 어느날 새벽 기도회에 가기 전에 육신이 너무 피곤하여 '주님, 한 시간만 더 자게 해주십시요' 하였을 때 주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지 않으려고 하였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세미한 음성으 로 들려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 게 하였노라"(고전 2:5). 그리고 자세하게 저에게 설명하여 주셨습니다.그때 저는 세미한 음성 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저를 말씀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통하여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 러던 어느날 주님께서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를 내려 놓으시는 마지막 장면을 보여 주시면서 저에게 주신 세미한 음성을 기억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히기 직전 비참한 모습으로 "나는 너를 위해 몸버려 피 흘리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얼 하느냐" 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목 이 메어 울고 말았습니다. 아홉째, 세미한 음성을 들읍시다. 세미한 음성에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나의 속사람이 말하는 세미한 음성이 있고,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미한 음성이 있습니다. 속사람 의 세미한 음성은 성령님과 함께한 내 속사람이 감동을 받아 나에게 전 달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나에게는 피곤했던 육체에 새 힘이 소생하는 생기가 역사됩니다. 이 힘으로 내가 승리를 하게 됩니다. 속사람이 하는 것은 성경 말씀과 일치하므로 사단의 장난과 구별이 됩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나에게 적용시킬 때 내 욕심을 위하여 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인지 잘 구별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바로 깨달음이 많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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