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을 극복하자 (왕상19:9-14)
본문
큰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다가 벽에 부딪혀 좌절을 경험해 본 경험이 있습 니까처음에는 열의를 가지고 의욕을 가지고 시작했으나 높은 벽 앞에서 마음도 지치고, 열의도 식고, 기운마져 꺽인 것을 좌절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의 엘리야의 좌절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최대의 선지자로 평생토록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신이심을 증거하며 살다가 죽음 을 보지않고 승천한 구약의 두 인물 중 한사람입니다. 당시 국가적 상황은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가 우상을 섬김으로 온 백성이 우상에 빠지게 되어 국 가적인 재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선지 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모아놓고 누구의 신이 참신인가 판단하는 기회를 가집니다. 거기서 혼자서 대결한 엘리야는 대승을 거두어 모든 바알 선지자들을 처단합니다. 이 소문이 왕실에 전해지자 이세벨은 내일 이 맘때 엘리야의 목을 베겠다고 경고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심한 좌절에 빠지고 하나님께서는 그 좌절에서 건져 내십니다. 좌절을 당한 엘리야의 반응 두려워서 도망쳤습니다.
(3) 능력의 종 엘리야 오직 하나님만 알고 믿고 의지했던 엘리야가 이 세 빌의 선전포고에 북왕국에서 남쪽 유다땅 브엘세바에 까지 도망했으니 끝에 서 끝으로 도망간 셈입니다. 이처럼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은 안보이고 문제 만 크게 보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피하려 듭니다. 그러나 뛰어봐야 하나님 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도피는 문제 해결의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을 피했습니다. (3,4) 사환만 남기고 광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 누웠습니다.
그곳은 사람도, 집도, 음식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큰일을 만 나면 가까운 사람의 위로, 격려, 도움도 귀찮게 여깁니다. 그래서 홀로 있 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혼자 있다고 해결됩니까 죽기를 원했습니다(4후) 엘리야 생각으로는 이제 할만큼 했는데 이세벨의 손에 죽는다는 것은 너무 비참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하나님이 데려가 주세요 하는 심정으로 죽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병이나면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고 건물에 균열이 생기면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하듯 인간 이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의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필요하듯 희망은 절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절망이 란 희망이 없다는 말이 아니요 잠시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끊어진 곳을 이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철저한 좌절을 경험하셨 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부 르짖으셨습니다. 그러나 소망은 십자가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십자가의 죽 음에서 부활이 시작되었고 무덤에서 새 생명이 시작됐습니다. 좌절을 경험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지금의 처지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엘리야 자절을 극복하기 까지의 과정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엘리야가 도망쳐서 광야까지 갈 동안 하나님은 엘리야의 일거일동을 다 아 셨고 관심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어 떡과 물을 주셨습니다. 아주 멀리 도망간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관심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이 먼저 아시고 아파하시고 관심과 사랑을 쏟으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서 눈을 돌릴 수 없듯이 하나님도 택한 백성에 게서 눈을 돌리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안다면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5)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를 보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처럼 하나님은 누운자를 일으키시고 앉아이는 자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우리들이 지쳐서 쓰러져 있을 때 위로해 주셔셔 일으키시고 상처를 입고 고통 을 당할 때 치료해 주시고 배고파 하며, 목말라 할 때 먹을 것과 마실물을 주셔서 일으키십니다.
왜냐하면 앉아서 누워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고 할 일을 해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기운을 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9) 천사가 가져다준 떡과 물을 먹고 40일을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러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인생이 내 방법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고, 경험이 풍부하다 해도 그것으로 해 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니을 만나야 됩니다. 인간의 지식이 만든 핵무기 안 에 인간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환경문제는 인간이 만든 함정입니다. 잘 살려고 만든 것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수반합니다. 엘리야는 세상천지에 자기 혼자라고 한탄했습니다. (10,14) 인간이 고통을 느낄때 얼마 나 맥빠집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서 그 오해가 풀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칠천인(18)을 남겨 두셨다는 것입니다. 엘리 야의 친구요, 동역자요, 형제가 그렇게 많이 예비되어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명을 회복했습니다(15,16)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난 후 사명을 회복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사명때문에 왔습니다. 사명이 다하면 젊은이도 가고 사명이 있으면 죽 고 싶어도 죽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사명에 설때 힘이 있고 생의 가치를 찾게 됩니다. 현실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광야에서 일생을 끝내거나 호렙산에서 여생을 마쳤다면 문제는 영영 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신이 할 일이 있음을 깨달 은후 즉시 도망쳐 나온 현장으로 찾아갔습니다. 장벽을 뛰어넘고 밀려오는 파도와 부딛혔습니다. 우리도 문제가 있는 현장으로 찾아가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손에 죽는 것이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지만 아 합이나 이세벨에게 머리털 하나 상치않았습니다. 그건 내 생각이고 내 염려 요 내 불안이었지 하나님은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죽음을 보지 않고 회리바람을 타고 데려가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의 차이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에서 좌절은 누구나 있습니다. 엘리야도 바울도 예수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피하고 현실을 도망쳐서 죽기를 바라는건 일반적인 행동입니다. 그렇다고 빨리 나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나 혼자 생각하 고 판단하고 결론지었던 오해들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현실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 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하셨습니다. 좌절 을 딛고 더 큰 승리로 이루는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좌절당한 인간의 야망 성경
본문:창 11:1-9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하려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막으실 때 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의욕과 야망을 가지고 일을 계획하고 추진 하려고 하는데 왜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하실까요 우리가 시작한 일 이 잘 안되고 있다면 거기에는 그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그 이유를 찾아 보고자 합니다. 지금 읽은 본문의 말씀은 노아 홍수가 있었던 이후에 이야기입니다. 그 지겨웠던 대홍수가 지나간 후에 큰 떼를 지어 이동하던 한무리의 사람들이 살만한 장소를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들은 시날 평지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에 정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장을 풀고 각 기 자기들이 살 장소들을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의논하기를 '이 제 우리가 여기에 큰 도시를 건설하고 견고한 성을 쌓고 그리고 높은 탑도 세우자. 그리고 그 탑이 하늘 꼭대기까지 닿게하여 온 세상에 우리 이름을 내고 다시는 흩어지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들의 대역사를 이루지 못하도록 그것을 중지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나 잘되 게 해 주시는 분이지 안되게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못하도록 그들을 흩어 놓으셨습니까 그 이전까지는 그들의 언어가 통일되어있어서 말이 서로 통하고 무슨 일이든지 잘할 수 있 었는데 왜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까지 서로 통할 수 없게 하시면서 그들의 대역사를 결국 무위로 끝나게 하셨습니다. 이 바벨탑 이야기에서 인간들의 잘못은 무엇이었겠습니까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겠다는 그들의 야망 이 왜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까요
첫째로, 이 사람들이 탑을 쌓으려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여 봅시다. 그들이 시날 평지에 정착하려고 하였던 것 그자체가 잘못이었다고 생각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흩어지지말고 하나로 단결하여 힘을 모아 큰 도시를 건설하자는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또한 자기들의 힘과 역량을 과시하려고 높은 탑을 쌓겠다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이와같이 적어 도 겉으로 나타난 바로는 이들에게 별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도모하는 일에는 반드시 그 동기가 있습니다. 아무 목적 이나 동기없이 하는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 동 기를 보십니다. 그들이 왜 그 일을 하나. 사람이 제 아무리 그 동기를 겹겹이 싸고 위장을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근본 동기를 꿰뚤어 보십니다. 혹시 우리들 스스로는 아무런 동기없이 시작한 일이라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무의식속에 숨어있는 깊은 동기까지도 파악하시고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으려는 이 사람들의 숨어있는 동기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들은 '높은 탑을 쌓아 예배를 드리자'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이름을 내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계획 하던지 무슨 일을 시작하던지 내 마음속 근본에 있는 동기를 내 스스로 물 어보아야 되겠습니다. 사람은 좋은 일을 나쁜 동기로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다윗이 성전을 지으 려고 할 때에 그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명성을 떨치고 자신의 정치적기반을 굳히고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기위한 정치적인 동기도 작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헤롯왕은 성전을 그러한 동기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은 그런 동기가 아니고 다만 '나는 백향목 궁궐에 살면서 하나님의 궤는 장 막에 있구나'하는, 하나님께 대한 심히 송구한 마음으로 그것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이 왕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 순수한 동 기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시면서 다윗에게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 7:9-)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마음에 품은 동기만을 보시고 다 윗에게 내리신 축복입니다. 마음의 동기만 좋아도 이렇한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여 크고 깨끗하고 순수한 동기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무슨 일이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영 화스럽게 하려는 동기를 품고 계십니까 인간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이고 교만한 마음의 동기 때문에 하나님을 섭섭하게 한다면, 그것은 가장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여기 시날 평지에 정착했던 사람들이 큰 야망을 품었던 것은 무엇 때문 이었습니까 그들은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고 자기들 의 이름을 내고 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그 밑바닥에는 불경과 교만, 이기심과 불신이 깊이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대단히 중요한 몇가지 과오를 범하 고 있습니다. 우선 높은 탑을 쌓아 '하늘 꼭대기까지 닿게하자'고 하였는데 이것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께 도전하려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단 연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올라갈 줄 착각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헛 된 생각입니다. '하늘에 계신 분은 이를 비웃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불가능이 없다'고 제 능력을 과시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의 도와 계획들을 쉽게 무너뜨리십니다. 어찌 인간이 하나님께 도전 할 수 있겠 습니까 어찌 사람의 손으로 쌓은 탑이 하늘 꼭대기까지 닿게 할 수 있겠습 니까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 류를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기 위서는 일정한 곳에 안주하지 말고 흩어져 골고루 땅위에 퍼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시날 평지에 편안 히 안주하려고 했고 자기들끼리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들의 야망과 이기심 때문에 보다 더 넓고 큰 세계로 나가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사람이 당장 자기 눈앞에 이익 이나 안락때문에 그것보다 더 크고 원대한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바벨탑을 높이 쌓으려고 했던 의도는, 만약에 경우 또다시 노아때와 같은 홍수가 있을 경우에 이를 대비하려는 의도였다고 해 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노력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나온 착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내가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앙의 생활이란 하나님께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의욕과 야 망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제쳐놓고 세운 계획은 언제나 내 욕심과 내 명예와 내 안락과 내 영광이 앞서게 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 은 그 일을 막으실 것입니다. 한번은 형제끼리 부모의 유산을 나누는 문제 때문에 소송을 벌린 사람들 이 예수께 와서 판결을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부자는 남에게 해를 끼친 일을 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자기 일신상 의 영화와 행복을 위해서 살 생각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날밤 그의 생 명을 도로 찾아가시니 재물은 고스란히 남의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께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않는 생각이요 생활입니다. 거기에는 좌절과 실패와 허무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도모하고 추진하는 일들이 생각지 못한 장애에 부디치고 문제 해결이 않될 때에 여러분은 마음의 동기를 도리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귀한 것들을 맡겨 주신데에는 그 목적과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고 의도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또 내가 거기에 빗나가고 어그러졌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우리 스스로 그것 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여기 시날 평지에 정착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거기에 편안히 안주 하고 집을 짖고 포도원을 만들고 부락과 도시를 건설하여 재미있고 행복하 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서로 '흩어지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의도에 역행하고 있는 이 사람들을 흩어 놓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일신상의 안락과 행복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대로의 계획과 목적이 그보다 더 중요하십니다. 그래서 시날 평지에 안주하려던 이 무리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흩어질 수 밖에 없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흩어지지 말자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온 땅에 흩어져서 땅을 관리하고 정복하며 땅에 충만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시날 평지가 좋다고 거기에 머물렀다면 인 류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거기서 멸절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곳에 편안히 안주하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전진해야 하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야 하며,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참여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시날 평지에 집을 짓고 큰 도시를 건 설하고 육신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은 육신을 편안 케 하고 배만 부르게하여, 게으르고 무능한 인간들로 전락하게 하는 길이었 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근본 목적은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은 인간을 보다 더 크고 중대한 목표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가게 합니다. 그 리고 우리 인간은 자신들의 손으로 하는 일이 잘되고 있다고 여겨질 때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교만에 빠지게되고, 그것이 어리석은 자기의 바벨탑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돈을 좀 벌었을 때, 출세하 여 명예나 권력을 가졌을 때에, 모든 일이 형통할 때에. 사람들은 교만해져서 하늘 꼭대기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때에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타인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하며 인간의 마음속에도 분열과 번민과 회의가 생기게 되어 결국 좌절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모 두 헛된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얻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 도전을 합니까 세상의 모든 일을 되게도 하시고 안되 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 가 없다'(사 22:22)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가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모두 헛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헛된 자기의 망 상을 버려야 합니다. 세째로,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고 추진하는 일들이 왠지 잘 안되고 있지 않 습니까 그래서 그것 때문에 걱정이 되십니까 고민이 되십니까 마음대로 일이 해결되되지 않고 성취되지 않아서 낙심이 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먼저 '내가 왜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 마음의 동기를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일이 내 이기적이 욕망만 채우려는 것인지 하나님의 뜻과 그 영광을 위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또 어떤 일이 잘 안되는 것에 대하여 불안감이 있으십니까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놓은 공이 모두 무너지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염려가 되십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좋으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다 잘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 십니까 혹시 그것이 바벨탑을 쌓는 헛된 야망은 아닙니까 잘될수록 조심 하고 겸손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의 생활을 잊지 맙시다. 잘되는 그 일이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만 잘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은 시날 평지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면서 전진해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시련과 역 경은, 우리로 하여금 전진해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강한 힘입니다. 아무리 일어나라, 걸어가라, 전진해라,.해도, 시련이 없으면 인간은 움직이려고 하 지를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보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인 것입니다. 파선한 배에서 간신이 살아남은 사람 하나가 무인도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배에서 건져낸 물품들로 겨우 자신이 거처할 오두막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자기를 구출해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바닷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 가지고 와보니 그 오두막이 무참히 불 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몹시 절망하고 그의 마지막 소유마저 잃게 된 것을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때 자기를 구하려는 배 한척이 그 무인도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구조선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이 보낸 저 연기 신호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무인도에서 얼마나 고 생했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연기 신호가 없었다면 그 사람은 구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오두막에 사는 것보다 거기에서 탈출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비록 오두막이 불타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영원하신 섭리속에서 그 보다 더 중요하고 더 근본적인 문제 를 해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흩어지지 말자는 것은 인간들의 소원이었으며, 큰 도시를 건설하고 높은 탑을 쌓아 명성을 떨치려는 것은 그들의 야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크고 유익하고 복된 소망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 끌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안되게 하신 일이 결국 잘된 일인 것을 우리는 깨 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을 잘되도록 이끄시고 축복하시는 분이심을 굳게 믿고 더 좋은 일들을 향해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능력의 종 엘리야 오직 하나님만 알고 믿고 의지했던 엘리야가 이 세 빌의 선전포고에 북왕국에서 남쪽 유다땅 브엘세바에 까지 도망했으니 끝에 서 끝으로 도망간 셈입니다. 이처럼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은 안보이고 문제 만 크게 보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피하려 듭니다. 그러나 뛰어봐야 하나님 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도피는 문제 해결의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을 피했습니다. (3,4) 사환만 남기고 광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 누웠습니다.
그곳은 사람도, 집도, 음식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큰일을 만 나면 가까운 사람의 위로, 격려, 도움도 귀찮게 여깁니다. 그래서 홀로 있 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혼자 있다고 해결됩니까 죽기를 원했습니다(4후) 엘리야 생각으로는 이제 할만큼 했는데 이세벨의 손에 죽는다는 것은 너무 비참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하나님이 데려가 주세요 하는 심정으로 죽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병이나면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고 건물에 균열이 생기면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하듯 인간 이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의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필요하듯 희망은 절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절망이 란 희망이 없다는 말이 아니요 잠시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끊어진 곳을 이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철저한 좌절을 경험하셨 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부 르짖으셨습니다. 그러나 소망은 십자가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십자가의 죽 음에서 부활이 시작되었고 무덤에서 새 생명이 시작됐습니다. 좌절을 경험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지금의 처지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엘리야 자절을 극복하기 까지의 과정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엘리야가 도망쳐서 광야까지 갈 동안 하나님은 엘리야의 일거일동을 다 아 셨고 관심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어 떡과 물을 주셨습니다. 아주 멀리 도망간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관심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이 먼저 아시고 아파하시고 관심과 사랑을 쏟으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서 눈을 돌릴 수 없듯이 하나님도 택한 백성에 게서 눈을 돌리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안다면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5)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를 보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처럼 하나님은 누운자를 일으키시고 앉아이는 자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우리들이 지쳐서 쓰러져 있을 때 위로해 주셔셔 일으키시고 상처를 입고 고통 을 당할 때 치료해 주시고 배고파 하며, 목말라 할 때 먹을 것과 마실물을 주셔서 일으키십니다.
왜냐하면 앉아서 누워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고 할 일을 해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기운을 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9) 천사가 가져다준 떡과 물을 먹고 40일을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러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인생이 내 방법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고, 경험이 풍부하다 해도 그것으로 해 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니을 만나야 됩니다. 인간의 지식이 만든 핵무기 안 에 인간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환경문제는 인간이 만든 함정입니다. 잘 살려고 만든 것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수반합니다. 엘리야는 세상천지에 자기 혼자라고 한탄했습니다. (10,14) 인간이 고통을 느낄때 얼마 나 맥빠집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서 그 오해가 풀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칠천인(18)을 남겨 두셨다는 것입니다. 엘리 야의 친구요, 동역자요, 형제가 그렇게 많이 예비되어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명을 회복했습니다(15,16)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난 후 사명을 회복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사명때문에 왔습니다. 사명이 다하면 젊은이도 가고 사명이 있으면 죽 고 싶어도 죽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사명에 설때 힘이 있고 생의 가치를 찾게 됩니다. 현실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광야에서 일생을 끝내거나 호렙산에서 여생을 마쳤다면 문제는 영영 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신이 할 일이 있음을 깨달 은후 즉시 도망쳐 나온 현장으로 찾아갔습니다. 장벽을 뛰어넘고 밀려오는 파도와 부딛혔습니다. 우리도 문제가 있는 현장으로 찾아가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손에 죽는 것이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지만 아 합이나 이세벨에게 머리털 하나 상치않았습니다. 그건 내 생각이고 내 염려 요 내 불안이었지 하나님은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죽음을 보지 않고 회리바람을 타고 데려가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의 차이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에서 좌절은 누구나 있습니다. 엘리야도 바울도 예수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피하고 현실을 도망쳐서 죽기를 바라는건 일반적인 행동입니다. 그렇다고 빨리 나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나 혼자 생각하 고 판단하고 결론지었던 오해들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현실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 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하셨습니다. 좌절 을 딛고 더 큰 승리로 이루는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좌절당한 인간의 야망 성경
본문:창 11:1-9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하려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막으실 때 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의욕과 야망을 가지고 일을 계획하고 추진 하려고 하는데 왜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하실까요 우리가 시작한 일 이 잘 안되고 있다면 거기에는 그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그 이유를 찾아 보고자 합니다. 지금 읽은 본문의 말씀은 노아 홍수가 있었던 이후에 이야기입니다. 그 지겨웠던 대홍수가 지나간 후에 큰 떼를 지어 이동하던 한무리의 사람들이 살만한 장소를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들은 시날 평지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에 정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장을 풀고 각 기 자기들이 살 장소들을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의논하기를 '이 제 우리가 여기에 큰 도시를 건설하고 견고한 성을 쌓고 그리고 높은 탑도 세우자. 그리고 그 탑이 하늘 꼭대기까지 닿게하여 온 세상에 우리 이름을 내고 다시는 흩어지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들의 대역사를 이루지 못하도록 그것을 중지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나 잘되 게 해 주시는 분이지 안되게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못하도록 그들을 흩어 놓으셨습니까 그 이전까지는 그들의 언어가 통일되어있어서 말이 서로 통하고 무슨 일이든지 잘할 수 있 었는데 왜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까지 서로 통할 수 없게 하시면서 그들의 대역사를 결국 무위로 끝나게 하셨습니다. 이 바벨탑 이야기에서 인간들의 잘못은 무엇이었겠습니까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겠다는 그들의 야망 이 왜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까요
첫째로, 이 사람들이 탑을 쌓으려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여 봅시다. 그들이 시날 평지에 정착하려고 하였던 것 그자체가 잘못이었다고 생각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흩어지지말고 하나로 단결하여 힘을 모아 큰 도시를 건설하자는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또한 자기들의 힘과 역량을 과시하려고 높은 탑을 쌓겠다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이와같이 적어 도 겉으로 나타난 바로는 이들에게 별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도모하는 일에는 반드시 그 동기가 있습니다. 아무 목적 이나 동기없이 하는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 동 기를 보십니다. 그들이 왜 그 일을 하나. 사람이 제 아무리 그 동기를 겹겹이 싸고 위장을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근본 동기를 꿰뚤어 보십니다. 혹시 우리들 스스로는 아무런 동기없이 시작한 일이라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무의식속에 숨어있는 깊은 동기까지도 파악하시고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으려는 이 사람들의 숨어있는 동기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들은 '높은 탑을 쌓아 예배를 드리자'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이름을 내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계획 하던지 무슨 일을 시작하던지 내 마음속 근본에 있는 동기를 내 스스로 물 어보아야 되겠습니다. 사람은 좋은 일을 나쁜 동기로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다윗이 성전을 지으 려고 할 때에 그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명성을 떨치고 자신의 정치적기반을 굳히고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기위한 정치적인 동기도 작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헤롯왕은 성전을 그러한 동기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은 그런 동기가 아니고 다만 '나는 백향목 궁궐에 살면서 하나님의 궤는 장 막에 있구나'하는, 하나님께 대한 심히 송구한 마음으로 그것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이 왕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 순수한 동 기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시면서 다윗에게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 7:9-)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마음에 품은 동기만을 보시고 다 윗에게 내리신 축복입니다. 마음의 동기만 좋아도 이렇한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여 크고 깨끗하고 순수한 동기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무슨 일이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영 화스럽게 하려는 동기를 품고 계십니까 인간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이고 교만한 마음의 동기 때문에 하나님을 섭섭하게 한다면, 그것은 가장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여기 시날 평지에 정착했던 사람들이 큰 야망을 품었던 것은 무엇 때문 이었습니까 그들은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고 자기들 의 이름을 내고 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그 밑바닥에는 불경과 교만, 이기심과 불신이 깊이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대단히 중요한 몇가지 과오를 범하 고 있습니다. 우선 높은 탑을 쌓아 '하늘 꼭대기까지 닿게하자'고 하였는데 이것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께 도전하려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단 연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올라갈 줄 착각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헛 된 생각입니다. '하늘에 계신 분은 이를 비웃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불가능이 없다'고 제 능력을 과시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의 도와 계획들을 쉽게 무너뜨리십니다. 어찌 인간이 하나님께 도전 할 수 있겠 습니까 어찌 사람의 손으로 쌓은 탑이 하늘 꼭대기까지 닿게 할 수 있겠습 니까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 류를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기 위서는 일정한 곳에 안주하지 말고 흩어져 골고루 땅위에 퍼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시날 평지에 편안 히 안주하려고 했고 자기들끼리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들의 야망과 이기심 때문에 보다 더 넓고 큰 세계로 나가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사람이 당장 자기 눈앞에 이익 이나 안락때문에 그것보다 더 크고 원대한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바벨탑을 높이 쌓으려고 했던 의도는, 만약에 경우 또다시 노아때와 같은 홍수가 있을 경우에 이를 대비하려는 의도였다고 해 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노력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나온 착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내가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앙의 생활이란 하나님께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의욕과 야 망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제쳐놓고 세운 계획은 언제나 내 욕심과 내 명예와 내 안락과 내 영광이 앞서게 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 은 그 일을 막으실 것입니다. 한번은 형제끼리 부모의 유산을 나누는 문제 때문에 소송을 벌린 사람들 이 예수께 와서 판결을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부자는 남에게 해를 끼친 일을 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자기 일신상 의 영화와 행복을 위해서 살 생각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날밤 그의 생 명을 도로 찾아가시니 재물은 고스란히 남의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께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않는 생각이요 생활입니다. 거기에는 좌절과 실패와 허무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도모하고 추진하는 일들이 생각지 못한 장애에 부디치고 문제 해결이 않될 때에 여러분은 마음의 동기를 도리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귀한 것들을 맡겨 주신데에는 그 목적과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고 의도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또 내가 거기에 빗나가고 어그러졌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우리 스스로 그것 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여기 시날 평지에 정착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거기에 편안히 안주 하고 집을 짖고 포도원을 만들고 부락과 도시를 건설하여 재미있고 행복하 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서로 '흩어지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의도에 역행하고 있는 이 사람들을 흩어 놓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일신상의 안락과 행복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대로의 계획과 목적이 그보다 더 중요하십니다. 그래서 시날 평지에 안주하려던 이 무리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흩어질 수 밖에 없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흩어지지 말자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온 땅에 흩어져서 땅을 관리하고 정복하며 땅에 충만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시날 평지가 좋다고 거기에 머물렀다면 인 류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거기서 멸절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곳에 편안히 안주하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전진해야 하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야 하며,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참여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시날 평지에 집을 짓고 큰 도시를 건 설하고 육신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은 육신을 편안 케 하고 배만 부르게하여, 게으르고 무능한 인간들로 전락하게 하는 길이었 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근본 목적은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은 인간을 보다 더 크고 중대한 목표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가게 합니다. 그 리고 우리 인간은 자신들의 손으로 하는 일이 잘되고 있다고 여겨질 때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교만에 빠지게되고, 그것이 어리석은 자기의 바벨탑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돈을 좀 벌었을 때, 출세하 여 명예나 권력을 가졌을 때에, 모든 일이 형통할 때에. 사람들은 교만해져서 하늘 꼭대기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때에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타인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하며 인간의 마음속에도 분열과 번민과 회의가 생기게 되어 결국 좌절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모 두 헛된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얻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 도전을 합니까 세상의 모든 일을 되게도 하시고 안되 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 가 없다'(사 22:22)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가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모두 헛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헛된 자기의 망 상을 버려야 합니다. 세째로,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고 추진하는 일들이 왠지 잘 안되고 있지 않 습니까 그래서 그것 때문에 걱정이 되십니까 고민이 되십니까 마음대로 일이 해결되되지 않고 성취되지 않아서 낙심이 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먼저 '내가 왜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 마음의 동기를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일이 내 이기적이 욕망만 채우려는 것인지 하나님의 뜻과 그 영광을 위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또 어떤 일이 잘 안되는 것에 대하여 불안감이 있으십니까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놓은 공이 모두 무너지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염려가 되십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좋으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다 잘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 십니까 혹시 그것이 바벨탑을 쌓는 헛된 야망은 아닙니까 잘될수록 조심 하고 겸손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의 생활을 잊지 맙시다. 잘되는 그 일이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만 잘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은 시날 평지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면서 전진해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시련과 역 경은, 우리로 하여금 전진해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강한 힘입니다. 아무리 일어나라, 걸어가라, 전진해라,.해도, 시련이 없으면 인간은 움직이려고 하 지를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보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인 것입니다. 파선한 배에서 간신이 살아남은 사람 하나가 무인도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배에서 건져낸 물품들로 겨우 자신이 거처할 오두막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자기를 구출해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바닷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 가지고 와보니 그 오두막이 무참히 불 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몹시 절망하고 그의 마지막 소유마저 잃게 된 것을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때 자기를 구하려는 배 한척이 그 무인도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구조선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이 보낸 저 연기 신호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무인도에서 얼마나 고 생했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연기 신호가 없었다면 그 사람은 구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오두막에 사는 것보다 거기에서 탈출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비록 오두막이 불타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영원하신 섭리속에서 그 보다 더 중요하고 더 근본적인 문제 를 해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흩어지지 말자는 것은 인간들의 소원이었으며, 큰 도시를 건설하고 높은 탑을 쌓아 명성을 떨치려는 것은 그들의 야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크고 유익하고 복된 소망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 끌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안되게 하신 일이 결국 잘된 일인 것을 우리는 깨 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을 잘되도록 이끄시고 축복하시는 분이심을 굳게 믿고 더 좋은 일들을 향해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