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 곁의 우물 물 (삼하23:13-17)
본문
하나님께서 크게 쓰임 받은 인물을 꼽는다면 다윗을 뺄 수 없습니다. 다윗 의 지파에서 예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반면에 다윗만큼 고난과 박해를 받 은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그릇은 훈련도 크게 시키신다는 사 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다윗왕이 아둘람 굴에 피신하여 역경과 시련 을 겪으며 살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그의 고향인 베들레헴이 블레셋 군대에 의해 점령당했던 때의 일입니다. 굴속에 피신하여 꼼짝 할 수 없고 날씨도 덮도 지루한 날을 보내던 어느날 다윗은 고향 생각에 젖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10)"하며 탄식했습니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고햐의 우물 물은 우리에게도 어렸을 때의 정취를 생각나게 합니다. 다윗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세사람의 신하가 이 소리를 듣고는 왕의 안타까운 소원을 돕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세용사가 적진에 뛰어 들어가 성문 곁의 우물 물을 퍼다가 다 윗왕에게 드린 아름다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성문 곁의 우물 물 =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나 나눈 대화가 요한복음 4장에 기록 되었습니다.예수께서는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물을 복음으로 비 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 물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물은 생명 을 상징합니다. 몸의 7할이 물 피의 9할이 물로 밥을 안 먹고는 여러날 견 디지만 물을 안 마시고는 얼마 견디지 못합니다. 15절에 다윗이 물을 사모 한 것처럼 인간의 영혼이 복음을 사모해야 살길이 있습니다 또한 물은 다른 것으로 대체 할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식사는 밥이 아니 더라도 빵이나 다른 것으로 대체 할 수가 있습니다. 물은 그릴 수 없습니다. 이와같이 영혼이 사는 길도 오직 예수를 만나는 길외에 다른 방법이 없 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 이니라"(행 4:12)고 했습니다. 그 물은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다윗은 아무 런 노력도 댓가도 없이 물을 받았습니다. 이와같이 구원도 완전한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값싼 것은 아닙니다. 세용사는 자신들의 생명을 걸고 물을 떠왔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독생자 예수를 희생 시켜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값진 것입니다. 이 보화중의 보화인 구원 을 값싼 은혜로 바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도 시간나면 드리고 봉사도 하고 싶으면 하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도 쓰다남은 짜투리를 드리고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손해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싸구려 은 혜로 바꾸는 자가 되지 맙시다. 그 물은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우물 물은 흘러서 고인물이 아니요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난 물입니다. 예 쑤를 영접하면 내안에 계시기에 내속에서 생명이 넘쳐나고 기쁨이 차 오릅니다. 다시말하면 바깥 환경이 좋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 아에서 행복 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가물때에 흐르는 시내는 마르지만 샘은 마르지 않는 것처럼 예수 안에 사는 사람은 가뭄도 불경기도 원말 불평도 없습니다. 항상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삶전체를 적셔줄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가 바로 그런 삶이었습니다. = 세 용사 = 다윗이 왕권을 가지고 부하에게 물을 퍼오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요 세용사 가 스스로 다윗의 문제에 개입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죄 인 되었을 때에 그래서 아무런 소망도 없고 한줄기 빛을 볼 수 없는 암흑속 에 있을 때에 우리의 문제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설 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설계하셨고 예수님은 그 설계대로 십자가에서 구원을 완성하셨고 성령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찾아 오셔서 구원 의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마치 세용사가 다윗의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삼위의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 구원은 세상의 어떤 세력도 뺏을 수 없는 확실하고 분명한 구원입니다. 세용사가 다윗왕을 사랑 과 용기와 희생으로 보좌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들에 게 사랑과 희생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물을 받아든 다윗은 너무 감격했습니다. 이 물을 받아든 다윗은 물이 아니라 생명을 돌보지 않고 떠온 세용사의 피라고 말하면서 우물 물을 마시 기를 기뻐 아니하고 여호와께 부어드렸다 (16,17) 고 했습니다. 자신은 그토로 귀한 물을 마실 자격이 없고 오직 하나님이 받으셔야 한다 고 믿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감사 하고 감격하면서 내 생명을 주를 위해 드려야 합니다. 소중한 구원은 나혼 자만 간직할 것이 아닙니다. 이웃에게 나눠야 하고 땅끝까지 나눠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우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쓰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고 했습니다. 군인이 군복을 잘 세탁해 서 입고 구두를 번쩍이도록 닦아신고 가슴에는 빛나는 훈장이 달려 있고 씩씩한 걸음걸이로 걷고 길을 가다가 상관을 만나면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경곌르 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예절이 바르고 남자 다워도 전쟁터에 나아가 목숨을 바칠 수 없는한 그는 군인이 아니요 장교가 아닙니다. 다윗이 세 용사가 아무리 다른 것을 잘해도 왕이 위기에 있을 때 생명을 걸고 신하의 충성을 보이지 못했다면 참다운 신하요 충성스런 용사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의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덕적으로 온전하고 성품이 아무리 좋 아도 나를 하나님께 드리고 내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다면 이는 참 신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온전히 드리는 용사의 충성에 다윗은 감격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앞에 만입이 있은들 어찌 다 감사 하겠습니까 = 결론 = 오늘날의 시대는 아둘람 굴속에 갇혀 목이 타서 고향의 우물물을 사모했던 다윗처럼 갈증의 시대입니다. 물질적인 풍요 과학의 만능이라는 인간으로 내세울 만한 업적이 있지만 참 만족도 기쁨도 없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타 들어가는 대지엔 하나님이 주시는 단비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습니다. 목 말라 애타는 인생들에게 진정한 해답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길을 찾고 진리를 발견하고 영원한 생 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소유하 기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값진 것입니다. 이 보화중의 보화인 구원 을 값싼 은혜로 바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도 시간나면 드리고 봉사도 하고 싶으면 하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도 쓰다남은 짜투리를 드리고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손해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싸구려 은 혜로 바꾸는 자가 되지 맙시다. 그 물은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우물 물은 흘러서 고인물이 아니요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난 물입니다. 예 쑤를 영접하면 내안에 계시기에 내속에서 생명이 넘쳐나고 기쁨이 차 오릅니다. 다시말하면 바깥 환경이 좋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 아에서 행복 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가물때에 흐르는 시내는 마르지만 샘은 마르지 않는 것처럼 예수 안에 사는 사람은 가뭄도 불경기도 원말 불평도 없습니다. 항상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삶전체를 적셔줄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가 바로 그런 삶이었습니다. = 세 용사 = 다윗이 왕권을 가지고 부하에게 물을 퍼오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요 세용사 가 스스로 다윗의 문제에 개입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죄 인 되었을 때에 그래서 아무런 소망도 없고 한줄기 빛을 볼 수 없는 암흑속 에 있을 때에 우리의 문제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설 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설계하셨고 예수님은 그 설계대로 십자가에서 구원을 완성하셨고 성령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찾아 오셔서 구원 의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마치 세용사가 다윗의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삼위의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 구원은 세상의 어떤 세력도 뺏을 수 없는 확실하고 분명한 구원입니다. 세용사가 다윗왕을 사랑 과 용기와 희생으로 보좌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들에 게 사랑과 희생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물을 받아든 다윗은 너무 감격했습니다. 이 물을 받아든 다윗은 물이 아니라 생명을 돌보지 않고 떠온 세용사의 피라고 말하면서 우물 물을 마시 기를 기뻐 아니하고 여호와께 부어드렸다 (16,17) 고 했습니다. 자신은 그토로 귀한 물을 마실 자격이 없고 오직 하나님이 받으셔야 한다 고 믿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감사 하고 감격하면서 내 생명을 주를 위해 드려야 합니다. 소중한 구원은 나혼 자만 간직할 것이 아닙니다. 이웃에게 나눠야 하고 땅끝까지 나눠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우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쓰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고 했습니다. 군인이 군복을 잘 세탁해 서 입고 구두를 번쩍이도록 닦아신고 가슴에는 빛나는 훈장이 달려 있고 씩씩한 걸음걸이로 걷고 길을 가다가 상관을 만나면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경곌르 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예절이 바르고 남자 다워도 전쟁터에 나아가 목숨을 바칠 수 없는한 그는 군인이 아니요 장교가 아닙니다. 다윗이 세 용사가 아무리 다른 것을 잘해도 왕이 위기에 있을 때 생명을 걸고 신하의 충성을 보이지 못했다면 참다운 신하요 충성스런 용사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의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덕적으로 온전하고 성품이 아무리 좋 아도 나를 하나님께 드리고 내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다면 이는 참 신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온전히 드리는 용사의 충성에 다윗은 감격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앞에 만입이 있은들 어찌 다 감사 하겠습니까 = 결론 = 오늘날의 시대는 아둘람 굴속에 갇혀 목이 타서 고향의 우물물을 사모했던 다윗처럼 갈증의 시대입니다. 물질적인 풍요 과학의 만능이라는 인간으로 내세울 만한 업적이 있지만 참 만족도 기쁨도 없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타 들어가는 대지엔 하나님이 주시는 단비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습니다. 목 말라 애타는 인생들에게 진정한 해답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길을 찾고 진리를 발견하고 영원한 생 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소유하 기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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