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의 미련함 (왕상3:16-28)
본문
다윗의 통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의 아들 아도니야는 차기 대권이 틀림 없이 자기에게 돌아오리라 믿고 서둘러 정권인수 준비를 하였다. 말하자면 자축 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 과 모의하여 이 일을 시작하였으나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 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이 동조하지 않은 것이다. 눈치빠른 아도니야가 그들을 제외한 채 즉위식을 준비할 때 선지자 나단은 밧 세바에게 들어가서 아도니야가 저지르고 있는 상황을 낱낱이 보고하였다. 여러분 이 아시는대로 솔로몬은 정상적으로 하자면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다윗의 뒤를 이어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 일은 전에도 있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모 반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압살롬은 장군 요압에 의하여 처단되고 말았다. 밧세바가 두번째 얻은 아들 솔로몬은 아도니야에게 이복형제이다. 다시 말해서 감히 왕권에 도전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다윗의 왕권은 솔 로몬에게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참으로 사악한 일들이 첨철되어 있었다. 더구나 이 일에 나단이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이 읽는 이들에게 실망을 던져준다. 왕상 1 장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나단은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합니다.' 나단은 밧세바를 만나 지금 왕에게 가서 '내 주 왕이여 전에 왕 이 계집 종에게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 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연고로 왕이 되었나이까 ' 말하라고 지시하 였다. 밧세바는 왕에게 들어가 나단이 자기 귀에 담아 준 말을 하였다. 다윗은 그러한 내용을 밧세바와 나단에게 이야기 한 적이 없었다. 다윗이 아 직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을 때 나단 서지자는 밧세바와 약속한대로 뒤따라 들어와서 '내 주 왕께서 이르시기를 아도니쒼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 으리라 하셨나이까 '하고 욱박질러 물었다. 아도니야가 왕의 모든 아들, 군대장 관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청하면서 왕의 종 나와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 들 브나야와 왕의 종 솔로몬을 청하지 않았다고 자못 분함을 나타내었다. 나단이 누구인가 나단은 감히 왕인 다윗을 꾸짖어 그의 회개를 받아 낸 유명한 선지자이다. 다윗이 스스로 호화로운 집에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천막에 모신다는 것 이 안타까워 나단에게 말할 때에 나단은 밤 중에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왕에 게 고하면서 왕의 건축계획을 만류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언제 '왜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짓지 니하였느냐 '고 추궁한 적이 있더냐는 하는 말로 다윗을 조용하게 한 사람이다.(삼하 7장) 이러한 나단이 밧세바를 선동하여 왕에게 들어 가 모사를 꾸민 일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가 왕의 불륜을 책망한 추상같은 선지자 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윗왕은 나단의 말을 듣고 '이전에 내가 .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날 그대로 행하리라.'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사독과 나단과 밧세바는 지체하지 않고 솔로몬을 왕의 노새에 앉히고 기혼으로 올라갔다. 제사장 사독은 성전에서 가져 온 기름을 솔로 몬에게 부었다. 모든 백성은 양각 나팔을 불며 '솔로몬 만세'를 외쳤다. 그 뒤 부터 솔로몬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다윗은 죽기 전에 솔로몬에게 몇가지 교훈을 주었다. 여호오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 네가 무엇을 행하던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기를 부탁하였다.(왕상 2:1-11)
또한 다윗은 자신을 도왔던 친구들과 자기 를 대적했던 원수들에 대하여도 언급하였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정치적인 보복을 하지 않도록 부탁 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은 많은 정적들을 보복하였다. 그의 통치기간 동안 무섭게도 아 도니야나 아비아달, 요압, 그리고 시므온 등이 모두 권좌에서 추방, 처단되었다. 시므이는 압살롬을 피하여 달아나는 다윗을 지독하게도 저주했던 사람이었다.(삼 하 16:5-) 솔로몬은 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도태시켰다. 솔로몬은 애급왕 바로의 딸과 정략적으로 결혼을 하였다. 그 후에도 그는 다른 이방여인들과 결혼을 하였다. 솔로몬은 처음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가진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그의 꿈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꿈이 있기 전에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렸다. 일천번제가 드려질 때 하나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 물으셨다. 솔로몬에게 주어진 이 좋은 특권의 순간에 그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대답을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다른 것들 즉 壽와 富도 주셨다. 네 평생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아버지 느끗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네 날을 길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솔로몬은 마음 속에 단단히 간직하였다. 솔로몬은 이 꿈을 마음에 깊이 두었던 것이다. 왕상 9장에서 우리는 두번째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에 본 환상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솔로몬에 게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 례를 지키면 .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만일 솔로몬이 이러한 축복들을 누리고자 하였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 종하였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의 왕국은 분열되는 아픔을 남겼다. 이것은 솔로몬 이 하나님의 교훈과 율례를 따라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솔로몬이 '지혜롭지 못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두 어머니에 대한 판결은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분명한 확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첫째 그들이 왕궁에까지 나아와 재판을 청구한 것은 왕이 얼마나 백성들을 사랑하였던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전능하신 하나님 앞 에 가지고 나아가 그의 판단을 구할 수 있다. 일국의 왕이 백성들의 시비를 가려 준다고 하는 것은 백성들에게는 영광이다. 우리가 왕의 앞에 나아가 재판을 요청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혹시 억울한 입장에 놓여 있을 때 그 의 특사를 입을 수 있다면 이것은 더 없이 기쁜 일이 아닌가 두번째로 그의 판결은 얼마나 자비로운 것인가 예지가 번득이는 것이 아닌가 솔로몬은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에다가 난제를 호소한 것이다. 산 자식을 둘로 나누어 두여인에게 나눠 주라고 할 때에 산 아이 의 어미는 '산 아이를 저에게 주고 아무쪼록 죽이지 말아 달라 !'고 애원하였다. 제 아이 찾으려다가 그나마 산 아이를 죽일까 하여 한 말이다. 그러나 못된 여인 이 한 말은 '내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눠 달라.' 였다. 왕은 누가 산 아이의 어미인지 알아 차렸다. 지혜란 바로 이것이다. 죽은 아이는 죽었어도 산 아이는 살리자는 것이 지혜 이다. 지혜는 또한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지혜이다. 오늘,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서야 할 자리가 어 디이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충만한 줄로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산 아이의 어미냐 '하는 문제 정도는 쉽게 풀어나갈 줄 믿는다. 어려움을 어렵다고 말하거나, 어려움 앞에서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 라 문제를 풀어가는 맥을 짚고 그 문제의 관건을 쥐고 헤쳐 나갈 수 잇는 지헤가 충만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지혜로 충만케 하시기를 축원한다.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나온 '살림'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93/3월호) 지금은 결혼하는 분들이 대부분 해외 신혼여행을 계획을 한다. 해외 여행을 하기 전에는 신혼부볕湧 제주도에 여행을 많이 갔다. 첫날밤을 지낸 신부가 곤히 잠자고 있는 신랑이 깰까하여 불도 안켠채 조심스 럽게 산책을 나가 바닷 바람을 쏘이고 돌아 왔다. 아직도 곤하게 잠을 자는 신랑 의 얼굴을 보다가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뜨고 있는 눈을 쓰다듬어 감겨 주려 고 했지만 눈은 또다시 떠지고 덮어주면 또 다시 떠지고 하는 것이었다. 신부가 가까이 살펴보니 아뿔사 그 눈은 의안이었다. 너무도 속이 상한 신부가 괘씸한 생각까지 들어 자고있는 신랑을 흔들어 깨우 며 '이 사기꾼, 걍 뼈岾, 병신, 나쁜 놈, 어서 일어나 누구 신세 망쳐놓고 잠 만 퍼지고 자는거야 ! 이 거짓말쟁이 . 너 죽고 나 죽자' 신부가 이 사기꾼 거짓말쟁이 라면서 요란을 떨기에 눈 비비며 일어난 신랑은 신부를 사랑스럽게 바라 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보 사랑해요.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나는 내 일생 한번도 거짓말을 해 본적이 없소.
그런데 나더러 거짓말 쟁이라니 .'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그 날 내가 뭐라고 그랬소 당신을 보는 순간 나는 한 눈에 반했다고 말하지 않았소 이 한 눈에 말이오.' 아직도 씨근거리는 신부를 신랑은 조용히 품에 안아 주었다. 결코 거짓말 자체를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이유는 분명히 통치에 관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때문에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지혜'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창기 두 사람 이 왕의 앞에 가지고 나아 온 문제는 예사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같으면 혈액검 사라 해서 밝혀 주겠지만 당시로서는 어디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 멀리 이방에 있는 시바 여왕도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많은 보화들을 가지고 찾아 왔다. 시바여왕은 '어려운 문제로 저를 시험하기 위하여 찾아왔다.' 솔로몬 은 지혜롭게 대답을 하였다. 온 이스라엘은 왕을 두려워 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왕상 4:29-30 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는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급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라고 기록하였다. 글 잘 쓰는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낫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글 잘 쓰는 사람은 지식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면 말 잘 하는 사람은 누 구인가 지혜있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지혜는 사람을 죽이는 지혜가 아니다. 살리는 지혜이다. 솔로몬이 창기의 아이문제를 재판하면서 산 아이나 죽 은 아이나 똑 같이 나누어 주라고 한 것은 정말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산 아이의 어머니를, 생모를 찾아 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여인은 말한다. '내 것도 되게 말고 네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이 여인의 생각은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게 하자는 심사이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자신도 하지 않고 남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 여인의 심사와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 보자. 무엇인가 일이 되 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주님의 책망처럼 천국 문을 가로막은 바리새인들 처럼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후에 주님 앞에 받 을 책망이 얼마나 클 것인가 심히 두렵다. 깨닫는 것이 지혜다. 남의 일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일을 판단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 솔로몬은 창기의 일은 잘 판단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생은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고백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잠언과 전도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런데 다윗의 왕권은 솔 로몬에게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참으로 사악한 일들이 첨철되어 있었다. 더구나 이 일에 나단이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이 읽는 이들에게 실망을 던져준다. 왕상 1 장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나단은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합니다.' 나단은 밧세바를 만나 지금 왕에게 가서 '내 주 왕이여 전에 왕 이 계집 종에게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 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연고로 왕이 되었나이까 ' 말하라고 지시하 였다. 밧세바는 왕에게 들어가 나단이 자기 귀에 담아 준 말을 하였다. 다윗은 그러한 내용을 밧세바와 나단에게 이야기 한 적이 없었다. 다윗이 아 직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을 때 나단 서지자는 밧세바와 약속한대로 뒤따라 들어와서 '내 주 왕께서 이르시기를 아도니쒼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 으리라 하셨나이까 '하고 욱박질러 물었다. 아도니야가 왕의 모든 아들, 군대장 관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청하면서 왕의 종 나와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 들 브나야와 왕의 종 솔로몬을 청하지 않았다고 자못 분함을 나타내었다. 나단이 누구인가 나단은 감히 왕인 다윗을 꾸짖어 그의 회개를 받아 낸 유명한 선지자이다. 다윗이 스스로 호화로운 집에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천막에 모신다는 것 이 안타까워 나단에게 말할 때에 나단은 밤 중에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왕에 게 고하면서 왕의 건축계획을 만류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언제 '왜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짓지 니하였느냐 '고 추궁한 적이 있더냐는 하는 말로 다윗을 조용하게 한 사람이다.(삼하 7장) 이러한 나단이 밧세바를 선동하여 왕에게 들어 가 모사를 꾸민 일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가 왕의 불륜을 책망한 추상같은 선지자 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윗왕은 나단의 말을 듣고 '이전에 내가 .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날 그대로 행하리라.'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사독과 나단과 밧세바는 지체하지 않고 솔로몬을 왕의 노새에 앉히고 기혼으로 올라갔다. 제사장 사독은 성전에서 가져 온 기름을 솔로 몬에게 부었다. 모든 백성은 양각 나팔을 불며 '솔로몬 만세'를 외쳤다. 그 뒤 부터 솔로몬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다윗은 죽기 전에 솔로몬에게 몇가지 교훈을 주었다. 여호오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 네가 무엇을 행하던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기를 부탁하였다.(왕상 2:1-11)
또한 다윗은 자신을 도왔던 친구들과 자기 를 대적했던 원수들에 대하여도 언급하였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정치적인 보복을 하지 않도록 부탁 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은 많은 정적들을 보복하였다. 그의 통치기간 동안 무섭게도 아 도니야나 아비아달, 요압, 그리고 시므온 등이 모두 권좌에서 추방, 처단되었다. 시므이는 압살롬을 피하여 달아나는 다윗을 지독하게도 저주했던 사람이었다.(삼 하 16:5-) 솔로몬은 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도태시켰다. 솔로몬은 애급왕 바로의 딸과 정략적으로 결혼을 하였다. 그 후에도 그는 다른 이방여인들과 결혼을 하였다. 솔로몬은 처음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가진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그의 꿈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꿈이 있기 전에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렸다. 일천번제가 드려질 때 하나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 물으셨다. 솔로몬에게 주어진 이 좋은 특권의 순간에 그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대답을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다른 것들 즉 壽와 富도 주셨다. 네 평생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아버지 느끗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네 날을 길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솔로몬은 마음 속에 단단히 간직하였다. 솔로몬은 이 꿈을 마음에 깊이 두었던 것이다. 왕상 9장에서 우리는 두번째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에 본 환상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솔로몬에 게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 례를 지키면 .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만일 솔로몬이 이러한 축복들을 누리고자 하였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 종하였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의 왕국은 분열되는 아픔을 남겼다. 이것은 솔로몬 이 하나님의 교훈과 율례를 따라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솔로몬이 '지혜롭지 못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두 어머니에 대한 판결은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분명한 확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첫째 그들이 왕궁에까지 나아와 재판을 청구한 것은 왕이 얼마나 백성들을 사랑하였던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전능하신 하나님 앞 에 가지고 나아가 그의 판단을 구할 수 있다. 일국의 왕이 백성들의 시비를 가려 준다고 하는 것은 백성들에게는 영광이다. 우리가 왕의 앞에 나아가 재판을 요청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혹시 억울한 입장에 놓여 있을 때 그 의 특사를 입을 수 있다면 이것은 더 없이 기쁜 일이 아닌가 두번째로 그의 판결은 얼마나 자비로운 것인가 예지가 번득이는 것이 아닌가 솔로몬은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에다가 난제를 호소한 것이다. 산 자식을 둘로 나누어 두여인에게 나눠 주라고 할 때에 산 아이 의 어미는 '산 아이를 저에게 주고 아무쪼록 죽이지 말아 달라 !'고 애원하였다. 제 아이 찾으려다가 그나마 산 아이를 죽일까 하여 한 말이다. 그러나 못된 여인 이 한 말은 '내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눠 달라.' 였다. 왕은 누가 산 아이의 어미인지 알아 차렸다. 지혜란 바로 이것이다. 죽은 아이는 죽었어도 산 아이는 살리자는 것이 지혜 이다. 지혜는 또한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지혜이다. 오늘,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서야 할 자리가 어 디이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충만한 줄로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산 아이의 어미냐 '하는 문제 정도는 쉽게 풀어나갈 줄 믿는다. 어려움을 어렵다고 말하거나, 어려움 앞에서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 라 문제를 풀어가는 맥을 짚고 그 문제의 관건을 쥐고 헤쳐 나갈 수 잇는 지헤가 충만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지혜로 충만케 하시기를 축원한다.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나온 '살림'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93/3월호) 지금은 결혼하는 분들이 대부분 해외 신혼여행을 계획을 한다. 해외 여행을 하기 전에는 신혼부볕湧 제주도에 여행을 많이 갔다. 첫날밤을 지낸 신부가 곤히 잠자고 있는 신랑이 깰까하여 불도 안켠채 조심스 럽게 산책을 나가 바닷 바람을 쏘이고 돌아 왔다. 아직도 곤하게 잠을 자는 신랑 의 얼굴을 보다가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뜨고 있는 눈을 쓰다듬어 감겨 주려 고 했지만 눈은 또다시 떠지고 덮어주면 또 다시 떠지고 하는 것이었다. 신부가 가까이 살펴보니 아뿔사 그 눈은 의안이었다. 너무도 속이 상한 신부가 괘씸한 생각까지 들어 자고있는 신랑을 흔들어 깨우 며 '이 사기꾼, 걍 뼈岾, 병신, 나쁜 놈, 어서 일어나 누구 신세 망쳐놓고 잠 만 퍼지고 자는거야 ! 이 거짓말쟁이 . 너 죽고 나 죽자' 신부가 이 사기꾼 거짓말쟁이 라면서 요란을 떨기에 눈 비비며 일어난 신랑은 신부를 사랑스럽게 바라 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보 사랑해요.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나는 내 일생 한번도 거짓말을 해 본적이 없소.
그런데 나더러 거짓말 쟁이라니 .'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그 날 내가 뭐라고 그랬소 당신을 보는 순간 나는 한 눈에 반했다고 말하지 않았소 이 한 눈에 말이오.' 아직도 씨근거리는 신부를 신랑은 조용히 품에 안아 주었다. 결코 거짓말 자체를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이유는 분명히 통치에 관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때문에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지혜'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창기 두 사람 이 왕의 앞에 가지고 나아 온 문제는 예사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같으면 혈액검 사라 해서 밝혀 주겠지만 당시로서는 어디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 멀리 이방에 있는 시바 여왕도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많은 보화들을 가지고 찾아 왔다. 시바여왕은 '어려운 문제로 저를 시험하기 위하여 찾아왔다.' 솔로몬 은 지혜롭게 대답을 하였다. 온 이스라엘은 왕을 두려워 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왕상 4:29-30 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는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급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라고 기록하였다. 글 잘 쓰는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낫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글 잘 쓰는 사람은 지식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면 말 잘 하는 사람은 누 구인가 지혜있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지혜는 사람을 죽이는 지혜가 아니다. 살리는 지혜이다. 솔로몬이 창기의 아이문제를 재판하면서 산 아이나 죽 은 아이나 똑 같이 나누어 주라고 한 것은 정말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산 아이의 어머니를, 생모를 찾아 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여인은 말한다. '내 것도 되게 말고 네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이 여인의 생각은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게 하자는 심사이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자신도 하지 않고 남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 여인의 심사와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 보자. 무엇인가 일이 되 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주님의 책망처럼 천국 문을 가로막은 바리새인들 처럼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후에 주님 앞에 받 을 책망이 얼마나 클 것인가 심히 두렵다. 깨닫는 것이 지혜다. 남의 일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일을 판단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 솔로몬은 창기의 일은 잘 판단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생은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고백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잠언과 전도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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