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를 떠나라 (삼상22:1-5)
본문
사무엘 상하의 내용은 세 사람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세 사람은 사무엘 선지자와 사울왕 그리고 다윗왕입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고 다윗은 사울의 뒤를 이은 두번째 왕이었습니다. 왕정체제의 특징은 대물림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이 왕이 됩니다. 그러나 사울은 당대 로 왕조사의 문을 닫고 다른 가문인 다윗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사울은 하나님 마음헤 들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왕은 백성들이 뽑은 민 선왕이었고, 다윗은 하나님이 뽑은 신선왕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46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았다' 고 했 고 사도행전 13:22을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 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얼굴도 행동도 믿음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사는 것도 그리고 그 삶의 결과도 블행합니다. 그 좋은 예가 사울왕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자기의 경쟁상대로 여기고 죽이기 위해 정사를 제쳐 놓고 군대를 동원해 추격작전을 전개했습니다. 본문의 경우도 그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추적을 피 해 도피생활을 하고 있을 때 추종자들과 함께 아둘람굴로 도망한 일 이 있었습니다. 아둘람은 가드와 베들레헴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석회암 동굴이 많 아 천연 요새였습니다. 고고학자들은 그 곳에 400여명이 들어갈 수 굴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울의 압제와 학정을 견디다 못한 가족들과 친척들과 백성들이 그 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우린 본문에 서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사을왕의 실정입니다. 최고 통치자의 할 일은 나라를 태평하게 만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본문 22:2을 보면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라 고 했습니다. 환난 당한 자가 많았다는 것은 나라가 평안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빚진 자가 많았다는 것은 경제정책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통한 자가 많다는 것은 공의와 정의가 구현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 미합니다. 한마디로 사울은 정치도 실패했고 신앙도 실패했습니다. 땅 위를 기차가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땅 위를 달리는 것이 아 니라 땅 위에 깔띤 선로 위를 달리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빠르게 달 린다고해도 선로를 벗어나면 달리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인기가 좋고 학식이 풍부하고 경험이 화려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떠나면 한발짝 도 달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울의 실패원인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신앙의 선로를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빚진 사람이 많고 억울한 사람이 많고 환난 당한 사람이 많은 나라는 태평국가가 아닙니다. 골고루 잘 살고 열심히 일하고 억울한 일이 없는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입니다. 흔히 요순시대릉 태평성세라고들 말합니다만 그 당시 사람들은 쭐 뜯어 나물 만들어 먹고 표주박으로 물 퍼 마셨습니다. 그 땐 비행기도, 자동차도, 전화도. 컴퓨터도, 블갇서 식당도, 가 든 식당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태평세월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이 편해지는 비결에 있습니다, 우린 그 해답을 성경에 서 찾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6을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회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나라가 평안하고 사회가 평안하고 가정이 평안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받고 누림으로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어느날 대통령의 신분을 감춘 채 군인병원을 찾아가 죽음을 앞둔 병사를 만났습니다.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묻자 그 병사는 고향에계신 어머님에게 보낼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했습니다. 링컨은 쾌히 허락하고 사력을 다해 불러주는 병사의 말을 받아 썼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제가 어머니 곁으로 돌아 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이 대신 찾아가 주실 것입니다. 링컨은 편지 끝에 군인의 이름으로 싸인을 한 후에 그 곁에 '아브 라함 링컨이 당신의 아들을 대신하여 이 편지를 썼습니다라고 쓴 후 서명을 했습니다. 깜짝 놀란 병사가 '각하 죄송합니다. 당신이 링컨 대통령이냐며 물었습니다. '그렇소 내가 링컨이요. 더 도와 드릴 일은 없겠소 "각 하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제 손을 꼭잡고 기도해 주십시요. 그러면 평안히 하늘나라로 가는데 힘이 되겠습니다' 링컨은 말없이 그 병사 의 두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사가 조용히 눈을 감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평화는 죽음마저도 평안하게 해 줍니다 주님의 평안은 고통마저도 뜻있게 만들어 줍니다. 주님의 평안은 지치고 고달픈 삶의 윤활유가 됩니다. 하나님 외면하고 실패자가 되지 맙시다.
2. 다윗이 아둘람을 떠나 모압 미스베로 갔습니다.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거처하기에 아둘람은 너무나 협소했습니다. 그래서 근거지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 안에는 피신처 가 없었습니다. 그 어느 곳이나 사울에게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모압나라로 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자신의 이러한 결정과 처신을 어떻게 보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린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의 삶의 태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증요시하는 것입니다. 본 문 3절을 보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 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올 알기까지 내 부모와 친척이 모 압에 있게 해 달라는 것이고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뜻이 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을 알기까지.' 다 이 한마디 속에 몇 가지 뜻이 들어있습니다.
1하나님의 뜻을 높이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4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신앙이 을바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제쳐놓고 내 뜻 에 하나님을 맞추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것이 바른 믿음인 것입니다.
3.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5절을 보면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요새에 있지말고 떠나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수풀에 이르니라고 했습니다. 유다땅은 위험합니다. 사울의 감시가 있고 추격이 있기 때문에 언제 변올 당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유다땅에는 은신할만한 마땅한 곳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압은 남의 나라이기 때문에 사울이 찾아을 수도 없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통하여 모압을 떠나 유다땅으로 돌아 가라고 하셨습너다. 이것은 화약을 지고 블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명령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상치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합리적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의 명 령을 따르고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믿는 사람입니다. 다윗의 태도를 보십시다. 다윗이 떠나 헤렛수풀에 이르니라'고 했 습니다. 왜 모처럼 피난처로 여기고 찾아간 모압을 떠나라고 했을까 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모압은 우방도 안식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룻기를 보면 모압여자 룻이 나오미를 따라 유다땅으로 오게된 이야 기가 나옵니다. 훗날 그 룻은 다윗의 증조모가 됩니다. 이러한 인연 이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모압과 이스라엘은 계속 적대관계를 지속했 습니다. 이 지상엔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습니다. 이해득실을 따라 이합집산이 이루어집니다. 어제까지 평생동지를 자처하던 사람 들이 하룻밤 사이에 적으로 돌변하는 것이 세상만남입니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6o년대까지만 해도 국제관계가 이데올로기로 구분되곤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냐 민주주의냐로 세력이 집합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조건을 따라 만나고 헤어집니다. 유다와 모압은 결코 우방이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압도, 애굽도, 바벨론도, 소련도, 미국도 심지어 나 자신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그리워하던 당시 유다민족에게 '도울 힘이 없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 했습니다. 모압도 도울 힘이 못됩니다. 미국은 한국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은 미국을 가장 가깝고 오래된 우방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여름 미국 여행 비자를 받기 위해 한국 사람들은 미국 대사관 마당에서 2-3일 씩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소위 번호표라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누군가는 천당비자보다 힘들다고 투덜댔습니다. 어떻게 그떻게 대접할 수가 있 으며 그떻게 취급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우방은 이 지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압은 우방이 아니다. 안식처도 아니고 피난처도 아니다. 거기를 떠나 유다땅으로 가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그 가족을 철통같이 지켜 주셨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2대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먼 훗날 다윗은 그가 쓴 시 속에서 '주는 나의 힘, 나의 피난치'라 고 노래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인생경험에서 우러난 고백이며 노래였 습니다. 만주 어느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공산당이 총을 겨누며 들이 닥쳤습니다. 예배증인 교인들을 한 가운데로 몰아 세운 뒤 뒷벽에 걸려있던 예수님 초상화를 떼어 땅 바닥에 던지며 말했습니다. '너희들 증 살고 싶은 놈이 있거든 이 그림에 침을 뱉고 발로 밟고 지나가라. 그렇지 않는 놈은 살 생각을 하 지마라.' 서로 눈치만 살피며 벌벌떨고 섰을 떽 한 사람이 걸어나가 침을 뱉고 짓밟고 지나 갔습니다. 하나둘 뒤를 따라 침을 뱉고 짓밞 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청년 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차례가 되자 조용히 다가가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예수님의 초상에 범벅된 침을 닦아 냈습니다. 그리고난 후 '나는 죽음을 택하겠고 부질없는 목숨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할 순 없소'라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대장이 망서리더니 밖으로 뛰쳐나가 외쳤습니다. '이놈들아 예수를 믿으려면 이 사람들처럼 믿어라'고 그리고 잠시 후 요란한 총성이 교회마당에 서 울렸습니다. 전도사님은 밖으로나가 그들의 장례식을 치뤄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요새이십니다. 주를 의지합시다. 나의 힘, 방 패, 산성, 피난처, 의지이신 주를 찬양합시다.
그런데 사울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본문 22:2을 보면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라 고 했습니다. 환난 당한 자가 많았다는 것은 나라가 평안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빚진 자가 많았다는 것은 경제정책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통한 자가 많다는 것은 공의와 정의가 구현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 미합니다. 한마디로 사울은 정치도 실패했고 신앙도 실패했습니다. 땅 위를 기차가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땅 위를 달리는 것이 아 니라 땅 위에 깔띤 선로 위를 달리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빠르게 달 린다고해도 선로를 벗어나면 달리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인기가 좋고 학식이 풍부하고 경험이 화려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떠나면 한발짝 도 달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울의 실패원인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신앙의 선로를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빚진 사람이 많고 억울한 사람이 많고 환난 당한 사람이 많은 나라는 태평국가가 아닙니다. 골고루 잘 살고 열심히 일하고 억울한 일이 없는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입니다. 흔히 요순시대릉 태평성세라고들 말합니다만 그 당시 사람들은 쭐 뜯어 나물 만들어 먹고 표주박으로 물 퍼 마셨습니다. 그 땐 비행기도, 자동차도, 전화도. 컴퓨터도, 블갇서 식당도, 가 든 식당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태평세월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이 편해지는 비결에 있습니다, 우린 그 해답을 성경에 서 찾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6을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회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나라가 평안하고 사회가 평안하고 가정이 평안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받고 누림으로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어느날 대통령의 신분을 감춘 채 군인병원을 찾아가 죽음을 앞둔 병사를 만났습니다.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묻자 그 병사는 고향에계신 어머님에게 보낼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했습니다. 링컨은 쾌히 허락하고 사력을 다해 불러주는 병사의 말을 받아 썼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제가 어머니 곁으로 돌아 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이 대신 찾아가 주실 것입니다. 링컨은 편지 끝에 군인의 이름으로 싸인을 한 후에 그 곁에 '아브 라함 링컨이 당신의 아들을 대신하여 이 편지를 썼습니다라고 쓴 후 서명을 했습니다. 깜짝 놀란 병사가 '각하 죄송합니다. 당신이 링컨 대통령이냐며 물었습니다. '그렇소 내가 링컨이요. 더 도와 드릴 일은 없겠소 "각 하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제 손을 꼭잡고 기도해 주십시요. 그러면 평안히 하늘나라로 가는데 힘이 되겠습니다' 링컨은 말없이 그 병사 의 두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사가 조용히 눈을 감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평화는 죽음마저도 평안하게 해 줍니다 주님의 평안은 고통마저도 뜻있게 만들어 줍니다. 주님의 평안은 지치고 고달픈 삶의 윤활유가 됩니다. 하나님 외면하고 실패자가 되지 맙시다.
2. 다윗이 아둘람을 떠나 모압 미스베로 갔습니다.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거처하기에 아둘람은 너무나 협소했습니다. 그래서 근거지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 안에는 피신처 가 없었습니다. 그 어느 곳이나 사울에게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모압나라로 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자신의 이러한 결정과 처신을 어떻게 보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린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의 삶의 태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증요시하는 것입니다. 본 문 3절을 보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 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올 알기까지 내 부모와 친척이 모 압에 있게 해 달라는 것이고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뜻이 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을 알기까지.' 다 이 한마디 속에 몇 가지 뜻이 들어있습니다.
1하나님의 뜻을 높이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4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신앙이 을바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제쳐놓고 내 뜻 에 하나님을 맞추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것이 바른 믿음인 것입니다.
3.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5절을 보면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요새에 있지말고 떠나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수풀에 이르니라고 했습니다. 유다땅은 위험합니다. 사울의 감시가 있고 추격이 있기 때문에 언제 변올 당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유다땅에는 은신할만한 마땅한 곳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압은 남의 나라이기 때문에 사울이 찾아을 수도 없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통하여 모압을 떠나 유다땅으로 돌아 가라고 하셨습너다. 이것은 화약을 지고 블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명령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상치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합리적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의 명 령을 따르고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믿는 사람입니다. 다윗의 태도를 보십시다. 다윗이 떠나 헤렛수풀에 이르니라'고 했 습니다. 왜 모처럼 피난처로 여기고 찾아간 모압을 떠나라고 했을까 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모압은 우방도 안식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룻기를 보면 모압여자 룻이 나오미를 따라 유다땅으로 오게된 이야 기가 나옵니다. 훗날 그 룻은 다윗의 증조모가 됩니다. 이러한 인연 이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모압과 이스라엘은 계속 적대관계를 지속했 습니다. 이 지상엔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습니다. 이해득실을 따라 이합집산이 이루어집니다. 어제까지 평생동지를 자처하던 사람 들이 하룻밤 사이에 적으로 돌변하는 것이 세상만남입니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6o년대까지만 해도 국제관계가 이데올로기로 구분되곤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냐 민주주의냐로 세력이 집합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조건을 따라 만나고 헤어집니다. 유다와 모압은 결코 우방이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압도, 애굽도, 바벨론도, 소련도, 미국도 심지어 나 자신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그리워하던 당시 유다민족에게 '도울 힘이 없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 했습니다. 모압도 도울 힘이 못됩니다. 미국은 한국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은 미국을 가장 가깝고 오래된 우방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여름 미국 여행 비자를 받기 위해 한국 사람들은 미국 대사관 마당에서 2-3일 씩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소위 번호표라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누군가는 천당비자보다 힘들다고 투덜댔습니다. 어떻게 그떻게 대접할 수가 있 으며 그떻게 취급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우방은 이 지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압은 우방이 아니다. 안식처도 아니고 피난처도 아니다. 거기를 떠나 유다땅으로 가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그 가족을 철통같이 지켜 주셨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2대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먼 훗날 다윗은 그가 쓴 시 속에서 '주는 나의 힘, 나의 피난치'라 고 노래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인생경험에서 우러난 고백이며 노래였 습니다. 만주 어느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공산당이 총을 겨누며 들이 닥쳤습니다. 예배증인 교인들을 한 가운데로 몰아 세운 뒤 뒷벽에 걸려있던 예수님 초상화를 떼어 땅 바닥에 던지며 말했습니다. '너희들 증 살고 싶은 놈이 있거든 이 그림에 침을 뱉고 발로 밟고 지나가라. 그렇지 않는 놈은 살 생각을 하 지마라.' 서로 눈치만 살피며 벌벌떨고 섰을 떽 한 사람이 걸어나가 침을 뱉고 짓밟고 지나 갔습니다. 하나둘 뒤를 따라 침을 뱉고 짓밞 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청년 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차례가 되자 조용히 다가가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예수님의 초상에 범벅된 침을 닦아 냈습니다. 그리고난 후 '나는 죽음을 택하겠고 부질없는 목숨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할 순 없소'라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대장이 망서리더니 밖으로 뛰쳐나가 외쳤습니다. '이놈들아 예수를 믿으려면 이 사람들처럼 믿어라'고 그리고 잠시 후 요란한 총성이 교회마당에 서 울렸습니다. 전도사님은 밖으로나가 그들의 장례식을 치뤄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요새이십니다. 주를 의지합시다. 나의 힘, 방 패, 산성, 피난처, 의지이신 주를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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