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사는 법 (삼상22:1-10)
본문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내세를 지향하며 살아가면서, 동시에 현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즉 성도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이면 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전권대사로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에 파 송받아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 성도가 이 세상을 어떠한 방법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합니다. 디도서 2장 12절의 "이 세상에 살고"라는 말씀은 '이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뜻과 '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의 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리 간단하 지 않은 것은 이 세상은 온갖 죄악과 유혹, 온갖 불의와 불법이 관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염세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도피주의적인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염세주의적인 삶도, 도피주의적인 삶도 모든 잘못된 것이라 고 말합니다. 비록 이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한 곳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존재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새롭고 바르게 살아가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사무엘상 22장 말씀은 이 세상을 가장 성공적으로 산 표준적 인 인물로 다윗을 꼽고 있습니다. 다윗은 역사저긍로 순탄치 않은 시대에 태어나 온갖 풍상과 고초를 겪으며 살았습니다. 사무엘상 18장에서 31장까 지는 그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며 살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다니며 그날그날을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박한 위기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박한 순간순간들을 가까스로 넘기고 서른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후세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메시야의 조상이 되어 성경에 길이 남는 놀라운 축복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이 온갖 환란과 고통을 극복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했을까요 다윗은 인심을 얻으며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승리하는 삶의 비결은 환경이나 학벌이나 재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얻는 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워수 사울왕의 아들 딸인 요나단과 미갈에게까지 인 심을 얻고, 사랑받고, 존경받고, 보호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온 백성들이 유다 나라와 함께 그를 사랑했고,사무엘상 22장에서는 아히멜렉 제사장에게까지 인심을 얻어 아히멜렉이 85명과 더불어 순교하면서까지 다 윗을 옹호한 것을 볼 때 다윗은 종교계에서도 인심을 얻었고, 사회와 이웃 간에도 인심을 얻었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훗날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 마때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은 왕위를 빼앗기고 광 야로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점점 인심을 잃어 버리게 되었고 다윗은 다시 인심을 회복해서 잃어버렸던 왕권을 회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다윗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얻었던 비결을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물질을 통해 사람들에 게 인심을 산 것이 아니라, 건전하고 바른 삶을 통해서 인심을 얻은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위대한 사람의 수준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평범하고 별 것 없는 사람도 다윗처럼 올바르게 살면 인심을 얻고 성공 적으로 살수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카네기 공과대학에서는 일만 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출신성분을 비 롯하여 모든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기술적인 능력이나 뛰어난 두뇌는 성공요인의 15%에 불과한 반면에 뛰어난 대인관 계의 능력은 성공요인의 85%를 차지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편 하버드 대학의 직업지도부 교사의 말에 의하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사람들 중에는 일을 잘못해서 쫓겨난 사람보다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해고된 사람이 2배나 많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인간관계가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서 다윗이 대인관계가 너무나 뛰어났으므로 그의 삶이 불세출의 삶이 되었 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심을 얻을 수 있도 록 했을까요 그 해답은 간단합니다. 관용의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관용이란 무엇입니까 너그럽게 상대방을 받아들이면서 포용하는 것이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관용정신이란 사랑의 정신이며, 보편적으로 말하면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관용정신을 가지면 어떤 환경에서도 인심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시류에 편승해서 사람들에게 인심이나 얻어서 재빨리 출세가도를 달리라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대로 인심 잃지 말라, 그렇게 하려면 관용을 하 라, 상대방을 포용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남의 잘못을 너그 럽게 이해하고 어떤 실수도 덮어두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관용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 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배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당시 사울왕의 추격을 받으면서 정신없이 쫓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도 자기를 찾아온 4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였다는데서 우리는 다윗의 관용정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다윗에게 온 이 400 명은 빚지고 도망온 사람들, 마음에 원통함을 품은 사람들,정부에 대해,이 웃에 대히, 일가친척에 대해 마음에 한을 품은 사람들이었으니다윗이 볼 때 인간적으로 얼마나 다루기 힘들고 골치 아픈 사람들이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다윗은 사울왕이 자기를 쫓아다니던 13년동안 두번이나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를 해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윗은 쫓겨다니는 동안 수백명의 군사를 먹여 살릴 길이 없어 굶어 죽 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나발이 라는 사람의 양떼를 도적들로부터 지켜준 일을 기억하고 나발에게 식량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나발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자 400명의 군사를 거느 리고 나발을 치러 갔습니다. 그때 나발의 지혜로운 아내 아비가일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너그럽게 용서해줄 것을 간청하자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찌어다"라고 말하며 나발의 무례를 용서 했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좋아합니까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을 좋 아합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에게는 친구와 돕는 사람들이 많고 이웃이 많이 따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말하기를 적을 파괴하는 최고의 방법은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연에도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관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용 정신은 누구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관용의 모범이셨습니다. 자기를 팔아 넘기려는 가롯 유다에게 빵 을 주시면서 그 빵을 먹는 3-4분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또한 자 기를 부인하고 저주하던 베드로에게까지 관용의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회개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 에게 나타나셔서 바닷가에 음식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기를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박고 침을 뱉던 사람들을 향해 "아 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며 관 용을 베푸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조금만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한 치의 용서도 없습니다. 바른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그러운 사람이 바른 말을 해야 변화가 있지 뾰족한 사람이 자꾸 바른 말만 하면 인심이 다 떠나갑니다. 바른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관용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 관영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 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라며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 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노력만으로는 이러한 관용을 베풀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다윗을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다윗 도 관용의 성품을 타고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의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6:13)는 말씀에 의하면 다 윗은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나서 관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감동'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찰라'라고 하는데 그 뜻을 '세차게 오다','공격해 오다'라는 뜻입니다. 즉 파도가 세차게 밀려와서 집채를 훑어가는 것을 말 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자기를 박대하는 나발을 죽이고 싶은 분개한 마음을 가지고 달려갔지만 가는 도중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다윗의 분노를 사라지고 온유하고 관용하는 마음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너 그럽고 관용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이 관용에는 반드시 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관 용하는 사람은 복 많이 받고 경제적인 축복도 많이 받는다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다윗은 너그러운 마음과 온유함으로 사람을 얻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무 엘상 24장 4절에 보면 "다윗은 사람들이 가로되"6절에 보면 "다윗이 마음에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7절에는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 하여"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볼 수 있듯이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 당 시에는 400명이었지만, 몇 년 후에는 600명, 몇 년후에는 온 이스라엘 전부 가 다 자기 사람이 됐습니다. 사람을 얻으면 전부 다 얻는 것이고 사람을 잃으면 다 잃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사람이 몇명이나 됩니까 이 세상에서 진짜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다섯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이 사회에서 성공한 진 정한 내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거든 지금부터 인심을 얻기위해 관용을 베풀 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온 백성들이 유다 나라와 함께 그를 사랑했고,사무엘상 22장에서는 아히멜렉 제사장에게까지 인심을 얻어 아히멜렉이 85명과 더불어 순교하면서까지 다 윗을 옹호한 것을 볼 때 다윗은 종교계에서도 인심을 얻었고, 사회와 이웃 간에도 인심을 얻었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훗날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 마때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은 왕위를 빼앗기고 광 야로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점점 인심을 잃어 버리게 되었고 다윗은 다시 인심을 회복해서 잃어버렸던 왕권을 회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다윗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얻었던 비결을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물질을 통해 사람들에 게 인심을 산 것이 아니라, 건전하고 바른 삶을 통해서 인심을 얻은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위대한 사람의 수준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평범하고 별 것 없는 사람도 다윗처럼 올바르게 살면 인심을 얻고 성공 적으로 살수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카네기 공과대학에서는 일만 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출신성분을 비 롯하여 모든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기술적인 능력이나 뛰어난 두뇌는 성공요인의 15%에 불과한 반면에 뛰어난 대인관 계의 능력은 성공요인의 85%를 차지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편 하버드 대학의 직업지도부 교사의 말에 의하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사람들 중에는 일을 잘못해서 쫓겨난 사람보다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해고된 사람이 2배나 많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인간관계가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서 다윗이 대인관계가 너무나 뛰어났으므로 그의 삶이 불세출의 삶이 되었 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심을 얻을 수 있도 록 했을까요 그 해답은 간단합니다. 관용의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관용이란 무엇입니까 너그럽게 상대방을 받아들이면서 포용하는 것이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관용정신이란 사랑의 정신이며, 보편적으로 말하면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관용정신을 가지면 어떤 환경에서도 인심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시류에 편승해서 사람들에게 인심이나 얻어서 재빨리 출세가도를 달리라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대로 인심 잃지 말라, 그렇게 하려면 관용을 하 라, 상대방을 포용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남의 잘못을 너그 럽게 이해하고 어떤 실수도 덮어두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관용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 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배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당시 사울왕의 추격을 받으면서 정신없이 쫓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도 자기를 찾아온 4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였다는데서 우리는 다윗의 관용정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다윗에게 온 이 400 명은 빚지고 도망온 사람들, 마음에 원통함을 품은 사람들,정부에 대해,이 웃에 대히, 일가친척에 대해 마음에 한을 품은 사람들이었으니다윗이 볼 때 인간적으로 얼마나 다루기 힘들고 골치 아픈 사람들이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다윗은 사울왕이 자기를 쫓아다니던 13년동안 두번이나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를 해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윗은 쫓겨다니는 동안 수백명의 군사를 먹여 살릴 길이 없어 굶어 죽 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나발이 라는 사람의 양떼를 도적들로부터 지켜준 일을 기억하고 나발에게 식량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나발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자 400명의 군사를 거느 리고 나발을 치러 갔습니다. 그때 나발의 지혜로운 아내 아비가일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너그럽게 용서해줄 것을 간청하자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찌어다"라고 말하며 나발의 무례를 용서 했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좋아합니까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을 좋 아합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에게는 친구와 돕는 사람들이 많고 이웃이 많이 따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말하기를 적을 파괴하는 최고의 방법은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연에도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관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용 정신은 누구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관용의 모범이셨습니다. 자기를 팔아 넘기려는 가롯 유다에게 빵 을 주시면서 그 빵을 먹는 3-4분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또한 자 기를 부인하고 저주하던 베드로에게까지 관용의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회개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 에게 나타나셔서 바닷가에 음식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기를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박고 침을 뱉던 사람들을 향해 "아 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며 관 용을 베푸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조금만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한 치의 용서도 없습니다. 바른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그러운 사람이 바른 말을 해야 변화가 있지 뾰족한 사람이 자꾸 바른 말만 하면 인심이 다 떠나갑니다. 바른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관용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 관영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 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라며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 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노력만으로는 이러한 관용을 베풀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다윗을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다윗 도 관용의 성품을 타고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의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6:13)는 말씀에 의하면 다 윗은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나서 관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감동'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찰라'라고 하는데 그 뜻을 '세차게 오다','공격해 오다'라는 뜻입니다. 즉 파도가 세차게 밀려와서 집채를 훑어가는 것을 말 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자기를 박대하는 나발을 죽이고 싶은 분개한 마음을 가지고 달려갔지만 가는 도중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다윗의 분노를 사라지고 온유하고 관용하는 마음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너 그럽고 관용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이 관용에는 반드시 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관 용하는 사람은 복 많이 받고 경제적인 축복도 많이 받는다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다윗은 너그러운 마음과 온유함으로 사람을 얻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무 엘상 24장 4절에 보면 "다윗은 사람들이 가로되"6절에 보면 "다윗이 마음에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7절에는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 하여"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볼 수 있듯이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 당 시에는 400명이었지만, 몇 년 후에는 600명, 몇 년후에는 온 이스라엘 전부 가 다 자기 사람이 됐습니다. 사람을 얻으면 전부 다 얻는 것이고 사람을 잃으면 다 잃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사람이 몇명이나 됩니까 이 세상에서 진짜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다섯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이 사회에서 성공한 진 정한 내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거든 지금부터 인심을 얻기위해 관용을 베풀 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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