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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기회 (눅13:6-9)

본문

한 해가 마쳐집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것을 보는 관점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내 생명이 그만큼 줄어들어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삶이 마감되는 것을 느낍니다. "어느 새 일 년이 다 지났다. 죽을 날이 그만큼 가까 웠다." 그러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느껴봅니다. 불신자들은 거의가 그렇습니다. 불신자뿐이 아닙니다. 신자들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쓸쓸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허무합니다. 의욕이 사라집니다. 빨리 늙어버립니다. 몸의 면역도 약해집니다. 그것은 해가 계속될수 록 더 심해집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후회와 두려움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런 사람의 죽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지옥을 보는 느낌일 것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살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정말로 망해가는 삶이지요. 볼테르라고 하면 18세기 프랑스가 낳은 천재 중에 천재였습니다. 얼마 나 머리가 좋고 해학의 명수였던지 그와 말싸움을 해서 이긴 사람이 없었 습니다. 그의 책과 강의가 얼마나 인기가 좋았던지 일찌기 명성과 부의 절정에 있었습니다. 그가 성경의 내용이 잘못되고 기독교가 모순인 것을 얼마나 재미있게 묘사한 책이 있었는데 그것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는 세계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거의 전무후무한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별 수 없는게 있었으니 그의 생애도 역시 화살처럼 빨리 지나갔습니다. 한 해 한 해가 마쳐질수록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유달리 똑똑한 그였기에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더 가까워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에는 죽음이 다가오기도 전에 그는 발광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불신자들에게 죽음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지는 해는 그들을 불안 하게 합니다. 그것이 죽음의 징조이기 때문이지요. 그 너머 오는 영원한 지옥을 느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다 있 어도 불안한 것입니다. 망년회에가고 파티에 가서 술마시고 노래합니다. 술깨면 다시 죽음의 얼굴을 봅니다. 그러니 똑똑한 사람은 발광합니다. 또 하나의 관점은 전혀 다릅니다. 그것이 오늘 말하려는 주제입니다. 내 생명이 그만큼 풍성해졌다고 봅니다. 그리고 더 풍성해질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머리가 허연 그리스도인이 병상에 앉아있습니다. 그는 지상 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삶이었다. 어려움도 슬픔도 모두가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가올 다음 세상을 마음 설래면서 바라봅니다. 주와 만나서 포옹할 것을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도 그랬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 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 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것이 믿는 사람의 대단원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은 다음에 오는 더 밝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일뿐입니다. 한 해가 끝나는 것은 그 연습입니다. 신자에게는 모든 것이 다 긍정적입니다. 하루를 마치고 자는 것도 한 주일이 끝나는 것도 한 시즌이 마쳐지는 것도 모두가 그렇습니다. 죽음의 연습이요 동시에 더나은 삶의 연습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고백합니다. "오늘도 주와 함께 아름다웠다. 그러나 내 일은 더 아름다운 것이다." 육신적으로 보면 지난 날이 후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 주의 삶이 합쳐졌기에 다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주는 하나님의 명령을 완성한 분입니다. 주는 삶을 완전한 것으로 만 들었습니다. 비록 우리 삶이 부족해도 주의 것처럼 받아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께서는 계속해서 기회를 주십니다. 그는 나의 잘못을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기 회를 더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접할 때 그는 우리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자기의 의를 주셨습니다. 하늘의 능 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격려해 주십니다. 오늘의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열매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답답해진 그 사람은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원지기는 반대합니다.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이 나무는 종자가 좋 은 것입니다.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도 많이 맺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제가 내년에는 옆을 잘 파고 거름도 많이 주겠습니다. 그러면 잘 될 것입니다." 이 나무가 지금의 우리를 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생긴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 녀가 되었습니다. 불신자와는 다른 인종이 되었습니다. 겉모습은 같지만 하나님이 들어와 사는 위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영웅의 피가 흐릅니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할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비난합니다. "뭐 저런 사람이 있는가 저 사람도 믿는 사람인가" 자신이 생각해도 상 당히 부끄러운 상황입니다. 더우기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던가 사람 의 영혼을 구원했는가 하나님께 내것을 화끈하게 드린게 있는가 교회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한 것이 있는가 부끄러울뿐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이제 근본이 바뀌었습니다. 아직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뿐입니다. 옛날 경험이 너무 강하고 옛날의 습관이 오래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늘의 족속으로 바뀌었습니다. 영혼도 바뀌도 몸도 바뀌었습니다. 이제 마음까지도 그렇게 되면 됩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를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자 다시 기회를 준다. 무화과처럼 꽃피고 푸른 잎사귀를 내어라. 하늘 향해 서 뻗어나가며 은혜를 받아 그것으로 열매를 맺어라.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 너는 점점 더 아름답게 성숙해질 것이다. 하나님이 네 속에 계심을 증명할 것이다. 그리고 새 나라로 도약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늘의 족속으로 변했기에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냥 존재하다가 사라질뿐입니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죽음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영생을 약속받았습니다. 그 모형으로 주는 것 이 새로운 한 해입니다. 우리는 한 해동안 다시 영생을 연습합니다. 영생을 바라보면서 영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새해를 마지합시다. 그냥 새해 자체만을 바란다던지 아니면 한 평생 육신을 위해 서 산다던지 한다면 불신자와 무엇이 다릅니까 그렇게 산다면 그들이 느 끼는 두려움을 그대로 경험합니다. 그들처럼 땅에 속해서 괴로워합니다. 자신은 종자가 다른 품종의 무화과입니다.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파리 하나가 실수해서 하루살이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루살이들은 말합니다. "하루로 끝이니 잘먹고 잘살자." 그리고 죽습니다. 파리는 자 기도 하루만 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삶을 하루로 잡고 준비하고 살았 습니다. 다른 하루살이들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하루살이들은 너무 짧 은 인생이기에 남 생각은 전혀 안했습니다. 오직 제 몸만 아꼈습니다. 그것을 보고 파리도 그들처럼 했습니다. 그 하루 동안에 가진 모든 것 을 다 먹었습니다. 입을 옷도 가진 돈도 다썼습니다. 그래도 남는 것은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다 버렸습니다. 저녁이 가까올수록 그는 더 열심히 가진 것을 탕진했습니다. 해가 넘어가더니 드디어 밤이 되었습니다. 하루 살이들은 신음하며 쓰러졌습니다. 그도 피곤했습니다. 졸음이 왔습니다. 그는 다른 하루살이들처럼 누웠습니다. 잘먹고 잘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의식이 사라졌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파리는 깨어났습니다. 그는 옆의 죽어있는 하루살이들을 보았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겠습 니까 "속았구나. 나는 이제 거지다." 그는 자기의 생이 하루 이상인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가진 것을 다 낭비해 버렸던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종류입니다. 그들처럼 생각해서는 않됩니다. 우리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그들은 죽지만 우리는 잠잘뿐입니다. 그들과 함께 무덤에 누워도 우리는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영원한 내일을 준비하는 삶이 다시 내년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한평생 살고 죽을 것처럼 생각한다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삶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음이란 문을 통해서 새 세상에 갔을 때 전혀 거기 살 준비가 않되있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냥 한 평생을 위해서 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썩어질 몸을 위해서 썩어질 재산과 썩어질 명예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거기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속았다. 나는 거지구나." 그렇습니다. 신자들 모두가 부활합니다. 모두가 살아나 영원히 살게 됩니다. 모두가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이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도 다릅니다. 별의 영광도 다릅니다. 별들 간의 영광도 다릅니다. 모두가 빛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이 영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다를 것입니다. 그때에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그 부끄러움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 기에 바울은 신자들의 삶을 건축물에 비교합니다.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누구든지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 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5)
여기서 아주 부끄러운 사람이 생긴다는 예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사도들과 십자가의 강도가 같은 영광으로 부활하겠습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존재들입니다. 새로운 인종입니다. 파리와 하루살이의 삶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한 평생 살고 영원히 지 옥에서 보내야할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다음 세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일단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것만도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영광의 세상에 들어간 뒤의 준비도 해야할 것 아닙니까 이것도 큰 일입니다. 지난동안 준비 안되었다면 걱정스럽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 게 바빴습니까 영혼과 육신에게 다 좋은 일이었습니까 육신에게만 잠깐 좋은 일이었습니까 이제 주는 우리에게 더 큰 기회를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새로운 해를 마지하면서 이제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다. "한 해동안 복주심을 감사합니다. 새 해에는 영혼을 위해서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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