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주는 축복 (행20:32-35)
본문
오늘은 8.15 광복기념일이다. 우리 나라도 1945. 8. 15 광복을 되 세기는 과거 지향적이 되지 말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고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배소 교회 장로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본문 중에는 복음서에서 볼 수 없었던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밀레도의 설교가 아니었다면 잊어버릴 번한 말씀입니다. 그 중요한 말씀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더 큰 주는 축복"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더 큰 주는 축복은 더 좋은 신앙의 모본입니다. 오늘의 요절이 되는 행 20:35 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 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 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1. 예수님의 가르침과 더 좋은 본입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고 이 교훈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으로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빌 2:6) 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 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히 10: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도 서로 주려고 해야 합니다.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받으려고 하지 말고 주는 본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2. 사도 바울이 보여준 본입니다.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 을 돕고 (행 20: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행 20:34)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 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사도 바울이 자신을 준 것을 본받아서 받으려고 하지 말고 주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한국 교회의 신앙이 지나치게 기복 신앙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 기복신앙 때문에 한국교회의 신앙의 무속 신앙화 되어 간고 있 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오늘 설교 말씀에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받는 복보다 더 근 축복은 주는 복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둘째, 주는 축복은 어떤 것입니까
1. 사랑을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큰복입니다. 사랑은 받고자 하여 불평을 늘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눅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 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 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예수님의 원리는 주고 또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마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 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 하고 (마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 원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줏대 없는 약자의 말이 아 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랑의 본 성품은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주고 또 주려는 것입니다.
2. 주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받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출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 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 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 3: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 적 예배니라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기를 바라면서 드리는 것은 인색합니다. 주님의 원리는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롬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우리가 주님께 예물은 드리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받기를 바라고 드리는 것 이 아닙니다.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 자체가 우리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3. 기도해 주는 것은 기도를 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사무엘은 남을 위해 기도하지 않은 것이 죄라고 말했습니다.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 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 우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딤전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을 실 만한 것이니 기도의 투자는 큰 부자 집 창고에 곡식이 가득 가득한 것과 같습니다. 살후 3:1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히 13: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 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심야기도회는 많은 사람과 기도로 동참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아주 귀한 시간입니다. 심야기도는 많은 분들과 많은 일을 위하여 기도 해 줄 수 있는 시 간입니다. 어떤 이들은 심야 기도회가 은혜가 안되어 안 온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혹은 자신 바라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산 기도와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심야기도의 본질이 아닙니다. 심야기도회는 남을 위해 기도를 할 수 있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4. 구제하는 것은 어떤 칭찬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남한이 북한 보다 복된 것은 북한은 구걸하고 남한은 북한에 줄 것이 있 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기쁨입니다. 교회에게 도움을 구하는 분들이 수 없이 많이 옵니다. 오는 분들도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합니다. 돈 500원이지만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처지에 있다는 것 자체 가 복으로 알고 도와주십시오. 사회 각 분야에서 봉사하는 분들도 여러분이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의 복입니다. 그것 때문에 남이 인정을 해 준다거나 칭찬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와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의 복입니다. 신 15: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 라 돈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 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 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셋째, 준다는 것은 은혜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다 같이 행 20:32 을 읽겠습니다. (행 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1. 은혜 받았다는 것은 빚진 것을 의미합니다. 롬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 라 롬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 이 아니니라 자신이 빚으로 살고 있는 것도 모르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인생은 평생동안 빚을 지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은혜의 빚, 부모님께 사랑의 빚, 선생님에게는 가르침의 빚, 이웃에게는 이해와 사랑의 빚, 서로는 용서해 주는 빚을 지면 서 살아갑니다. 이제는 주는 것으로 이 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경제위기 로부터 빌린 빚을 금년 내에 조기 상환한다는 보도를 보고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내 개인의 빚을 갚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은 모두 복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빚도 갚아야 합니다. 빚을 지기만 하고 갚지 않으면 부채가 누적됩니다. 남에게 빚을 빌리기 좋아한 기업은 틀림없이 퇴출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갚을 수 있을 때 빚을 갚으려는 의지와 결심이 필요합니다. 롬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 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주인에게 수백만 달러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겨우 5 달러를 빚진 동료 를 용서 해주지 않았다가 큰 낭패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 18: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 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마 18: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마 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마 18: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마 18: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 치 아니하냐 하고 (마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마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남을 용서 해 주는 것을 인색한 사람은 자신의 죄도 사유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3. 받기만 바라는 것은 거지 근성입니다. 거지 근성을 버려야 주는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 하던 자가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남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행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행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행 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이제는 거지 근성처럼 받기만 바라지 말고 주는 자가 되십시다. 이제 거지 근성을 버릴 만한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주는 복을 맛보는 성숙한 그리스도 인이 되십시다.
<결론>
더 큰 축복은 더 좋은 신앙의 모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며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보여준 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이 되기 위해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사랑을 주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주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기도해 주는 것은 기도를 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구제하는 것은 어떤 칭찬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준다는 것은 은혜의 빚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빚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인은 모두 복음의 빚도 지고 있습니다. 받기만 바라는 것은 거 지 근성입니다. 거지 근성을 버려야 주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모 두 줄 때 최고 행복을 누리는 성도가 됩십시오. 이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신 앙인줄 믿습니다. 아멘
첫째, 더 큰 주는 축복은 더 좋은 신앙의 모본입니다. 오늘의 요절이 되는 행 20:35 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 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 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1. 예수님의 가르침과 더 좋은 본입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고 이 교훈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으로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빌 2:6) 그는 근본 여호와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 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히 10: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도 서로 주려고 해야 합니다.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받으려고 하지 말고 주는 본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2. 사도 바울이 보여준 본입니다.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 을 돕고 (행 20: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행 20:34)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 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사도 바울이 자신을 준 것을 본받아서 받으려고 하지 말고 주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한국 교회의 신앙이 지나치게 기복 신앙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 기복신앙 때문에 한국교회의 신앙의 무속 신앙화 되어 간고 있 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오늘 설교 말씀에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받는 복보다 더 근 축복은 주는 복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둘째, 주는 축복은 어떤 것입니까
1. 사랑을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큰복입니다. 사랑은 받고자 하여 불평을 늘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눅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 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 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예수님의 원리는 주고 또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마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 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 하고 (마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 원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줏대 없는 약자의 말이 아 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랑의 본 성품은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주고 또 주려는 것입니다.
2. 주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받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출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 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 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 3: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 적 예배니라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기를 바라면서 드리는 것은 인색합니다. 주님의 원리는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롬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우리가 주님께 예물은 드리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받기를 바라고 드리는 것 이 아닙니다.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 자체가 우리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3. 기도해 주는 것은 기도를 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사무엘은 남을 위해 기도하지 않은 것이 죄라고 말했습니다.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 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 우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딤전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을 실 만한 것이니 기도의 투자는 큰 부자 집 창고에 곡식이 가득 가득한 것과 같습니다. 살후 3:1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히 13: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 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심야기도회는 많은 사람과 기도로 동참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아주 귀한 시간입니다. 심야기도는 많은 분들과 많은 일을 위하여 기도 해 줄 수 있는 시 간입니다. 어떤 이들은 심야 기도회가 은혜가 안되어 안 온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혹은 자신 바라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산 기도와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심야기도의 본질이 아닙니다. 심야기도회는 남을 위해 기도를 할 수 있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4. 구제하는 것은 어떤 칭찬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남한이 북한 보다 복된 것은 북한은 구걸하고 남한은 북한에 줄 것이 있 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기쁨입니다. 교회에게 도움을 구하는 분들이 수 없이 많이 옵니다. 오는 분들도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합니다. 돈 500원이지만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처지에 있다는 것 자체 가 복으로 알고 도와주십시오. 사회 각 분야에서 봉사하는 분들도 여러분이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의 복입니다. 그것 때문에 남이 인정을 해 준다거나 칭찬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와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의 복입니다. 신 15: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 라 돈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 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 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셋째, 준다는 것은 은혜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다 같이 행 20:32 을 읽겠습니다. (행 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1. 은혜 받았다는 것은 빚진 것을 의미합니다. 롬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 라 롬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 이 아니니라 자신이 빚으로 살고 있는 것도 모르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인생은 평생동안 빚을 지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은혜의 빚, 부모님께 사랑의 빚, 선생님에게는 가르침의 빚, 이웃에게는 이해와 사랑의 빚, 서로는 용서해 주는 빚을 지면 서 살아갑니다. 이제는 주는 것으로 이 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경제위기 로부터 빌린 빚을 금년 내에 조기 상환한다는 보도를 보고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내 개인의 빚을 갚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은 모두 복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빚도 갚아야 합니다. 빚을 지기만 하고 갚지 않으면 부채가 누적됩니다. 남에게 빚을 빌리기 좋아한 기업은 틀림없이 퇴출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갚을 수 있을 때 빚을 갚으려는 의지와 결심이 필요합니다. 롬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 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주인에게 수백만 달러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겨우 5 달러를 빚진 동료 를 용서 해주지 않았다가 큰 낭패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 18: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 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마 18: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마 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마 18: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마 18: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 치 아니하냐 하고 (마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마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남을 용서 해 주는 것을 인색한 사람은 자신의 죄도 사유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3. 받기만 바라는 것은 거지 근성입니다. 거지 근성을 버려야 주는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 하던 자가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남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행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행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행 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이제는 거지 근성처럼 받기만 바라지 말고 주는 자가 되십시다. 이제 거지 근성을 버릴 만한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주는 복을 맛보는 성숙한 그리스도 인이 되십시다.
<결론>
더 큰 축복은 더 좋은 신앙의 모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며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보여준 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이 되기 위해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사랑을 주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주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기도해 주는 것은 기도를 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구제하는 것은 어떤 칭찬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준다는 것은 은혜의 빚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빚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인은 모두 복음의 빚도 지고 있습니다. 받기만 바라는 것은 거 지 근성입니다. 거지 근성을 버려야 주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모 두 줄 때 최고 행복을 누리는 성도가 됩십시오. 이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신 앙인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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