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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삼상15:22-23)

본문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의인이었던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 주를 만들어 살아나게 하셨고, 에녹도 의인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 300 년간 그와 동행하시다가 산 채로 하늘로 들어 올리셨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 이라 칭함을 받으며 건강의 복, 물질의 복, 자녀의 복, 장 수의 복 등 모든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라면 당연히 의인이 되어야 하지요. 본문 말씀은 선지자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 왕에게 한 말로서 순종 의 중요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인은 곧 순종하는 사람 입니다. 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일까요 순 종이 없이는 의인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는 사람은 의에 이르게 된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세주로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셨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버리며 계명을 지 켜 빛 가운데 행할 때에 우리의 죄가 사해진다는 것을 정녕 믿는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 것입니다(요한일서 1:7). 행함으 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 고 야고보서 2장에 말씀한 바와 같이 정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지 말라 하시면 미움을 버리는 것 이고, 시기하지 말라 하시면 시기하지 않는 것이고, 원수도 사랑하라 하시면 원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니 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순종하는 사람이 되면서 의 인의 관문을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순종이 이루어지면 의인의 문 에 들어섰다고 볼 수가 있다는 것이요, 말씀의 짝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면서 의인으로서의 골격을 갖추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이 세상에는 순종 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일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 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것 을 잘 갖춘 가정이라면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것을 교육하겠습니까 우 선 어떻게 자고 어떻게 일어나며 . 등등의 시간 관리를 잘할 수 있 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나태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서 그 연령에 맞게 자기 삶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가르쳐 나가는 것입니다. 공부에 대해서도 어떤 것에 중점을 두어 배워야 될것인지 또한 언어 행 동은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떻게 그 가문이나 가정에 참으로 성실한 자 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이 모양 저 모양 자녀에게 가르쳐 나갑니다. 그럴 때에 부모는 당연히 자녀가 예 하고 순종하는 것을 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자녀가 있을 때에는 불행이 되고 슬픔이 되며 다툼의 원인이 되고 고민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 즉시 순종하여 자기 를 신속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자녀라면 무슨 근심거리가 되겠으며 부모 와 자녀 사이에 어떤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사제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은 어떤 제자를 원하겠습니까 깍듯 한 예의로 스승을 존중하며 반듯한 자세로 앉아서 가르침 받는 모든 것 을 바로 깨우치고, 또 잘 양식삼아 성실히 답변할 줄도 알며, 매사에 곱 고 단정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것을 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순종하는 제자라면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회사에서 사장과 직원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회사의 직원 이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겠습니까 참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진실하 고 유능하고 또한 지혜로워서 회사에서 원하는 바에 따라 일을 잘 이루 어내는 사람을 원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진정한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의 일꾼들을 볼 때에도 그렇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진정 기쁨이 될 수 있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순종하는 아브라함이 사랑스럽지 않으셨겠습 니까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라도 하나님께 바칠 만큼 순종하는 사람 이니 어찌 기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래서 창세기 22:12을 보면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해 주셨던 것 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의로 여 기시며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2. 자기 생각이 있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사울 왕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니 사무엘 선지자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 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꼐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는데 사울은 자기의 생각을 동원해서 진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왕의 자리에서 폐하여지고 말았 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가정에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자기 입에 맞는 좋아하는 과일 이 있고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말하기를 자기가 좋아하는 과일을 집에서는 먹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내 편에서는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분명히 전에 남편이 집에 있 을 때에 남편이 좋아하는 과일을 내어놓은 적이 있는데 왜 준 적이 없 다고 하는 것일까 오히려 남편이 거짓말쟁이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이 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부부관계가 불목되어지고 불신이 쌓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 다른 많은 것들이야 말 할 필요도 없지요. 그러나 이런다고 하면 어찌 합당한 부부요 합당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겠 습니까 그러면 이 한 가지를 놓고 볼 때에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가를 깨우 쳐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흔히 부부간에 많이 있으므로 잘 깨우치면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이 되겠습니까 잘못된 것은 고치고 버 릴 것은 버려야 화평을 이룰 수 있고, 하나님의 뜻도 깨우칠 수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도 오는 것입니다. 그러며 왜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과일을 먹지 못했다고 하는 것인지 우리가 그 입장이 되어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남편에게는 자기 가 먹고 싶은 시간에는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 입장에서는 주지 않아 서 먹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먹고 싶은 시간이 아닌 상황에서 아내가 준 것은 주었다고 느끼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먹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그 남편은 자기가 먹고 싶은 과일을 먹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 편 에서는 준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남편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내는 왜 남편의 마음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까 자기 생각에 맞추어서 자기가 주고 싶은 때에 주었기 때문에 남편의 마음에는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볼 때에는 남편이 스스로 갖다 먹은 적도 있으면서 먹지 않았다고 하니 거짓말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는 자기 스스로 갖다 먹은 것은 갖 다 먹은 것이고 아내가 준 것은 아니었으므로 주지 않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서로 다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이와 같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아내가 마음을 고쳐서 남편이 원하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러면 가정에 화평이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 역시 아내에게 그렇게 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당 연히 서로 맞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 해 주지 못하면 그렇 게 될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자연 불신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우스꽝스 러운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어느 때에 어느 것을 원하는데 해 주는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추어서 다른 때에 해 준다면 이것을 어찌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작은 비유이지만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각종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부간의 문제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맞출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 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섬김 을 받으려고 하지말고 섬겨라 오른뺨 때리면 왼뺨도 대어줘라 속옷 을 달라하면 겉옷도 주어라 미운 자가 오 리를 동행하자 하면 십 리 도 함께 가 줘라 등등의 말씀을 보면 우리의 육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지고 맞지 않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도 순종을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요한일서 4:20을 보면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내 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의 마음도 맞 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깨우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라 하시는데 자 기 생각으로 인해 기도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는 헌신하라 하시는데 자기 생각으로 인해 헌신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라 하시는 데 사랑하지 못하는 등 자기 생각에 맞추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고 변 명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꼐서는 사랑하라 하셨는데 내가 생각해 보니 저 사람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랑치 못하겠다 한다면 어찌 순 종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찌 이런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주님꼐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게 하셨 습니다(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일곱 번 용서 해 주리이까 라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뭐라 대답해 주셨습 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친구 를 용서해 주지 못하는 악한 일을 비유로 들어 주셨습니다. 일만 달란 트는 일백 데나리온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액수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셨으니 당연히 나도 상대방을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깨달은 사람이 되었으면 당연히 그 렇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는 것 입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내 마음에 맞으면 사랑하고, 맞지 않으면 사랑 치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참사랑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라 하셨으면 하는 것이 우선이지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거 때문에 안 되고 한다면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맞추지 말고 아멘 하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순종인 것입니다.
3. 순종의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맡아 길을 떠나려 하는데 일을 앞두고 갑 자기 집안에 큰 일이 생겼습니다. 그 때 이 사람이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못했다 고 하면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가게 되면 그 뒤 의 일은 하나님꼐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 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잘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철저히 깨우쳐야 할 것은 서로가 자기 생각에 맞 추기 때문에 부부나 가족이 하나되지 못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에도 맞출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7-8에도 보면 육신의 생각은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순종의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꼐 서 역사하셔서 형통케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 같은 경우에는 어떠하였습니까 가뭄이 극심한지라 이제 한 번 요리해 먹을 음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니님의 사람 엘리야가 마지막 남은 그것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왕상 17:14)고 말합니다. 과연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였 더니 약속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선뜻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선뜻 십일조 하지 못하는 이유도, 선뜻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도 다 자기 생각이 있 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이렇게 핑계를 대다 보 면 안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서 바로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순종하는 사람이 왜 의인인가를 마음에 잘 양식삼으셔서 오 직 진리대로 순종하는 의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아브라함처럼 영적인 축복과 함께 이 땅에서의 모 든 축복도 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영위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 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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