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건설 (삼상16:1)
본문
사무엘서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과연 어떠한 방법 으로 그 나라를 건설하실까 입니다. 이 관심은 성경 전반부에 걸쳐 방대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항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주제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 일을 이끌어 오신 하나님께서 이곳에 와서는 어떻게 이루어 나가시며 발전 시키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곧 성경신학적 입장에서 성경을 살펴보는 자 세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삼상 2:30의 말씀을 우리는 쉽게 지나칠 수 없습니다. "나 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는 말씀은 결코 엘리 제사장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사무엘서 전체 뿐만 아니라 열왕기서, 역대서 모두의 밑바탕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경우가 엘리와 사무엘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 과연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행하느냐에 따라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귀중한 쓰임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가 결 정되어집니다. 두번째 경우는 곧 사울과 다윗입니다. 이 이야기가 사무엘상 마지막 부분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울은 이 일에 있어서 버린바 된 사람의 모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사건이 곧 삼상 13장에 나오는 화목제사건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 서 임의로 제사를 드립니다. 그때 사무엘은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13:14)는 말은 이러한 차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두번째 사건은 삼상 15장에서 아말렉과의 전 투에서 벌어졌습니다. 철저하게 아말렉을 진멸할 것을 하나님은 명령하셨지만 사울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 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 라"(15:11)는 말씀을 듣고 밤새 근심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 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 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15:22-23)는 말씀 역시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후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 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 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16:1) 그러자 사 무엘은 혹시 사울이 이 일을 안다면 사울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16:2). 이것을 보아 이미 사울과 사무엘은 크게 의견을 달리하고 있었으며, 마음이 떨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사무엘과 그렇지 않는 사울 사이에는 벌써부터 영적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다윗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사무엘 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16:13)는 말씀은 이제부터 우리의 초점을 다 윗에게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16:14)는 말씀과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볼 때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는 자와 멸시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때에 블레셋이 대공세를 취하여 옵니다. 블레셋은 이미 미스바 전투에서 크게 패한 바가 있지만 선과 악의 싸움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들은 이번에 완벽하게 이스라엘을 굴복시켜 자기들의 종으로 삼기를 바랬습니다. "그(블레셋 장수 골리앗)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 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 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17:8-9) 이 말 가운데 이 싸움의 성격은 분명합니다. 블레셋의 의도는 이스라엘을 자기들의 종으로 삼 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싸움 이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 볼 수 있습니다. 곧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을 자기의 소유로 삼으려고 모세와 싸웠던 일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따라서 블레셋이 이스라 엘을 자기의 소유로 삼겠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 하니 라"(17:11)는 모습은 참으로 납득이 가지를 않습니다. 그들이 진정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자기들이 누구의 백성인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면 골리앗의 말 에 대하여 분개를 하며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생 명을 바쳐서라도 나가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싸움의 의 욕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들이 누구의 백성인가를 몰라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알기는 알되 그것을 위해 생명까지라도 바쳐야겠다는 투철한 각오와 헌신 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참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사명과 절실한 삶의 모습을 위해 이 싸움에 나선 이가 곧 다윗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더러는 가로되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 다"(17:25)라고 할 때 다윗은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 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 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17:26)고 분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나아가 고하고 블레셋 장수 골리앗에게로 마주 대하고 나갔습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은 다윗이 어린 것을 보고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 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17:43)고 하면서 자기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합니다. 이제 맞선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17:45) 하면서 이 싸움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거나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곧 블레셋 신 다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싸움 인 것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 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 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17:46-47)고 함으로써 상천하지에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신 것을 증명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물매를 쏘아 골리앗의 이마를 꿰뚫어 죽이고 맙니다. 그제서야 혼 이 빠져있던 이스라엘 군대가 사기를 앙양하고 나서서 블레셋을 섬멸합니다. 이 사건 이후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으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도다"(18:5)는 말씀과 같이 온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향하고 있음 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여인들의 찬가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18:7) 이제사람들이 세 웠던 왕 사울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차츰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서 세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든 다윗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 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18:12)는 한 마디는 사울이 얼마나 자신의 위치가 불안한 것인 가를 알고서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울의 왕위는 이미 버려진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다윗이 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사울은 어떻게 하든지 그 자리를 지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울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좌는 본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의 왕 이십니다. 그 주인은 한 분 밖에 안계십니다. 그 자리를 하나님은 잠시 사울 에게 내어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2:30)는 말씀을 보 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엘리와 사무엘 사이에 있어서도 과연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가에 따라 판단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있는 사울과 다윗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누가 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가에 따라 그 왕위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점 을 볼 때 이스라엘의 왕의 위치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위 에 오르는 사람은 자신의 지혜와 권위로 다스려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함으로써만 행하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파악한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알았습니다. 오직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쓰임을 받아야만 할 것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허락하시는 분도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결코 서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어떤 역할 을 맡기시든지 그리고 그 시기가 언제일른지 다윗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 저 기다리기만 하면 그뿐입니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처럼 사울 이 죽이고자 할 때 다윗은 말없이 그 수난을 다 겪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을 향하여 불같이 일어나 있다고하여도 잠잠히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다윗이 숨어있는 굴 속에 사울이 들어와 잠 을 자고 있을 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칼로 베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손 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 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24:6)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의 마음에 사울이 감동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 은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 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 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 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24:17-21)고 하 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라 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이룩해 보고자 하는 반면에, 다윗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린 것을 비교해 볼 때 참으로 안타까 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원수된 사울까지도 감복하여 다윗의 행위를 축복하는 모습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미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았으 면서도 기어히 번복해 보고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애를 쓰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나타났다고 기뻐하는 모습이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불법과 악한 방법으로 일을 성취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일까요 아니면 차라리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모습일까요 우리들이 정해놓은 시간 안에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에 불과합니다. 그분께서 이루시지 않으신다면 그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요 은혜나 축복은 더군다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서만 건설되어집니다. 그래서 다윗 은 가기가 나서야 할 때는 생명을 걸고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기다려 야 할 때는 수없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깊 이 잠들었을 때 사울의 창을 잡고 사울을 죽이고자 간청했던 다윗의 신복 아 비새에게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26:9)고 극구 만류하는 다윗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유일한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 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 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26:10-11)고 하 면서 모든 결과를 여호와께 돌리고 있습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사울은 블레 셋과의 전투에서 사망을 하고 맙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든 왕의 최후와 함께 이제 새롭게 시작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새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잠잠히 고통과 고독과 쓸쓸함 가운데 서 그 때를 기다렸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왕의 참된 모습이었 습니다. 마치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은 우리 주님 처럼 말입니다. 다윗 왕국의 의미(삼상 17:41-49)
그 첫번째 사건이 곧 삼상 13장에 나오는 화목제사건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 서 임의로 제사를 드립니다. 그때 사무엘은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13:14)는 말은 이러한 차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두번째 사건은 삼상 15장에서 아말렉과의 전 투에서 벌어졌습니다. 철저하게 아말렉을 진멸할 것을 하나님은 명령하셨지만 사울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 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 라"(15:11)는 말씀을 듣고 밤새 근심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 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 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15:22-23)는 말씀 역시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후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 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 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16:1) 그러자 사 무엘은 혹시 사울이 이 일을 안다면 사울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16:2). 이것을 보아 이미 사울과 사무엘은 크게 의견을 달리하고 있었으며, 마음이 떨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사무엘과 그렇지 않는 사울 사이에는 벌써부터 영적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다윗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사무엘 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16:13)는 말씀은 이제부터 우리의 초점을 다 윗에게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16:14)는 말씀과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볼 때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는 자와 멸시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때에 블레셋이 대공세를 취하여 옵니다. 블레셋은 이미 미스바 전투에서 크게 패한 바가 있지만 선과 악의 싸움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들은 이번에 완벽하게 이스라엘을 굴복시켜 자기들의 종으로 삼기를 바랬습니다. "그(블레셋 장수 골리앗)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 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 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17:8-9) 이 말 가운데 이 싸움의 성격은 분명합니다. 블레셋의 의도는 이스라엘을 자기들의 종으로 삼 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싸움 이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 볼 수 있습니다. 곧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을 자기의 소유로 삼으려고 모세와 싸웠던 일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따라서 블레셋이 이스라 엘을 자기의 소유로 삼겠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 하니 라"(17:11)는 모습은 참으로 납득이 가지를 않습니다. 그들이 진정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자기들이 누구의 백성인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면 골리앗의 말 에 대하여 분개를 하며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생 명을 바쳐서라도 나가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싸움의 의 욕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들이 누구의 백성인가를 몰라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알기는 알되 그것을 위해 생명까지라도 바쳐야겠다는 투철한 각오와 헌신 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참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사명과 절실한 삶의 모습을 위해 이 싸움에 나선 이가 곧 다윗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더러는 가로되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 다"(17:25)라고 할 때 다윗은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 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 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17:26)고 분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나아가 고하고 블레셋 장수 골리앗에게로 마주 대하고 나갔습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은 다윗이 어린 것을 보고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 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17:43)고 하면서 자기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합니다. 이제 맞선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17:45) 하면서 이 싸움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거나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곧 블레셋 신 다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싸움 인 것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 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 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17:46-47)고 함으로써 상천하지에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신 것을 증명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물매를 쏘아 골리앗의 이마를 꿰뚫어 죽이고 맙니다. 그제서야 혼 이 빠져있던 이스라엘 군대가 사기를 앙양하고 나서서 블레셋을 섬멸합니다. 이 사건 이후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으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도다"(18:5)는 말씀과 같이 온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향하고 있음 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여인들의 찬가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18:7) 이제사람들이 세 웠던 왕 사울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차츰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서 세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든 다윗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 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18:12)는 한 마디는 사울이 얼마나 자신의 위치가 불안한 것인 가를 알고서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울의 왕위는 이미 버려진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다윗이 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사울은 어떻게 하든지 그 자리를 지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울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좌는 본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의 왕 이십니다. 그 주인은 한 분 밖에 안계십니다. 그 자리를 하나님은 잠시 사울 에게 내어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2:30)는 말씀을 보 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엘리와 사무엘 사이에 있어서도 과연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가에 따라 판단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있는 사울과 다윗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누가 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가에 따라 그 왕위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점 을 볼 때 이스라엘의 왕의 위치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위 에 오르는 사람은 자신의 지혜와 권위로 다스려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함으로써만 행하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파악한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알았습니다. 오직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쓰임을 받아야만 할 것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허락하시는 분도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결코 서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어떤 역할 을 맡기시든지 그리고 그 시기가 언제일른지 다윗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 저 기다리기만 하면 그뿐입니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처럼 사울 이 죽이고자 할 때 다윗은 말없이 그 수난을 다 겪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을 향하여 불같이 일어나 있다고하여도 잠잠히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다윗이 숨어있는 굴 속에 사울이 들어와 잠 을 자고 있을 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칼로 베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손 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 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24:6)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의 마음에 사울이 감동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 은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 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 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 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24:17-21)고 하 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라 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이룩해 보고자 하는 반면에, 다윗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린 것을 비교해 볼 때 참으로 안타까 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원수된 사울까지도 감복하여 다윗의 행위를 축복하는 모습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미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았으 면서도 기어히 번복해 보고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애를 쓰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나타났다고 기뻐하는 모습이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불법과 악한 방법으로 일을 성취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일까요 아니면 차라리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모습일까요 우리들이 정해놓은 시간 안에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에 불과합니다. 그분께서 이루시지 않으신다면 그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요 은혜나 축복은 더군다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서만 건설되어집니다. 그래서 다윗 은 가기가 나서야 할 때는 생명을 걸고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기다려 야 할 때는 수없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깊 이 잠들었을 때 사울의 창을 잡고 사울을 죽이고자 간청했던 다윗의 신복 아 비새에게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26:9)고 극구 만류하는 다윗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유일한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 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 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26:10-11)고 하 면서 모든 결과를 여호와께 돌리고 있습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사울은 블레 셋과의 전투에서 사망을 하고 맙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든 왕의 최후와 함께 이제 새롭게 시작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새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잠잠히 고통과 고독과 쓸쓸함 가운데 서 그 때를 기다렸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왕의 참된 모습이었 습니다. 마치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은 우리 주님 처럼 말입니다. 다윗 왕국의 의미(삼상 17: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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