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Ⅰ) (삼상17:11)
본문
삼상 16장에서 우린 신적 선택과 권위의 상징인 기름 부음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사울(삼상 15:24-31)의 통치권이 다시 다윗 이라는 인물에게로 이양(移讓)되고 있 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지금 새로운 인물 다윗 을 통해 자신의 거룩한 사역을 계속해서 이뤄 나갈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는 악령에게 사로잡힌 사울을 치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다윗의 입궁(入宮)을 통해 장차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기 위한 전제 작업으로써 악령까지도 당신의 사역에 이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실패도 중단도 없습니다. 단지 그 일에 합당 한 도구를 찾으시든지, 아니면 한 인물(사울)을 또 다른 인물(다윗)로 대치하셔서 자신의 사역을 대신케 하실 뿐입니다.
(Ⅱ.) 이러한 일련(一連)의 사건 후 17장에서부터는 주일학교 시절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는 어릴 때 재미있게 들었던 성경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먼저 이 싸움은 단순히 한 나라와 다른 한 나라 간의 싸움이 아닙니다. 다윗 (하나님의 사람)과 골리앗(인본주의적 문화의 사회 풍토)의 싸움은 한 마디로 신앙 (Belief) 과 사상(-ism) 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골리앗은 지금 오늘날 말하는 총과 칼의 방식 즉, 무력과 세상의 힘의 논리에 위한 power game을 하자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당당히 도전장을 신청하고 있습니다(8-10절).
(Ⅲ) 골리앗은 어떠한 인물입니까 성경은 골리앗을 4-7절까지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키에서부터 그가 들고 있는 창날의 무게까지 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골리앗(골리앗 의 상(象)이 그려집니까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구약 시대 때의 길이 측량은 1규빗:44.5cm, 한뼘:23cm, 무게 측량은 1세겔:11.4g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계산해 보십시다. 우리는 성경에 수량이 나오면 대충 그런가 보다라 고 생각하며 쉽게 지나쳐 버리는데, 이것이 한국 교인들이 성경을 볼 때의 또다른 맹점 중에 하나입니다. 골리앗의 키는 한기범보다 큰 2m 96cm이며, 갑옷의 무게가 59.5kg이니 거의 평범한 고 등학생의 무게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강호동보다 훨씬 거대한 한 인간이 지금 이스라 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사무엘상 의 저자는 골리앗이란 인물의 풍채가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고 있는가를 보여 주고자 구체적인 수를 제시한 것 같습니다.
(Ⅳ) 이러한 위기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안타깝게도 누구 하나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모두다 자기 회피와 체념! 더 나아가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군! 이라 말하는 자포자 기한 자세로 그 문제 앞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서 있는 것입니다. 11절, 24절을 보십시오. ‥‥ 놀라 크게 두려워 하니라. ‥‥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이스라엘 전체가 지금 골리앗의 거대한 풍채 앞에 졸고 있습니다. 마치 호랑이 앞에선 하룻 강아지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그 문제 앞에 대처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다윗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골리앗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결국 이는 골리앗에게 정면 승부를 해 보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선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담력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군대식의 악으로, 깡으로,입니까 아니면 미인 계입니까(42절) 만약 그러하다면 다윗은 아마 개죽음 당했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37절 을 보십시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고 하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그러한 담력을 끌어내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결코 선한 일을 하려는 자들을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 한 깊은 이해와 믿음의 확신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고, 그 하나님이 골리앗을 자신의 손 에 붙이실 것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오늘 날도 이러한 창조적 믿음의 담력을 가진 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결국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다윗은 물매돌 한 방으로 쓰러뜨렸습니다.
(Ⅴ) 우리가 어릴 때 들었던 이 본문(다윗과 골리앗)의 설교 결론은 하나님을 믿는 다윗은 무 척이나 용맹하여 블레셋의 거대한 장군 골리앗을 이겼다.
그러므로 다윗은 위대한 믿음 의 사람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본문은 과연 우리에게 다윗의 용기와 믿음을 본받자 라는 싱거운 교훈을 던지고 끝내는 것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자, 그럼 다윗이 아닌 그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이 본문을 더 깊이 근접해 봅시다.
(Ⅵ)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은 거대한 문제와 환경 앞이라는 절망의 극한 한계 상황 속에서 크게 놀라 두려워 떨며, 그 문제들을 회피하고 도망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52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참 재미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쫓아‥‥ (52절) 참 재미있습니다. 도망치려 했고, 회피하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어나 이제는 도리 어 블레셋을 쫓아 전멸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NIV성경을 보면 일어나서 라는 단어를 surge의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surge는 일어나다 라는 뜻으로 군중, 바다 등이 파도처럼 밀려오듯 일어난다라는 의미 가 있습니다. 그들의 처음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듣고 크게 두려워 하니라 (11절)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24절)
그런데 자신들의 걸림돌인 거인 골리앗을 죽이자 기가 죽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취한 태도를 보십시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어나 하나의 거대한 파도 뭉치를 이루어 밀어닥치듯!! 블레 셋 군병들을 향해 쫓아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거기 섰거라! 나 홍길동이가 간다! 라고 외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너무 신나서 춤 추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역시 하나님은 살아 계셔!! 라고 외치며 감 격의 눈물을 흘리며 뛰어 가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Ⅶ) 결국 골리앗(하나님을 대항하는 인본주의적 사회 풍토)이라는 거대한 환경에 그들 자신 이 압도되어 하나님을 잊고 있었던 자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다시금 깨닫고 일어서 고 있는 모습이 바로 50-53절에 잘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고 환경에 자신의 시선을 빼앗긴 침체된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키고, 더 나아가 그들로 하여금 그 환경을 하나님과 함께 이길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이 디딤돌이 되어 주는 일 격려하는 일! 바울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인 것입니다.
(Ⅷ) 은나팔 보내기, 노방 전도, 찬양 집회의 일들을 해 나감에 있어서 만약 형제를, 자매를 의견 충돌로 실족하게 한다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순식간에 사탄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한 영혼에게 한두 장의 편지로 자신이 바로 그 문제로 동일하게 씨름하면서 느꼈던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전하며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한 지체의 일어섬을 도와주는 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 브레이브 하트 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잉글랜드의 폭정으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잇달아 죽음을 당하게 되고 주인공 윌리엄 웰 레스는 폭정을 피해 타국으로 보내져 양육됩니다. 그가 성장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웰레스의 조국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잉글랜드의 전제 군주 롱생크 의 핍박과 탄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 웰레스는 운명적인 사랑의 여인인 머론 을 만나게 되고 결혼하게 되나, 잉글랜드의 폭정에 머론은 죽게 됩니다. 결 국 웰레스는 그녀의 죽음을 복수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하나 둘씩 모여드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모아 용맹과 투지로 무장한 저항군을 이끄는 지도자가 됩니다. 잉글랜드는 월등한 팀의 원리를 앞세워 스코틀랜드를 침략해 오고 역사적인 스털링 전 투에서 웰레스의 군대는 대승을 거둡니다. 여러분! 스털링 전투 후에 웰레스가 칼을 땅에 꽂을 때 그 군사들의 기쁨을, 환호성을 기억하십니까 웰레스에 의해 자유에 대한 열정과 우리도 뭉치면 할 수 있음 으로 인한 그들의 감격의 환호성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 이러한 관점과 이러한 시선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바라봐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일을 분별하는 잣대는 -doing의 문제라기보다는 Being의 문제라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은 찬양단 연주, 성가대 참석, 은나팔 발송, 노방 전도의 doing 에 focus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상태(being)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적 파장이 침체된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과 함께 다시 일어섬을 도와 주는 것에 그 분의 focus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자들(다윗, 웰레스)만이 침체된 사울과 군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살맛 나는 삶을 다시금 회복케 함을 가능케 하는 한 알의 밀알인, 현대판 다윗 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까
(Ⅱ.) 이러한 일련(一連)의 사건 후 17장에서부터는 주일학교 시절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는 어릴 때 재미있게 들었던 성경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먼저 이 싸움은 단순히 한 나라와 다른 한 나라 간의 싸움이 아닙니다. 다윗 (하나님의 사람)과 골리앗(인본주의적 문화의 사회 풍토)의 싸움은 한 마디로 신앙 (Belief) 과 사상(-ism) 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골리앗은 지금 오늘날 말하는 총과 칼의 방식 즉, 무력과 세상의 힘의 논리에 위한 power game을 하자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당당히 도전장을 신청하고 있습니다(8-10절).
(Ⅲ) 골리앗은 어떠한 인물입니까 성경은 골리앗을 4-7절까지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키에서부터 그가 들고 있는 창날의 무게까지 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골리앗(골리앗 의 상(象)이 그려집니까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구약 시대 때의 길이 측량은 1규빗:44.5cm, 한뼘:23cm, 무게 측량은 1세겔:11.4g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계산해 보십시다. 우리는 성경에 수량이 나오면 대충 그런가 보다라 고 생각하며 쉽게 지나쳐 버리는데, 이것이 한국 교인들이 성경을 볼 때의 또다른 맹점 중에 하나입니다. 골리앗의 키는 한기범보다 큰 2m 96cm이며, 갑옷의 무게가 59.5kg이니 거의 평범한 고 등학생의 무게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강호동보다 훨씬 거대한 한 인간이 지금 이스라 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사무엘상 의 저자는 골리앗이란 인물의 풍채가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고 있는가를 보여 주고자 구체적인 수를 제시한 것 같습니다.
(Ⅳ) 이러한 위기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안타깝게도 누구 하나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모두다 자기 회피와 체념! 더 나아가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군! 이라 말하는 자포자 기한 자세로 그 문제 앞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서 있는 것입니다. 11절, 24절을 보십시오. ‥‥ 놀라 크게 두려워 하니라. ‥‥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이스라엘 전체가 지금 골리앗의 거대한 풍채 앞에 졸고 있습니다. 마치 호랑이 앞에선 하룻 강아지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그 문제 앞에 대처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다윗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골리앗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결국 이는 골리앗에게 정면 승부를 해 보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선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담력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군대식의 악으로, 깡으로,입니까 아니면 미인 계입니까(42절) 만약 그러하다면 다윗은 아마 개죽음 당했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37절 을 보십시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고 하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그러한 담력을 끌어내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결코 선한 일을 하려는 자들을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 한 깊은 이해와 믿음의 확신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고, 그 하나님이 골리앗을 자신의 손 에 붙이실 것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오늘 날도 이러한 창조적 믿음의 담력을 가진 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결국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다윗은 물매돌 한 방으로 쓰러뜨렸습니다.
(Ⅴ) 우리가 어릴 때 들었던 이 본문(다윗과 골리앗)의 설교 결론은 하나님을 믿는 다윗은 무 척이나 용맹하여 블레셋의 거대한 장군 골리앗을 이겼다.
그러므로 다윗은 위대한 믿음 의 사람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본문은 과연 우리에게 다윗의 용기와 믿음을 본받자 라는 싱거운 교훈을 던지고 끝내는 것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자, 그럼 다윗이 아닌 그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이 본문을 더 깊이 근접해 봅시다.
(Ⅵ)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은 거대한 문제와 환경 앞이라는 절망의 극한 한계 상황 속에서 크게 놀라 두려워 떨며, 그 문제들을 회피하고 도망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52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참 재미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쫓아‥‥ (52절) 참 재미있습니다. 도망치려 했고, 회피하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어나 이제는 도리 어 블레셋을 쫓아 전멸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NIV성경을 보면 일어나서 라는 단어를 surge의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surge는 일어나다 라는 뜻으로 군중, 바다 등이 파도처럼 밀려오듯 일어난다라는 의미 가 있습니다. 그들의 처음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듣고 크게 두려워 하니라 (11절)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24절)
그런데 자신들의 걸림돌인 거인 골리앗을 죽이자 기가 죽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취한 태도를 보십시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어나 하나의 거대한 파도 뭉치를 이루어 밀어닥치듯!! 블레 셋 군병들을 향해 쫓아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거기 섰거라! 나 홍길동이가 간다! 라고 외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너무 신나서 춤 추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역시 하나님은 살아 계셔!! 라고 외치며 감 격의 눈물을 흘리며 뛰어 가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Ⅶ) 결국 골리앗(하나님을 대항하는 인본주의적 사회 풍토)이라는 거대한 환경에 그들 자신 이 압도되어 하나님을 잊고 있었던 자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다시금 깨닫고 일어서 고 있는 모습이 바로 50-53절에 잘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고 환경에 자신의 시선을 빼앗긴 침체된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키고, 더 나아가 그들로 하여금 그 환경을 하나님과 함께 이길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이 디딤돌이 되어 주는 일 격려하는 일! 바울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인 것입니다.
(Ⅷ) 은나팔 보내기, 노방 전도, 찬양 집회의 일들을 해 나감에 있어서 만약 형제를, 자매를 의견 충돌로 실족하게 한다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순식간에 사탄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한 영혼에게 한두 장의 편지로 자신이 바로 그 문제로 동일하게 씨름하면서 느꼈던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전하며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한 지체의 일어섬을 도와주는 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 브레이브 하트 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잉글랜드의 폭정으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잇달아 죽음을 당하게 되고 주인공 윌리엄 웰 레스는 폭정을 피해 타국으로 보내져 양육됩니다. 그가 성장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웰레스의 조국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잉글랜드의 전제 군주 롱생크 의 핍박과 탄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 웰레스는 운명적인 사랑의 여인인 머론 을 만나게 되고 결혼하게 되나, 잉글랜드의 폭정에 머론은 죽게 됩니다. 결 국 웰레스는 그녀의 죽음을 복수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하나 둘씩 모여드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모아 용맹과 투지로 무장한 저항군을 이끄는 지도자가 됩니다. 잉글랜드는 월등한 팀의 원리를 앞세워 스코틀랜드를 침략해 오고 역사적인 스털링 전 투에서 웰레스의 군대는 대승을 거둡니다. 여러분! 스털링 전투 후에 웰레스가 칼을 땅에 꽂을 때 그 군사들의 기쁨을, 환호성을 기억하십니까 웰레스에 의해 자유에 대한 열정과 우리도 뭉치면 할 수 있음 으로 인한 그들의 감격의 환호성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 이러한 관점과 이러한 시선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바라봐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일을 분별하는 잣대는 -doing의 문제라기보다는 Being의 문제라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은 찬양단 연주, 성가대 참석, 은나팔 발송, 노방 전도의 doing 에 focus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상태(being)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적 파장이 침체된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과 함께 다시 일어섬을 도와 주는 것에 그 분의 focus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자들(다윗, 웰레스)만이 침체된 사울과 군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살맛 나는 삶을 다시금 회복케 함을 가능케 하는 한 알의 밀알인, 현대판 다윗 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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