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될 사람 (삼상9:1-10:27)
본문
(삼상9:1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이스라엘은 왕을 세우기로 결정하였으므로, 이제 어떤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았습니다. 그러면 그 결정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요 이것은 새로운 모혐이었고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 요, 사사인 사무엘이 동의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권세를 지닌 사무엘 이(8:22) 어떻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을 맡은 사람에게 권력을 이양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9:1-12:25절을 망라하는 길고도 다소 느슨한 단락에 나옵니다. 우리는 이 단락 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울이 장차 이스라엘 왕이 되리라는 것(9:1-10:16), 그가 공 식적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것(10:17-27), 그가 전쟁에서 시험을 받았다는 것(11:1-11). 그리고 끝으로 그가 여호와 앞에서 왕으로 확인되었다는 것(11:12-12:25)이 그 내용입니다. 이 마지막 부분에는 사무엘의 고별 사가 들어 있습니다. 그 연설에서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로서 엄숙하게 사울에게 권력의 고삐를 넘겨주었습니다. 본 강해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이 위대한 전환점의 첫번쩨 국면, 즉 이스라엘 왕으로서이 사울의 지목과 임명(9:1-10:25)을 사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단락은 기스의 아들 사울의 생애에서 주인공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때에도 그의 목적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왕의 신원(9:1-10:16) 사울은 어릴 적부터 왕이 될 꿈을 꾸어온 것이 아니라, 나귀들을 찾으러 나섰다가 대신 왕이 되어 돌아 왔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가문의 자손이었습니다(9:1). 오늘날에도 족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집안의 자랑거리입니다. 귀족들만이 공식적인 기록이 나오기 휠씬 전부터 조상들에 관한 목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출신 성분을 알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또한 지도자들의 가계(家 系)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합니다. 일반적으로 신하들을 별볼일 없는 가문 출신의 지도자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울의 가문은 나무랄 데 없었고 사울 자신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는 준수한 소년이라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 (9:2). 신체 크기와 미모는 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동 화에서 왕자는 언제나 잘 생긴 모습으로 나오고 공주는 비길 데 없이 아름답기 때문에 곤경을 당하는 것으 로 나옵니다! 사울은 어느 모로 보나 왕의 재목이었습니다. 그는 왕에 대한 백성의 모든요구 조건을 다 갖 추었습니다(참조16:7). 아버지의 나귀를 찾으러 나갔다가 길에서 왕위에 오른 사람이 바로 이 젊은이였습니다.
1. 암나귀 수색(9:3-4) 인간의 실존이 근본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가 빛나는 것입니다. 사소한 사건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행동들을 예고합니다. 평범한 것이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곤 합니다. 이삭은 저녁에 명상하러 들판으로 산보를 나갔다가 거기에서 신부감인 리브가를 만났습니다.!(창24:63-65) 잠못 이루던 다 윗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궁전 지붕위를 산책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밧세바를 별견했으며, 간음과 살인을 낳는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켰습니다(삼하11:2). 이 경우에는 기스의 길 잃은 나귀들이 사울로 하여금 선지자 사무엘을 만나게 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에브라임과 베냐민 산지를 뒤져 암나귀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의 진정한 목적은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일에 있었습니다.
2. 선지자와의 만남(9:5-25) 사울과 그의 동료는 잃어버린 짐승을 찾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자기들을 걱정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여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라마(이성 , 9:6)에 이르자, 사환은 그 곳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 에게서 조언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나귀들이 어디있는지 자신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언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장애물이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첫 번 째 장애 요소는 선지자에게 선물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었스빈다(왕상14:3). 두 번째 문제는 그 선지자와 접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침 성 밖에서 몇몇 쳐녀들을 만났는데, 그녀들이 그들에게 사무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울과 그 의 종이 성문에 들어서는 순간 막 성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9:11-14). 우리도 마침 이런 일을 경험 할 수 있지만, 이것을 행운 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인생 전체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을 부인 하는 것이나 마친가지입니다. 참새가 떨어지는 것까지도 기록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는 얼 마나 큰 관심을 쏟겠습니까 길을 잃은 나귀, 산에서 찾았으나 찾지 못한 것, 한 세겔의 사분의 일, 도로변 의 처녀들은 모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의 범위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잠27:1, 사46:10). 그리고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해 이 모든 일들을 행하시는 것입니다(롬8:28, 엡1:11). 9:15-16절에 들어 있는 짤막한 삽입구는 그 전날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를 기록하 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24시간 이내에 그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도리라고 계시하셨습니다. 그 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구원해 낼 지도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출애굽기 3:7,. 9절을 반영합니다. (출3: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그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한 자들은 애굽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은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자면 새 애굽인이 되어 하나님 백성의 생존을 위협하며 하나님의 권능이 개입하도 록 촉구했습니다. 이 가사의 실마리를 체택한 사가는 사무엘이 사울을 보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또 다른 계시 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9:17). 사무엘은 사울이 찾고 있는 나귀들이 별견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우레게 자신을 소개하고 그가 사실상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말하기 위해 이 정보를 이용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사울을 왕위에 임명하기 위한 첫번째 조처를 취했습니다. 그를 희생 제사에 초대하고 다음날 아침에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약속한 후에 사무엘은 사울에게 다소 수수께끼 같지만 매우 불길한 수사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삼상9:20)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 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이 말은 왕을 바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요구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입니다. 사울은 자신 이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그런 재목이 되지 못하고 단지 (삼상9: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 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희생 제사 다음의 축제 때 그는 귀빈 대접을 받았으며, 그래서 고기 중에서 가장 좋은 부위를 받았습니다(9:22-2
4). 후에 사울과 그의 동료는 사무엘과 함께 집으로 왔으며, 그 곳에서 그들은 지붕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진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3. 개인적인 기름부음(9:26-10:13) 다음날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 을 전하기 위해 그와 단둘이서만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9:27). 그리고 나서 그는 엄숙하게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그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임명하셨 다고 선언했습니다(10:1). 이러한 사실은 우선 다음의 세 가지 징조에 의해 확증될 것입니다.
첫째, 그는 라 헬의 무덤 근처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 사람들이 그에게 나귀를 찾았다고 말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그는 벧엘로 가는 도중에 세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의 산 근처에서 한 무리의 선지자들을 만날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권능으로 그 위에 임하여 그는 여호와를 섬길 준비를 하 게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10:2-7).
1) 기름 붓는 행위는 근동에서 봉신 제도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속국의 왕들은 그들의 권세가 그들이 충성을 다해야 하는 애굽 왕 바로 에게서 온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 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셨을 때, 그 행위 자체는 왕으로서의 그의 권위의 한계들을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된 왕이었고 사울은 그의 세속적인 대리인이었습니다. 교회의 대표가 욍들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왕관을 씌우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3년 6월의 대관식 때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숭망되던 그녀의 조상인 스코 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처럼, 그녀도 앤드류 멜빌(Andrew Mellville)의 명석한 정의에 따르면 하나님의 어리석은 가신 으로 일컬어졌습니다. 이 말은 1596년보다는 오늘날 더욱 치욕적으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그 당 시 sillie 라는 말은 현대의 어리석은 이라는 뜻보다는 오히려 무력한 이라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요지는 중요한 것이며, 멜빌의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통치자와 정부에게 행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하여, 제가 전에도 두세 번 말씀드렀듯이, 이제 다시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스코들랜드에는 두 명의 왕과 왕국이 있으니 이 국가의 주인인 제임스 왕이 있고, 교회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제임스 6세는 그의 신하이며, 그리스도 왕국의 왕도, 주인도, 머리도 아니고 일개 구성원일 뿐입니다. 존 맥클뢰드(John Macleod)교수가 그것은 왕들이 독재자가 되는 것을 막아 주었다. 고 말했을 때, 그는 이 런 취지를 결코 과소평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 우며 라고 말합니다(잠8:15). 사울의 경우, 이런 권력의 한계는 길갈로 가서 7일 동안 사무엘을 기다리고 거 기서 번제와 화목제를띵 드리라는 요구에서(10:8) 직접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후에 사울이 쓰러지게 된 시험이기도 했습니다(13:7-15).
2)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은 또한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도록 왕을 준비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영의 부여 를 의미했습니다. 성령님이 이스라엘의 사사들에게 능력으로 임하셨듯이, 사울에게도 임했습니다(10:9-16). (삼 상10: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 하니라 (삼상10: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사울은 기브아에서 만난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했으며,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에 놀라 사울도 선지 자들 중에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10:11). 여기에서 말하는 예언은 황홀경에 빠져서 한 말을 의미 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큰 변화를 겪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는 표현은 행동의 급격한 변화와 은사의 변화를 나타내는 속담이 되었습니다. 사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지간에 그가 그 다음에 영적으로 타락한 것을 보면, 그것은 진정한 거듭남 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비록 그가 참된 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기름 부음을 받는 순간에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입니다.
구약의 관점에서 그는 (히6: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 사를 맛보고 성령님에 참여한 바 되고 (히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 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더 깊은 곳까지 나아가지 못해서 결국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나자 받은 바 모든 은사들을 빼았기 고 만 것입니다(16:13-14). 사울이 육적인 삶을 사는 거듭난 사람 이었다거나 그는 하나님을 알았으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은 사람 이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구원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는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함 그 자체는 우리의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요, 확증인 것입니다. 결국 영적인 싸움이라는 맥 락에서도 신뢰성과 우리가 고백할 믿음의 실재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신앙과 불신앙, 복음의 거룩함과 완전한 악함 사이에서 동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우리의 영적인 상태의 열매는 결정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증거가 우리에게는 아직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울에게는 분명합니다. 그의 인생은 결국 재 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국가에 약간의 유익을 끼치기는 했으나, 주로 독재자의 역활을 수행했습니다. 실 제로 그의 생은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개인 생활과, 하나님과 맺은 관계는 죄와 반역으로 점철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한 때 회개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 이후 죄악된 생활을 계속해 온 사람들이 실 제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헛된 소망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친구 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특히 소위 육적인 신자 에게 있어서 이것은 위험한 착각입니다. 구원파는 하나님께 선택되어 구원받았으면 악을 저질러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안 고백과 거룩한 삶으로써만 입증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마암아 구원을 얻었으나, 그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4. 드러나지 않은 왕(10:14-16). 사울이 후에 저지르게 될 잘못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전체를 읽음으로써 얻 어진 느낌 때문에 사울이 이전에 지킨 약속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잘 생겼고 교양이 있었으며 매력 적이었습니다. 그는 왕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런 사실는 비밀이었으며, 그의 숙부가 사무엘과 만난 일에 관해 물었을 때에도 그는 기름 부음 받은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두고 사울의 겸 손하면서도 정직한 태도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어 자기 생각 을 드러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 드러내기로 결정하시는 순간까지 비밀에 붙여진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미스바에서의 대관식(10:17-27) 사무엘이 사람들을 미스바로 불러 모을 때까지 사울이 기름 부음 받았다는 것은 비밀이었습니다. 얼마 전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이 부흥하리라는 사실이 엄숙히 고지되었으며, 압제적인 블레셋은 전쟁터에서 전복 되었습니다(7:5-8, 10, 15-16). 이제사무엘의 기조 연설은 왕을 추대하기를 바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꾸짖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10:17-19). 사실상 이 기조 연설은 이전의 경고를 되풀이했으며, 왕에 대한 이스라 엘의 열망이 구속자이신 여호와를 비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과거에 여러 번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이 요청은 수락되었고, 왕을 선출하기 위해 그들 은 지파와 가족별로, 여호와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우울한 명령은 그들이 왕을 열 망한 결과 큰 타락이 있을 것임을 그들에게 암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열망에 동의하지 않은 결정 사항에 대해 양심을 걸고 그 일에 연루되지 않았음을 밝히는 것이 상례이듯이, 여호와께서도 이스라엘의 결정이 자신과 무관한 것임을 밝히고 계신 것입니다.
1. 암나귀 수색(9:3-4) 인간의 실존이 근본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가 빛나는 것입니다. 사소한 사건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행동들을 예고합니다. 평범한 것이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곤 합니다. 이삭은 저녁에 명상하러 들판으로 산보를 나갔다가 거기에서 신부감인 리브가를 만났습니다.!(창24:63-65) 잠못 이루던 다 윗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궁전 지붕위를 산책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밧세바를 별견했으며, 간음과 살인을 낳는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켰습니다(삼하11:2). 이 경우에는 기스의 길 잃은 나귀들이 사울로 하여금 선지자 사무엘을 만나게 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에브라임과 베냐민 산지를 뒤져 암나귀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의 진정한 목적은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일에 있었습니다.
2. 선지자와의 만남(9:5-25) 사울과 그의 동료는 잃어버린 짐승을 찾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자기들을 걱정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여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라마(이성 , 9:6)에 이르자, 사환은 그 곳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 에게서 조언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나귀들이 어디있는지 자신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언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장애물이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첫 번 째 장애 요소는 선지자에게 선물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었스빈다(왕상14:3). 두 번째 문제는 그 선지자와 접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침 성 밖에서 몇몇 쳐녀들을 만났는데, 그녀들이 그들에게 사무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울과 그 의 종이 성문에 들어서는 순간 막 성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9:11-14). 우리도 마침 이런 일을 경험 할 수 있지만, 이것을 행운 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인생 전체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을 부인 하는 것이나 마친가지입니다. 참새가 떨어지는 것까지도 기록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는 얼 마나 큰 관심을 쏟겠습니까 길을 잃은 나귀, 산에서 찾았으나 찾지 못한 것, 한 세겔의 사분의 일, 도로변 의 처녀들은 모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의 범위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잠27:1, 사46:10). 그리고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해 이 모든 일들을 행하시는 것입니다(롬8:28, 엡1:11). 9:15-16절에 들어 있는 짤막한 삽입구는 그 전날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를 기록하 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24시간 이내에 그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도리라고 계시하셨습니다. 그 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구원해 낼 지도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출애굽기 3:7,. 9절을 반영합니다. (출3: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그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한 자들은 애굽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은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자면 새 애굽인이 되어 하나님 백성의 생존을 위협하며 하나님의 권능이 개입하도 록 촉구했습니다. 이 가사의 실마리를 체택한 사가는 사무엘이 사울을 보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또 다른 계시 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9:17). 사무엘은 사울이 찾고 있는 나귀들이 별견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우레게 자신을 소개하고 그가 사실상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말하기 위해 이 정보를 이용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사울을 왕위에 임명하기 위한 첫번째 조처를 취했습니다. 그를 희생 제사에 초대하고 다음날 아침에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약속한 후에 사무엘은 사울에게 다소 수수께끼 같지만 매우 불길한 수사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삼상9:20)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 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이 말은 왕을 바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요구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입니다. 사울은 자신 이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그런 재목이 되지 못하고 단지 (삼상9: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 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희생 제사 다음의 축제 때 그는 귀빈 대접을 받았으며, 그래서 고기 중에서 가장 좋은 부위를 받았습니다(9:22-2
4). 후에 사울과 그의 동료는 사무엘과 함께 집으로 왔으며, 그 곳에서 그들은 지붕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진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3. 개인적인 기름부음(9:26-10:13) 다음날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 을 전하기 위해 그와 단둘이서만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9:27). 그리고 나서 그는 엄숙하게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그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임명하셨 다고 선언했습니다(10:1). 이러한 사실은 우선 다음의 세 가지 징조에 의해 확증될 것입니다.
첫째, 그는 라 헬의 무덤 근처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 사람들이 그에게 나귀를 찾았다고 말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그는 벧엘로 가는 도중에 세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의 산 근처에서 한 무리의 선지자들을 만날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권능으로 그 위에 임하여 그는 여호와를 섬길 준비를 하 게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10:2-7).
1) 기름 붓는 행위는 근동에서 봉신 제도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속국의 왕들은 그들의 권세가 그들이 충성을 다해야 하는 애굽 왕 바로 에게서 온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 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셨을 때, 그 행위 자체는 왕으로서의 그의 권위의 한계들을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된 왕이었고 사울은 그의 세속적인 대리인이었습니다. 교회의 대표가 욍들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왕관을 씌우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3년 6월의 대관식 때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숭망되던 그녀의 조상인 스코 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처럼, 그녀도 앤드류 멜빌(Andrew Mellville)의 명석한 정의에 따르면 하나님의 어리석은 가신 으로 일컬어졌습니다. 이 말은 1596년보다는 오늘날 더욱 치욕적으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그 당 시 sillie 라는 말은 현대의 어리석은 이라는 뜻보다는 오히려 무력한 이라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요지는 중요한 것이며, 멜빌의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통치자와 정부에게 행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하여, 제가 전에도 두세 번 말씀드렀듯이, 이제 다시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스코들랜드에는 두 명의 왕과 왕국이 있으니 이 국가의 주인인 제임스 왕이 있고, 교회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제임스 6세는 그의 신하이며, 그리스도 왕국의 왕도, 주인도, 머리도 아니고 일개 구성원일 뿐입니다. 존 맥클뢰드(John Macleod)교수가 그것은 왕들이 독재자가 되는 것을 막아 주었다. 고 말했을 때, 그는 이 런 취지를 결코 과소평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 우며 라고 말합니다(잠8:15). 사울의 경우, 이런 권력의 한계는 길갈로 가서 7일 동안 사무엘을 기다리고 거 기서 번제와 화목제를띵 드리라는 요구에서(10:8) 직접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후에 사울이 쓰러지게 된 시험이기도 했습니다(13:7-15).
2)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은 또한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도록 왕을 준비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영의 부여 를 의미했습니다. 성령님이 이스라엘의 사사들에게 능력으로 임하셨듯이, 사울에게도 임했습니다(10:9-16). (삼 상10: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 하니라 (삼상10: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사울은 기브아에서 만난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했으며,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에 놀라 사울도 선지 자들 중에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10:11). 여기에서 말하는 예언은 황홀경에 빠져서 한 말을 의미 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큰 변화를 겪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는 표현은 행동의 급격한 변화와 은사의 변화를 나타내는 속담이 되었습니다. 사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지간에 그가 그 다음에 영적으로 타락한 것을 보면, 그것은 진정한 거듭남 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비록 그가 참된 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기름 부음을 받는 순간에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입니다.
구약의 관점에서 그는 (히6: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 사를 맛보고 성령님에 참여한 바 되고 (히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 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더 깊은 곳까지 나아가지 못해서 결국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나자 받은 바 모든 은사들을 빼았기 고 만 것입니다(16:13-14). 사울이 육적인 삶을 사는 거듭난 사람 이었다거나 그는 하나님을 알았으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은 사람 이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구원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는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함 그 자체는 우리의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요, 확증인 것입니다. 결국 영적인 싸움이라는 맥 락에서도 신뢰성과 우리가 고백할 믿음의 실재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신앙과 불신앙, 복음의 거룩함과 완전한 악함 사이에서 동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우리의 영적인 상태의 열매는 결정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증거가 우리에게는 아직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울에게는 분명합니다. 그의 인생은 결국 재 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국가에 약간의 유익을 끼치기는 했으나, 주로 독재자의 역활을 수행했습니다. 실 제로 그의 생은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개인 생활과, 하나님과 맺은 관계는 죄와 반역으로 점철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한 때 회개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 이후 죄악된 생활을 계속해 온 사람들이 실 제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헛된 소망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친구 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특히 소위 육적인 신자 에게 있어서 이것은 위험한 착각입니다. 구원파는 하나님께 선택되어 구원받았으면 악을 저질러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안 고백과 거룩한 삶으로써만 입증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마암아 구원을 얻었으나, 그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4. 드러나지 않은 왕(10:14-16). 사울이 후에 저지르게 될 잘못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전체를 읽음으로써 얻 어진 느낌 때문에 사울이 이전에 지킨 약속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잘 생겼고 교양이 있었으며 매력 적이었습니다. 그는 왕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런 사실는 비밀이었으며, 그의 숙부가 사무엘과 만난 일에 관해 물었을 때에도 그는 기름 부음 받은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두고 사울의 겸 손하면서도 정직한 태도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어 자기 생각 을 드러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 드러내기로 결정하시는 순간까지 비밀에 붙여진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미스바에서의 대관식(10:17-27) 사무엘이 사람들을 미스바로 불러 모을 때까지 사울이 기름 부음 받았다는 것은 비밀이었습니다. 얼마 전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이 부흥하리라는 사실이 엄숙히 고지되었으며, 압제적인 블레셋은 전쟁터에서 전복 되었습니다(7:5-8, 10, 15-16). 이제사무엘의 기조 연설은 왕을 추대하기를 바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꾸짖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10:17-19). 사실상 이 기조 연설은 이전의 경고를 되풀이했으며, 왕에 대한 이스라 엘의 열망이 구속자이신 여호와를 비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과거에 여러 번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이 요청은 수락되었고, 왕을 선출하기 위해 그들 은 지파와 가족별로, 여호와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우울한 명령은 그들이 왕을 열 망한 결과 큰 타락이 있을 것임을 그들에게 암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열망에 동의하지 않은 결정 사항에 대해 양심을 걸고 그 일에 연루되지 않았음을 밝히는 것이 상례이듯이, 여호와께서도 이스라엘의 결정이 자신과 무관한 것임을 밝히고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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