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궤를 택한 두 암소 (삼상6:1-12)
본문
본 말씀의 장은 사사시대의 끝 무렵인 엘리와 사무엘의 시대를 배경 으로 이루어진 말씀입니다. 삼상 1-5장에서 본 말씀의 배경을 볼 수 있는데 먼저 종교적으로는 거룩하고 의로워야 할 대제사장인 아들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량자(2:12-17)로 엘리는 성 전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3:1) 형식과 의식만 남아있는 영과 육이 혼 탁하고 썩어진 시대였다(2:22-36).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이 블레셋 사람과 싸우는데 계속 패하자-모세 광야의 승리를 기대하 며-실로의 그룹사이에 계신5 언약궤를 진중으로 옮기어서 결국 원수의 손에 빼앗기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더럽고 썩어 냄새나는 시 대에 엘리와 그 가족은 버리시고 한나를 통해 사무엘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로 뜻을 세우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 빼앗긴 법궤가 가는 곳마다에 재앙이 임하기 시작 하5자 블레셋내에서는 이 법궤가 갈 곳이 없기에 멍에 매어보지 못한 젖나는 두 암소를 선택하여 '암소가 벧세메스로 가면 하나님의 우리에 게 내린 재앙이요, 그렇지 않으면 우연이 된 것이다'하고 암소 두 마 리로 원인을 알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보면 두 암소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두 마리가 뜻 을 합하여 벧세메스로 가서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번제로 희생이 됩니다. 왜 하나님은 선택된 이스라엘이나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 일하시지 않고 미물인 두 암소를 택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을까요 이 말씀 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실까요
1. 하나님은 세상을 구할 동역자를 찾습니다. 창18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대화에서 의인을 찾아 이 땅을 멸하시기를 원하시지 않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결국 소 돔과 고모라는 하나님과 일할 의인 10인이 없어 멸망을 당합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위로 제사장에서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뜻에 합당한 자가 없기에 다른 방법을 택하십니다. 법궤는 제사 장들의 어깨로 이동해야만 합니다.그런 법궤를 제사장이 없으면, 선지 자나, 정치가나,경제가 중에서 택하실 수 있었겠지만 그리하지 아니하 시고 미물인 두 암소를 선택하심은 자존하신 당신의 모습을 열방으로 알게 하시려는 것과 일꾼의 자격이 규정되어 있지 않고 누구든 열심있는 자가 하나님의 찾으시는 사람임을 암시해 주시고 계십니다. 에녹은 이땅에서 하늘의 뜻을 두었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바로 하늘로 불림을 받았고, 아브라함의 올바른 믿음이 역 사의 전 과정을 바꾸어 버렸습니다(히 12:11,12). 오늘날의 우리도 개인주의와 물질문명의 팽배속에서 하나님을 의짜다 다고 하는 것은 매우 힘든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뜻을 두고 자기 를 깨끗케 하면 부족하고 연약하며 온전치 못한 자라도 합당한 곳에 합당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고후 12:9).
2. 하나님은 사랑으로 협력하는 동역자를 찾습니다. 멍에를 매어보지 않고, 젖나는 새끼를 둔 두암소가 수레를 끌고 한곳 으로 향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끼의 울음 소리와 멍에로 인해 등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속에서 두 암소느니 서로 하모니를 이루며 한 목적을 달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일꾼이라 자칭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큰 일을 자식때문에, 힘들어서, 능력에 없음으로, 건강 때문에 등 이유와 조건을 붙입니다.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사랑과 감사는 할줄 알면서도 생사의 기로 중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라면 과연 어느 누가 그리할 수 있겠습니까 암소가 협력한 것 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택된 암소가 자기의 동물성을 죽이고 협력하여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기심, 소유욕, 동물성 등이 가득한 인간은 절대 협력하여 선을 이 룰 수 없습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협력할 수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가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고 그 안에 내 동물성을 죽이고 신의 성품 에 참여하려 힘쓰고 노력한 자만이 사랑과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 인생이 무엇임을 깰다고 더 나은 영의 본향을 바라볼 수 있는 자만이 원수와 이웃을 사랑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땅에 이룰 수 있는 자입니다.
3. 모든 것을 버린 자를 찾습니다. 법궤를 끌은 두 암소는 자식도 자신도 사랑할 줄 알고 살려는 기본적 인 동물성을 소유한 짐승이었싸브니다. 그러나 두 암소는 자식은 물론 자신의 번제로 (삼상 6:14) 드렸을 때 자시의 온전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궤를 소유하게 됩니다. 이같은 모습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순종하여 장 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생육하 였느니라"(히11:8-12). "아브라함은 현재 이루어진 말씀을 가진 것이 아니요, 장래 이루어질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되 백세에 주신 아 들까지"(창22),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로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일꾼을 찾으시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자는 찾고,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요, 도저히 저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지금은 추수의 계절이기에 누 구든 일할 수 있는 자를 부르시고 원하십니다. 내 모습 (자아를 판단 하는 동물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하지 마시고 죽기(신의 성품)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동방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세상을 구할 동역자를 찾습니다. 창18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대화에서 의인을 찾아 이 땅을 멸하시기를 원하시지 않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결국 소 돔과 고모라는 하나님과 일할 의인 10인이 없어 멸망을 당합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위로 제사장에서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뜻에 합당한 자가 없기에 다른 방법을 택하십니다. 법궤는 제사 장들의 어깨로 이동해야만 합니다.그런 법궤를 제사장이 없으면, 선지 자나, 정치가나,경제가 중에서 택하실 수 있었겠지만 그리하지 아니하 시고 미물인 두 암소를 선택하심은 자존하신 당신의 모습을 열방으로 알게 하시려는 것과 일꾼의 자격이 규정되어 있지 않고 누구든 열심있는 자가 하나님의 찾으시는 사람임을 암시해 주시고 계십니다. 에녹은 이땅에서 하늘의 뜻을 두었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바로 하늘로 불림을 받았고, 아브라함의 올바른 믿음이 역 사의 전 과정을 바꾸어 버렸습니다(히 12:11,12). 오늘날의 우리도 개인주의와 물질문명의 팽배속에서 하나님을 의짜다 다고 하는 것은 매우 힘든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뜻을 두고 자기 를 깨끗케 하면 부족하고 연약하며 온전치 못한 자라도 합당한 곳에 합당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고후 12:9).
2. 하나님은 사랑으로 협력하는 동역자를 찾습니다. 멍에를 매어보지 않고, 젖나는 새끼를 둔 두암소가 수레를 끌고 한곳 으로 향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끼의 울음 소리와 멍에로 인해 등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속에서 두 암소느니 서로 하모니를 이루며 한 목적을 달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일꾼이라 자칭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큰 일을 자식때문에, 힘들어서, 능력에 없음으로, 건강 때문에 등 이유와 조건을 붙입니다.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사랑과 감사는 할줄 알면서도 생사의 기로 중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라면 과연 어느 누가 그리할 수 있겠습니까 암소가 협력한 것 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택된 암소가 자기의 동물성을 죽이고 협력하여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기심, 소유욕, 동물성 등이 가득한 인간은 절대 협력하여 선을 이 룰 수 없습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협력할 수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가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고 그 안에 내 동물성을 죽이고 신의 성품 에 참여하려 힘쓰고 노력한 자만이 사랑과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 인생이 무엇임을 깰다고 더 나은 영의 본향을 바라볼 수 있는 자만이 원수와 이웃을 사랑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땅에 이룰 수 있는 자입니다.
3. 모든 것을 버린 자를 찾습니다. 법궤를 끌은 두 암소는 자식도 자신도 사랑할 줄 알고 살려는 기본적 인 동물성을 소유한 짐승이었싸브니다. 그러나 두 암소는 자식은 물론 자신의 번제로 (삼상 6:14) 드렸을 때 자시의 온전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궤를 소유하게 됩니다. 이같은 모습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순종하여 장 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생육하 였느니라"(히11:8-12). "아브라함은 현재 이루어진 말씀을 가진 것이 아니요, 장래 이루어질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되 백세에 주신 아 들까지"(창22),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로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일꾼을 찾으시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자는 찾고,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요, 도저히 저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지금은 추수의 계절이기에 누 구든 일할 수 있는 자를 부르시고 원하십니다. 내 모습 (자아를 판단 하는 동물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하지 마시고 죽기(신의 성품)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동방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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