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긍휼 (삿13:1)
본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부패해질 때마다 하나님은 직접 그들에게 개입하 셨습니다. 그 개입의 방법은 이스라엘이 남겨둔 옆구리의 가시(수 23:13)들인 이방 족속들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 대하여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는 개인 중심적인 만남이었습니다. 곧 족장사의 성격은 하나님과 직접 개인과의 만남을 통해서 인도되고 다스려졌습니다. 그런 후 모세 시대와 여호수아 시대에 와서 즉,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 하던 시기에 와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상대하시지만 특히 지도자 곧, 모세와 여호수아를 택하셔서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고난 후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각각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도록 하셨습니다(수 24:14).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버리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들을 간섭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패역함으로 말미암아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삿 2:18) 여호와께서는 그때마다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곧 사자들을 보내시어 이스라엘의 대적을 물치시셨고 그 땅에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갈수록 더욱 패 괴하여지기만 하였고, 더욱 악독해지기만 했습니다. 삿 3:7-9의 기록은 사사 기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내용입니다. 그와같이 불리움 받은 사 사는 무려 12명이나 되었습니다. 참고로 사사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 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를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 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 산 리사다임을 팔년을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 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삿 3:7-9)
그런데 자세히 그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그 임무를 잘 감당해 나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만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가 둔화 되어 감을 알 수 있습니다.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로서 그래도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삼갈은 부랑아 출신이었고, 드보라는 여 자였습니다. 여자라고 해서 사사로 쓰임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 대에 그 사람 밖에는 아무도 쓸모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께서 오죽하셨으면 남자들을 버리고 여자를 세웠을까 하고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드온은 이름없는 가문 출신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쓸모있는 하나님의 사사로서는 그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소심한 하나의 평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시기 위해 여러 차례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셔야 했고, 그때서야 비로소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입산은 아들 30명을 위해 타국에서 30명의 여자를 데려다 결혼을 시킬정도였던 사람이었고, 입다는 인신제사가 금지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딸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를 할 정도로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입산이나 압돈은 60-70여명씩이나 자녀를 둘 정도였다면 몇 명 의 아내를 두었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사사의 모습이나 자격 으로 볼 때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고 맙니다. 우리는 언뜻 이스라엘의 사사로 쓰임을 받을 정도라면 대단하고 고매한 인격이나 신앙을 소유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겠지만 그 당시 얼마나 부패하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없었으면 그와같은 미자격자를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우셨는가를 돌이켜 볼 때 당시의 시대상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 순간마다 사사를 세우셨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변하여져 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부패하여지기만 했고 악독해지기만 하여져 갔습니다. 그 절정기에 사사로 불리운 사람이 곧 삼손이었습니다. 따라서 삼손의 역 할에 대해서도 우리는 크게 기대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수 차례 걸쳐 사사들의 나섰지만 이스라엘은 그때만 하나님을 섬기듯 했을 뿐이 며, 사사들이 죽고나서는 여전히 옛 성품에 빠져 우상을 섬기며 사악한 행위 를 그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사들 자신 역시 그리 완전한 신앙을 행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불리움은 여느 사사들과는 다른 특이한 요소가 있습니다. 곧 여호와의 사자가 직접 그 부모에게 나타나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13:5)고 예언을 해주고 있음을 볼 때 우리는 주의를 기울 여야만 합니다. 당시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 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삿 13:1)고 한 것을 보아 40년간의 압제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그때가 충분히 차서 무르 익어 추수할 때가 가까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먼저는 이스라엘 의 죄악이 얼마나 중했으면 40년씩이나 블레셋의 압제를 받았어야 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둘째는 그 압제의 끝이 다가옴으로써 하나님께서 개입하 실 때가 가까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이한 상황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사사들을 세우신 방법과는 같지 아니하게 특별한 사람을 사사로 세우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곧 삼손이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삼손을 세우셨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곧 그 시대의 죄악이 심히 중대하였 기 때문에 여느 때와 같은 사사들을 세워서는 별로 그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상 개입을 하신 것입니다. 이 비상 개입은 놀라운 의미를 안고 있습니다. 당시에 사무엘의 출생에도 하나님은 비상 개입을 하셨음을 우리가 염두에 둘 때, 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놀 라운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 생 역시도 하나님의 비상 개입이 있었습니다. 그마만큼 그 시대가 암흑의 시 대였음을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삼손의 출생은 지금까지의 사사들의 역할과는 아주 다른 특이한 요소가 있는 것을 우리는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삼손의 사사 역할을 통하여 과연 이스라엘이 얼마만큼 하나님 앞에 돌아서게 되었는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삼손을 들 어 사용하신 근본적인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시대가 심히 패역하여 특별한 비상 간섭을 통해 세우신 사사 삼손은 여느 사사들과는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 마저 삼손의 죽음과 함께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다시는 사사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사사기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 내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 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같이 행치 아니하 였더라"(삿 2:16-17)는 말로 나타내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언가 새로 운 시도를 위해 세운 삼손마저도 그러한 모습에서 크게 떠나지 않음을 볼 때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야 할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곧 지금까지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꾸어져야 하고 꾸 며져야만 하고 다스려져야 할 것을 예표해주는 이가 곧 삼손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갖고 사사기 나머지 부분과 룻기 그리고 사무엘 서를 읽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전혀 새로운 통치방 법은 무엇일까요 이미 눈치를 채고 미소를 지을 정도가 되었다면 여러분은 성경의 흐름에 대하여 상당한 수준의 안목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 대하여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는 개인 중심적인 만남이었습니다. 곧 족장사의 성격은 하나님과 직접 개인과의 만남을 통해서 인도되고 다스려졌습니다. 그런 후 모세 시대와 여호수아 시대에 와서 즉,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 하던 시기에 와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상대하시지만 특히 지도자 곧, 모세와 여호수아를 택하셔서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고난 후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각각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도록 하셨습니다(수 24:14).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버리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들을 간섭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패역함으로 말미암아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삿 2:18) 여호와께서는 그때마다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곧 사자들을 보내시어 이스라엘의 대적을 물치시셨고 그 땅에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갈수록 더욱 패 괴하여지기만 하였고, 더욱 악독해지기만 했습니다. 삿 3:7-9의 기록은 사사 기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내용입니다. 그와같이 불리움 받은 사 사는 무려 12명이나 되었습니다. 참고로 사사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 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를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 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 산 리사다임을 팔년을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 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삿 3:7-9)
그런데 자세히 그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그 임무를 잘 감당해 나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만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가 둔화 되어 감을 알 수 있습니다.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로서 그래도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삼갈은 부랑아 출신이었고, 드보라는 여 자였습니다. 여자라고 해서 사사로 쓰임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 대에 그 사람 밖에는 아무도 쓸모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께서 오죽하셨으면 남자들을 버리고 여자를 세웠을까 하고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드온은 이름없는 가문 출신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쓸모있는 하나님의 사사로서는 그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소심한 하나의 평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시기 위해 여러 차례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셔야 했고, 그때서야 비로소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입산은 아들 30명을 위해 타국에서 30명의 여자를 데려다 결혼을 시킬정도였던 사람이었고, 입다는 인신제사가 금지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딸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를 할 정도로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입산이나 압돈은 60-70여명씩이나 자녀를 둘 정도였다면 몇 명 의 아내를 두었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사사의 모습이나 자격 으로 볼 때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고 맙니다. 우리는 언뜻 이스라엘의 사사로 쓰임을 받을 정도라면 대단하고 고매한 인격이나 신앙을 소유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겠지만 그 당시 얼마나 부패하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없었으면 그와같은 미자격자를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우셨는가를 돌이켜 볼 때 당시의 시대상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 순간마다 사사를 세우셨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변하여져 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부패하여지기만 했고 악독해지기만 하여져 갔습니다. 그 절정기에 사사로 불리운 사람이 곧 삼손이었습니다. 따라서 삼손의 역 할에 대해서도 우리는 크게 기대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수 차례 걸쳐 사사들의 나섰지만 이스라엘은 그때만 하나님을 섬기듯 했을 뿐이 며, 사사들이 죽고나서는 여전히 옛 성품에 빠져 우상을 섬기며 사악한 행위 를 그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사들 자신 역시 그리 완전한 신앙을 행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불리움은 여느 사사들과는 다른 특이한 요소가 있습니다. 곧 여호와의 사자가 직접 그 부모에게 나타나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13:5)고 예언을 해주고 있음을 볼 때 우리는 주의를 기울 여야만 합니다. 당시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 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삿 13:1)고 한 것을 보아 40년간의 압제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그때가 충분히 차서 무르 익어 추수할 때가 가까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먼저는 이스라엘 의 죄악이 얼마나 중했으면 40년씩이나 블레셋의 압제를 받았어야 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둘째는 그 압제의 끝이 다가옴으로써 하나님께서 개입하 실 때가 가까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이한 상황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사사들을 세우신 방법과는 같지 아니하게 특별한 사람을 사사로 세우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곧 삼손이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삼손을 세우셨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곧 그 시대의 죄악이 심히 중대하였 기 때문에 여느 때와 같은 사사들을 세워서는 별로 그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상 개입을 하신 것입니다. 이 비상 개입은 놀라운 의미를 안고 있습니다. 당시에 사무엘의 출생에도 하나님은 비상 개입을 하셨음을 우리가 염두에 둘 때, 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놀 라운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 생 역시도 하나님의 비상 개입이 있었습니다. 그마만큼 그 시대가 암흑의 시 대였음을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삼손의 출생은 지금까지의 사사들의 역할과는 아주 다른 특이한 요소가 있는 것을 우리는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삼손의 사사 역할을 통하여 과연 이스라엘이 얼마만큼 하나님 앞에 돌아서게 되었는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삼손을 들 어 사용하신 근본적인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시대가 심히 패역하여 특별한 비상 간섭을 통해 세우신 사사 삼손은 여느 사사들과는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 마저 삼손의 죽음과 함께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다시는 사사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사사기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 내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 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같이 행치 아니하 였더라"(삿 2:16-17)는 말로 나타내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언가 새로 운 시도를 위해 세운 삼손마저도 그러한 모습에서 크게 떠나지 않음을 볼 때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야 할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곧 지금까지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꾸어져야 하고 꾸 며져야만 하고 다스려져야 할 것을 예표해주는 이가 곧 삼손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갖고 사사기 나머지 부분과 룻기 그리고 사무엘 서를 읽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전혀 새로운 통치방 법은 무엇일까요 이미 눈치를 채고 미소를 지을 정도가 되었다면 여러분은 성경의 흐름에 대하여 상당한 수준의 안목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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