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극복한 삼손 (삿16:18-20)
본문
어느 누구도 실패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실패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보편적인 경험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란 결코 한 번도 실패하 지 않은 사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성공은 실패를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이 얻는 것입니다. 성공은 실패를 올바른 태도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삶의 명예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건전지를 만들기 위해 무려 오만 번이나 실패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실패만을 거듭할 때 에디슨의 한 친구가 찾 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짜증 나지 않는가 이제 그만 포기 하게.” 이때 에디슨은 다음과 같이 대꾸했습니다. 짜증이라니 나는 지금까지 이렇 게 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그 많은 방법들을 찾아내는 데 성공 한 걸세. 성경의 인물 가운데 거의 전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 삼손은 인생의 실패와 성 공을 가장 극적 으로 보여 준 예(例)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이름만 들어 도 힘의 상징으로 느껴지는 삼 손 의 실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손의 생애는 성 공의 전성기를 거 쳐 처절한 실패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두 눈이 뽑힌 채로 감옥에서 맷돌질을 하고 있는 삼손의 모습을 지켜 보십시오. 그의 눈에서는 처절한 피눈물이 떨어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복수심과 호기심으로 들 뜬 군중들 앞에 불려 나와 곡 마 단의 어릿광대처럼 재주를 부리는 삼손의 비참한 모 습도 보십시오. 삼손의 당당했던 첫출발, 기적으로 일관했던 삶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원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삼손의 실패 를 보면서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실패를 막아 봅시다. 그의 삶 이 실패로 끝난 원인을 살펴보고 그 극복의 길을 모 색해 봅시다.
정욕의 지배
삼손에게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자에게 약했습니다. 삼손은 힘을 쓸 줄은 알 았으나 그 힘을 다스릴 줄은 몰랐습니다. 삼손 은 청년기 때부터 이 약점을 드러 냈습니다. 14장 1-3절 말씀 을 보십시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도로 올라와서 자 기 부모에게 말 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 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 를 삼게 하소서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 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 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삼손은 자신의 정욕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좋아하는 여자도 같은 민족인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여자 였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구별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께서 어떤 여자를 아내로 삼아야 좋아하실지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반대하는데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했습니다. 자기 감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삼손의 최대 약점이 었습니다. 삼손의 이런 모습은 결정적인 인생의 실패로 나타났습니다. 16장 1절을 보십시오.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 영어 성경으로 보면 삼손이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가서 잤 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아 닌 여자와 성관계를 가졌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문맥 전후 어디를 살펴보더라도 삼손이 주저하는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바른지 그른지 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냥 본능대로 행동 하였습니다. 이 성적인 판단과 사리 분별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삶을 살았습니다. 피터 폴 루벤이라는 화가가 삼손을 주제로 해서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삼손이 사 자와 싸우고 있는 모습인데 두 개의 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첫번째 원은 삼손이 사 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모 습입니다. 삼손에게 제압당하고 있는 사자의 형상입니다. 두번째 원은 사자의 머리가 삼손의 가슴 을 할퀴는 장면을 묘사하였습니다. 화 가는 이 그림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즉, 삼 손은 사자를 쉽게 손 으로 때려 눕힐 수는 있었지만, 자기 마음에 있는 정욕이라는 사자는 다스리지 못했 다는 점입니다. 삼손의 실 패를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나는 모든 것을 저항할 수 있다. 단 유혹을 제외하고는”이라 고 말해 유혹이 얼마나 강한 적인가를 고백하였습니다. 삼손은 그 유혹에 졌습니다 . 지혜서인 잠언에도 유혹을 경 계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4:23). “자기의 마음을 다 스리는 자는 성 (城)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16:32). 삼손의 실패는 자 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데 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약점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약점을 안다면 그 약점을 그대로 놔 두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 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킬레스의 뒤꿈치처럼 숨길 수 없는 약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약점이 우리 인생을 망치 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지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 저는 예수를 처음 믿고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강사 목사님이 “사람이 자기 약점을 관리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내용으 로 말씀을 전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제 약점 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많은 약점 중에 가장 크게 고민이 되었던 약점이 금 전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 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평생 돈 관리 문제에 실패하지 않기 를 간구했습니다. 저 희 아버지도 돈 문제로 사업과 인생에 실패하 셨기 때문에 제게는 이 문제가 심각 하였습니다. 돈 관리를 철저히 해서 낭비 없이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때 기도하면서 제 마음 속에 몇 가지 결심이 섰습니다. 그것은 저는 돈 관리가 희미하니까 될 수 있는 한 돈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의 모든 금전 문제는 아내가 맡아서 해결합니다. 교회에서도 재정 문제에 대 해서는 일 체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저는 돋寧ㅅ 떨어져 있을 뿐더러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 갖 고 있던 것도 줘 버립니다. 욕심과 반 대되는 행동을 하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저는 목회 사역에서 ㅇ 돈 문제에 관한 한 실수하지 않게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자기의 약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약점을 하나님께 맡기고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해쓴求名ㅅ 삼손의 실패는 자신의 약점을 통제하지 못한 데서 온 비극이었습니다.
껍데기뿐인 신앙
삼손은 신앙의 형식만 유지했을 뿐 신앙의 내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 앞에 일생을 바친 나실인으로서 성결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면 안 되었고 부정한 것을 먹어서도 안 되었습니다. 또한 머리에 삭도 를 대지 않아 하나님께 헌신한 상징을 유지하고 있어야 했습니다(13:4,5 참 조). 삼손은 하나님께 구별된 상징으로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한 약 속은 지켰습니다 . 머리를 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머리만 깎지 않은 것은 형식입니다. 하나님 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성별된 삶 을 사는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헌신한 표시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면서 실제 삶 은 블레셋의 타락한 문화를 그대로 따 랐습니다. 술 마시고 부모 말씀 거역하고 정욕의 지배를 받 아 생활했습니다. 당신은 이런 삼손을 비판하고 정죄합니까 당신의 삶도 삼손과 다 를 바가 없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일날 한 번 겨우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신앙 생활을 끝내는 사람은 삼손에 게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습니다. 주일 아침에 예배드리는 것은 아름 다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삶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 있는 삶입니다. 당신은 가정에서, 직장 에서 그리스도인답게 말씀의 원리를 따라서 생활하고 있습니까 사업 경영을 정직하 게 합니까 이웃과 동료를 사랑하며 진실되게 살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주일 아침에 교회 나오는 것으로 신앙 생활에 만족하며 불신자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면, 삼손과 마찬가지 로 하나님 앞에 전혀 구별되지 않 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삼손은 약점과 더불어 장점도 많았던 사람입니다. 삼손은 힘이 센 장사였습니다. 뿐 만 아니라 머리 도 명석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손 은 수수께끼도 낼 줄 알고 장난도 칠 줄 알았습니다. 머리가 나 쁘면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16장에 보면 삼손은 들릴라와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매수당한 들릴라는 삼손 을 무릎 위에 잠재우면서 그 큰 힘의 비밀을 캐묻습니다. 들릴라와 삼손이 머리 싸움을 합니다. 삼손은 “마르지 아니한 푸른 칡 넝쿨 일곱 가닥으로 나를 묶으면 나는 꼼짝 못 할 거요”(7절 참조)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들 릴라는 칡 넝쿨로 삼손을 묶은 뒤 블레셋 사람들이 온다고 소리쳤 습니다. 그러자 삼손이 쉽게 그 밧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여자는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따지면서 다시 한 번 그 힘의 원천을 물었습니다. 삼손은 이번에는 “쓰지 아니한 새 줄로 나를 묶으 면 나는 꼼짝을 못하오”(11절 참조)라고 말을 지어 냈습니다. 이번에도 들릴라가 삼손의 거짓말에 넘 어갔습니다. 들릴라가 세번째로 삼손에게 묻습니다. 이때도 역시 삼손은 “머리 털 일곱 가닥을 위 선에 섞어 짜면 힘이 없어진다”(13절 참조) 고 꾸며 대었습니다. 이제 들릴라는 여자 특유의 무기를 사용합니다. 눈물을 보이며 삼 손에게 애원합니다 . 당신과 나 사이에 그럴 수가 있나요 나를 사랑한다면 진실을 말해 주어야 하 지 않아요 나를 믿지 못하면 세상에 누구를 믿을 수 있겠어요 날 사랑한다면 그 증거로 당신의 힘의 근원을 말 해 주세요(15,16절 참조). 여자에 약한 삼손이 드디어 진실을 밝힙니다.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 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17절).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르지 말라고 하신 머리카락을 잘리웠습니다. 하나님과 한 서약 을 어겼습니다. 우리는 삼손처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길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직장 생활보다 못한 수준으로 유지해 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마치 취미 생활하 듯이 교회에 나오고, 친구와 내 기 탁구 치는 것보다 못하게 진지 함을 결여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신 사람은 우리를 위해 자 신의 생명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홀대하지 않습니다. 온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깁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까지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 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 이라”(갈 2:20). 바울의 고백이 당신의 신앙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가 평생을 걸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했으면 구체적인 삶의 장 (장)에서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주일날 예배드리 고 성경 조금 읽고 기도 잠깐하면 신앙의 형식은 유지되지만 내용 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없고 감격이 없습니다. 주 님을 향한 뜨거움도,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도 없는 냉랭한 삶이 됩니다. 삼손과 같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삶이 됩니다.
영적 실재에 대한 무지
삼손은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비극적인 구절은 20절 말씀이라 고 생각됩니다.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 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 리 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 라.” 삼손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자신을 사용하 지 않으심을 알지 못한 것이 삼 손의 가장 큰 실패였습니다. 자기의 영적인 상태를 몰랐기 때문에 삼손의 인생이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삼손이 왜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했습니까 그것은 삼손이 서서 히 무너져 갔기 때문입니다. 영국인으로 평신도 신학자이며 역사가이고 문학가이고 변증가였던 C . 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 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결코 벼랑이 아니다. 지옥을 향한 길은 밋 밋한 내리막길이다 . 사람들은 그 길을 기분 좋게 걸어간다.”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벼랑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밑바 닥까지 내려가게 하는 밋밋한 내리막 길입니다. 하나님께 열정을 바치지 않고 주님께 온전한 삶을 바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 조금씩 조금씩 주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이 바로 지옥을 향해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 안 나 가도 별 탈이 없다고 느끼고 기도 안 해도 잘 만 사는 것은 서서 히 신앙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징조입니다. 신앙의 정수를 체험하 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는 날, 기분 좋게 내리막길을 걸은 사람 들은 지옥에서 잠을 깹니다. 자기의 영적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고 평생을 산 사람들의 비극입니다 . 현대 교인들의 최대 위기는 영적 위기감을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생명이 아니 라 죽음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데 비극이 있습니다. 이대로 사는 것은 인생의 허무입니다. 삶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둔감성이 우리 삶 을 파괴하는 주 범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메마른 영혼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 습니다. 통곡하며 금식하며 기도 할 줄 모릅니다. 적당히 살아가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가 영적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영혼이 죽음 시체를 발로 차 보십시오. 반응이 없습니다. 영혼이 죽어 있으면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외쳐도 듣 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영 혼을 소생시키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형식만을 유지하는 삶을 산다면 그 영혼은 죽어 있는 것입니다.
둘째/영혼이 마비됨 영혼이 마비되면 감각이 없습니다. 죽은 것과 별반 다름없습니다. 저는 사데 교회를 향해서 외치는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은 주일 아침에 교회 나와서 적당히 예배드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신앙인의 자세를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나 새로운 삶의 목표를 추구하며 가정에서, 일터에서 , 말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영혼이 마비된 증거입니다 . 인생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삶을 헌신하는 신앙 고백이 없는 이 세대는 삼손 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껍데기뿐인 신 앙 생활은 우리 영혼에 힘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영적으로 무 디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눈앞에 임박 했음을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가 삼손의 비 극이고 우리의 비극입니다.
삼손의 기도
삼손은 생애를 마감하는 무렵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극복하 였습니다. 마침 내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자기 삶을 역전시켜 승리했습니다. 이것이 삼손의 인생입니다. 삼손을 일깨웠던 원동력은 기도였습니다. 삼손의 마지막 기도가 2 8절 말씀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 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 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 ” 삼손은 하나님 앞에 헌신된 나실인이면서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당신도 일 주일 내내 전혀 기도 없이 살다가 주일 예배 때 겨우 형식적으로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날마다 삶을 주님 께 의탁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생활하지 않는다면 삼손처럼 될 위험 이 있습니다. 삼손은 기도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 았습니까 자기 자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갖고 있는 힘과 꾀만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삼손은 두 눈이 빠져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잘렸 기 때문에 힘도 없었습니다. 철 저하게 자기 절망에 부딪친 삼손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 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삼손 이 “주 여호와 여”라고 했을 때, “주”는 아 도나이, 즉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 삼손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라도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믿으 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삼손의 최후는 영광스럽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삼손이 젊고 힘이 넘쳤을 때부터 늘 기도하고 살았 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 쉬움입니다. 건강을 망칠 대로 망쳐 놓고 병원을 찾아가는 사람이 어리석듯이,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다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하나님께 매달 리는 사람도 어리석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달란트와 건강과 학식과 물질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봉사하고 그분의 영광 을 드러내며 살았다면 그 끝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위해 서 일생을 바치는 삶이 아름답고 복된 삶입니다. 그러나 삼손이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 다행입니다. 마지막으로라도 기도한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는 삼손은 목숨 을 걸고 진지하게 기도했습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인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 삼손의 마지 막 신앙 고백 장면을 지켜 보 십시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듣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로써 삼손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 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영웅들 전시장에 삼손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 을 기억하십시오(32절 참조). 저는 삼손의 기도가 이때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손은 그보다 조 금 앞서서 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옥중에 들어가서 두 눈이 뽑히고 맷돌을 3 갈던 순간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 두 눈을 뽑힌 채로 옥중에 들어가서 맷돌을 갈 때 삼손이 무 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삼손은 세상적인 명예와 영광을 얻고 정욕에 사 로잡혀 이기심을 만 족시키기 위해 뛰어다니던 시절에는 기도를 잊고 있었으나, 그 모 든 것을 다 잃고 처절한 피눈물을 흘릴 때 아마 기도가 저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본문에 서 보듯이 기도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봅니다. 지금이 당신에게는 회개해야 할 시간이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더 늦기 전에 돌이키 십시오. 맹목적 인 신앙 생활을 그만두고 진실한 자세로 하나님께 헌신하십시오. 그것이 실패를 극복하고 승리를 얻 을 수 있는 삶의 비결입니다.
정욕의 지배
삼손에게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자에게 약했습니다. 삼손은 힘을 쓸 줄은 알 았으나 그 힘을 다스릴 줄은 몰랐습니다. 삼손 은 청년기 때부터 이 약점을 드러 냈습니다. 14장 1-3절 말씀 을 보십시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도로 올라와서 자 기 부모에게 말 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 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 를 삼게 하소서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 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 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삼손은 자신의 정욕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좋아하는 여자도 같은 민족인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여자 였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구별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께서 어떤 여자를 아내로 삼아야 좋아하실지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반대하는데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했습니다. 자기 감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삼손의 최대 약점이 었습니다. 삼손의 이런 모습은 결정적인 인생의 실패로 나타났습니다. 16장 1절을 보십시오.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 영어 성경으로 보면 삼손이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가서 잤 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아 닌 여자와 성관계를 가졌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문맥 전후 어디를 살펴보더라도 삼손이 주저하는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바른지 그른지 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냥 본능대로 행동 하였습니다. 이 성적인 판단과 사리 분별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삶을 살았습니다. 피터 폴 루벤이라는 화가가 삼손을 주제로 해서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삼손이 사 자와 싸우고 있는 모습인데 두 개의 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첫번째 원은 삼손이 사 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모 습입니다. 삼손에게 제압당하고 있는 사자의 형상입니다. 두번째 원은 사자의 머리가 삼손의 가슴 을 할퀴는 장면을 묘사하였습니다. 화 가는 이 그림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즉, 삼 손은 사자를 쉽게 손 으로 때려 눕힐 수는 있었지만, 자기 마음에 있는 정욕이라는 사자는 다스리지 못했 다는 점입니다. 삼손의 실 패를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나는 모든 것을 저항할 수 있다. 단 유혹을 제외하고는”이라 고 말해 유혹이 얼마나 강한 적인가를 고백하였습니다. 삼손은 그 유혹에 졌습니다 . 지혜서인 잠언에도 유혹을 경 계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4:23). “자기의 마음을 다 스리는 자는 성 (城)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16:32). 삼손의 실패는 자 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데 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약점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약점을 안다면 그 약점을 그대로 놔 두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 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킬레스의 뒤꿈치처럼 숨길 수 없는 약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약점이 우리 인생을 망치 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지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 저는 예수를 처음 믿고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강사 목사님이 “사람이 자기 약점을 관리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내용으 로 말씀을 전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제 약점 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많은 약점 중에 가장 크게 고민이 되었던 약점이 금 전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 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평생 돈 관리 문제에 실패하지 않기 를 간구했습니다. 저 희 아버지도 돈 문제로 사업과 인생에 실패하 셨기 때문에 제게는 이 문제가 심각 하였습니다. 돈 관리를 철저히 해서 낭비 없이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때 기도하면서 제 마음 속에 몇 가지 결심이 섰습니다. 그것은 저는 돈 관리가 희미하니까 될 수 있는 한 돈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의 모든 금전 문제는 아내가 맡아서 해결합니다. 교회에서도 재정 문제에 대 해서는 일 체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저는 돋寧ㅅ 떨어져 있을 뿐더러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 갖 고 있던 것도 줘 버립니다. 욕심과 반 대되는 행동을 하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저는 목회 사역에서 ㅇ 돈 문제에 관한 한 실수하지 않게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자기의 약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약점을 하나님께 맡기고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해쓴求名ㅅ 삼손의 실패는 자신의 약점을 통제하지 못한 데서 온 비극이었습니다.
껍데기뿐인 신앙
삼손은 신앙의 형식만 유지했을 뿐 신앙의 내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 앞에 일생을 바친 나실인으로서 성결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면 안 되었고 부정한 것을 먹어서도 안 되었습니다. 또한 머리에 삭도 를 대지 않아 하나님께 헌신한 상징을 유지하고 있어야 했습니다(13:4,5 참 조). 삼손은 하나님께 구별된 상징으로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한 약 속은 지켰습니다 . 머리를 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머리만 깎지 않은 것은 형식입니다. 하나님 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성별된 삶 을 사는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헌신한 표시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면서 실제 삶 은 블레셋의 타락한 문화를 그대로 따 랐습니다. 술 마시고 부모 말씀 거역하고 정욕의 지배를 받 아 생활했습니다. 당신은 이런 삼손을 비판하고 정죄합니까 당신의 삶도 삼손과 다 를 바가 없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일날 한 번 겨우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신앙 생활을 끝내는 사람은 삼손에 게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습니다. 주일 아침에 예배드리는 것은 아름 다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삶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 있는 삶입니다. 당신은 가정에서, 직장 에서 그리스도인답게 말씀의 원리를 따라서 생활하고 있습니까 사업 경영을 정직하 게 합니까 이웃과 동료를 사랑하며 진실되게 살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주일 아침에 교회 나오는 것으로 신앙 생활에 만족하며 불신자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면, 삼손과 마찬가지 로 하나님 앞에 전혀 구별되지 않 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삼손은 약점과 더불어 장점도 많았던 사람입니다. 삼손은 힘이 센 장사였습니다. 뿐 만 아니라 머리 도 명석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손 은 수수께끼도 낼 줄 알고 장난도 칠 줄 알았습니다. 머리가 나 쁘면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16장에 보면 삼손은 들릴라와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매수당한 들릴라는 삼손 을 무릎 위에 잠재우면서 그 큰 힘의 비밀을 캐묻습니다. 들릴라와 삼손이 머리 싸움을 합니다. 삼손은 “마르지 아니한 푸른 칡 넝쿨 일곱 가닥으로 나를 묶으면 나는 꼼짝 못 할 거요”(7절 참조)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들 릴라는 칡 넝쿨로 삼손을 묶은 뒤 블레셋 사람들이 온다고 소리쳤 습니다. 그러자 삼손이 쉽게 그 밧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여자는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따지면서 다시 한 번 그 힘의 원천을 물었습니다. 삼손은 이번에는 “쓰지 아니한 새 줄로 나를 묶으 면 나는 꼼짝을 못하오”(11절 참조)라고 말을 지어 냈습니다. 이번에도 들릴라가 삼손의 거짓말에 넘 어갔습니다. 들릴라가 세번째로 삼손에게 묻습니다. 이때도 역시 삼손은 “머리 털 일곱 가닥을 위 선에 섞어 짜면 힘이 없어진다”(13절 참조) 고 꾸며 대었습니다. 이제 들릴라는 여자 특유의 무기를 사용합니다. 눈물을 보이며 삼 손에게 애원합니다 . 당신과 나 사이에 그럴 수가 있나요 나를 사랑한다면 진실을 말해 주어야 하 지 않아요 나를 믿지 못하면 세상에 누구를 믿을 수 있겠어요 날 사랑한다면 그 증거로 당신의 힘의 근원을 말 해 주세요(15,16절 참조). 여자에 약한 삼손이 드디어 진실을 밝힙니다.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 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17절).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르지 말라고 하신 머리카락을 잘리웠습니다. 하나님과 한 서약 을 어겼습니다. 우리는 삼손처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길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직장 생활보다 못한 수준으로 유지해 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마치 취미 생활하 듯이 교회에 나오고, 친구와 내 기 탁구 치는 것보다 못하게 진지 함을 결여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신 사람은 우리를 위해 자 신의 생명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홀대하지 않습니다. 온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깁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까지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 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 이라”(갈 2:20). 바울의 고백이 당신의 신앙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가 평생을 걸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했으면 구체적인 삶의 장 (장)에서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주일날 예배드리 고 성경 조금 읽고 기도 잠깐하면 신앙의 형식은 유지되지만 내용 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없고 감격이 없습니다. 주 님을 향한 뜨거움도,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도 없는 냉랭한 삶이 됩니다. 삼손과 같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삶이 됩니다.
영적 실재에 대한 무지
삼손은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비극적인 구절은 20절 말씀이라 고 생각됩니다.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 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 리 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 라.” 삼손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자신을 사용하 지 않으심을 알지 못한 것이 삼 손의 가장 큰 실패였습니다. 자기의 영적인 상태를 몰랐기 때문에 삼손의 인생이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삼손이 왜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했습니까 그것은 삼손이 서서 히 무너져 갔기 때문입니다. 영국인으로 평신도 신학자이며 역사가이고 문학가이고 변증가였던 C . 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 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결코 벼랑이 아니다. 지옥을 향한 길은 밋 밋한 내리막길이다 . 사람들은 그 길을 기분 좋게 걸어간다.”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벼랑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밑바 닥까지 내려가게 하는 밋밋한 내리막 길입니다. 하나님께 열정을 바치지 않고 주님께 온전한 삶을 바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 조금씩 조금씩 주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이 바로 지옥을 향해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 안 나 가도 별 탈이 없다고 느끼고 기도 안 해도 잘 만 사는 것은 서서 히 신앙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징조입니다. 신앙의 정수를 체험하 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는 날, 기분 좋게 내리막길을 걸은 사람 들은 지옥에서 잠을 깹니다. 자기의 영적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고 평생을 산 사람들의 비극입니다 . 현대 교인들의 최대 위기는 영적 위기감을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생명이 아니 라 죽음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데 비극이 있습니다. 이대로 사는 것은 인생의 허무입니다. 삶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둔감성이 우리 삶 을 파괴하는 주 범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메마른 영혼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 습니다. 통곡하며 금식하며 기도 할 줄 모릅니다. 적당히 살아가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가 영적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영혼이 죽음 시체를 발로 차 보십시오. 반응이 없습니다. 영혼이 죽어 있으면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외쳐도 듣 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영 혼을 소생시키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형식만을 유지하는 삶을 산다면 그 영혼은 죽어 있는 것입니다.
둘째/영혼이 마비됨 영혼이 마비되면 감각이 없습니다. 죽은 것과 별반 다름없습니다. 저는 사데 교회를 향해서 외치는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은 주일 아침에 교회 나와서 적당히 예배드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신앙인의 자세를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나 새로운 삶의 목표를 추구하며 가정에서, 일터에서 , 말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영혼이 마비된 증거입니다 . 인생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삶을 헌신하는 신앙 고백이 없는 이 세대는 삼손 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껍데기뿐인 신 앙 생활은 우리 영혼에 힘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영적으로 무 디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눈앞에 임박 했음을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가 삼손의 비 극이고 우리의 비극입니다.
삼손의 기도
삼손은 생애를 마감하는 무렵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극복하 였습니다. 마침 내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자기 삶을 역전시켜 승리했습니다. 이것이 삼손의 인생입니다. 삼손을 일깨웠던 원동력은 기도였습니다. 삼손의 마지막 기도가 2 8절 말씀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 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 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 ” 삼손은 하나님 앞에 헌신된 나실인이면서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당신도 일 주일 내내 전혀 기도 없이 살다가 주일 예배 때 겨우 형식적으로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날마다 삶을 주님 께 의탁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생활하지 않는다면 삼손처럼 될 위험 이 있습니다. 삼손은 기도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 았습니까 자기 자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갖고 있는 힘과 꾀만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삼손은 두 눈이 빠져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잘렸 기 때문에 힘도 없었습니다. 철 저하게 자기 절망에 부딪친 삼손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 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삼손 이 “주 여호와 여”라고 했을 때, “주”는 아 도나이, 즉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 삼손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라도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믿으 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삼손의 최후는 영광스럽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삼손이 젊고 힘이 넘쳤을 때부터 늘 기도하고 살았 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 쉬움입니다. 건강을 망칠 대로 망쳐 놓고 병원을 찾아가는 사람이 어리석듯이,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다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하나님께 매달 리는 사람도 어리석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달란트와 건강과 학식과 물질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봉사하고 그분의 영광 을 드러내며 살았다면 그 끝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위해 서 일생을 바치는 삶이 아름답고 복된 삶입니다. 그러나 삼손이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 다행입니다. 마지막으로라도 기도한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는 삼손은 목숨 을 걸고 진지하게 기도했습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인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 삼손의 마지 막 신앙 고백 장면을 지켜 보 십시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듣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로써 삼손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 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영웅들 전시장에 삼손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 을 기억하십시오(32절 참조). 저는 삼손의 기도가 이때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손은 그보다 조 금 앞서서 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옥중에 들어가서 두 눈이 뽑히고 맷돌을 3 갈던 순간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 두 눈을 뽑힌 채로 옥중에 들어가서 맷돌을 갈 때 삼손이 무 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삼손은 세상적인 명예와 영광을 얻고 정욕에 사 로잡혀 이기심을 만 족시키기 위해 뛰어다니던 시절에는 기도를 잊고 있었으나, 그 모 든 것을 다 잃고 처절한 피눈물을 흘릴 때 아마 기도가 저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본문에 서 보듯이 기도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봅니다. 지금이 당신에게는 회개해야 할 시간이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더 늦기 전에 돌이키 십시오. 맹목적 인 신앙 생활을 그만두고 진실한 자세로 하나님께 헌신하십시오. 그것이 실패를 극복하고 승리를 얻 을 수 있는 삶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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