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토막 살인 사건 (삿19:27-30)
본문
사사기 19장부터 21장에 걸쳐 마지막 사건으로 열 두 토막 살인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19장 1 절을 보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 라고 기록하고 있다. 왕이 없을 때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했던 시기였는가를 밝혀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 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삿 19:1) 레위 인은 하나님 앞에 제사의 임무를 맡은 사람이다. 레위 인인 그가 자기가 사는 에브라임 산 지를 떠나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얻었다. 자기 일을 위해 지정된 장소에 거하는 사람이 아니라 엽색행각을 벌이기 위해 떠돌아 다니는 바람둥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첩도 그에 버금가는 인물 로서 남편이 없을 때에는 다른 남자와 더불어 행음하였다. 끝내는 그 일이 들통이 나자 첩은 베 들레헴 아비집으로 달아나 넉달을 지내게 되었다. 이 레위인은 그래도 첩을 잊지 못하고 베들레 헴으로 첩을 데리러 왔다. 장인은 못난 딸을 찾아와준 사위가 고마워 이런 저런 이유로 붙잡아 두고 극진히 대접하였다. 나흘을 지내고 떠나려 하니 장인이 그를 붙잡아 하루를 더 유하고 닷새 째 되는 날 밤에 출발하였다.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 편에 이 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 였더라(삿 19:10) 여부스 맞은 편, 지금 예루살렘에 와 있다. 거기는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 근처이다. 거기에 와서 어디에 들어갈려고 해도 아무도 받아주지를 않았다. 노숙을 하게 생겼는데 한 노인이 다가와 우리집에 와서 유하시오 해서 그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밤에 문제가 생긴다.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 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 가 그를 상관하리라 집 주인이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 된 일을 행치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 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삿 19:22-24)
이 말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룻의 가정에 천사 둘이 들어왔을 때 그 동네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상황과 똑같다. 상관하리라 이 말이 무서운 말이다. 범죄는 언제나 성적인 문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성적문란의 극치가 동성연애이다.여자를 달라고 하지않고 남자를 내놓으라 고 한다. 롯 의 경우도 그러했다. 여기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이 있다. 두 딸을 내어 줄테니 이 딸들을 마음대 로 할망정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라 그렇게 끔찍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의 간곡한 부탁과 강경함을 인해서 레위인의 첩이 나가게 된다. 첩이 대신 나가고 남자 레위인은 안나간다. 그의 주인이 일찌기 일어나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 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 어 열 두덩이에 나누고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며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 로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삿 19:27-29) 이 사람이 화가 나서 첩의 시신을 열 두 토막으로 만들어 각 지파에 보낸 것이다. 모든 지파가 분개하라고 보낸 것이다. 이스라엘 회중이 모였다. 일의 대략이 밝혀졌다. 모든 지파는 베냐민 지파를 멸하기까지는 고향에 되돌아가지도 말자 결의하고 그들과의 싸움에 나섰다.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찌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 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려뜨렸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 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올 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 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 라 하시니라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베냐 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려뜨렸으니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여호와께 물으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 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 라(삿 19:18-28) 이상스럽게 하나님께 묻고 나가 싸우는데 이스라엘은 첫날에는 이만 이천명이, 둘째날에는 일만 팔천명이 죽는 패배를 당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베냐민 자손을 어떻게 속이는가 하면 매복을 시 켜두고 싸우다 지는 척하여 후퇴했다가 다시 쫓아나와 베냐민 자손을 공격하였다. 그날은 이스라 엘이 이겼다. 베냐민 육백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달을 지내었더라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본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삿 20:47)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 하리라 하였더라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 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 통곡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이튿날에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거기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 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여호와 앞에 올라 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 파가 끊쳤도다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 도다(삿 21:1-7) 베냐민을 죽이기로 하고 베냐민을 죽이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를 받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한 참 죽이다가 보니까 육백명 밖에 남지 않아 곧 한 지파가 없어지게 생겼다. 여자들은 이미 다 죽 었고 남자들만 육백명이 남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맹세할 때에 여기에 올라오지 않은 사람이 누구냐 를 묻는 것이다. 또 가로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사람도 전에 이르러 총회에 참예치 아니하였으니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삿 21:8-9) 그래서 야베스 길르앗 사람을 다 죽이고 결혼 안한 사람은 잡아다 주었다. 그들은 맹세를 안했기 때문이다. 안올라 온 사람은 죽이고 맹세를 안했으니까 아내를 줄 수 있다.
그런데도 모자랐다. 회중 장로들이 가로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 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 또 가로되 베냐민의 도망하여 면한 자에 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느니라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 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가로되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 리라 하였음이로다 또 가로되 보라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 로 올라가는 큰 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하고 베냐민 자 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 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찌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을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 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삿 21:16-22) 이들은 베냐민족속들에게 약탈결혼을 시키는 것이다. 사사기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한 시대 상 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경고하는 것이다. 이 일의 발단은 레위 사람에 의하여 일어난다. 그는 자신이 당한 일의 원통함을 인하여 시체를 열 두 토막을 내었다. 하나님의 첫번째 고소는 레위인이 자기가 그 짓을 할만큼 잘난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레위 인이 첩을 얻어도 되는 것인가 자신이 첩을 취하는 행동은 옳고 첩을 능욕하 여 죽게한 저들의 처사만이 나쁜 것인가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삿20:6)
둘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책망이다. 이것은 사건 전반에 걸친 이스라엘의 영적 수준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다. 기브아 사람이 이 못된 짓을 했을망정 에브라임에 살던 레위 인이 이 짓을 할만큼이면 주위가 다 정당하게 경건하게 사는데 레위 인이 실수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말인가 모든 신자가 다 떳떳하게 살았는데도 목사가 첩을 데리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레위 인 이 실수를 해도 눈 감을 수 있는 정도라면 바깥은 말할 수 없을만큼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와서 시체를 열 두 토막을 내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니까 모두가 자기가 하는 실 수에 대하여는 잘못이라는 개념이 없고 자기가 안한 실수를 남이 한데는 하나님 편에 서서 울부 짖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병사를 모으고 베냐민 지파에게 첩을 욕보여 죽게한 비류들을 내어주어 벌함으로 이스라엘에서 그와 같은 죄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베냐민족속 은 이 요구를 거절하고 싸울 채비를 했다. 베냐민은 우리가 정당하다는 것이다. 잘못을 회개치 않 고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또 어떠한가 그것이 어디서부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 느냐에 관계없이 꺼내어 놓은 것은 앞뒤를 딱 잘라서 그 사건 하나만으로 언제나 하나님 이다. 하나님께서 시체를 이렇게 자르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화를 내실 것인가 하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참예하지 않는 자는 다 나쁜 사람들이고 다 죽이자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 시체를 이렇게 자르도록 만든 저 기브아 베냐민 사람을 다 죽이자! 거의 죽이고 승리가 가 까와 오자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맹세 를 해놓았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 뜻이 아니었다.
다시 그 지파를 살리기 위해 길르앗 야베스 족속을 죽이고 그들의 여인들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약탈결혼까지 시킨다. 싸움 중간에 재미있는 대목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그들은 언제나 통곡 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말도 안되는 짓을 하면서 통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야말로 죽어 마땅한 자들이다. 딴짓하고 왔지만 그들은 정당하다. 자기네들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여자를 그가 욕보인 것도 아니고 비록 뒤에 딴 짓을 했을지언정 지금은 얼마나 정당하고 떳떳한지 모른다. 하나님이 이 대목을 어 떻게 처리하시는지를 보자. 하나님, 이 싸움을 누구로부터 올라가리이가 유다부터 올라가라. 하나님이 올라가야 하는 데. 하며 올라가서 오히려 패하고 돌아온다. 하나님 이게 웬일입니까 우리가 또 올라가야 합 니까 올라가라. 내가 편을 들어 주겠다 또 올라갔다가 패배하고 돌아온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베냐민 편도, 이스라엘 편도 아니다. 이편을 들어서 이쪽을 패고, 저쪽을 들어 저쪽을 패신다. 이제사시기 21장의 결론 을 보자.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 라(삿 21:25) 우리가 사사기 1장을 시작하면서 다루었던 보김이라는 지명을 기억하는가 그들이 통곡했던 장 소, 그들은 스스로의 가증스러움을 모르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게 있다면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바치지 않는한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힘겹게 한다하더라도 그 것은 사기에 불과하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 앞에 바치느냐 안바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들 스스로 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첩도 그에 버금가는 인물 로서 남편이 없을 때에는 다른 남자와 더불어 행음하였다. 끝내는 그 일이 들통이 나자 첩은 베 들레헴 아비집으로 달아나 넉달을 지내게 되었다. 이 레위인은 그래도 첩을 잊지 못하고 베들레 헴으로 첩을 데리러 왔다. 장인은 못난 딸을 찾아와준 사위가 고마워 이런 저런 이유로 붙잡아 두고 극진히 대접하였다. 나흘을 지내고 떠나려 하니 장인이 그를 붙잡아 하루를 더 유하고 닷새 째 되는 날 밤에 출발하였다.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 편에 이 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 였더라(삿 19:10) 여부스 맞은 편, 지금 예루살렘에 와 있다. 거기는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 근처이다. 거기에 와서 어디에 들어갈려고 해도 아무도 받아주지를 않았다. 노숙을 하게 생겼는데 한 노인이 다가와 우리집에 와서 유하시오 해서 그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밤에 문제가 생긴다.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 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 가 그를 상관하리라 집 주인이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 된 일을 행치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 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삿 19:22-24)
이 말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룻의 가정에 천사 둘이 들어왔을 때 그 동네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상황과 똑같다. 상관하리라 이 말이 무서운 말이다. 범죄는 언제나 성적인 문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성적문란의 극치가 동성연애이다.여자를 달라고 하지않고 남자를 내놓으라 고 한다. 롯 의 경우도 그러했다. 여기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이 있다. 두 딸을 내어 줄테니 이 딸들을 마음대 로 할망정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라 그렇게 끔찍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의 간곡한 부탁과 강경함을 인해서 레위인의 첩이 나가게 된다. 첩이 대신 나가고 남자 레위인은 안나간다. 그의 주인이 일찌기 일어나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 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 어 열 두덩이에 나누고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며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 로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삿 19:27-29) 이 사람이 화가 나서 첩의 시신을 열 두 토막으로 만들어 각 지파에 보낸 것이다. 모든 지파가 분개하라고 보낸 것이다. 이스라엘 회중이 모였다. 일의 대략이 밝혀졌다. 모든 지파는 베냐민 지파를 멸하기까지는 고향에 되돌아가지도 말자 결의하고 그들과의 싸움에 나섰다.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찌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 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려뜨렸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 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올 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 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 라 하시니라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베냐 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려뜨렸으니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여호와께 물으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 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 라(삿 19:18-28) 이상스럽게 하나님께 묻고 나가 싸우는데 이스라엘은 첫날에는 이만 이천명이, 둘째날에는 일만 팔천명이 죽는 패배를 당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베냐민 자손을 어떻게 속이는가 하면 매복을 시 켜두고 싸우다 지는 척하여 후퇴했다가 다시 쫓아나와 베냐민 자손을 공격하였다. 그날은 이스라 엘이 이겼다. 베냐민 육백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달을 지내었더라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본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삿 20:47)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 하리라 하였더라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 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 통곡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이튿날에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거기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 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여호와 앞에 올라 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 파가 끊쳤도다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 도다(삿 21:1-7) 베냐민을 죽이기로 하고 베냐민을 죽이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를 받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한 참 죽이다가 보니까 육백명 밖에 남지 않아 곧 한 지파가 없어지게 생겼다. 여자들은 이미 다 죽 었고 남자들만 육백명이 남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맹세할 때에 여기에 올라오지 않은 사람이 누구냐 를 묻는 것이다. 또 가로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사람도 전에 이르러 총회에 참예치 아니하였으니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삿 21:8-9) 그래서 야베스 길르앗 사람을 다 죽이고 결혼 안한 사람은 잡아다 주었다. 그들은 맹세를 안했기 때문이다. 안올라 온 사람은 죽이고 맹세를 안했으니까 아내를 줄 수 있다.
그런데도 모자랐다. 회중 장로들이 가로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 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 또 가로되 베냐민의 도망하여 면한 자에 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느니라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 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가로되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 리라 하였음이로다 또 가로되 보라 벧엘 북편, 르보나 남편 벧엘에서 세겜으 로 올라가는 큰 길 동편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하고 베냐민 자 손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그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 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찌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을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 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삿 21:16-22) 이들은 베냐민족속들에게 약탈결혼을 시키는 것이다. 사사기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한 시대 상 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경고하는 것이다. 이 일의 발단은 레위 사람에 의하여 일어난다. 그는 자신이 당한 일의 원통함을 인하여 시체를 열 두 토막을 내었다. 하나님의 첫번째 고소는 레위인이 자기가 그 짓을 할만큼 잘난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레위 인이 첩을 얻어도 되는 것인가 자신이 첩을 취하는 행동은 옳고 첩을 능욕하 여 죽게한 저들의 처사만이 나쁜 것인가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삿20:6)
둘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책망이다. 이것은 사건 전반에 걸친 이스라엘의 영적 수준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다. 기브아 사람이 이 못된 짓을 했을망정 에브라임에 살던 레위 인이 이 짓을 할만큼이면 주위가 다 정당하게 경건하게 사는데 레위 인이 실수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말인가 모든 신자가 다 떳떳하게 살았는데도 목사가 첩을 데리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레위 인 이 실수를 해도 눈 감을 수 있는 정도라면 바깥은 말할 수 없을만큼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와서 시체를 열 두 토막을 내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니까 모두가 자기가 하는 실 수에 대하여는 잘못이라는 개념이 없고 자기가 안한 실수를 남이 한데는 하나님 편에 서서 울부 짖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병사를 모으고 베냐민 지파에게 첩을 욕보여 죽게한 비류들을 내어주어 벌함으로 이스라엘에서 그와 같은 죄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베냐민족속 은 이 요구를 거절하고 싸울 채비를 했다. 베냐민은 우리가 정당하다는 것이다. 잘못을 회개치 않 고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또 어떠한가 그것이 어디서부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 느냐에 관계없이 꺼내어 놓은 것은 앞뒤를 딱 잘라서 그 사건 하나만으로 언제나 하나님 이다. 하나님께서 시체를 이렇게 자르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화를 내실 것인가 하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참예하지 않는 자는 다 나쁜 사람들이고 다 죽이자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 시체를 이렇게 자르도록 만든 저 기브아 베냐민 사람을 다 죽이자! 거의 죽이고 승리가 가 까와 오자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맹세 를 해놓았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 뜻이 아니었다.
다시 그 지파를 살리기 위해 길르앗 야베스 족속을 죽이고 그들의 여인들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약탈결혼까지 시킨다. 싸움 중간에 재미있는 대목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그들은 언제나 통곡 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말도 안되는 짓을 하면서 통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야말로 죽어 마땅한 자들이다. 딴짓하고 왔지만 그들은 정당하다. 자기네들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여자를 그가 욕보인 것도 아니고 비록 뒤에 딴 짓을 했을지언정 지금은 얼마나 정당하고 떳떳한지 모른다. 하나님이 이 대목을 어 떻게 처리하시는지를 보자. 하나님, 이 싸움을 누구로부터 올라가리이가 유다부터 올라가라. 하나님이 올라가야 하는 데. 하며 올라가서 오히려 패하고 돌아온다. 하나님 이게 웬일입니까 우리가 또 올라가야 합 니까 올라가라. 내가 편을 들어 주겠다 또 올라갔다가 패배하고 돌아온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베냐민 편도, 이스라엘 편도 아니다. 이편을 들어서 이쪽을 패고, 저쪽을 들어 저쪽을 패신다. 이제사시기 21장의 결론 을 보자.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 라(삿 21:25) 우리가 사사기 1장을 시작하면서 다루었던 보김이라는 지명을 기억하는가 그들이 통곡했던 장 소, 그들은 스스로의 가증스러움을 모르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게 있다면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바치지 않는한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힘겹게 한다하더라도 그 것은 사기에 불과하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 앞에 바치느냐 안바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들 스스로 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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