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시대의 극단적인 행동들 (삿19:27-30)
본문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과가 왜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 날 때마다 책임을 물을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을 맹렬히 비난 합니다. 어떻게 그 럴 수가 있느냐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는 그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 들입니다. 그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연대적인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한 방식이 바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과 부패와 함께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사고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금력으로 자식의 성적을 조작하기도 하며, 안되는 것도 뇌물을 먹이면 잘되는 사회가 우리가 사는 사회이며,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들 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한 민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 파와 다른 이스라엘 전 지파와 전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배냐민 지 파가 대 패해서 이 전쟁에서 베냐민 지파의 장정 (삿20: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 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일백 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겨우 육백명이 광야로 도망하였고, (삿20: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그리고 (삿2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 이러한 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은 19장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소돔을 연상케 합니다. 레위인이 첩을 취함 그 첩이 행음하고 도망하여 베들레헴 어버지 집으로 감-넉달이 지나도 오지 않자 찾으러 감 장인과 닷세를 먹고 마심-안식일이 다 되도록 취하여 있음 늦게 출발하여 여부스(예루살렘)에 와서 해가 진지라 이방인의 거주지에 거하는 것보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마을로 가기위해 베내민 지파 기브아 로 감 그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는데 노인이 그를 영접하여 집으로 데리고 감 밤에 비류들이 와서 시비함(22절)-남색하는 자들이다. 첩을 내놓자 밤 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에 놓음-첩이 죽음 레위인이 첩을 데려다가 시체를 토막내어 이사라엘 각 지파로 보냄 20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알고 미스바에 사십만 집결하여 보고 받고 즉시 전쟁을 결정하여 유다지파가 선봉이 되어 베냐민과 전쟁하여 일차 대 패함(22000명 희생) 이차에서 이스라엘 18000명 희생 삼차에서 이김-베냐민 지파 25100명 희생, 성이 불타고 600명 살아남아 도망 감 성도 여러분! 이렇게 부패하고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행동의 결정사항이 가장 극단적이고, 조급하면서도 비신앙적인 결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2. 왕이 없는 시대의 사람들의 삶 (삿19:1)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라고 그 시대의 배경을 말하 고 있습니다. 왕이 없다는 것은 통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삿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한국의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여기에 있는 여러분과 나는 어떻습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거나 자기 소견에 옳은 데로 신앙생활 한다고나 하지 않의십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데로 행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에 의하여 살아가지 않고 주님의 뜻과는 상관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고 종교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있는데, 교회당은 나가서 예배는 드리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하여 전혀 감동이나 적 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종말은 결국 이렇게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의 삶에 이루어 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빛이 나게 됩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의 사례를 거부한 것은 부패한 시대에 참다운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는 돈으로 된 것이 아니 라 거져 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면, 게하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데 절대적으로 방해하는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게하시가 선생님 몰래 나아만에게 예물을 달라고 하여 받은 것처럼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게하시 적입니까 결국은 나아만 의 문둥병이 그에게 들게 되었습니다.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패한 시대에 우리의 행실 은 깨끗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왕이 없는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 처럼, 예수 없는 사람들의 행동 은 그 열매가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백성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백성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4. 삶이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십시 요.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없습니다. 전 쟁을 할 때에도 무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숫자적으로 이기려 하며, 전쟁에 나아갈 때에도 자신들의 용 기와 힘으로 싸움에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결정은 언제나 가장 극단적인 편을 택합니다. 이 것은 절 대로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징계에는 긍휼과 자비가 함께 역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극단에는 긍휼과 자비가 없고, 또 회개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중 베드로가 대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잘라 버렸습니다. 참으로 극단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이렇게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셀롯당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의 행동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눅9: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 니하는지라(눅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 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9: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이렇게 제자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려고 하나 주님은 그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찾는 한가지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극단적인 방법은 피하는 것입니다. (딤후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 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3) 무정하며 원통함 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 니하며(딤후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성도 여러분! 시대가 악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자기 방법으로 행하고 산다 할지 라도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법이며, 주님의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우리 의 즐거움이 되어야 하며, 삶의 어려운 문제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십시요. 그 누구에게도 유익이 없는 것이며, 이스라 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를 이기도고 한 지파를 없에 버린 그들의 결단을 후해하고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은 언제나 후해가 있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여 썩어져 가는 세대에 , 어두어져 가는 이 세대에 궁창의 별과 같이 빛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는 그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 들입니다. 그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연대적인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한 방식이 바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과 부패와 함께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사고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금력으로 자식의 성적을 조작하기도 하며, 안되는 것도 뇌물을 먹이면 잘되는 사회가 우리가 사는 사회이며,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들 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한 민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 파와 다른 이스라엘 전 지파와 전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배냐민 지 파가 대 패해서 이 전쟁에서 베냐민 지파의 장정 (삿20: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 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일백 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겨우 육백명이 광야로 도망하였고, (삿20: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그리고 (삿2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 이러한 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은 19장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소돔을 연상케 합니다. 레위인이 첩을 취함 그 첩이 행음하고 도망하여 베들레헴 어버지 집으로 감-넉달이 지나도 오지 않자 찾으러 감 장인과 닷세를 먹고 마심-안식일이 다 되도록 취하여 있음 늦게 출발하여 여부스(예루살렘)에 와서 해가 진지라 이방인의 거주지에 거하는 것보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마을로 가기위해 베내민 지파 기브아 로 감 그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는데 노인이 그를 영접하여 집으로 데리고 감 밤에 비류들이 와서 시비함(22절)-남색하는 자들이다. 첩을 내놓자 밤 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에 놓음-첩이 죽음 레위인이 첩을 데려다가 시체를 토막내어 이사라엘 각 지파로 보냄 20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알고 미스바에 사십만 집결하여 보고 받고 즉시 전쟁을 결정하여 유다지파가 선봉이 되어 베냐민과 전쟁하여 일차 대 패함(22000명 희생) 이차에서 이스라엘 18000명 희생 삼차에서 이김-베냐민 지파 25100명 희생, 성이 불타고 600명 살아남아 도망 감 성도 여러분! 이렇게 부패하고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행동의 결정사항이 가장 극단적이고, 조급하면서도 비신앙적인 결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2. 왕이 없는 시대의 사람들의 삶 (삿19:1)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라고 그 시대의 배경을 말하 고 있습니다. 왕이 없다는 것은 통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삿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한국의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여기에 있는 여러분과 나는 어떻습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거나 자기 소견에 옳은 데로 신앙생활 한다고나 하지 않의십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데로 행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에 의하여 살아가지 않고 주님의 뜻과는 상관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고 종교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있는데, 교회당은 나가서 예배는 드리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하여 전혀 감동이나 적 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종말은 결국 이렇게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의 삶에 이루어 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빛이 나게 됩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의 사례를 거부한 것은 부패한 시대에 참다운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는 돈으로 된 것이 아니 라 거져 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면, 게하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데 절대적으로 방해하는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게하시가 선생님 몰래 나아만에게 예물을 달라고 하여 받은 것처럼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게하시 적입니까 결국은 나아만 의 문둥병이 그에게 들게 되었습니다.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패한 시대에 우리의 행실 은 깨끗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왕이 없는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 처럼, 예수 없는 사람들의 행동 은 그 열매가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백성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백성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4. 삶이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십시 요.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없습니다. 전 쟁을 할 때에도 무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숫자적으로 이기려 하며, 전쟁에 나아갈 때에도 자신들의 용 기와 힘으로 싸움에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결정은 언제나 가장 극단적인 편을 택합니다. 이 것은 절 대로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징계에는 긍휼과 자비가 함께 역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극단에는 긍휼과 자비가 없고, 또 회개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중 베드로가 대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잘라 버렸습니다. 참으로 극단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이렇게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셀롯당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의 행동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눅9: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 니하는지라(눅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 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9: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이렇게 제자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려고 하나 주님은 그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찾는 한가지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극단적인 방법은 피하는 것입니다. (딤후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 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3) 무정하며 원통함 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 니하며(딤후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성도 여러분! 시대가 악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자기 방법으로 행하고 산다 할지 라도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법이며, 주님의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우리 의 즐거움이 되어야 하며, 삶의 어려운 문제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십시요. 그 누구에게도 유익이 없는 것이며, 이스라 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를 이기도고 한 지파를 없에 버린 그들의 결단을 후해하고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은 언제나 후해가 있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여 썩어져 가는 세대에 , 어두어져 가는 이 세대에 궁창의 별과 같이 빛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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