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24:14-18)
본문
거룩한 성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 이 복된 주일 낮 예배를 통 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후 풍요 속에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한 결단의 말씀입니다. 또한 여호수아 개인으로 보아서는 고별설교 입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이끈 지도자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쓰임 받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 라엘 백성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세겜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면 서 하나님을 경험한 세 곳이 있습니다.
1 길갈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후 여리 고를 공격하기 전에 공경준비한 곳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요단강은 죽음을 상기시키는 곳입니다. 사실 지금의 요단강은 냇가와 같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요단강을 도하할 그 때는 분명히 깊고 넓은 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강을 하나님의 은혜로 건너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길갈은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곳입니다. 또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입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를 나타 냅니다. 세례는 구원받은 성도가 온 회중 앞에서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하는 선언입니다. 즉 길갈 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결심한 장소입니다.
2 실로 입니다. 실로는 이스 라엘 백성이 회막을 건축한 곳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회막에서만 만나셨습니다. 실로는 하나님과 만나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교제의 장소입니다. 또한 인생의 삶을 살다가 실로에 가서 잘못된 나의 삶을 교정 받는 곳입니다. 인생의 방향을 잃고 방황할 때 교회로 나아 오십시오 우리 주님이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십니다. 피곤할 때, 의기 소침할 때, 근심 걱정에 싸 였을 때 교회로 나오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피곤한 육체에 새힘을 주시고, 의기소침한 자에게 용 기를 주십니다. 근심 걱정에 싸인 자에게 평화와 기쁨으로 인도하십니다. 즉 실로는 만남의 장소 요, 인생을 교정 받는 곳입니다.
3 세겜 입니다. 세겜은 그리심산과 에벨산 사이 넓은 골짜기입니다. 세겜은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로 가나안에 처음 도착한 곳입니다. ⓑ 야곱이 하나님 께 헌신한 곳입니다. ⓒ 오늘 본문에 여호수아가 하나님만 믿기로 결심한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의 인생을 교정 받아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수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 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만이 믿음의 대상이라고 선포합니다.
(예화) 몇년전 노르웨이의 오슬리에서 자유진영의 청년들이 모여서 세계 청년대회를 가졌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청년의 최고의 문제는 무엇인가 를 토론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우리 청춘과 젊음과 목숨을 불태울만한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20세 기의 청년입니다. 어쩌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어느 기독교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 만 위해 사는 이기주의는 너무 좁다. 좀더 넓혀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이타주의 도 좁다 좀더 넓혀라. 민족을 위해 사는 민족주의도 너무 좁다 좀더 넓혀라. 온 인류를 위해 사는 박애주의자가 되라 그것도 좁다. 인간을 지으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위해 살라. 하나님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장 넓은 삶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넓은 마음으로 넓은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말의 의미는
첫째로 우상을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보 다 더 많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화)미국 어느 극장에서 이런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한 가족 의 일대기입니다. 할아버지는 예수제일의 신앙인으로 철저히 주일을 성수주일하시고, 삶자체가 교회 중심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일 중심의 사람입니다. 일이 우성이요, 교회는 두번째였습니다. 아들 대에 와서는 엔조이, 취미, 오락중심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삶을 살면서 영화는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본 미국인들이 극장을 떠날 줄 모르며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화는 곧 자신들의 가정역사를 보는 것 같아서 입니다. 이렇게 기도가 쌓인 가정은 돌아 오는 역사가 있습니다. 마귀는 서서히 성도를 잠식시킵니다. 우리도 우상의 요소를 온전히 버리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말씀 중심의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이 없으면 급속하게 타락합니다. 특별히 성도는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국이 200년역 사에 세계 제 1의 나라가 된 것은 청교도의 말씀중심의 삶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케네디 대 통령은 미국타락의 주법입니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성경공부 하는 것과 예배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청교도들은 미국개척시 최고 먼저 교회를 건축하고, 두 번째 학교를 건축하고, 마지막으로 개인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학 교에서 성경공부와 예배와 기도를 없애버렸습니다. 그후로 미국은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또한 명의 법인이 있는데 그는 유명한 교육학자 죤듀이입니다. 그는 학생의 체벌을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비 성서적입니다. 또 가난한 부모의 자녀는 국가가 맡아서 양육해야한다고 해서 부모와 자녀를 떠어 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인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사람은 동물과 같이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좀 배고파도 부모의 사랑을 먹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 인간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영화 속에 나오는 일 중심의 아버 지 같고, 풍요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 같으며, 자녀를 사랑으로 바로 양육하지 못 한 죤듀이의 이론에 물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죄된 모습을 회개하고, 우리도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를 책임져 주십니다. 할렐루야 !
1 길갈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후 여리 고를 공격하기 전에 공경준비한 곳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요단강은 죽음을 상기시키는 곳입니다. 사실 지금의 요단강은 냇가와 같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요단강을 도하할 그 때는 분명히 깊고 넓은 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강을 하나님의 은혜로 건너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길갈은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곳입니다. 또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입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를 나타 냅니다. 세례는 구원받은 성도가 온 회중 앞에서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하는 선언입니다. 즉 길갈 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결심한 장소입니다.
2 실로 입니다. 실로는 이스 라엘 백성이 회막을 건축한 곳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회막에서만 만나셨습니다. 실로는 하나님과 만나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교제의 장소입니다. 또한 인생의 삶을 살다가 실로에 가서 잘못된 나의 삶을 교정 받는 곳입니다. 인생의 방향을 잃고 방황할 때 교회로 나아 오십시오 우리 주님이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십니다. 피곤할 때, 의기 소침할 때, 근심 걱정에 싸 였을 때 교회로 나오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피곤한 육체에 새힘을 주시고, 의기소침한 자에게 용 기를 주십니다. 근심 걱정에 싸인 자에게 평화와 기쁨으로 인도하십니다. 즉 실로는 만남의 장소 요, 인생을 교정 받는 곳입니다.
3 세겜 입니다. 세겜은 그리심산과 에벨산 사이 넓은 골짜기입니다. 세겜은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로 가나안에 처음 도착한 곳입니다. ⓑ 야곱이 하나님 께 헌신한 곳입니다. ⓒ 오늘 본문에 여호수아가 하나님만 믿기로 결심한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의 인생을 교정 받아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수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 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만이 믿음의 대상이라고 선포합니다.
(예화) 몇년전 노르웨이의 오슬리에서 자유진영의 청년들이 모여서 세계 청년대회를 가졌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청년의 최고의 문제는 무엇인가 를 토론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우리 청춘과 젊음과 목숨을 불태울만한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20세 기의 청년입니다. 어쩌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어느 기독교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 만 위해 사는 이기주의는 너무 좁다. 좀더 넓혀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이타주의 도 좁다 좀더 넓혀라. 민족을 위해 사는 민족주의도 너무 좁다 좀더 넓혀라. 온 인류를 위해 사는 박애주의자가 되라 그것도 좁다. 인간을 지으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위해 살라. 하나님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장 넓은 삶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넓은 마음으로 넓은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말의 의미는
첫째로 우상을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보 다 더 많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화)미국 어느 극장에서 이런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한 가족 의 일대기입니다. 할아버지는 예수제일의 신앙인으로 철저히 주일을 성수주일하시고, 삶자체가 교회 중심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일 중심의 사람입니다. 일이 우성이요, 교회는 두번째였습니다. 아들 대에 와서는 엔조이, 취미, 오락중심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삶을 살면서 영화는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본 미국인들이 극장을 떠날 줄 모르며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화는 곧 자신들의 가정역사를 보는 것 같아서 입니다. 이렇게 기도가 쌓인 가정은 돌아 오는 역사가 있습니다. 마귀는 서서히 성도를 잠식시킵니다. 우리도 우상의 요소를 온전히 버리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말씀 중심의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이 없으면 급속하게 타락합니다. 특별히 성도는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국이 200년역 사에 세계 제 1의 나라가 된 것은 청교도의 말씀중심의 삶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케네디 대 통령은 미국타락의 주법입니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성경공부 하는 것과 예배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청교도들은 미국개척시 최고 먼저 교회를 건축하고, 두 번째 학교를 건축하고, 마지막으로 개인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학 교에서 성경공부와 예배와 기도를 없애버렸습니다. 그후로 미국은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또한 명의 법인이 있는데 그는 유명한 교육학자 죤듀이입니다. 그는 학생의 체벌을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비 성서적입니다. 또 가난한 부모의 자녀는 국가가 맡아서 양육해야한다고 해서 부모와 자녀를 떠어 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인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사람은 동물과 같이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좀 배고파도 부모의 사랑을 먹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 인간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영화 속에 나오는 일 중심의 아버 지 같고, 풍요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 같으며, 자녀를 사랑으로 바로 양육하지 못 한 죤듀이의 이론에 물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죄된 모습을 회개하고, 우리도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를 책임져 주십니다. 할렐루야 !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