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붕괴되는 사회 (삿2:16-23)

본문

이스라엘의 첫번째 큰 죄가 하나님을 떠나 말못하는우상들 을 섬기는 것이었다면 두번째 타락의 영역은 극도의 도덕적 문란과 시회적 무질서였습니다. 법과 질서가 발에 짓밟 혀서 더 이상 범람하는 악을 막거나 처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도덕적 붕괴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같은 이스라엘 사회의 혼란상을 예시하는 실례들이 사사기 19-21장까지 에 실린 사건들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와 해결책이 사시기 2;16-3:6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가 당면한 상황은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사기가 사악한 백성들의 악행들을 열거한 목록이 아니고 어두운 죄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났 음을 알리는 메시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려진 은 혜와 구원과 부흥의 메세지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포착해야만 사사기 시대를 비로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가 궁극적으로 우리들에게 가리키는 지표는 이스라엘의 참된 구원자이 시며 모든 죄인들의 유일한 구주이신 그리스도입니다. 법으로 다스릴 수 없는 당시의 사회 사사기의 마지막 세 장은 심장이 약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너무도 부담스럽습니다. 여기 에서 표출된 이야기는 성경 전체에서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극심한 도덕적 타락 사건입니다. 본문의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목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스라 엘의 도덕적 퇴행은 부도덕이 온 사회에 전염병처럼 퍼질 때까지 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현 상은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의 대량 살인과 법치 사회의 와해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본 단 원은 세 항목으로 자연스럽게 나뉘어집니다.
첫째,항목에서는 한 레위인의 첩이 집단 강간을 당하고 죽게되는 끔찍한 이야기가 나옵니다(19:1-30절). 본문의 레위인은 미가와 같은 지역에서 온 사람이었는데(19:9,10). 그래서 도중 에 베냐민 지파에게 속한 기브아 성읍에서 자고 가야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들 중에서 그들을 맞이해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다해히 에브라임에서 온 한 노인이 성읍 광장에서 서성 대는 이 일행을 보고 자기 집으로 맞아 유숙하게 하였습니다(19:12-21절). 그런데 이 때에 베냐민 사람들이 레위인을 보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베냐민 사람들의 일당은 분명 동성 연애자들이었는데 레위인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준 노인의 집에 몰려와서 문을 두드리며 그의 방문자를 강간하겠다고 야단을 피웠습니다(19:22). 그러자 그 노인은 자기 손님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해서는 안된다고 무리들에게 말하고 그 대신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어줄테니 마음대로 하라고 제안하였습니다! 노인은 분명 베내민의 불량 배들이 자기 딸을 강간하는 편이 레위인을 겁탈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동성 연애자들은 계속 레위인을 원하면서 노인의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레위인은 자기가 빠지기 위하여 자신의 첩을 밖으로 내밀어 주었습니다. 레위인을 강간 하겠다던 그 불량배들은 그의 첩을 보자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19:25) 새벽 에 풀어주었습니다. 레위인이 아침에 나와보니 그의 첩이 집 문에 엎드려 죽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시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 열 두 토막을 내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게 보내고 이 잔혹한 악행에 대한 보복을 호소하였습니다(19:26-30)
둘째, 항목에서는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를 대량 확살하는 보복 조치가 나옵니다 (20:1-48). 이스라엘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40만 명이 미스바에 집결하여 베냐민 지파에 게 범인들을 넘겨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이를 거절해 버렸습니다. 이것 을 자기 지파의 구성원에 대한 굴절된 보호심의 소치였습니다. 그리하여 시민 전쟁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26,700명에 불과했지만 숫적으로 휠씬 우세한 이스라엘 군대는 10%에 해당하는 40,000명의 사상자를 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세 번째 여호와로부터 승리의 약속을 받고 마침내 기브아를 탈취하고 베냐민 군대를 패주케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복수는 철두철미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냐민 지파의 장정 600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여자들과 아이들을 몰살시켰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이 참극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20:18, 23, 27, 28, 35). 하나님은 그들의 물음들을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 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같은 인도는 이스라엘의 출전에 대한 승인이라기 보다는 양 편의 싸움을 통해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하고 낮추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이 양 편 무리들은 사건의 발단에 대해 지나친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께서는 지파들의 이러한 극단적인 자만심을 단단히 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교정의 채찍이 가해진 엄청난 범위는 백성들의 영적 어둠의 깊이를 역설해 줍니다.
셋째 항목은 베냐민 지파의 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21:1-25절). 이스라엘은 대단히 심각 한 문제에 봉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11지파만 남게된 셈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불과 600명의 남자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미스바에서 자기의 딸들을 베냐민 남 자들에게 주지 않기로 성급한 맹세를 하였던 것입니다(21:1). 베냐민 지파의 명맥은 끊어지는 위기를 당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전에 또 하나의 부도덕한 맹세를 경솔히 하였었는데 이번 기회에 베냐민 지파를 위해 이것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에 참전치 않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죽이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21:5).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까 응소(소 집에 응하지 않음)하지 않은 자들은 요단 동쪽의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특공대를 파견하여 맹세했던 대로 임무를 수행케 하였습니다. 이 특공대는 야베스 길르앗 주 민들을 다 죽이되 처녀들은 살려두라는 특명을 받았습니다. 그 까닭은 베냐민의 잔존 남자들 을 위해 신부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부들의 수효는 400명 이었으므로 나머 지 200명을 채우기 위해 이스라엘은 또한 가지 방안을 짜냈습니다. 이 방법 역시 고약하기는 처음의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의 장정들에게 말하기를 자기들이 눈을 감아줄테니까 하나님의 장막이 있는 실로의 연례 축제 때에 가서 이백명의 여자들을 납 치해 가지라고 귀뜸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베냐민이 직접 이백 명의 여자들을 취한 것이지 이스라엘이 베냐민에게 그 여자들을 제공해 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미스바에서의 첫 번째 맹세를 어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물론 잘못을 적당 히 얼버무려 호도해 버리는 전형적인 하나의 예입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이렇게 논평하였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21:25). 붕괴되는 사회의 특징 사사기 시대의 현저한 특징은 칠흑 같은 영적, 도덕적 어둠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 의 눈에 보시기에 옳은 것을 행하지 않고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위에서 살펴 본 한심스런 사건들은 통해 우리는 붕괴되는 사회의 네 가지 측면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성적 부도덕의 범람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동성연애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레위인의 첩이 당했던 끔직스런 사거늬 범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극악무 도한 자들이었습니다. 수치를 모르는 그들의 욕정은 억제될 길이 없었습니다. 레위인을 원했던 그들은 대치품목처럼 넘겨진 레위인의 첩을 마음껏 유린하였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욕 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비정상적인 수단을 써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를 하기 마련입니다 (비교, 출20:14 ; 레18:22 ; 롬1:26,27). 동성연애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인간의 성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구분과 목적을 배척하고 뒤집으려는 데 있습니다. 인간 관계와 개인의 도덕적 처 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짓밟는 일체의 성도착(性倒錯)행위는 이 세상에서 창조주의 형상 을 드러내도록 우리를 지으신 거룩한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상하를 막론한 공개적인 음 란은 하나님의 진노를 퍼붓도록 하는 초청장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기억하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10:15). 주께서 인간들 앞에 양자 택일의 길을 제시해 놓고 계십니다. 그 길은 심판이 아니면 구원입니다. 우리는 어느 편을 택해야 하겠습니까
둘째, 붕괴되는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교회의 부패된 사역입니다. 이 사건 속의 레위인 은 죄에 빠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첩을 두어는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의 성도덕이 너무도 문란하여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짓는 성적인 죄도 사회적으로 얼마든 지 인정되고 있었습니다! 사역자의 질적 타락은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비느하스가 현안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킨 데서도 넉넉히 읽을 수 있습니다. 비느하스는 아론의 손자였습니다(20:27). 출애굽기 6:25절에 보면 그의 출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비느하스는 과거에는 주님을 위한 일에 앞장을 섰던 용 사였습니다. 민수기 25:7절에 의하면 그는 모압 여인들과 놀아난 이스라엘 사람들을 처단하라는 하나님의 심판 명령을 받아 창을 쥐고 나갔던 자였습니다! 또한 민수기31:6절에 보면 비느 하스는 미디안 족들을 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이끌고 출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많이 목격했었고 용맹한 믿음의 자세로 주를 섬겼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동족을 대량 학살할 때에 이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의 하나님 께 대한 사역은 나약하기 짝이 없었고 불신과 타협으로 퇴락되어 구원도 승리도 없는 빈껍질 과 같은 허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며, 이스라엘은 주님에 대한 산 믿음이 결핍되어 있었던 것 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시대의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비록 일부 지역들에서 교인들의 숫적 인 증가가 있어왔지만, 최근에 들어와서 자유주의 교회들이 크게 줄어들었고 구라파의 복음주 의 교회들도 문을 닫은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교회의 질적 향상과 양적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산믿음의 결핍은 바로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희석되기 시작한 때부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강단에서 희석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는 신자들이 주 안에서 담대하고 의롭 게 살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떠나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자세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1나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새로와지기를 기도하는가
2나는 교회의 질적 향상과 양적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부흥을 위해 기도 하는가 3나는 복음을 위해 비웃음과 고난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셋째, 붕괴되는 사회의 세번째 특징은 인간의 생명을 천시하는 것입니다. 레위인이 자기 첩을 기브아의 불량배들의 손에 밀어넣은 일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의 대량 학살은 사람의 생명이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겨졌다는 확증입니다. 사실상 살육은 하나의 스포츠였 습니다. 죽이는 일을 덕이라고까지 생각하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도 죽어야 하고 야베스 길르앗 거민들도 죽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엄숙한 맹세가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악독이 급증하는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산아 제한 이라는 미명아래 낙태 수술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폭력배들의 총칼이 법과 질서를 비웃으며, 심지어 백주에 아녀자나 노인들을 잡아다 파는 인신매매가 우리들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패한 정치 조직 들은 인간들의 생명을 페품처럼 내던지고 탐욕에 눈이 먼 경제 체제는 수 많은 근로자들을 착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증거해야 하며 경건한 삶이 우리 사회에 구축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참된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하나님 은 우리들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형상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의모범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인생의 참된 의미가 살아나고 그리스도 안에 서만 인생의 온갖 충만이 향유될 수 있습니다.
넷째 붕괴되는 사회의 네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법이 지닌 원리들을 정부가 포기하는 것 입니다. 정부가 법을 집행하기 보다는 정부 자체가 법이 되어버립니다. 무너지는 사회에서는 어떤 공공 조직체나 혹은 공동체가 있어도 원래의 제한된 권위나 질서를 넘어서서 제멋대로 운영되어 버립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하기야 하나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통치를 내다보도록 이스라엘 왕국을 계획하셨습니다(신17:14-20절). 그 결과 백성 들은 자기들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습니다. 배냐민 지파는 악행자들을 벌하기는 커녕 그들 을 옹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합당치 못한 맹세를 하고 동족의 한 지파를 거의 전멸시키기 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따지면 이스라엘의 행정권이 이같은 전쟁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그들 은 주님이 하실 일을 대신해서 자기들이 입법자의 위치에서 처리해 버렸습니다. 이제 법은 집권당의 손에서 마음대로 요리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원하거나 혹은 설득해서 수락 시킬 수 있는 것은 다 법이되었습니다. 관권이 곧 지상 최대의 권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원칙 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식의 법들은 하나님의 중심의 원칙들이 아니라 인위적이 며 실용적인 원칙들입니다. 인위적인 통치는 이스라엘 사회에 무정부 상태를 야기시켰으며 걷 잡을 수 없는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공포 정치와 비성경적인 전체주의뿐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재건은 최악의 사회 발전을 대 변하는 하나의 모형입니다. 그럼 우리들의 사회는 어떻습니까 우리 정부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들에 준거해서 나라를 다스립니까 아니면 민중의 뜻 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정부 권위와 이해관계에 따른 인위적인 정책으로 나라를 다스립니까 부흥의 문턱 이스라엘의 개탄스런 상황은 우리 시대의 영적, 도덕적 타락 현상과 유사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의인이 아닌 죄인을 구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복음의 역설이 없었다면(마9:13) 우리들은 이같은 암울한 세태에 절망해 버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롬5:20)고 말하였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사사기 시대의 구속사적인 의의가 밝히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어두운 하늘은 하나님이 일으켜 주실 한 구원자의 사역에 의해 광명한 빛을 비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한 의로운 왕이 필요합니다. 사사 기 시대는 다윗왕이 출현을 기다리고, 다윗왕 자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견케 합니다. 이스라엘의 괴로워하며 여호와께 부르짖었을 때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삿2:16)하셨습니다.
의로운 열정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부흥 의 문턱 에 다가서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두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미래를 두려워 합니다. 우리들은 복음의 진전에 대해 큰 기대를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주는 성경 의 메시지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하라! (수1:6)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고 계십니다! 의로운 왕 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제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만물 위에 군림해 계십니다!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 분 안에서 사십시오! 시편 기자의 다음 말씀 은 우리들의 마음을 진정시켜줍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 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 지하리로다 (시37:7, 9).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아멘 (계22:20,21)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30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