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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아질수 있습니다. (막2:1-12)

본문

우리들은 지금 경제위기라는 경제의 어려운 위기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실직을 당하여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100만명이 넘어 올해는 300만명이나 될것이라고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을 버리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공장의 문을 닫고, 심저어 너무 힘이 드니까 자살까지하는데 하루에 30명 이상이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경제위기라는 구제금융으로 인하여 당하는 어려움의 일이 남의 일인 것 같고, 저 멀리 있는 것 같았는데 요즘에는 이것이 바로 내일이고, 너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은 이사를 가서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우리가 이름만 대어도 잘 알만한 분이 직장도 참 든든한데 얼마전에 들은 애기로 명퇴를 했다는 말을 듣고 경제위기가 정말 무섭기는 무섭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우리 집사님 한분이 어렵게 공사를 따내었는데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해봤자 별 이득이 없을 것 같으니 그것마저 할수 없게되었다는 말을 듣고 참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고 물가로 인하여 주부경제가 위협을 받습니다. 올라갔던 물가는 하늘 높은줄만 알았지 내려오지 않고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데 더 힘들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다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경제위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심적인 경제위기도 우리들을 힘들게 합니다.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난사람들, 일이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 사람들, 속상하고 괴로운 사람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자꾸만 분산되는 환난과 어려움이라는 경제위기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을 얼마나 힘들게 합니까 그러다 보니 삶이 위축 될 수밖에 없고, 사는 것이 별로 의욕이 없고, 그래서 기가 푹 죽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이런 환난을 만나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이 환난이 영원한 것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서 ‘이제는 끝났는가 보다’라고 희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모습이 있지만, 언제까지 이 어려움의 일이 계속되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구름이 끼는 날씨가 있는가 하면, 구름이 걷히는때가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비온 뒤의 맑개 갠 푸른 하늘을 볼수 있습니다. 아니 비가 와야 맑은 하늘을 볼수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 모인 성도들 중에는 구름낀 인생의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이는 비가오는 인생가운데 있는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름낀 중에서도, 비가 오는 굳은 날씨 중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얼마 되지 않아 맑개 갠 하늘을 보게될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막2:1-12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실때에 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의 고침을 받은 중풍병자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 까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남의 신세를 질수밖에 없었던 병약한 사람이 이제는 남의 신세를지지 않아도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수족이 있었지만 온전히 사용할 수 없어서 불편했던 그가 수족을 편히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바람 났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들려 다녀야 할 만큼 약했던 그가 다른 사람의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걸어 갈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그러면서 바로 이런 모습이 나의 모습이기를 소원했습니다. 우리 행복한교회의 속한 모든 성도들의 모습이기를 소원했습니다. 병약한 몸이 고침을 받아 건강한 모습이 되어지기를 말입니다. 내게 있는 믿음이 말로만, 마음으로만 아니라 실제 내 생활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입어서가 아니라 내 힘으로 하게되는, 하고 싶어서 견딜수 없는 마음들로 말입니다. 이런 삶이 될 때 신바람 나는 삶이요, 즐거운 삶이요, 행복한 삶이요, 축복의 삶을 살게 될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가 이런 살맛나는 신바람의 삶이 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가 이런 즐겁고, 행복한 의욕있는 삶으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2.왜 이런 모습이기를 소원하느냐 하면 실제 우리의 삶의 모습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가 나음을 입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리고 나음을 입고난후 그의 기쁨이 클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가 당한 일이 얼마나 그 자신을 불편하게 하며, 힘들게 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풍병은 ‘뇌일혈’등으로 인해 신체의 일부나 반신 또는 몸 전체가 마비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병입니다. 그래서 중풍병환자는 말하는 것은 물론 걷는것도 온전할 수 없고, 심한 경우에는 걸을수도 없고, 몸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없기에 타인의 의해 도움을 입을수밖에 없는 병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중풍병으로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기에 어린 나이였지만 그 병이 얼마나 본인이나, 가족 식구들을 힘들게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입을 마음대로 열어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손을 자유 자재로 움직여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밥을 떠 먹이시면 절반은 다 흘러 버립니다.) 발을 마음대로 움직여서 가고싶은대로 갈수 있겠습니까 마음은 하고 싶은데 되어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거기다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압니다. 다시 말하면 육적으로든, 심적으로든 당하는 아픔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이런 사람입니다. 오늘 여기 모인 사람중에 비록 육신적인 중풍병에 걸린 사람은 아니지만, 당한 일로 인해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해서 육신이나, 심적으로 힘들어 하며, 괴로워하며, 답답해하며, 아파하며, 속상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래동안 몸이 아파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녀보고, 이 약 저 약을 먹어보지만 차도도 없고 여전히 그 모양으로, 아니면 더 심해져가는 아픔가운데 있는 분도 있습니다.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아내 때문에, 부모 때문에,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원만한 관계가 되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심적인 고통을 당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무엇을 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거저 대책없이 여기까지 떠밀려 오신 분도 있습니다. 사는게 무엇인지, 먹는게 무엇인지 그냥 사니까 살고, 먹으니까 먹고, 일해야 하니까 일하며 어쩔수 없이, 할수 없어서, 머지 못해서 하시는분들도 있습니다. 나도 남들처럼 열심히 좀 해보고 싶은데, 바라는 만큼 되어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속상하고, 자존심 상하고, 답답하신분도 있습니다. 남들은 다 잘되는 것 같은데 나만 안되는 것같고, 남들은 다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것같고, 남들은 잘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 같은 이런 자격지심에 빠져 있는분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나오는 중풍병환자처럼 다른 사람에 도움을 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수밖에 없고, 마음은 원하지만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는 그런 일들속에 거저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사는게 즐거워야 하는데, 신나야 하는데,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사는게 왜 이리 힘든지, 어려운지, 왜 짜증스러운지, 왜 잘 안되는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환자였던 이 사람의 삶의 모습이 이런 절망의 모습이요, 낙심의 모습이요, 소망도 없는 그런 모습이었지만 그는 그 모습으로 살다가 인생이 끝이난 것이 아닌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2절의 말씀을 보니 이 사람은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가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일어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앞에서 보란 듯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됨을 볼수 있습니다. 전보다는 더 좋은 모습으로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오늘 이 본문의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은 이 사건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은 2000년전의 한 중풍병자가 나음을 입어 신바람 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씀하므로, 오늘 그렇지 못하는 우리들을 약올리려고 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 중풍병을 고치고 신바람나는 삶을 살수밖에 없었던 이 사람처럼 오늘 여기 모인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동일하게, 아니 더 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내 주시는 분이심을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의 질병을 고치셔서 강건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고민과 답답함을 시원케 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보다 더 나은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할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2,000년전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오늘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역사혔던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므로, 지금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던, 어떤 힘든 사건이 있던, 어떤 답답함이 있던, 어떤 어려움이 있던 이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강건케 고치시는 분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을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은 살려주심이 있음을 믿기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 속에 있던 하나님은 해결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려분! 이런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즐거움으로 하기를 바랍니다. 자원함으로 하기 바랍니다. 하고 싶어서 견딜수 없는 불붙는 마음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3.어떻게 할 때에 이런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1먼저 나 자신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중풍병자의 입장에서 한번 보십시오. 그가 자기의 모습이 그렇다고, ‘그래, 나는 안돼, 나는 끝났어, 나 같은 것이 무엇을 하겠어, 주제나 파악해야지’하는 마음을 먹었다면 이 사람이 이런 나음의 자리에 있었겠습니까 또 ‘내 신세가 가련하니,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마음을 가지면서 자기의 비참함의 빠져있었다면 이 사람은 자살을 하든지 무슨 수를 썼더라도 벌써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불쌍해 보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저 앉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든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살아야 하겠다’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고치신다는 예수님께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살아야 하겠다는, 고침을 받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친구들이 와서 그를 상에 메어 데리고 가고자 할 때에 가지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비록 자기의 모습 볼품없고, 병들고, 참 가련하지만 ‘내가 살아야 하겠다’‘나도 살수 있다’‘나도 고침을 받을 수 있다’라는 자신의 병을 고치고자,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고쳤고, 살수 있게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이든 그 모습에 빠져서 포기하고, 주저 앉지 않고, 나도 고침을 받을수 있고, 살수 있고, 할수 있고, 될 수 있다는 자신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오늘 나에게도 이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일을 이루지도 못하고 열매를 얻지 못하고 맙니까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할수 있습니다. 될 수 있습니다. 살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 그것을 이루기 원하여 나아가면 이런 역사들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중풍병환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도 자신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3절에 보면,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메고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중풍병환자가 고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중풍병환자만 고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중풍병환자를 상에 메고 온 사람들 그들 자신을 살리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중풍병환자를 고칠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데리고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데리고 감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믿음을 살리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냥 머리로만, 마음으로만 믿고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론적인 믿음으로 끝남이 아닙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믿음을 살려서 중풍병환자를 예수께로 데리고 온것입니다. 그랬더니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고침을 받고, 살림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들 스스로도 살릴 것을 살려야 나자신이 살림을 받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내게 있는 믿음 살려야 합니다. 내게 있는 기도의 특권을 살려야 합니다. 내게 있는 은혜를 살려야 합니다. 내게 있는 재능을 살려야 합니다(그 재능을 땅에 파 묻어 놓지 말고 사용하십시오) 여러분!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것들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 가지고도 엄청난 일을 할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을 살려 보십시오. 반드시 사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2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의 말씀을 보노라면,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풍병자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볼수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분명하게 모르지만 이 중풍병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귀찮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기동할 수 없는 환자를 상에다 메고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더니 고침을 받게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5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심을 말씀합니다. 즉 이 말은 데리고 온 사람의 믿음 때문에 중풍병환자가 고침을 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 일대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고치셨다는 것은 그런 믿음이 이 중풍병자를 고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기동할 수 없는 사람을 기동케하는 일들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주변에는 스스로 기동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실직을 당한사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힘들어 하는 사람, 여러 복잡한 문제로 인생을 포기하고픈 마음을 하루에도 12번씩 먹는 사람, 장래에 대한 불안함에 사로 잡혀있는 사람, 내일도 없고, 소망도 없이 거저 사는 사람, 무엇보다도 죄로 인하여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그들의 영혼이 지옥에 가야할 사람등 수많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지금 실패한 모습으로 살도록 내버려 둘수 없지 않습니까 이들을 한숨만 시도록 내버려 둘수 없지 않습니까 이들을 불안에 사로 잡혀 살도록 내버려 둘수 없지 않습니까 이들을 지옥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지 않습니까 이들이 살도록 누가 도와줄수 있겠습니까 바로 당신입니다. 이들이 고침을 받도록 누가 도와 줄수 있겠습니까 바로 당신입니다. 이들이 힘을 얻고 소망 가운데 살도록 누가 도와 줄수 있겠습니까 바로 당신입니다. 이들을 살려야 한다, 예수게로 데려오면 그들도 살릴수 있다는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는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살림을 받은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3절 말씀의 네 사람을 보십시오. 메에서 데려옵니다. 이런 열성이 있어야 합니다. 안된다고 그래도, 싫다고 해도 그 길이 살길이기에 메어서 데려 오는것입니다. 4절에 보십시오. 사람이 워낙많아 들어갈수 없자 그 집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그쪽으로 달아 내립니다. 왜요 그 사람을 살릴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고칠수만 있다면, 그 사람을 살릴수만 있다면 힘들어도, 어려워도, 문제가 있어도, 장애가 있어도 기어코 하고야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은 예수님이 길인줄 믿습니다. 구원인줄 믿습니다. 그 분 안에서만이 영생이 주어짐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이렇게 살리는 일을 합시다. 살리는 일을 하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게 됩니다. 3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중풍병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예수님께로 나왔더니 고침을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5절에,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중풍병자의 낫고자하는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중풍병 걸린 사람의 죄사함을 선언하셨습니다. 11절에, 중풍병자에게 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즉 중풍병자를 괴롭히던 병을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치료하셨습니다. 지금껏 괴로워하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중풍병자가 왜 나음을 입어 보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낫기는커녕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니 기동도 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된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어떤 사람이 나오든 외면하지 않으시고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2절 말씀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 있었습니다. 잘난 사람만 받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못난 사람도 받아 주십니다. 잘하는 사람만 받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사람도 받아 주십니다. 건강한 사람만 받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병든 사람도 받아 주십니다. 뿐입니까 그분은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어떤 죄이든 그분안에서 해결이 되어집니다. 왜요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뿐입니까 그분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11절에 ‘가라 하시니’ 12절에 ‘그가 일어나 곧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되어졌습니다. 이 세상에 그분의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살리기도하고, 죽이기도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분은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십니다.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그 주님이 바로 여러분과 저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수 있는 분이십니다. 나의 고민을 풀어 주실수 있는 분입니다. 나의 답답함을 시원케 해줄수 있는 분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강건하게 해 주실수 있는 분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즉, 예수로 말미암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예수를 믿고, 의지할 때 사람의 힘으로 고치지 못했던 중풍병과같은 연약한 문제들이 해결케 되어질것입니다. 이 예수를 믿고 의지할 때에 고쳐지며, 살게될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문제를 안고 있습니까 고치시고 살리시는 예수님께로 나갑시다. 어떤 괴로움이 있습니까 괴로움을 해결해 주실수 있는 예수님께로 나가십시다. 주님은 그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2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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