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 (시90:10-17)
본문
현대인의 시간관은 과거와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고속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시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집착할 수도 없고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히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되는 이 시간의 혁명시대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시편 기자가 본문에서 [우리의 평생이 일색간에 다하였나이다(9)]라고 말했듯이 시간은 순식간에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10)] 수고와 슬픔 뿐인 세상을 날아가는 것처럼 신속하게 우리는 살아가고 잇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속하게 지나가는 이 시간을 어떻게 잘 관리하며, 그 시간의 일분일초도 놓치지 않는 성실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가 우리에게 당면한 중요한 과제인줄로 생각합니다.
지난 달에 호스피스 선교회가 주관하는 [암 예방과 치료]라는 세미나를 우리교회에서 가졌습니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암 전문가들이 오셔서 이 강의를 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3개월 후면 죽을 암 환자에게,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30년처럼 혹은 50년처럼 살다 갈 수 있는 그 시간 개념, 영생과 직결되는 소망을 주게 될 때에 그 사람은 육신적으로는 죽은 것 같지만 그것이 그에게 영원한 치유가 될 것이고 전인적인 치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30일을 살아도 30년을 산것처럼 되는 이 소망과 시간관을 가지고 살 때 그는 죽은 것 같지만 사실 온전한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잇습니다. 더 좋은 세계, 더 좋은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크리스찬입니다. 미래의 절망과 멸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기회와 더 영원한 기회가 우리의 소망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크리스찬입니다. 마치 가나 혼인 잔칫집처럼 더 좋은 포도주, 더 좋은 기회, 더 아름다운 것이 우리 앞에서 기다리게 될 것이라는 게 우리가 갖는 소망이요 기대인 것입니다. 더 좋은 기회가 잇음을 믿고 샆아가는 적극적인 인생의 신앙을 우리는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사는 사람이 더 좋은 기회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겠습니까
1.값있는 시간을 사는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시간을 값있게 살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더 좋은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 법입니다. 이 본문 말씀에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12)]내가 내가 하루 하루 지나는 시간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맹목적으로 아무런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값있게 순간 순간 쓸줄 아는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안토니 캠보로 박사가 95세 이상을 산 50명에게 설문을 보내서 연구조사를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것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음의 세 가지로 대답을 했습니다.
첫째로는 늘 여유을 가지고 삶을 돌아보며 살기를 원하다는 것입니다. 바쁘고 정신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바라보면서 보다 값있는 삶을 살도록 여유있게 살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두번째로는 좀 더 모험을 하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현신 처리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멀리 바라보고 좀 더 모험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세째는 죽은 뒤에도 남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 삶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도 내가 한 일과 내가 살아왔던 삶이 남에게 영향과 도움을 주도록 살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결국 다시 말하면 좀 더 가치있는 시간, 좀 더 값있는 시간을 살고 싶다고 하는 고백일 것입니다.
값있는 시간을 사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다섯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내 인생의 가치를 아는 삶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이 삶, 두 번 다시 없는 삶입니다. 대학입시에는 재수도 있고 삼수도 있지만 인생에는 재수가 없습니다. 한번 살아가는 삶을 가치있고 보람있게 하나님 앞에서 떳떳이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내 자식과 내 후손이 참으로 값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둘째,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삶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개발되어야 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사람은 어떤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본래적 가능성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개발되고 발전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고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장조력을 가지고 개발해 나갈 때 우리는 거룩한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회선을 다하는 사람은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환경을 도리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가는 사람은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넷째, 날마다 창의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섯째, 남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금이요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남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 남에게 빛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보다 나은 기회를 얻기위해 값있고 소중하게, 두려운 마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살아 갈때, 보다 가치있는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2.값있는 수고를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본문 14, 15절에 보면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르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외국에 가서 포로 생활을 하며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하고 화를 입은대로 미래에 그들 을 기쁘게 해주고 좋은 날은 주실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값있는 수고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값있는 눈물을 뿌렸던 사람, 눈물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값있는 수고를 한대로 더 좋은 것을 얻는다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있습니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즉시 가서 값있는 수고를 하였습니다. 그 주인이 돌아왔을 때 백 퍼센트의 일을 해내서 그 주인 앞에 드렸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수고한 결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좋은 그대로 내놓았습니다. 은행에 가서 이자라도 받지 왜 땅에 파묻었느냐는 주인의 호통에 그는 실패가 두려워서 그랬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있는 것까지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안, 땀 흘리지 않고도 될 줄 알았느냐. 쉽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수고하고 땀흘린 사람에게 더 좋은 기회를 주시는 이 비유의 말씀을 우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대학입시를 치릅니다. 땀 흘리지 아니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계속해서 노력하고 땀흘려 수고한 그대로 좋은 기회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값있는 수고를 하지 아니하면 기쁨의 단을 거둘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수고 없이 우연한 기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값있는 수고를 했을 때에 [우리의 수고한 연수대로, 화를 당한 연수대로 만이라도 기쁜 날을 주시옵소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값있는 수고를 하는만큼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오고 잇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수고를 다했어도 나머지는 하나님의 은총에 맡깁니다. 즉 모두 하나님께 맡기는 희과 믿음의 자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의무를 다 한 사람치고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16장에 보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일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 뿐입니다.
혹 우리의 지낸 시간이 실패였다 할지라도 미래의 시간은 실패로 예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놀도베네트라는 사람이 현대인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끝이 없이 흐르는 시간의 커다란 매력은 매래의 시간을 미리 낭비하지 못하는 데 있다. 다음 시간은 당신을 위해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당신이 헛되이 낭비한 것은 과거의 시간 뿐, 미래의 시간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신을 위해 예비되어 있을 뿐이다.]
헬라어에서는 시간을 두 가지로 쓰고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 하나는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흐르는 시간 입니다. 내가 70이 되고 80이 되고 90이 되는 시간은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양으로 계산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헬라사람들은 지혜롭게도 흐르는 시간만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 카이로스도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카이로스의 시간은 질적으로 다른 시간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여기서 예배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시간이요 미래를 위해서 준비된 시간이요 영생과 직결된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 때에 내일의 예비된 축복의 기회가 있음을 믿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행사를 다 주께 맡기십시오. 소망 가운데 기도하며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이 시간을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신속하게 지나가는 이 시간을 어떻게 잘 관리하며, 그 시간의 일분일초도 놓치지 않는 성실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가 우리에게 당면한 중요한 과제인줄로 생각합니다.
지난 달에 호스피스 선교회가 주관하는 [암 예방과 치료]라는 세미나를 우리교회에서 가졌습니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암 전문가들이 오셔서 이 강의를 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3개월 후면 죽을 암 환자에게,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30년처럼 혹은 50년처럼 살다 갈 수 있는 그 시간 개념, 영생과 직결되는 소망을 주게 될 때에 그 사람은 육신적으로는 죽은 것 같지만 그것이 그에게 영원한 치유가 될 것이고 전인적인 치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30일을 살아도 30년을 산것처럼 되는 이 소망과 시간관을 가지고 살 때 그는 죽은 것 같지만 사실 온전한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잇습니다. 더 좋은 세계, 더 좋은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크리스찬입니다. 미래의 절망과 멸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기회와 더 영원한 기회가 우리의 소망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크리스찬입니다. 마치 가나 혼인 잔칫집처럼 더 좋은 포도주, 더 좋은 기회, 더 아름다운 것이 우리 앞에서 기다리게 될 것이라는 게 우리가 갖는 소망이요 기대인 것입니다. 더 좋은 기회가 잇음을 믿고 샆아가는 적극적인 인생의 신앙을 우리는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사는 사람이 더 좋은 기회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겠습니까
1.값있는 시간을 사는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시간을 값있게 살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더 좋은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 법입니다. 이 본문 말씀에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12)]내가 내가 하루 하루 지나는 시간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맹목적으로 아무런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값있게 순간 순간 쓸줄 아는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안토니 캠보로 박사가 95세 이상을 산 50명에게 설문을 보내서 연구조사를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것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음의 세 가지로 대답을 했습니다.
첫째로는 늘 여유을 가지고 삶을 돌아보며 살기를 원하다는 것입니다. 바쁘고 정신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바라보면서 보다 값있는 삶을 살도록 여유있게 살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두번째로는 좀 더 모험을 하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현신 처리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멀리 바라보고 좀 더 모험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세째는 죽은 뒤에도 남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 삶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도 내가 한 일과 내가 살아왔던 삶이 남에게 영향과 도움을 주도록 살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결국 다시 말하면 좀 더 가치있는 시간, 좀 더 값있는 시간을 살고 싶다고 하는 고백일 것입니다.
값있는 시간을 사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다섯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내 인생의 가치를 아는 삶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이 삶, 두 번 다시 없는 삶입니다. 대학입시에는 재수도 있고 삼수도 있지만 인생에는 재수가 없습니다. 한번 살아가는 삶을 가치있고 보람있게 하나님 앞에서 떳떳이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내 자식과 내 후손이 참으로 값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둘째,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삶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개발되어야 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사람은 어떤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본래적 가능성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개발되고 발전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고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장조력을 가지고 개발해 나갈 때 우리는 거룩한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회선을 다하는 사람은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환경을 도리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가는 사람은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넷째, 날마다 창의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섯째, 남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금이요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남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 남에게 빛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보다 나은 기회를 얻기위해 값있고 소중하게, 두려운 마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살아 갈때, 보다 가치있는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2.값있는 수고를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본문 14, 15절에 보면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르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외국에 가서 포로 생활을 하며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하고 화를 입은대로 미래에 그들 을 기쁘게 해주고 좋은 날은 주실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값있는 수고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값있는 눈물을 뿌렸던 사람, 눈물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값있는 수고를 한대로 더 좋은 것을 얻는다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있습니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즉시 가서 값있는 수고를 하였습니다. 그 주인이 돌아왔을 때 백 퍼센트의 일을 해내서 그 주인 앞에 드렸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수고한 결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좋은 그대로 내놓았습니다. 은행에 가서 이자라도 받지 왜 땅에 파묻었느냐는 주인의 호통에 그는 실패가 두려워서 그랬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있는 것까지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안, 땀 흘리지 않고도 될 줄 알았느냐. 쉽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수고하고 땀흘린 사람에게 더 좋은 기회를 주시는 이 비유의 말씀을 우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대학입시를 치릅니다. 땀 흘리지 아니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계속해서 노력하고 땀흘려 수고한 그대로 좋은 기회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값있는 수고를 하지 아니하면 기쁨의 단을 거둘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수고 없이 우연한 기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값있는 수고를 했을 때에 [우리의 수고한 연수대로, 화를 당한 연수대로 만이라도 기쁜 날을 주시옵소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값있는 수고를 하는만큼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오고 잇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수고를 다했어도 나머지는 하나님의 은총에 맡깁니다. 즉 모두 하나님께 맡기는 희과 믿음의 자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의무를 다 한 사람치고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16장에 보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일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 뿐입니다.
혹 우리의 지낸 시간이 실패였다 할지라도 미래의 시간은 실패로 예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놀도베네트라는 사람이 현대인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끝이 없이 흐르는 시간의 커다란 매력은 매래의 시간을 미리 낭비하지 못하는 데 있다. 다음 시간은 당신을 위해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당신이 헛되이 낭비한 것은 과거의 시간 뿐, 미래의 시간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신을 위해 예비되어 있을 뿐이다.]
헬라어에서는 시간을 두 가지로 쓰고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 하나는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흐르는 시간 입니다. 내가 70이 되고 80이 되고 90이 되는 시간은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양으로 계산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헬라사람들은 지혜롭게도 흐르는 시간만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 카이로스도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카이로스의 시간은 질적으로 다른 시간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여기서 예배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시간이요 미래를 위해서 준비된 시간이요 영생과 직결된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 때에 내일의 예비된 축복의 기회가 있음을 믿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행사를 다 주께 맡기십시오. 소망 가운데 기도하며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이 시간을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