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성을 정복하라 (수6:1-20)
본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축복의 땅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제일 큰 방해물은 여리고 성이었다. 여리고 성은 약 8,500평의 땅을 두르고 있는 금성 철벽이었다. 성경연구 고고학자인 존 가스팅(John Garstang)박사의 조 사에 의하면 이 여리고 성은 이중벽으로 되어 있는 데 외벽 두께 가 2M, 내벽 두께가 4M, 높이가 각각 10M의 완고한 것으 로
B.C 1490년경 멸망된 흔적이 있다는 조사를 완료했다고 한다. 여리고 성은 요단강에서 약 10킬로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만일 이스라엘이 이 성을 점령하지 못한다고 하면 광야 40년 고생이 헛수고요, 가나안 입국의 꿈은 무너지고 만다. 하나님 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 성을 완전히 점령하도록 하신 것인데 본 기사를 통해 우리는 날마다 생활에서 문제의 여리고를 정 복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교훈을 받기 원한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가나안을 향하여 날마다 행군하는 것과 같이 천국으로 향하는 꿈을 안고 날마다 전진해 나아갈 때 여 리고와 같은 난공불락의 어려운 성벽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 의 명령 수행에 바른 자세와 행군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1. 절대 확신(수 6:2, 1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2절)라는 말씀으로 약속하 셨다. 전쟁의 승리는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은 가진 자에게 주어진다. 만일 어떤 운동 경기에서 적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고 하면 아무도 그 싸움에 출전하지 아니 할 것이다. 전쟁에는 항상 패배의 위험이 내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확신하기 때문에 전쟁에 용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에게서 승리의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 이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 에 붙였으니" 하나님께서 적을 우리의 손에 붙이셨으니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시리라는 신념과 확신을 우리는 가져야 하는 것이다.
2. 오직 하나님 중심(수 6:7) 인간의 삶의 본능적인 초점(중심)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 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의 삶은 이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 다 시 말하면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오늘 이 교훈을 가르치기 위 해서 본문에는 두 가지의 도구가 동원된다. 하나는 법궤이며 또 하나는 나팔이다.
1). 법궤의 역할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상징이었다. 본문 7절을 주의깊게 보자. "또 백성 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지니라".
그런데 8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7절은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할 것 을 말하였고 8절은 여호와 앞에서 행하라고 말씀한다. 이 부 분에서 (여호와)라는 단어와 (여호와의 궤)라는 단어를 주목 해서 보라. 다시 말하면 법궤 앞에서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 에서 행하는 것이라고 본문에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 였다. 그들은 법궤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했다. 앞서 가는 법궤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고 생각했다. 또 내 뒤에 있는 법궤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내 뒤에 계신 다"라고 믿어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가지고 행할 때 이 법궤는 항상 맨 앞쪽 아니면 한가운데에 위치했다.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 이 광야를 행진할 때는 법궤는 앞서갔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 이 머물 때는 이 법궤는 가운데에 위치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가 앞서갈 때에는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고 법궤가 한가운데 위치할 때는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 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이와같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했던 것이다.
2). 나팔의 역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나팔이 가진 의미는 많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 한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의 울림을 하나님의 행동개시 명령으로 여겼다. 하나님이 이제부터 행동하신다고 생각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사건을 성경에서 어떻게 설명하는가 천사장의 나팔소 리와 함께 그분은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신다. 즉 나팔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하나님이 역사 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입곱이 입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8 절). 그들은 나팔을 불면서 이런 생각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이 사건 속에 하나님이 간섭하신다. 이 싸움은 우리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혼자 허덕이며 내 힘과 내 노력과 내 지혜만 가지고 몸부림치는 싸움이 아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든은 나팔 소리와 더불어 용기와 힘을 얻어 나아갈 수 있 었던 것이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 겼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은 나팔같이 들 려온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백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팔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외쳐야 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법궤와 나팔을 사용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하셨다. + 여리고 정복을 위한 행군자세(3-9절)
3. 온전히 순종하라(수 6:3, 5)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셨다. 2절 이하 5절의 말씀을 보라. 백성 들이 한번 돌고난 후에 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틀째에 성 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사흘째에 성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그들이 6일간을 매일 한 번씩 그리고 마지막 날의 일곱번을 합해서 열세번을 온전히 돈 후에야 성은 무너졌다. 다시 말하면 주의 말씀을 하나도 어김없이 다 이행한 후에 야, 끝까지 순종한 이후에야 기적은 찾아온 것이다. 본문을 묵상하던 한 성서학자는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다. "한 번 의 순종이 상황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온전한 순 종은 반드시 상황을 바꾼다". 우리는 때때로 한번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용기를 갖는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세도 취해 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소용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도 포기하고 신앙의 삶마저 포기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한 번의 순종이 상황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온전한 순종은 반드시 상황을 바꾼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을 여러번 돌 게 하셨는가 자기 백성들의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 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 고 참아 기다리라"(시 37:7). 우리는 기다리지 못하고 불평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좀더 우리를 주목하여 바라보신다. 끝까지 순종하는지 보기를 원한다. 사 28:16에 "주 여호와 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 니 곧 시험한 돌이요-"하나님은 돌도 시험하신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위해서는 연단된 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 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갈고 닦으신다. 그분이 목적하시는 바에 합당하도록 그분이 사용하실 수 있 을 때까지 하나님은 계속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그리고 나를 사용하실 만한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직접 개입하셔서 일을 성취하신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당신은 축복으로 알고 아직 하늘이 어 두워도 끝까지 순종하라. 기도했는데도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 지 않았는가 그래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주의 말씀에 끝까지 준종하라. 문제의 여리고성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눈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하 게 될 것이다.
4. 오직 침묵(수 6:10)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도는 이 행진은 참으로 이 상한 것이었다. 그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는 데 또하나 그들 에게 부과된 명령이 있다. 10절을 보라. "여호수아가 백성에 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 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일절 봉쇄하셨다. 그들은 법궤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귀는 나팔소리 를 향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 하나님은 왜 그들에게 침묵하라고 명령하셨을까 만일 하나님이 그들이 말하도록 내버려 두셨다면 그들은 성 을 돌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분명 그 무리들 중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부정적인 생각은 말 로 표현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동요되어 쉽게 이 행진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침묵을 명령하셨다. 오로지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이 고 법궤만을 바라보도록 하셨다. 이것은 경건생활에도 적용이된다.
A.W.토어져는 다음과 같 이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침 묵의 훈련이다.
왜냐하면 침묵을 배우지 않고는 하나님의 음 성을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너무 떠들고 불필요한 이야기를 많이 해대면서 인생을 살고 있다. 떠들다보니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 줄 시간 이 없다. 내 이야기만 하다보니 이웃의 말을 들어 줄 여유가 없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떠들다보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 혼자 지껄일 뿐 그분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그분이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그 음성을 들을 수 없다. 홍해 앞 바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모세에게 장사 지낼 옷이 없어서 여기까지 끌고와서 바다에 매장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처럼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갈 때 모세를 통해서 들려온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이었는 가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즉 하나님이 그들에게 먼저 명령하신 것은 침묵이었다. 이 이상하고도 놀라운 형편을 생각해 보라. 이 행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은 아무런 말없이 침묵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눈길은 법궤를 주시하고 있으며 그들의 나팔소 리를 통하여 주께서 싸우신다. 주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면 그 하나님은 당신과 나의 삶의 공 간 속에서 정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1). 그분은 참으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오늘 내 삶을 다스리시고 내 삶을 지배하고 계신가
(2). 그분이 지배하시고 다스려 주시는 이 삶의 의미와 감 격을 알고 있는가 이것을 모르는 까닭은 우리가
(1). 이 침묵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5. 절대 믿음(절대 하나님을 신뢰하라)(수 6: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 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 지라-"(2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이 무너지자 감격의 함성을 터뜨렸 나 아니면 소리를 질러 성벽을 무너뜨렸나 어느 성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마지막 일곱찌 날의 최후의 함성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다 이행한 후에 외친 최 후의 함성은 (하나님, 주께서 명하시는 것을 다 행했습니다. . 이제 하나님이 역사하실 차례입니다. 하나님이 하실줄 믿습니다)라는 믿음의 함성이고 믿음의 외침이며 믿음의 아우성이다.) 즉 외침이 성을 무너뜨린 것이 안 보이라믿음이 성을 무 너뜨린 것이다. 히11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믿음으로 칠일동안 여리 고를 두루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30). 이 성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절대적인 믿음이라고 설명이 행진은 처음부터 믿음이 요구되는 행진이었다. (성 주위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러하라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며 )(6:3-4). 그들 은 이말씀을 믿었다. 그것이 어리석은 명령처럼 보여도 나보 다 더 지혜로운 하나님의 명령이 기에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그대로 행한 것이다. 때때로 당장 주어지는 그 메시지가 내 이성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보다 더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므로 그대 로 행하겠다. 나를 향해 서 이것을 말씀하시고 또 이 일을 행 하도록내 마음을 북돋우고 있는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며 지 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전지하심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이 일을 하겠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이 행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에 그들은 믿음으로 최후의 함성을 질렀다. 그들은 믿음으로 시작했고 믿음으로 마지막 승리의 결산을 얻었다.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1:17)에 서(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 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그 것은 고 있믿음에서 시작해 서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끝 내는 삶을 끊임없는 믿음의 행진이다.
6. 결론 경고-이것여호수가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므로 승리를 거둘수 있다는 확신을 넣어주고는 승리를 거두었을 때의 할 일을 가 르쳐 주었다.
(1)하나는 성과 그 안의 전리품은 모두 여호와께 바치되 은 금 과 동철기구들을 바쳐야 하며 어느 것이 나 사욕을 부려서 췰하면 화를 당하리라는 것이다.
(2)하나님의 정탐꾼들을 생명을 걸고 숨겨준 기생 라함과 그 집안에 있는 사람과 물건은 다치지 말고 보호하여 주라는 것 이하었다.
(3)파괴한 여리고성을 재건하지 말 것을 엄히 경고하였다. 만일 이성을 재건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 이 니 기초를 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 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저주로 이 성의 재건을 용납 지 아니했다. 그후 오늘날까지 요단강 서안에 있는 여리고 지대에 많은 아랍인들이 살고 있으나 누구도 재건을 못하고 있으며 이제 와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국가를 재건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이스라엘인의 보복의 대상이 되어 희생만 당할 뿐 소원을 이 루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영원 불변의 진리이다. 그리고 여리고성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 것이 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을 무너 뜨릴 자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헐어버리신 것을 인간이 다시 쌓을 수 없다.
B.C 1490년경 멸망된 흔적이 있다는 조사를 완료했다고 한다. 여리고 성은 요단강에서 약 10킬로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만일 이스라엘이 이 성을 점령하지 못한다고 하면 광야 40년 고생이 헛수고요, 가나안 입국의 꿈은 무너지고 만다. 하나님 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 성을 완전히 점령하도록 하신 것인데 본 기사를 통해 우리는 날마다 생활에서 문제의 여리고를 정 복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교훈을 받기 원한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가나안을 향하여 날마다 행군하는 것과 같이 천국으로 향하는 꿈을 안고 날마다 전진해 나아갈 때 여 리고와 같은 난공불락의 어려운 성벽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 의 명령 수행에 바른 자세와 행군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1. 절대 확신(수 6:2, 1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2절)라는 말씀으로 약속하 셨다. 전쟁의 승리는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은 가진 자에게 주어진다. 만일 어떤 운동 경기에서 적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고 하면 아무도 그 싸움에 출전하지 아니 할 것이다. 전쟁에는 항상 패배의 위험이 내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확신하기 때문에 전쟁에 용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에게서 승리의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 이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 에 붙였으니" 하나님께서 적을 우리의 손에 붙이셨으니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시리라는 신념과 확신을 우리는 가져야 하는 것이다.
2. 오직 하나님 중심(수 6:7) 인간의 삶의 본능적인 초점(중심)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 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의 삶은 이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 다 시 말하면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오늘 이 교훈을 가르치기 위 해서 본문에는 두 가지의 도구가 동원된다. 하나는 법궤이며 또 하나는 나팔이다.
1). 법궤의 역할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상징이었다. 본문 7절을 주의깊게 보자. "또 백성 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지니라".
그런데 8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7절은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할 것 을 말하였고 8절은 여호와 앞에서 행하라고 말씀한다. 이 부 분에서 (여호와)라는 단어와 (여호와의 궤)라는 단어를 주목 해서 보라. 다시 말하면 법궤 앞에서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 에서 행하는 것이라고 본문에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 였다. 그들은 법궤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했다. 앞서 가는 법궤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고 생각했다. 또 내 뒤에 있는 법궤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내 뒤에 계신 다"라고 믿어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가지고 행할 때 이 법궤는 항상 맨 앞쪽 아니면 한가운데에 위치했다.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 이 광야를 행진할 때는 법궤는 앞서갔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 이 머물 때는 이 법궤는 가운데에 위치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가 앞서갈 때에는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고 법궤가 한가운데 위치할 때는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 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이와같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했던 것이다.
2). 나팔의 역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나팔이 가진 의미는 많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 한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의 울림을 하나님의 행동개시 명령으로 여겼다. 하나님이 이제부터 행동하신다고 생각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사건을 성경에서 어떻게 설명하는가 천사장의 나팔소 리와 함께 그분은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신다. 즉 나팔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하나님이 역사 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입곱이 입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8 절). 그들은 나팔을 불면서 이런 생각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이 사건 속에 하나님이 간섭하신다. 이 싸움은 우리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혼자 허덕이며 내 힘과 내 노력과 내 지혜만 가지고 몸부림치는 싸움이 아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든은 나팔 소리와 더불어 용기와 힘을 얻어 나아갈 수 있 었던 것이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 겼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은 나팔같이 들 려온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백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팔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외쳐야 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법궤와 나팔을 사용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하셨다. + 여리고 정복을 위한 행군자세(3-9절)
3. 온전히 순종하라(수 6:3, 5)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셨다. 2절 이하 5절의 말씀을 보라. 백성 들이 한번 돌고난 후에 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틀째에 성 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사흘째에 성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그들이 6일간을 매일 한 번씩 그리고 마지막 날의 일곱번을 합해서 열세번을 온전히 돈 후에야 성은 무너졌다. 다시 말하면 주의 말씀을 하나도 어김없이 다 이행한 후에 야, 끝까지 순종한 이후에야 기적은 찾아온 것이다. 본문을 묵상하던 한 성서학자는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다. "한 번 의 순종이 상황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온전한 순 종은 반드시 상황을 바꾼다". 우리는 때때로 한번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용기를 갖는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세도 취해 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소용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도 포기하고 신앙의 삶마저 포기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한 번의 순종이 상황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온전한 순종은 반드시 상황을 바꾼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을 여러번 돌 게 하셨는가 자기 백성들의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 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 고 참아 기다리라"(시 37:7). 우리는 기다리지 못하고 불평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좀더 우리를 주목하여 바라보신다. 끝까지 순종하는지 보기를 원한다. 사 28:16에 "주 여호와 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 니 곧 시험한 돌이요-"하나님은 돌도 시험하신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위해서는 연단된 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 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갈고 닦으신다. 그분이 목적하시는 바에 합당하도록 그분이 사용하실 수 있 을 때까지 하나님은 계속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그리고 나를 사용하실 만한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직접 개입하셔서 일을 성취하신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당신은 축복으로 알고 아직 하늘이 어 두워도 끝까지 순종하라. 기도했는데도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 지 않았는가 그래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주의 말씀에 끝까지 준종하라. 문제의 여리고성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눈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하 게 될 것이다.
4. 오직 침묵(수 6:10)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도는 이 행진은 참으로 이 상한 것이었다. 그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는 데 또하나 그들 에게 부과된 명령이 있다. 10절을 보라. "여호수아가 백성에 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 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일절 봉쇄하셨다. 그들은 법궤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귀는 나팔소리 를 향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 하나님은 왜 그들에게 침묵하라고 명령하셨을까 만일 하나님이 그들이 말하도록 내버려 두셨다면 그들은 성 을 돌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분명 그 무리들 중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부정적인 생각은 말 로 표현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동요되어 쉽게 이 행진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침묵을 명령하셨다. 오로지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이 고 법궤만을 바라보도록 하셨다. 이것은 경건생활에도 적용이된다.
A.W.토어져는 다음과 같 이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침 묵의 훈련이다.
왜냐하면 침묵을 배우지 않고는 하나님의 음 성을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너무 떠들고 불필요한 이야기를 많이 해대면서 인생을 살고 있다. 떠들다보니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 줄 시간 이 없다. 내 이야기만 하다보니 이웃의 말을 들어 줄 여유가 없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떠들다보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 혼자 지껄일 뿐 그분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그분이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그 음성을 들을 수 없다. 홍해 앞 바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모세에게 장사 지낼 옷이 없어서 여기까지 끌고와서 바다에 매장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처럼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갈 때 모세를 통해서 들려온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이었는 가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즉 하나님이 그들에게 먼저 명령하신 것은 침묵이었다. 이 이상하고도 놀라운 형편을 생각해 보라. 이 행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은 아무런 말없이 침묵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눈길은 법궤를 주시하고 있으며 그들의 나팔소 리를 통하여 주께서 싸우신다. 주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면 그 하나님은 당신과 나의 삶의 공 간 속에서 정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1). 그분은 참으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오늘 내 삶을 다스리시고 내 삶을 지배하고 계신가
(2). 그분이 지배하시고 다스려 주시는 이 삶의 의미와 감 격을 알고 있는가 이것을 모르는 까닭은 우리가
(1). 이 침묵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5. 절대 믿음(절대 하나님을 신뢰하라)(수 6: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 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 지라-"(2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이 무너지자 감격의 함성을 터뜨렸 나 아니면 소리를 질러 성벽을 무너뜨렸나 어느 성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마지막 일곱찌 날의 최후의 함성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다 이행한 후에 외친 최 후의 함성은 (하나님, 주께서 명하시는 것을 다 행했습니다. . 이제 하나님이 역사하실 차례입니다. 하나님이 하실줄 믿습니다)라는 믿음의 함성이고 믿음의 외침이며 믿음의 아우성이다.) 즉 외침이 성을 무너뜨린 것이 안 보이라믿음이 성을 무 너뜨린 것이다. 히11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믿음으로 칠일동안 여리 고를 두루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30). 이 성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절대적인 믿음이라고 설명이 행진은 처음부터 믿음이 요구되는 행진이었다. (성 주위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러하라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며 )(6:3-4). 그들 은 이말씀을 믿었다. 그것이 어리석은 명령처럼 보여도 나보 다 더 지혜로운 하나님의 명령이 기에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그대로 행한 것이다. 때때로 당장 주어지는 그 메시지가 내 이성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보다 더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므로 그대 로 행하겠다. 나를 향해 서 이것을 말씀하시고 또 이 일을 행 하도록내 마음을 북돋우고 있는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며 지 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전지하심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이 일을 하겠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이 행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에 그들은 믿음으로 최후의 함성을 질렀다. 그들은 믿음으로 시작했고 믿음으로 마지막 승리의 결산을 얻었다.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1:17)에 서(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 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그 것은 고 있믿음에서 시작해 서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끝 내는 삶을 끊임없는 믿음의 행진이다.
6. 결론 경고-이것여호수가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므로 승리를 거둘수 있다는 확신을 넣어주고는 승리를 거두었을 때의 할 일을 가 르쳐 주었다.
(1)하나는 성과 그 안의 전리품은 모두 여호와께 바치되 은 금 과 동철기구들을 바쳐야 하며 어느 것이 나 사욕을 부려서 췰하면 화를 당하리라는 것이다.
(2)하나님의 정탐꾼들을 생명을 걸고 숨겨준 기생 라함과 그 집안에 있는 사람과 물건은 다치지 말고 보호하여 주라는 것 이하었다.
(3)파괴한 여리고성을 재건하지 말 것을 엄히 경고하였다. 만일 이성을 재건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 이 니 기초를 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 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저주로 이 성의 재건을 용납 지 아니했다. 그후 오늘날까지 요단강 서안에 있는 여리고 지대에 많은 아랍인들이 살고 있으나 누구도 재건을 못하고 있으며 이제 와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국가를 재건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이스라엘인의 보복의 대상이 되어 희생만 당할 뿐 소원을 이 루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영원 불변의 진리이다. 그리고 여리고성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 것이 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을 무너 뜨릴 자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헐어버리신 것을 인간이 다시 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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