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에 들어서라 (수3:1-6)
본문
세 주일전 이 시간에 요단에 들어서라는 제목으로 첫번째 설교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요단에 들어서라고 하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철철 넘치는 죽음의 강속에서 빠져가는 것을 기뻐하실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리가 달리고 싶은 발에 쇠고랑을 채우시고 기뻐하실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훨훨 날고 싶은데 날개쭉지를 잘라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사시는 하나님으로서 요단강물을 주장하시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역경 의 길을 인도하시고, 건너편에 맹수들처럼 우굴거리는 가나안의 7 족속들을정녕히 쫓 아내실 온 땅의 주인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앞서 가시면서 모든 것을 보장해 놓 으시고 요단으로 들어서라는 사랑의 배려를 하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시간 요단에 들어서라는 제목의 두번째 설교로서 요단에 들어서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가 어떻게 순종해야 할 것인지 그 순종의 지침에 대해서 말씀을 함께 상고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자칫 잘못하면 대충 순종해야 겠다는 충동과 본 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부엌칼을 가지고 심장을 수술하겠다는 것과 같은 자세입니다.미로와 같 은 대도시에서 마치 약도도 없이 구석집을 찾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구체적인 지침대로 순종해야 하는데 오늘 본문말씀에 어 떠한 지침이 나타나 있습니까
첫째, 언약궤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3절을 보시면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언약궤 뒤를 좇으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서 전체를 읽어 보시면 언약궤가 항상 백성들 앞서 갔던 것만 아닙니다. 여 호수아 6장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돌 때는 맨 앞에 무장한 군인들이 앞에 서고 그 뒤에 나팔을 잡는 제사장들이 따라가고 그 뒤에 언약궤가 가고 그 다음 후군이 따랐습니다. 그러니까 언약궤가 중간에 선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는 앞에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언약궤가 앞설 필요가 있는 것이지 만 여리고 성을 돌 때는 앞에 장애물이 없었지만 위에서 지금 언제 화살을 쏠지,돌을 던질지, 창을 던질 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호와의 언약궤가 중간에 섰습니다. 언약궤가 앞에 서든지 중간에 서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언약궤를 중심으로 해서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작은 아이성을 정복하는 일에 참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지도자 여호수아가 머리에 티끌을 무 릅쓰고 옷을 찢으면서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는 언약궤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언약궤 앞에서 하나님께 물었다는 기록이 7장 6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핵심적으로 두고 언약궤를 중심으로 움직였 습니다.
그러면 이 언약궤가 무엇이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중심하여 움직였 습니까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언약궤에 대한 자세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언약궤는 이집트와 시내 광야에서 많이 나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가볍고 단단 한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안과 밖을 금으로 도금을 했습니다. 그 크기는 길이가 1.2m 정도, 너비 75cm, 높이가 75cm 정도입니다. 그럼 어느 정도 크다는 것을 여러분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밑에는 4곳에 금고리를 답니다. 또 도금한 아카시 아 나무의 막대기를 그 사이에 끼워서 고정시켜 놓습니다. 그 안에는 언약의 두 돌판 십계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고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에게 기적적으로 먹이셨다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 리 가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언약궤 위에 뚜껑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속죄소라고 해서 뚜껑이라는 개념이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 크기도 역시 1.2m, 75cm, 7 5cm 정도입니다. 그 뚜껑은 금으도 도금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금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지성소의 기물들 가운데 가장 값비싼 것이 이 속죄뚜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속죄뚜껑 위에는 옆으로 날개 달린 두 그룹, 천사들이 있는데 언약궤와 속죄소를 보호하는 것처럼 마주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언약궤입니다. 출애굽기 25장 22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 을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언약궤 위의 속죄뚜껑 위에와 그룹 사이에 계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면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이 언약궤의 모습을 여러분이 머리에 그려보시면 왜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중심 으로 움직였는지금방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성소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징한다면 언약궤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보좌에 앉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치하셨는데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에 기억하셔야 할 것은 언약궤 속에 언약의 두 돌판이 있다는 사실과 그 위에 속죄 뚜껑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언약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언약을 주시고 자신은 나 몰라라 하고 도망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 엘 백성에게 언약하신대로 만나를 주셨습니다. 언약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주셨습니다. 언약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오 그들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언약을 약속하신 대로 100% 완벽하게 하나도 어김없이 그대로 지키 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어긋남없이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언약의 하나님께서자기 백성을 향해서 이 언약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 것 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언약궤인데 이 언약궤를 뒤따르라고 하시면서 4절 말씀에,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고 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언약궤를 뒤따르라고 하시면서 2,000규빗 거리를 두고 따라 가라고 하십니다.
2,000 규빗을 대충 계산하면 1km 정도입니다. 1km 정도 뒤에서 따라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보면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길 때는 특별한 사람이 옮깁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이 옮기는 과정에서도 그 언약궤를 만진다 든지 그속을 보면 죽습니다. 역대상 13장 10절에 웃사가 언약궤가 움직인다고 해서 그것을 만지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신약성경에 이것을 적용시켜 본다면 하나님과 우리는 너무나 가깝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 짖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실 때 노예의 영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양자의 영을 주셔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아바'라는 말은 아빠라 고 하는 말인데 아주 친근한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고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고 있다고 해서 그 앞에서 까불수는 없습니다. 그 앞 에서 건방지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 앞에서 거만하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분이라고 할지라도 그 분을 경외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2,000규빗 거리를 두고 따라가라는 것은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중심으로 해서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는 사람들이 가장 편하고 쉬운 것을 진리로 봅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대주의가 급성전염병처럼 펴져가고 있는 이 병든 사회 속에서 정확무오한 절대 주권에 의지한 하나님, 이 언약의 말씀에 근거 해서 그 말씀 한마디에 인생을 걸고 순종하는 이것이 바로 언약궤를 따라가는 자세입니다.
둘째, 성결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5절에 보시면,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 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열려라 참 깨!'할 때 열리는 식으로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도깨비 방망이 하나 들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자신이 약속하신 언약의 말씀을 실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기적을 행하실 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 하면 스스로 성결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결케 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출애굽기 19장 10, 14절에 보면 옷을 빠는 것으로 나 타나 있습니다. 옷을 빨지 못할 때에는 창세기 35장 2절에 옷을 갈아 입는 것으로 나 타나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5절에는 여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옷 을 빨고 성관계를 금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 성결케 하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그것 이 구약시대였기 때문에 겉으로만 그렇게 되면 되는 것이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 지만 신명기 6장 5절에 보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을 사랑하는"표시로서 옷을 빨고 성관계를 금하는 것으로 그들이 스스로 지켰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성결케 해야 하겠습니까 죄로 오염된 세상에서 늘 죄와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오염시 키는 죄를 깨끗이 청산하고 죄를 증오하는 것이 바로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에게 기적을 행하시리라고 한 이 여호와를 모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성결해야 합니다. 조금 전에 제가 설명한 대로 언약궤를 다시 한번 머리에 떠올리면서 저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언약궤 안에 십계명만 있고 그 위에 속죄 뚜껑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십계 명 두 돌판만 있고 속죄 뚜껑이 없었다면 죄 많은 백성들은 다 전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성물 중에서도 제일 값진 지성물로 속죄뚜껑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대로 행하다가 행치 못할 때에 용서받을 수 있는 속죄 뚜껑 을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은 굉장한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속죄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는데 여러분이 여러분이 여호수아서를 읽어 보시면 어떻게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처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육체적으로 싸웠기 때문에 육체적인 전쟁으로 나타나는데 요즘은 영적 으로 처리해야 되는 문제인데 아간이 범죄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아간 을 발견하게 하고, 돌을 치고, 그 위에 불을 지르고,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 문제를 처리할 때는 우리 가슴 깊숙이 숨겨져 있는 그 죄를 돌로 치듯이 깨끗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불을 싸 지르듯이 죄 문제를 깨끗이 청산해야 합니다. 19세기 세계적인 설교가 스펄젼 목사님이 말하기를 "죄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12명을 달라. 그러면 런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변화시키겠다"고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 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의 피를 통해서 깨끗함을 받을 수가 있는 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약 50년 전에, 아프리카, 콩고, 웸바라고 하는 마을에 큰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니까 그 중에서 두 여인이 자기들 과거 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 한 여인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인데 교회의 성미를 가지고 가서 썼 던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성미 한 자루를 가지고 나왔습니다."여러분, 이것은 교회를 위하여 써야 할 것인데 제가 썼습니다. 회개하고 돌려드립니다." 그 다음에 한 여인은 "저는 남의 집에 봉사하고 있는 여자인데 제가 주인에게 허락 받지 않고 계란 하나를 썼습니다. 제가 회개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남자가 나왔습니다. "저는 서점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선교사의 댁 을 방문했을 때 그 분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성경 한 권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이것 을 이제 돌려 드리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이 세 사람이 구체적으로 자기들의 삶 속에서 저질렀던 죄악을 돌이키고 하나님 앞 에 섰을 때 성령님께서 크게 역사하셔서 그 가운데 큰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하셨다는 것 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가 어떠한 시대입니까 오늘 이 사회가 전체적으로 썩어 들어가는 모습들이 여기서 저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보면서 누가 메스를 들어 야 합니까 누가 수술을 해야 합니까 물론 정치 지도자들은 법대로 엄중하게 다스려 질서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성결케 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말씀에 비추어 자기의 삶을 살펴보고 캥기는 것을 제거하고 십자가 앞에 엎드려 자기 죄를 구체적으로 깨끗하게 회개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부패한 사회에 마치 조약돌을 호수에 던지면 그것이 파문을 일 으키는 것처럼 거룩한 조약돌을 삶의 현장에서 던져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성결의 파문을 일으킨다면 우리 하나님이 크신 영광을 받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세째, 들어서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8절을 보시면, "너는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300만명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위치에 서 보십시오. 국민들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군중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요단에 들 어서라는 말을 하나님 앞에 받았을 때 그걸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요단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고 하셨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13절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 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 어지고 쌓여 서리라 말슴을 하셨지만 잘 모르겠다."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대로 말씀했습니다.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서리라" 그리고는 끝입니다. 그 다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액면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제사장의 위치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요단에 이르거든 들어서라."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언약궤를 메고 있는데 거기가 어디라고 들어섭니 까 뿐만 아니라 여기 4장 10절을 펴보겠습니다. "궤를 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여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 며 " 여러분들이 제사장들의 위치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철철 넘치는 요단에 발을 먼저 들여놓은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먼저 가십시오. 우리는 뒤에 가겠습니다."하면서 물이 갈라지고난 후에 중앙에서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철저하게 순 종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백성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홍해가 갈라진 것을 보고난 후 3일만에 물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불평도헛고, 원망도 없고,소란도 없 었습니다. 극심한 어려움 앞에서도 조용히 신뢰하면서 건너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순종하는 백성들의 모습입니까 1927년에 이 지역에 20시간 물이 끊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이도것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4장 18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의 발바닥이 물에 잠기자 요단 강물이 끊어졌고, 그 발바닥으로 요단 언덕에 올라오는 동시에 요단강 물이 다시 합해졌습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언약대로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순종하는 백성들에게 엄청난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물가에 잠겼을 때 물이 쫙-하고 빠져 나가는 데 20마일, 30Km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백성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여호수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요단을 가르셨구나! 요단이 갈라졌다!, 요단이 갈라졌다!, 요단이 갈라졌 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놀라운 역사가 그들의 눈 앞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관광객처럼 신앙생활하기 쉽습니다.여가가 있으면 명소를 구경하는 것처럼 신앙생활하고, 교회도 소풍오듯이 오기 쉽습니다.주 일날마다 새로운 메시지를 듣고 새로운 체험을 한다는 차원에서 거룩한 오락과 거 룩한 기분전환으로 오기 쉽습니다. 이것이 관광객의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뜯어고치고 순례자의 자세를 가지고 저 신령한 가나안 하늘나라 를 목표로 하고 하나님께서 왕이 되어서 인도하시는 언약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성결 케 하며, 요단으로 들어서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손해날 줄 알면서도 , 잘못될 줄 알면서도, 때로는 이것이 난관인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똑같은 방향 으로 오랫동안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순종하신다면, 여러분! 오늘이 이 현실 속에도 요단이 갈라지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똑같은 역사가 양태를 달리 하면서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성결케 하고 결단을 내리시면서 언약궤를 따라서 순종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언약궤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3절을 보시면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언약궤 뒤를 좇으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서 전체를 읽어 보시면 언약궤가 항상 백성들 앞서 갔던 것만 아닙니다. 여 호수아 6장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돌 때는 맨 앞에 무장한 군인들이 앞에 서고 그 뒤에 나팔을 잡는 제사장들이 따라가고 그 뒤에 언약궤가 가고 그 다음 후군이 따랐습니다. 그러니까 언약궤가 중간에 선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는 앞에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언약궤가 앞설 필요가 있는 것이지 만 여리고 성을 돌 때는 앞에 장애물이 없었지만 위에서 지금 언제 화살을 쏠지,돌을 던질지, 창을 던질 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호와의 언약궤가 중간에 섰습니다. 언약궤가 앞에 서든지 중간에 서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언약궤를 중심으로 해서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작은 아이성을 정복하는 일에 참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지도자 여호수아가 머리에 티끌을 무 릅쓰고 옷을 찢으면서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는 언약궤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언약궤 앞에서 하나님께 물었다는 기록이 7장 6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핵심적으로 두고 언약궤를 중심으로 움직였 습니다.
그러면 이 언약궤가 무엇이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중심하여 움직였 습니까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언약궤에 대한 자세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언약궤는 이집트와 시내 광야에서 많이 나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가볍고 단단 한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안과 밖을 금으로 도금을 했습니다. 그 크기는 길이가 1.2m 정도, 너비 75cm, 높이가 75cm 정도입니다. 그럼 어느 정도 크다는 것을 여러분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밑에는 4곳에 금고리를 답니다. 또 도금한 아카시 아 나무의 막대기를 그 사이에 끼워서 고정시켜 놓습니다. 그 안에는 언약의 두 돌판 십계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고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에게 기적적으로 먹이셨다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 리 가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언약궤 위에 뚜껑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속죄소라고 해서 뚜껑이라는 개념이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 크기도 역시 1.2m, 75cm, 7 5cm 정도입니다. 그 뚜껑은 금으도 도금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금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지성소의 기물들 가운데 가장 값비싼 것이 이 속죄뚜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속죄뚜껑 위에는 옆으로 날개 달린 두 그룹, 천사들이 있는데 언약궤와 속죄소를 보호하는 것처럼 마주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언약궤입니다. 출애굽기 25장 22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 을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언약궤 위의 속죄뚜껑 위에와 그룹 사이에 계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면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이 언약궤의 모습을 여러분이 머리에 그려보시면 왜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중심 으로 움직였는지금방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성소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징한다면 언약궤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보좌에 앉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치하셨는데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에 기억하셔야 할 것은 언약궤 속에 언약의 두 돌판이 있다는 사실과 그 위에 속죄 뚜껑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언약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언약을 주시고 자신은 나 몰라라 하고 도망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 엘 백성에게 언약하신대로 만나를 주셨습니다. 언약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주셨습니다. 언약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오 그들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언약을 약속하신 대로 100% 완벽하게 하나도 어김없이 그대로 지키 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어긋남없이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언약의 하나님께서자기 백성을 향해서 이 언약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 것 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언약궤인데 이 언약궤를 뒤따르라고 하시면서 4절 말씀에,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고 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언약궤를 뒤따르라고 하시면서 2,000규빗 거리를 두고 따라 가라고 하십니다.
2,000 규빗을 대충 계산하면 1km 정도입니다. 1km 정도 뒤에서 따라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보면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길 때는 특별한 사람이 옮깁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이 옮기는 과정에서도 그 언약궤를 만진다 든지 그속을 보면 죽습니다. 역대상 13장 10절에 웃사가 언약궤가 움직인다고 해서 그것을 만지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신약성경에 이것을 적용시켜 본다면 하나님과 우리는 너무나 가깝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 짖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실 때 노예의 영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양자의 영을 주셔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아바'라는 말은 아빠라 고 하는 말인데 아주 친근한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고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고 있다고 해서 그 앞에서 까불수는 없습니다. 그 앞 에서 건방지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 앞에서 거만하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분이라고 할지라도 그 분을 경외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2,000규빗 거리를 두고 따라가라는 것은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중심으로 해서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는 사람들이 가장 편하고 쉬운 것을 진리로 봅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대주의가 급성전염병처럼 펴져가고 있는 이 병든 사회 속에서 정확무오한 절대 주권에 의지한 하나님, 이 언약의 말씀에 근거 해서 그 말씀 한마디에 인생을 걸고 순종하는 이것이 바로 언약궤를 따라가는 자세입니다.
둘째, 성결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5절에 보시면,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 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열려라 참 깨!'할 때 열리는 식으로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도깨비 방망이 하나 들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자신이 약속하신 언약의 말씀을 실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기적을 행하실 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 하면 스스로 성결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결케 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출애굽기 19장 10, 14절에 보면 옷을 빠는 것으로 나 타나 있습니다. 옷을 빨지 못할 때에는 창세기 35장 2절에 옷을 갈아 입는 것으로 나 타나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5절에는 여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옷 을 빨고 성관계를 금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 성결케 하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그것 이 구약시대였기 때문에 겉으로만 그렇게 되면 되는 것이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 지만 신명기 6장 5절에 보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을 사랑하는"표시로서 옷을 빨고 성관계를 금하는 것으로 그들이 스스로 지켰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성결케 해야 하겠습니까 죄로 오염된 세상에서 늘 죄와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오염시 키는 죄를 깨끗이 청산하고 죄를 증오하는 것이 바로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에게 기적을 행하시리라고 한 이 여호와를 모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성결해야 합니다. 조금 전에 제가 설명한 대로 언약궤를 다시 한번 머리에 떠올리면서 저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언약궤 안에 십계명만 있고 그 위에 속죄 뚜껑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십계 명 두 돌판만 있고 속죄 뚜껑이 없었다면 죄 많은 백성들은 다 전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성물 중에서도 제일 값진 지성물로 속죄뚜껑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대로 행하다가 행치 못할 때에 용서받을 수 있는 속죄 뚜껑 을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은 굉장한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속죄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는데 여러분이 여러분이 여호수아서를 읽어 보시면 어떻게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처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육체적으로 싸웠기 때문에 육체적인 전쟁으로 나타나는데 요즘은 영적 으로 처리해야 되는 문제인데 아간이 범죄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아간 을 발견하게 하고, 돌을 치고, 그 위에 불을 지르고,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 문제를 처리할 때는 우리 가슴 깊숙이 숨겨져 있는 그 죄를 돌로 치듯이 깨끗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불을 싸 지르듯이 죄 문제를 깨끗이 청산해야 합니다. 19세기 세계적인 설교가 스펄젼 목사님이 말하기를 "죄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12명을 달라. 그러면 런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변화시키겠다"고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 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의 피를 통해서 깨끗함을 받을 수가 있는 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약 50년 전에, 아프리카, 콩고, 웸바라고 하는 마을에 큰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니까 그 중에서 두 여인이 자기들 과거 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 한 여인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인데 교회의 성미를 가지고 가서 썼 던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성미 한 자루를 가지고 나왔습니다."여러분, 이것은 교회를 위하여 써야 할 것인데 제가 썼습니다. 회개하고 돌려드립니다." 그 다음에 한 여인은 "저는 남의 집에 봉사하고 있는 여자인데 제가 주인에게 허락 받지 않고 계란 하나를 썼습니다. 제가 회개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남자가 나왔습니다. "저는 서점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선교사의 댁 을 방문했을 때 그 분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성경 한 권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이것 을 이제 돌려 드리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이 세 사람이 구체적으로 자기들의 삶 속에서 저질렀던 죄악을 돌이키고 하나님 앞 에 섰을 때 성령님께서 크게 역사하셔서 그 가운데 큰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하셨다는 것 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가 어떠한 시대입니까 오늘 이 사회가 전체적으로 썩어 들어가는 모습들이 여기서 저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보면서 누가 메스를 들어 야 합니까 누가 수술을 해야 합니까 물론 정치 지도자들은 법대로 엄중하게 다스려 질서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성결케 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말씀에 비추어 자기의 삶을 살펴보고 캥기는 것을 제거하고 십자가 앞에 엎드려 자기 죄를 구체적으로 깨끗하게 회개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부패한 사회에 마치 조약돌을 호수에 던지면 그것이 파문을 일 으키는 것처럼 거룩한 조약돌을 삶의 현장에서 던져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성결의 파문을 일으킨다면 우리 하나님이 크신 영광을 받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세째, 들어서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8절을 보시면, "너는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300만명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위치에 서 보십시오. 국민들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군중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요단에 들 어서라는 말을 하나님 앞에 받았을 때 그걸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요단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고 하셨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13절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 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 어지고 쌓여 서리라 말슴을 하셨지만 잘 모르겠다."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대로 말씀했습니다.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서리라" 그리고는 끝입니다. 그 다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액면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제사장의 위치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요단에 이르거든 들어서라."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언약궤를 메고 있는데 거기가 어디라고 들어섭니 까 뿐만 아니라 여기 4장 10절을 펴보겠습니다. "궤를 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여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 며 " 여러분들이 제사장들의 위치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철철 넘치는 요단에 발을 먼저 들여놓은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먼저 가십시오. 우리는 뒤에 가겠습니다."하면서 물이 갈라지고난 후에 중앙에서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철저하게 순 종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백성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홍해가 갈라진 것을 보고난 후 3일만에 물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불평도헛고, 원망도 없고,소란도 없 었습니다. 극심한 어려움 앞에서도 조용히 신뢰하면서 건너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순종하는 백성들의 모습입니까 1927년에 이 지역에 20시간 물이 끊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이도것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4장 18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의 발바닥이 물에 잠기자 요단 강물이 끊어졌고, 그 발바닥으로 요단 언덕에 올라오는 동시에 요단강 물이 다시 합해졌습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언약대로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순종하는 백성들에게 엄청난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물가에 잠겼을 때 물이 쫙-하고 빠져 나가는 데 20마일, 30Km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백성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여호수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요단을 가르셨구나! 요단이 갈라졌다!, 요단이 갈라졌다!, 요단이 갈라졌 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놀라운 역사가 그들의 눈 앞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관광객처럼 신앙생활하기 쉽습니다.여가가 있으면 명소를 구경하는 것처럼 신앙생활하고, 교회도 소풍오듯이 오기 쉽습니다.주 일날마다 새로운 메시지를 듣고 새로운 체험을 한다는 차원에서 거룩한 오락과 거 룩한 기분전환으로 오기 쉽습니다. 이것이 관광객의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뜯어고치고 순례자의 자세를 가지고 저 신령한 가나안 하늘나라 를 목표로 하고 하나님께서 왕이 되어서 인도하시는 언약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성결 케 하며, 요단으로 들어서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손해날 줄 알면서도 , 잘못될 줄 알면서도, 때로는 이것이 난관인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똑같은 방향 으로 오랫동안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순종하신다면, 여러분! 오늘이 이 현실 속에도 요단이 갈라지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똑같은 역사가 양태를 달리 하면서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성결케 하고 결단을 내리시면서 언약궤를 따라서 순종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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