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을 건너갈 광야 교회의 준비 (수3:6)
본문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광야 교회를 이끌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 나안 땅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가나안 정복의 책임과 사명을 하나님으로 부터 부여받았습니다. 그가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세를 따라 40년 가까이 험난한 역경 중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고,또 불가능 속에서 나타나는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속히 일어나지 않을 때는 백성들이 원망,불평하는 것도 보았습니다.그리고 끝내는 벌을 받아 멸망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다가 온 식구까지 땅이 입을 열어서 삼켜버리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도 보아 왔습니다.그러나 참으로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할 때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도 보았습니다.
그 모든 여정을 마치고 이제 요단강을 무사히 건너야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이 가나안 땅은 그때부터 400년 전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창 15:13-21) 그러나 쉽게 차지할 땅이 아니라 싸워서 가져야 할 땅입니다. 그 땅에는 오래 전부터 일곱 족속이 우상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가나안,헷,아모리,브리스,히위, 여부스,기르가스 족속입니다.(수 3:10) 그들은 몸이 큰 아낙 자손입니다.그들의 성읍은 크고 대단히 튼튼하고 높습니다.그들이 힘을 모 아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각오하고 있습니다.참으로 두려운 상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수 1:5,6에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자 가 없으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는 약속이 그것입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 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도자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믿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곧 두 정탐군을 선정하여 그 땅과 형편을 살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두 사람은 마침 여리고의 환 경을 조사하고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 유숙하면서 더 자세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정보를 가지고 가나안 정복의 계획을 세웠습니다.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싯딤을 떠나 요단강 동쪽편에서 삼일간 유숙했습니다.여호수아는 요단을 향해 속히 가지않고 왜 삼일의 시간을 가졌을까요
첫째,삼일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1,2) 여리고에 대한 두 정탐군의 상황 보고를 받은 여호수아는 과연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고 이루어 가고 계심을 깨닫고 용기와 담력을 얻었습니다. 여리고 기생 라합이 말해 준 정보는 수 2:9-11에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 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가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영적 준비를 하면서 40년동안 광야 행진을 한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거울로 삼고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도 가나안 땅과 여리고의 상황 보고를 하나님 앞에 놓고 요단강 동편 들에서 영적 준비 를 먼저 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백성들이 불신앙과 불순종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겠다는 각오와 결 심이 필요했습니다.그리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가로막히는 담이 없어야만 했습니다.요단강을 홍해같이 건너 무서운 대적들과 싸워 정복할 때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해 주시려면 하나님과 저들 사이에 장애가 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싯딤을 떠나 요단 들에서 삼일을 유숙하면서 이 준비를 빠짐없이 해 나갔던 것입니다.
둘째,삼일 동안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언약궤만 보고 좇을 것을 명했습니다.
(3) 여호수아는 요단들에서 여리고와 가나안 땅의 입수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삼일간 하나님께 기도 하면서 지시를 기다렸습니다. 삼일 후에 응답 받은 내용은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볼 때 백성들은 그 장막의 말뚝을 뽑아 천막을 걷은 다음 그 언약궤를 보고 따르라는 것이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유사들에게 이 사실을 어린아이나 어른들이나 할 것 없이 빠짐없이 전달을 하게 했 고 그 지시대로 따르게 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게 된 날은 니산월 10일로서 양 력으로는 3,4월경입니다. 이때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늦은비(호 6:3)와,이른비(슥 10:1)라고 불리우는 많은 비가 내리기 시 작하기 때문에 강물이 최고의 수위를 기록할 때입니다. 그러한 때에 이백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전능하심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궤의 뒤를 따르라고 했습니까 그 언약궤에는 무엇이 들어 있 을까요 그 언약궤 속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그리고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왜 언약궤를 보고 그 뒤를 따라 가나안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그 이유는 백성들 앞에 넘 쳐 흐르는 요단강은 죄와 사망의 물결로 출렁이는 이 세상을 상징하며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 합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을 앞서 나아갔고 이들의 발이 요단강에 닿자마자 거세게 흐르는 요단강물이 멈췄으며,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언약궤의 인도를 받으며 무사히 요단강을 건 널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앞서 죄와 죽음의 강물을 멈추게 하셨습니다.지금 아직 언약궤 가 강물 속에 들어가지도 아니했고 또 갈라져 마른 땅이 되지는 아니했으나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뒤를 따라 갔던 것입니다. 언약궤를 제사장들이 멜 때 요단강 물에 무슨 변화가 온 것이 아닙니다.강을 향하여 계속 걸어 갈 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명하신 것은 너희는 그 언약을 믿고 그 뒤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해만 바라보고 사는 꽃을 해바라기 라고 하듯이 성도는 주만 바라보고 사는 자들이기 때문에 주(主)바라기 가 되어야 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 보라 고 했습니다. 칼빈 선생님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그리스도의 지시하시는 대로 캄캄한 밤을 한걸음 한걸 음 옮겨 놓는 것이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오직 광야 40년을 주만 바라보고 불과 구름기둥의 인도만 받고 움직였습니다.주님은 나 를 따라오라,나를 쳐다보라,나를 의지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너희는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4) 이천 규빗은 약 900m 정도입니다.8절에 보면 제사장들의 발이 강가에 닿았을 때 백성들은 여전 히 바깥 강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이렇게 언약궤와 거리를 두게 한 것은
(1)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에 대해서 경외심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고(출 3:45).
(2)백성으로 하여금 언약궤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고,
(3)광야 교회이지만 영적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같이 주님의 몸된 교회는 직분의 존중과 참된 질서 위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세우셨고,제사장들도 하나님이 세우셨고,유사들 도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따라서 제사장들도 유사들도 여호수아를 따라야 합니다.히 12:17 너희 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게게 유익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또 삼상 24:5,6에 보면 자신을 죽이려고 따라다니는 사울을 본 다윗은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자 기 부하에게 이르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라 고 하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인간이 해쳐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했습니다.
넷째,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5) 하나님께서 요단이 갈라지기 전에,하나님의 기적이 있기 전에 왜 성결케 하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이것을 먼저 요구합니까 그것은
(1)성결하라는 회개 운동은 천국으로 가는 선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 4:17에 예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먼저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 라 하였습니다.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세상법으로는 죽어야 했지만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니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2)성결하라는 회개 운동은 위기에서 구원받는 길입니다. 민 21:5-9,삼상 7:6-12,욘 2:1,3:1에 보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에 처하여 죽게 되었을 때, 철저히 회개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멸망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3)성결하라는 회개운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눅 15:7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리라 고 했습니다.죄인을 구하러 오신 주님은 그 앞에서 회개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요단을 건너야 할 광야 교회는 반드시 성결운동이 앞서야 합니다.개인적으 로나,교회적으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가라고 했습니다.
(6) 6절에 보면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 앞서 나아가니라 고 했습니다.즉 광야교회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 말씀 앞에서 솔선수범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교회는 영원토록 지도자가 되신 예수님이 모범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마 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고 했습니다. 빌 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 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되었고 죽기까지 십자가에 복종하였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2)사도들이 모범을 보였습니다. 행 20:35에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으니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 4:16,11:1,빌 3:17)고 하였습니다.
(3)직분자들이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모범적인 신앙의 순종이 있는 곳에 기적의 길이 열립니다.제사장들이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 조금도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강물이 범람하여 넘쳐 흐르는데 법궤를 메고 들어가라는 명령에 무조건 순종을 하였습니다.기적 의 징조가 보이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전진하였던 것입니다.이 걸음은 믿음의 걸음 이요,모험적인 신앙의 결단이요 실천입니다.제사장들이 믿음으로 걸어갈 때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오늘도 우리의 구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그 모든 여정을 마치고 이제 요단강을 무사히 건너야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이 가나안 땅은 그때부터 400년 전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창 15:13-21) 그러나 쉽게 차지할 땅이 아니라 싸워서 가져야 할 땅입니다. 그 땅에는 오래 전부터 일곱 족속이 우상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가나안,헷,아모리,브리스,히위, 여부스,기르가스 족속입니다.(수 3:10) 그들은 몸이 큰 아낙 자손입니다.그들의 성읍은 크고 대단히 튼튼하고 높습니다.그들이 힘을 모 아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각오하고 있습니다.참으로 두려운 상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수 1:5,6에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자 가 없으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는 약속이 그것입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 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도자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믿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곧 두 정탐군을 선정하여 그 땅과 형편을 살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두 사람은 마침 여리고의 환 경을 조사하고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 유숙하면서 더 자세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정보를 가지고 가나안 정복의 계획을 세웠습니다.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싯딤을 떠나 요단강 동쪽편에서 삼일간 유숙했습니다.여호수아는 요단을 향해 속히 가지않고 왜 삼일의 시간을 가졌을까요
첫째,삼일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1,2) 여리고에 대한 두 정탐군의 상황 보고를 받은 여호수아는 과연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고 이루어 가고 계심을 깨닫고 용기와 담력을 얻었습니다. 여리고 기생 라합이 말해 준 정보는 수 2:9-11에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 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가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영적 준비를 하면서 40년동안 광야 행진을 한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거울로 삼고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도 가나안 땅과 여리고의 상황 보고를 하나님 앞에 놓고 요단강 동편 들에서 영적 준비 를 먼저 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백성들이 불신앙과 불순종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겠다는 각오와 결 심이 필요했습니다.그리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가로막히는 담이 없어야만 했습니다.요단강을 홍해같이 건너 무서운 대적들과 싸워 정복할 때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해 주시려면 하나님과 저들 사이에 장애가 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싯딤을 떠나 요단 들에서 삼일을 유숙하면서 이 준비를 빠짐없이 해 나갔던 것입니다.
둘째,삼일 동안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언약궤만 보고 좇을 것을 명했습니다.
(3) 여호수아는 요단들에서 여리고와 가나안 땅의 입수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삼일간 하나님께 기도 하면서 지시를 기다렸습니다. 삼일 후에 응답 받은 내용은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볼 때 백성들은 그 장막의 말뚝을 뽑아 천막을 걷은 다음 그 언약궤를 보고 따르라는 것이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유사들에게 이 사실을 어린아이나 어른들이나 할 것 없이 빠짐없이 전달을 하게 했 고 그 지시대로 따르게 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게 된 날은 니산월 10일로서 양 력으로는 3,4월경입니다. 이때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늦은비(호 6:3)와,이른비(슥 10:1)라고 불리우는 많은 비가 내리기 시 작하기 때문에 강물이 최고의 수위를 기록할 때입니다. 그러한 때에 이백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전능하심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궤의 뒤를 따르라고 했습니까 그 언약궤에는 무엇이 들어 있 을까요 그 언약궤 속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그리고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왜 언약궤를 보고 그 뒤를 따라 가나안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그 이유는 백성들 앞에 넘 쳐 흐르는 요단강은 죄와 사망의 물결로 출렁이는 이 세상을 상징하며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 합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을 앞서 나아갔고 이들의 발이 요단강에 닿자마자 거세게 흐르는 요단강물이 멈췄으며,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언약궤의 인도를 받으며 무사히 요단강을 건 널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앞서 죄와 죽음의 강물을 멈추게 하셨습니다.지금 아직 언약궤 가 강물 속에 들어가지도 아니했고 또 갈라져 마른 땅이 되지는 아니했으나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뒤를 따라 갔던 것입니다. 언약궤를 제사장들이 멜 때 요단강 물에 무슨 변화가 온 것이 아닙니다.강을 향하여 계속 걸어 갈 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명하신 것은 너희는 그 언약을 믿고 그 뒤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해만 바라보고 사는 꽃을 해바라기 라고 하듯이 성도는 주만 바라보고 사는 자들이기 때문에 주(主)바라기 가 되어야 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 보라 고 했습니다. 칼빈 선생님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그리스도의 지시하시는 대로 캄캄한 밤을 한걸음 한걸 음 옮겨 놓는 것이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오직 광야 40년을 주만 바라보고 불과 구름기둥의 인도만 받고 움직였습니다.주님은 나 를 따라오라,나를 쳐다보라,나를 의지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너희는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4) 이천 규빗은 약 900m 정도입니다.8절에 보면 제사장들의 발이 강가에 닿았을 때 백성들은 여전 히 바깥 강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이렇게 언약궤와 거리를 두게 한 것은
(1)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에 대해서 경외심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고(출 3:45).
(2)백성으로 하여금 언약궤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고,
(3)광야 교회이지만 영적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같이 주님의 몸된 교회는 직분의 존중과 참된 질서 위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세우셨고,제사장들도 하나님이 세우셨고,유사들 도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따라서 제사장들도 유사들도 여호수아를 따라야 합니다.히 12:17 너희 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게게 유익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또 삼상 24:5,6에 보면 자신을 죽이려고 따라다니는 사울을 본 다윗은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자 기 부하에게 이르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라 고 하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인간이 해쳐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했습니다.
넷째,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5) 하나님께서 요단이 갈라지기 전에,하나님의 기적이 있기 전에 왜 성결케 하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이것을 먼저 요구합니까 그것은
(1)성결하라는 회개 운동은 천국으로 가는 선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 4:17에 예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먼저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 라 하였습니다.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세상법으로는 죽어야 했지만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니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2)성결하라는 회개 운동은 위기에서 구원받는 길입니다. 민 21:5-9,삼상 7:6-12,욘 2:1,3:1에 보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에 처하여 죽게 되었을 때, 철저히 회개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멸망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3)성결하라는 회개운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눅 15:7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리라 고 했습니다.죄인을 구하러 오신 주님은 그 앞에서 회개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요단을 건너야 할 광야 교회는 반드시 성결운동이 앞서야 합니다.개인적으 로나,교회적으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가라고 했습니다.
(6) 6절에 보면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 앞서 나아가니라 고 했습니다.즉 광야교회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 말씀 앞에서 솔선수범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교회는 영원토록 지도자가 되신 예수님이 모범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마 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고 했습니다. 빌 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 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되었고 죽기까지 십자가에 복종하였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2)사도들이 모범을 보였습니다. 행 20:35에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으니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 4:16,11:1,빌 3:17)고 하였습니다.
(3)직분자들이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모범적인 신앙의 순종이 있는 곳에 기적의 길이 열립니다.제사장들이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 조금도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강물이 범람하여 넘쳐 흐르는데 법궤를 메고 들어가라는 명령에 무조건 순종을 하였습니다.기적 의 징조가 보이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전진하였던 것입니다.이 걸음은 믿음의 걸음 이요,모험적인 신앙의 결단이요 실천입니다.제사장들이 믿음으로 걸어갈 때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오늘도 우리의 구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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