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있는 자란? (수1:5-9)
본문
느브갓네살왕의 뒤를 이어 바벨론의 왕이된 벨사살왕이 어느날 예루살렘에서 빼앗아온 금과 은으로 만든 잔을 가져다가 바벨론의 고관대작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 었습니다.
그런데, 왕궁 촛대 맞은편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을 쓰는 것을 왕 이 보게되었습니다. 왕은 그것을 본후 두려운 마음이 생겨 모든 술객들과 술사 그리고 점쟁이, 박사들을 불러다가 그 글의 내용을 해석할 것을 명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 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이러할때, 다니엘이 부름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난처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 좋은 말이면 하기쉽지만 반대 로 좋지않은 말은 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왕 벨사살에게 다니엘이 알고 있는 내용을 전한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를 필요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서 담대히 글의 내용을 설명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두렵고 떨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분명한 말이었습니다. 다니엘서 5:18-23절까지가 그 해석입니다. 그 내용은 벨사살의 아버지인 느브갓네살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그에게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었지만, 그 마음이 거만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 비참하게 살면서 지극히 높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 데, 아들인 벨사살이 그와같은 사실을 알고서도 마음을 낮추지 않고 하늘의 주재를 거역 하고 성전의 그릇들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그리고 우상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내용의 설명은 보통의 마음으로는 감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분명 히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을지언정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너 무도 잘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에게만 허락한 하나님의 배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전함에 있어 담대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용기가 없이는 하나님이 주신 의를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과 교훈은 그냥 온 누리에 퍼 지는 오토매틱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당신의 계획을 펼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간의 수고로 당신의 계획이 펼쳐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는 역할을 주시며 인간을 하나님을 대신하는 청지 기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과 능력이 인간을 통하여 되 어지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이루어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위 해서는 인간은 용기와 담대함을 겸비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기입니다. 전쟁에서 무기없이 승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신앙의 중요한 영적 원리의 하나는 담 대함, 즉 용기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 모세의 후계자로 직분을 부여받은 여호수아를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주어지는 중심적인 교훈은 다른 무엇보다 용기라고하는 사실을 하나님은 강 조하고 있습니다. 용기는 우리가 준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놀라운 계획을 갖 고 계시다할지라도 그 계획을 우리 삶의 현장에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 각자가 그 일을 위하여 어떠한 자세를 갖고있느냐에 따라 그 이루어지는 시간과 결실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가 물을 보일 수 있고 물을 먹일 수 있는 기회 를 제공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그 말에게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이미 예비한 것이라 하지만 그것을 예비하신 목적대로 되어지게 하는 것은 우리의 노 력과 성실한 준비를위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기있는 자로 살 수 있는 길과 원료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준비된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각자의 무기로 만들기만 하는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성실히 준행할때, 우리는 여 기서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온전한 결합과 조화만이 가장 최고의 피조물로 존립 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가 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원리를 통하여 탄 생된 용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음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게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 한자는 용기있는 자이며, 용기있는 자는 믿음이 강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우리는 우리의 신앙적 무기가 되는 용기있는 자에 대한 성서적인 개념과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7절 말씀을 보면,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우리는 흔히 용기있는 자를 말할때,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용 기있고 그와 비슷한 뜻으로 배짱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살펴본 본문에서 하나님이 주신 용기있는 자의 개념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닙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용기있는 자의 표준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함에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 중앙에서 정확한 판단력을 갖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용기있는 자라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와 뜻을 같이하고 힘을 결집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단체를 만드는 습 성이 있습니다. 정치에서는 정당, 사회내에서는 여러가지 단체, 그리고 교회내에서는 여 러 다양한 교파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다양한 주장을 결집시키는 정당과 단체 그리고 교파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정확한 판 단으로 정직하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할려고 할 때,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 익을 주고, 세상을 더욱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보이지 아니하는 잇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하지않고 자신들의 특별한 주장만을 싫던 좋던 앵무새 마냥 주장하 고 강요한다면, 세상은 그러한 집단으로 인하여 심한 파국을 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용기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개인의 고집과 사상만을 주장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상대 방을 극한 상태로 몰아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관철하였다 하여 그들의 집단과 개인을 용 기있는 자라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에서 하나님은 여호수 아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용기가 어떠한 용기라 말씀하고 계십니까 정확하고 신중한 판단력으로 사물을 판단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더 나아가 옳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분명한 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가 민족의 지도자가 될 때, 그 민족은 비젼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에 있을 때,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의 빛이되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데모를 많이 하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학생운동은 민족의 운명을 좌지우지 했으며, 그들의 수고와 땀은 인간이 인간 답게 산다는 민주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는 것에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학생운동이 시대의 부름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젊음을 불살랐 다면, 요즈음의 학생운동은 특정집단의 이익과 데모를위한 데모를 한다는 것에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우리의 선배들은 이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독재 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인권을 유린하는 권력의 핵심집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투쟁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혹 그러한 순수한 투쟁을 이용하는 정치 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시골에서 저는 어린시절과 혈기왕성했던 20대초 반을 보내면서도 지금과는 다른 체험을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동네의 어 른들이지만, 그리고 시장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지만,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과 데모데를 보면서, 그들은 주머니 돈을 털어서 자신들을 대신해주는 젊은이들이 너무도 고마워 빵 을 사서 그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기도 하였으며, 음료수로 그들의 갈증을 씻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 모두는 하나였습니다. 민주화를 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우리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로 바꿔버렸던 것입니다. 정부의 진압에 때리면 피를 흘리면서도, 우리는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분노보다는 부끄럽게되어버린 민족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 리고 그 억압속에 고통당하는 민초들을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딱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시간을 되풀이하면서 하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의 서광을 주었고, 우리 모두는 과거와는 달라진 세상에 환호성을 부르면서 모두 자신들의 본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과거의 운동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운동은 과거와는 달리 이 땅을 공산주의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자식에게까지 권력을 승계시키면서 백성의 아픔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가장 악한 집단을 추종하고, 그들의 주체사상을 신봉 하는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누 구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누구를 위하여 관공서에 화염병을 던지고, 시민들의 생활을 파 괴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들은 말할지 모릅니다. 자신들이 애국자이기에 화염병을 들 고, 적의 심장부와 같은 관공서에 불을지르고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이들을 민족이름 으로 처단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하늘의 마음인 민심은 그 누구도 그들을 애국 자라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국자가 아니라 사이비 애국자인 것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행동은 용기가 아니라 난동입니다. 자신들의 주장과 반대의 입장에 있으면, 가치없이 폭력을 행하는 그들에게 그리고 그와 유사한 집단의 일 원들에게 하나님은 용기가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해야 합니다. 중용의 자세로 사물을 바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러할 때, 용기는 모든 이들에게 유익을 선물하며, 하나님은 그 용기를 통하여 당신의 선하심과 공의를 이 땅에 드러내십니다. 공자가 한 말 가운데 용기와 관련된 말 이 있기에 성도님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용기만 있고 정의의 도를 모르면 난동을 부린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우리가 용기있는 자라 칭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를 알지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공의를 알지못하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난동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는 용기 있는 자가 되기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세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변화시 키는 원동력이 되는 용기를 소유하고 참된 용기를 지탱하기 위해서 성도가 해야할 하나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행하는 자가되어야 합니다. 1장8절에서 무어라 말하고 있습니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하며 주야로 이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케 될 것 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용기있는 자가 되기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지식과 우리가 가진 특별한 재능으로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며 묵상하고 그리고 그 가운데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을 행해야 우리의 길이 평탄케 될 것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평탄케 되는 것은 현 실의 편안함을 말하는 개인적인 의미에 좁혀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부귀와 영화 가 있는 것을 평탄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민족의 새로운 지도자로 서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에서 평탄은 거국적인 그리고 광범위한 평탄을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모두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에게는 특별하고 다양한 의미가 주어져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지도자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 자신의 안일함과 번영에 만족하는 범주에서 이제는 벗어나 새로운 세상 의 주역이되는 헌신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던 적이 여 러번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의 징벌하실 때의 공통점을 보면, 한결같이 일부특권층의 편안 함만 있었고, 그외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의 편안함에 희생당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있 을 때,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셨습다. 이제 우리 모두 다니엘과 같이 여호수아와 같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을 늘 사모하며 묵상하고 그 말씀을 행함으로 용기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분명히 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용기로 무장하여,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온갖 불의를 이 땅으로부터 몰아내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확장되는 역사의 주인공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런데, 왕궁 촛대 맞은편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을 쓰는 것을 왕 이 보게되었습니다. 왕은 그것을 본후 두려운 마음이 생겨 모든 술객들과 술사 그리고 점쟁이, 박사들을 불러다가 그 글의 내용을 해석할 것을 명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 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이러할때, 다니엘이 부름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난처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 좋은 말이면 하기쉽지만 반대 로 좋지않은 말은 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왕 벨사살에게 다니엘이 알고 있는 내용을 전한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를 필요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서 담대히 글의 내용을 설명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두렵고 떨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분명한 말이었습니다. 다니엘서 5:18-23절까지가 그 해석입니다. 그 내용은 벨사살의 아버지인 느브갓네살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그에게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었지만, 그 마음이 거만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 비참하게 살면서 지극히 높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 데, 아들인 벨사살이 그와같은 사실을 알고서도 마음을 낮추지 않고 하늘의 주재를 거역 하고 성전의 그릇들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그리고 우상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내용의 설명은 보통의 마음으로는 감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분명 히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을지언정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너 무도 잘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에게만 허락한 하나님의 배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전함에 있어 담대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용기가 없이는 하나님이 주신 의를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과 교훈은 그냥 온 누리에 퍼 지는 오토매틱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당신의 계획을 펼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간의 수고로 당신의 계획이 펼쳐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는 역할을 주시며 인간을 하나님을 대신하는 청지 기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과 능력이 인간을 통하여 되 어지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이루어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위 해서는 인간은 용기와 담대함을 겸비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기입니다. 전쟁에서 무기없이 승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신앙의 중요한 영적 원리의 하나는 담 대함, 즉 용기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 모세의 후계자로 직분을 부여받은 여호수아를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주어지는 중심적인 교훈은 다른 무엇보다 용기라고하는 사실을 하나님은 강 조하고 있습니다. 용기는 우리가 준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놀라운 계획을 갖 고 계시다할지라도 그 계획을 우리 삶의 현장에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 각자가 그 일을 위하여 어떠한 자세를 갖고있느냐에 따라 그 이루어지는 시간과 결실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가 물을 보일 수 있고 물을 먹일 수 있는 기회 를 제공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그 말에게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이미 예비한 것이라 하지만 그것을 예비하신 목적대로 되어지게 하는 것은 우리의 노 력과 성실한 준비를위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기있는 자로 살 수 있는 길과 원료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준비된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각자의 무기로 만들기만 하는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성실히 준행할때, 우리는 여 기서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온전한 결합과 조화만이 가장 최고의 피조물로 존립 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가 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원리를 통하여 탄 생된 용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음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게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 한자는 용기있는 자이며, 용기있는 자는 믿음이 강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우리는 우리의 신앙적 무기가 되는 용기있는 자에 대한 성서적인 개념과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7절 말씀을 보면,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우리는 흔히 용기있는 자를 말할때,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용 기있고 그와 비슷한 뜻으로 배짱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살펴본 본문에서 하나님이 주신 용기있는 자의 개념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닙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용기있는 자의 표준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함에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 중앙에서 정확한 판단력을 갖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용기있는 자라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와 뜻을 같이하고 힘을 결집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단체를 만드는 습 성이 있습니다. 정치에서는 정당, 사회내에서는 여러가지 단체, 그리고 교회내에서는 여 러 다양한 교파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다양한 주장을 결집시키는 정당과 단체 그리고 교파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정확한 판 단으로 정직하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할려고 할 때,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 익을 주고, 세상을 더욱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보이지 아니하는 잇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하지않고 자신들의 특별한 주장만을 싫던 좋던 앵무새 마냥 주장하 고 강요한다면, 세상은 그러한 집단으로 인하여 심한 파국을 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용기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개인의 고집과 사상만을 주장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상대 방을 극한 상태로 몰아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관철하였다 하여 그들의 집단과 개인을 용 기있는 자라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에서 하나님은 여호수 아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용기가 어떠한 용기라 말씀하고 계십니까 정확하고 신중한 판단력으로 사물을 판단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더 나아가 옳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분명한 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가 민족의 지도자가 될 때, 그 민족은 비젼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에 있을 때,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의 빛이되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데모를 많이 하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학생운동은 민족의 운명을 좌지우지 했으며, 그들의 수고와 땀은 인간이 인간 답게 산다는 민주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는 것에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학생운동이 시대의 부름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젊음을 불살랐 다면, 요즈음의 학생운동은 특정집단의 이익과 데모를위한 데모를 한다는 것에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우리의 선배들은 이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독재 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인권을 유린하는 권력의 핵심집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투쟁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혹 그러한 순수한 투쟁을 이용하는 정치 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시골에서 저는 어린시절과 혈기왕성했던 20대초 반을 보내면서도 지금과는 다른 체험을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동네의 어 른들이지만, 그리고 시장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지만,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과 데모데를 보면서, 그들은 주머니 돈을 털어서 자신들을 대신해주는 젊은이들이 너무도 고마워 빵 을 사서 그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기도 하였으며, 음료수로 그들의 갈증을 씻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 모두는 하나였습니다. 민주화를 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우리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로 바꿔버렸던 것입니다. 정부의 진압에 때리면 피를 흘리면서도, 우리는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분노보다는 부끄럽게되어버린 민족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 리고 그 억압속에 고통당하는 민초들을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딱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시간을 되풀이하면서 하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의 서광을 주었고, 우리 모두는 과거와는 달라진 세상에 환호성을 부르면서 모두 자신들의 본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과거의 운동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운동은 과거와는 달리 이 땅을 공산주의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자식에게까지 권력을 승계시키면서 백성의 아픔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가장 악한 집단을 추종하고, 그들의 주체사상을 신봉 하는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누 구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누구를 위하여 관공서에 화염병을 던지고, 시민들의 생활을 파 괴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들은 말할지 모릅니다. 자신들이 애국자이기에 화염병을 들 고, 적의 심장부와 같은 관공서에 불을지르고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이들을 민족이름 으로 처단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하늘의 마음인 민심은 그 누구도 그들을 애국 자라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국자가 아니라 사이비 애국자인 것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행동은 용기가 아니라 난동입니다. 자신들의 주장과 반대의 입장에 있으면, 가치없이 폭력을 행하는 그들에게 그리고 그와 유사한 집단의 일 원들에게 하나님은 용기가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해야 합니다. 중용의 자세로 사물을 바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러할 때, 용기는 모든 이들에게 유익을 선물하며, 하나님은 그 용기를 통하여 당신의 선하심과 공의를 이 땅에 드러내십니다. 공자가 한 말 가운데 용기와 관련된 말 이 있기에 성도님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용기만 있고 정의의 도를 모르면 난동을 부린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우리가 용기있는 자라 칭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를 알지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공의를 알지못하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난동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는 용기 있는 자가 되기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세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변화시 키는 원동력이 되는 용기를 소유하고 참된 용기를 지탱하기 위해서 성도가 해야할 하나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행하는 자가되어야 합니다. 1장8절에서 무어라 말하고 있습니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하며 주야로 이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케 될 것 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용기있는 자가 되기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지식과 우리가 가진 특별한 재능으로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며 묵상하고 그리고 그 가운데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을 행해야 우리의 길이 평탄케 될 것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평탄케 되는 것은 현 실의 편안함을 말하는 개인적인 의미에 좁혀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부귀와 영화 가 있는 것을 평탄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민족의 새로운 지도자로 서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에서 평탄은 거국적인 그리고 광범위한 평탄을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모두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에게는 특별하고 다양한 의미가 주어져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지도자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 자신의 안일함과 번영에 만족하는 범주에서 이제는 벗어나 새로운 세상 의 주역이되는 헌신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던 적이 여 러번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의 징벌하실 때의 공통점을 보면, 한결같이 일부특권층의 편안 함만 있었고, 그외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의 편안함에 희생당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있 을 때,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셨습다. 이제 우리 모두 다니엘과 같이 여호수아와 같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을 늘 사모하며 묵상하고 그 말씀을 행함으로 용기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분명히 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용기로 무장하여,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온갖 불의를 이 땅으로부터 몰아내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확장되는 역사의 주인공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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