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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있는 사람들 (수1:1-9)

본문

저는 90 평생을 자녀도 없이 외롭게 살아오신 한 할머니를 알고 있습니다. 이 분은 꽃다운 10대의 어린 나이에 고향인 수원에서 좋은 신랑과 결혼 을 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결혼한지 불과 몇 개월만에 남편이 멀리 미국으 로 떠나게 되었는데, 갔다가 꼭 오겠노라고 약속을 하였지만 종내는 아무 소 식도 없어 이 할머니는 결국 미국간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평생을 혼 자 사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은 남편이 '오겠다고 하였 기 때문에' 그 약속만 믿고 기다리다 보니 자기 생애가 다 끝났더라고 하시 면서 지금도 그 약속은 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의 생애를 생각할 때, 참으로 애절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이 며 전시대(前時代) 한국 여성의 부도를 실천한 또 훌륭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재가를 하시던지 수소문해서 미국 간 남편의 생사여부라도 알아보시지 그랬습니까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어떻 게 혼자 사실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 분은 단순히 꼭 다시 오신 다는 약속만 믿고 기다렸을 뿐이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 무나도 무모한 일이 아니었는가 하면서도 저는 오직 한가지 약속만 믿고 기 다린 그 할머니의 기다림의 세월이 무언가 가슴이 뭉클한 뜻을 전해 준다고 느꼈습니다. 히브리서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을 멀리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으며, 땅 위에서는 손과 나그네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히11:13) 라고 말하였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라고 할 때에, 그것은 곧 약속을 굳 게 붙잡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과 신뢰심 이 어떻게나 강한지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산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약속을 믿고 그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것을 보시면 기뻐하시고 믿음이 없는 것은 책망하 십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참지 않고, 신실성를 저버리는 일인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예로들어 믿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 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었다'고 하였고 '아 브라함은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아니하였고' '아브라함은 그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아브라함 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였으니 하나님은 이를 저에 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20)고 하였습니다. 즉 언제 어떠한 상황속에서라 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며 현실에 이루어지는 실재보다 오히려 약속자체를 더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 그들이 믿음을 가 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신실하 심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약속하신대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까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그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성경은 약속입니다. 구약은 옛 언약이고 신약은 새 언약입니다. '성경'의 언약은 하나님이 그 성경을 믿는자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약속을 바로 알아야 되며 또한 약속하신 것을 믿어야 됩니다. 반드시 약 속하신대로 믿고 말씀하신대로 믿고 따라야 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 약속 의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무엇을 더한다던지 무엇을 덜한다면 그것은 월권입니다. 하나님이 약 속하신 것을 자기 기분이나 취향대로 고칠 수 없습니다. 말씀에 가하거나 감 하는 것은 약속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서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좌 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대로 지키고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믿는 사람은 '약속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입의 말은 영원히 없어 지지 아니하며 그 약속들의 일점이나 일획도 변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약속하신대로 이루어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말씀하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요.계시요.명령이라고 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은 거짓 선생이요 적 그리스도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보내시지 않았는데 보냄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는 이단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 대로 믿지 않으면 그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약속 아니한 것은' 믿지도 보 지도 따르지도 말고 '약속하신 것은' 그 약속대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 되어 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후손이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수있나 보라'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 때에 아브 라함은 여호와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창 15:6) 그 말씀.그 약속은 다른 분 의 약속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은 하나님이 하신 그대로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약속을 그대로 믿고 신 뢰하고 의지하게 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속대로 믿는 것 만이 의를 이룰 수 있게 합니다.
둘째로, 약속을 믿는 자가 된다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것' 입니다.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라고 한 것은, 인간으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한 사실이라는 것을 아브라함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 불가능 성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을 더 믿고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현실보다 약속을 더 따랐고 자기의 상식과 경험보다 '약속'을 더 믿었습니다. 모든 것 의 비중을 하나님의 약속편에 더 두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다는 말입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끊질기게 믿고 무모할 정도 로 믿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믿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억지를 쓰고 배짱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불가능의 가능' 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 갈 수 있었던 일은 그것이 어 디 억지나 배짱으로 되었던 일이었겠습니까 '바랄 수 없는 것 중에도 바라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가능했던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신기하거 나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때때로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약속을 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믿고 그 위에 굳게 서는 사람들에게는 약속대로 되어집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기적도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때로는 바랄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기에 감격이 있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 게되고 믿음이 얼마나 큰 힘인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 속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게 하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약속을 믿는 자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믿고 움직이고 행하는 자들입니다. 약속이 이루어졌느냐 아니 냐 보다, 이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은 단 하나의 자녀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녀 를 갖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민족 의 조상으로 세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때문에 그는 이미 '민족들의 조 상'이 된 것입니다. 천지가 있기 전에 말씀이 먼저 계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 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서 말씀이 먼저 있음으로 모든 것이 다 있게 되 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을 믿고 따르려고 합니다. 보이는 세계는 믿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된 존재는 '보이지 않는데' 있습니다. 말씀이나 약속은 보이는 것이 아 닙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실제요 무엇이 근원입니가 참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무 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물질 세계에 있는 것 들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하나님과 그 세계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이며 그 림자들입니다. 모형은 진짜가 아니고 모조품들이며 그림자는 실제가 아니고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 한 영상일 뿐 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열심히 추구하고 소원하는 이 세상의 것들은 결국 모형이며 그림자들에 지나지 않 습니다. 그 실체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숨겨져 있습니다. 그 실체요 근원자이신 하나님이 하신 그 약속을 믿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졌거나 아니거나 거기에 구 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알라' 고 하셨는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그 분이 누구이신지 않다면, 또 너희가 누구에게 기도한 것인지를 안다면 벌써 다 된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안으로 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주장하시고 이끄시고 섭리하시는 그 분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만물의 창조자이시요 역사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있고 없고, 보이고 안보이고, 되고 안되고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하시는 분, 되게도 하고 안되 게도 하시는 전능자 하나님, 바로 그 분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여 주신 약속이 아닙니까 이 약속만 굳게 잡으면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위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음으로써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외형적으로 변화가 없어 보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본체의 세계 에는 큰 혁명과 변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질때 보이지 않는 힘이 생겼 고 약속을 믿는 자가 될 때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변화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은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약속을 믿는 사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 진 것'으 로 알고 믿고 감사하며 그 성취감과 기쁨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넷째로 약속을 믿는 자들이란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는 사람 들입니다. 약간 바라는, 그저 희망사항으로 기대하는 정도의 믿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에 완전히 설복당하여 '미 쳐 날 뛸' 정도의 기쁨과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확신입니다. 아마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볼 때엔 '미친 짓'같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총독 베스도 앞에서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할 때 그의 확신이 얼마나 강했던지 총독은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붙잡는 믿음은 참되고 정신차린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확신은 참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믿는대로 행하게 되고 믿는 바를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행동하며 자 기가 믿는 바 대로 살아갑니다.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약속을 확신한 아브라함은 무조건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니 그는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 있는 확신은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 삭으로 말미암으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리실 줄 생각'(히 11:18)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철저하게 그 약속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확신하는 믿음이 무엇보다도 그 사람을 '강한 자'로 만듭니다. 열심이 있 고 능력이 있게 합니다. 확신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다 강하게 만 듭니다. 물론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보면 실제로 그는 강하 기만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의심도 하고, 때로는 나약해지기도 했 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계속 의심하거나 계속 나 약해 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약속을 믿는다고 해도 때 때로 나약해집니다. 의심이 들어 옵니다. 회의에 빠지고 엉뚱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그러한 순간적인 유혹과 일시 적인 실수를 계속해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약속을 붙잡 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약속에로 돌아오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래서 '약하여 지지않고'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또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은 '보증'이 있는 권리증과 같습니다. 이 권리증은 한갖 종 이쪽지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재산권을 확실히 보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약속한대로 믿고, 바라지 못할 일도 바라며,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모든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약속과 통곡 성경


본문:신 1:34-46 저는 오늘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성도 여러분 께 약속된 축복이 넘치게 임하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해 드립니다. 오늘 저는 신명기서를 이해함으로서 역사위에 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믿음으로 사는 백성의 축복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때로 우리는 왜 신앙을 가지며 교회를 찾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신앙이란 과연 보 장된 축복이 있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가질수도 있습니다. 신명기서는 그 러한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찬된 세계를 알게 해주는 기록이라 생각됩니다. 모세를 통해 전해진 기록중에 신명기서는 하나님의 통치의 수 단을 말씀하는 책이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신명기서를 바로 이해할 수 잇 다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 생활은 아주 쉽게 받아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은 축복을 하시고 악하고 불의한 사람은 벌하신다는 분 명한 선언을 가르켜 신명기서의 이론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신명기서의 이론은 신구약을 통털어 어김없이 적용되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요한 사실 이 오늘 성경에 약속이라는 은총의 삶과 통곡이라는 형벌의 삶으로 묘사하 고 있습니다. 유다 임금중에 웃시야 라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들을 잘 다스려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번의 실수를 범했습니다. 모세의 법에 제사장만이 성전에 들어 가 분향할 수 있는데 모세의 법을 어기고 분향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로인 해 웃시아는 문둥병자가 되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악하기로 이름난 므낫세라는 임금이 있습니다. 그는 조직적으로 우상을 숭배하게 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임금이었습니다. 자신도 우상을 숭배했고 그를 따르 지 않는 신앙인을 많이 잡아 죽였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도 이 악한 임금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종 말에 바벧론 포로가 됐을 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옴으 롬써 그의 나라를 다시 다스릴 수 있는 은총을 입은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명기서가 우리에게 주고잇는 약속과 통곡의 두개의 삶 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도 변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축복의 기다리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과 은총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번영이나 평화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건강과 삶에 풍성한 은혜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에 약속 된 축복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의 은사도 하늘의 신령한 은혜도 육 신의 건강과 삶에 축복도 성경에 약속한 것을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지금 그 축복을 우리의 삶 속에 넘치게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통곡의 형벌을 싫어하빈다. 형벌의 사람이 되는 것을 바라지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오늘 성경자데는 약속의 백성과 통곡의 백성이 있습니다. 누가 약속의 백성이며 누가 통곡의 백성입니까 지금 이스라엘은 광야 를 향해 행군해야 하는 때입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진군해야 합니다. 그때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사람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만이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선악을 분별하 지 못하는 자녀들과 아이들만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수종하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너희는 희정하여 홍해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가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듣지 않고 병기를 들고 산지로 올라가 싸 웠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그들은 산지에 살고 있는 아모리 사람들에게 쫓기고 맙니다. 세일산에서부터 호르마까지 쫓기면서 크게 패하고 맙니다. 그때야 하나님앞에 통곡하였지만 여호와께서 듣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타난 약속의 축복과 통곡의 형벌은 신명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적 사 실을 확인시켜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약속과 형벌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섭 리로서 변하지 않은 역사적 법칙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어느 시대 어떤 생활 속에서도 약속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한다 해도 신앙 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한 역사속에 하나님의 약속 또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시련이 왔다해도 우리는 그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나라가 무섭게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 무쌍한 세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이 세상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변하지 않았고 그의 약속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약속의 은총을 기다리는 믿음을 가저야 합니다. 여러분의 빛 나는 눈망울 속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의 빛이 가득 채워지기를 축원 합니다. 그 믿음의 눈은 분명히 약속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리고 그 길을 다 갈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함께 할줄 믿 습니다. 그것은 약속을 믿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이요 축복입니다. 이 큰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 성경


본문:엡 6:1-4 우리 기독교는 가정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 에게 제일 먼저 축복해 주신 곳이 가정입니다. 이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사회와 국가로 하나님의 축복이 확산되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며,가정의 고귀성을 말씀하셨습니다. 한 가정의 건강은 곧 사회의 건강이요, 국가의 건강이요, 교회의 건강이요, 전 인류의 건강입니다. 본문 성경말씀은 건강한 가정의 비결로 자녀는 부모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가르쳐 주고 있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룩할 수 있는 초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 자녀는 부모에게
1) 순종하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1절). 자녀들은 마땅히 부모에 대해서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비록 부 모에 대한 공손한 태도와 예의를 지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종종 왜 목사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답변 하기를 "제 어머니 때문에 목사가 되었습니다."하고 얘기합니다. 사실 아 버지께서는 저에게 장차 무엇이 되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 최자실 목사님께서는 항상 저에게 '너는 목사가 되거라'고 하시면서 기도할 댈 가항상 '목사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마음속으로 나이들어 늙어가는 어머니께 효도하는 길이 무엇 이겠는가하고 생각하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 렇게 결심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신학교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목사가 되고 나니 후회가 막심했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 로 갈 껄,내가 왜 어머니가 하라는 길을 선택했을까 어머니는 다른 좋은 것 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목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서 나를 이렇게 고생 시키는가'하고 30대까지만 해도 불만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40대 중반을 넘어서 '내가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길 잘 했구 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목사가 되니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 습니다. 낙심한 사람 위로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도와주고 복음을 전 하니 참으로 기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말씀이 나에게 옳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면 성경말씀에 기록된 대로 땅에서 잘되고 장 수하는 축복이 임하게됩니다.부모의 말씀을 순종해도 축복을 받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어 찌 하나님의 축복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다.
2) 공경하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잇는 첫 계명이니'(2절) 자녀 들은 부모에게 순종할 뿐 아니라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하는 것은 존경하고 예를 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과 은총으로 기르고 도와주고 붙들어 주는 부모와 스 승, 하나님 앞에서 공경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기서 공경이란 사랑과 존경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우리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에게는 영광을, 부모에게는 공경을'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부 모를 잘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에게 사랑과 존경을 다하여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껨서 그 삶을 보장하여 주신 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선택의 것이 아닙니다. 이는 자녀의 도리요, 책임이요, 의무 요, 하나님이 세워주신 질서오, 명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부모는 자녀를-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비뚤어지거나 어긋남이 없이 주님의 말씀 가운데서 잘 자라게 하는 것이 부 모의 도리입니다. 여기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단순히 자녀 를 징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잠언 29장 15절에 보면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가 방종하 지 않도록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부모는 항상 자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 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렇게 혼탁하고 무질서한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자녀를 바르게 인도할 수있는 길은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렇게 혼탁하고 무질서한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자녀를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기르는 길밖에 없습니다. 주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게 하며, 주의말씀 가운데 거하게 하는 방법외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에는 부모의 그 부모의 언어를 닮고 행동을 닮고 신앙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기대와 부모의 격려 여하에 따라 그 자녀들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화가인 벤자민 웨스트라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외출을 하시면서 어린 벤자민 웨스트에게 집을 맡겼다고 합니다. 혼자서 집을 보고 있던 이 아이는 누나의 그림물감으로 누나의 얼굴을 그리 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방은 온통 물감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 아 이는 '내가 이렇게 방을 더럽게 해 놓앗으니 어머니는 나를 혼내줄 거야'하 고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있었습니다. 드디어 어머니가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지저분한 방을 둘러 보더니 ' 이 그림을 누가 그렸니"하고 물었 습니다. "제가 그렸어요."그 어린 아이는 두려운 마음으로 겨우 대답했습니다. 아유,참 잘 그렸구나 너는 그림에 소질이 있나 보구나."하고 엄마가 칭찬을 하며 입을 맞춰 주었습니다. 야단을 맞을 줄 알았던 그는 오히려 칭찬을 받게 되자 그 순간 화가가 되 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후에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부모의 칭찬과 용기와 소망은 자녀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 의 실수를 책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격려해 주고 용기를 줄 때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육심리학자들은 어린이의 교육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은 부모를 닮는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외모나 성격, 삶의 태 도까지 닮습니다. 어려서는 어머니를 더 많이 배우고 어머니의 영향을 받지 만, 학교에 다닐 무렵인 6세 정도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 게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물인 여러분의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고 계십 니까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세상 적인 지식을 하나 더 넣어 주겠다는 생각에 급급하고 있습니까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 이것이 범사에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약속있는 첫 계명임을 꼭 명심하고, 가치의 최우선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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