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가 함께 하는 사람 (수1:1-9)
본문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그들의 삶 속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 여호수아 1장 5절로 6절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에 관해서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같이 하심으로 결코 정복되거나 패배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그 삼 속에 얻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형통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까요 성경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한 조건을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약속이 있는 사람(1-4)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위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이 약속을 거부하였다면 버림당한 생애를 살아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마음속에 받아들였습니다. 성경 여호수아 1장 1절로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받아들이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웨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야웨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나아갈 약속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받아들이고 살 때 하나님이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약속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열왕기하 4장 1절로 7절에 보면 엘리사의 선지자 학교의 생도가 죽고 그 부인이 채주에게 몹시 고통을 당했습니다. 채주는 와서 그 빚 대신에 자녀들을 종으로 잡아다가 팔아야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당한 생도 부인이 엘리사에게 와서 도와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열왕기하 4:2) 그 부인은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왕하 4:2)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저가 가로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열왕기하 4:3-7) 이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 기름은 성령님의 역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는 그릇이 있어야 계속해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이 그릇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과 환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술로 '나는 약속이 없습니다. 나는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살 따름입니다' 이처럼 부정적으로 시인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더이상 역사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사도행전 2:17-18)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심으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여러가지 참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이 약속과 환상을 상실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연을 바라고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적당주의로 살아왔기 때문에 오는 이런 참사의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세상의 욕망을 쫑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분명한 약속을 가지고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정직, 성실, 근면 충성을 가지고 일한다면 하나님이 어찌 우리에게 이와 같은 참사를 당하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약속을 갖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와 더불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삶 속에 작은 삶이나 큰 삶이나 하나님께로 받은 약속을 가지고 가슴에 품고 뛰어 갈 때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함께 역사하셔서 끊임없이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자는 지치지 아니합니다. 범죄치 아니합니다. 유혹을 이길수 있습니다. 요셉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약속을 가지고 뜨거운 소원을 가질 때 우리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약속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여 주셔서 우리의 생각하는 것이나 약속꾸는 것 이상으로 큰 역사를 베풀어 주신다는 약속이십니다. 갈보리 교회의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의 약속을 붙듭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꿈을 가집시다. 하나님께서 나로 인하여 이루실 그 큰 꿈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둘째.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
(6)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없고 마음속에 늘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뒤로 물러서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0:38)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대다수 믿는 사람들은 감각적인 지식을 가지고 주위 환경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두려워해서 하나님 말씀을 저버릴 때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냄새 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들에 의해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풍랑 이는 바다 위에서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 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걸어나갈 때 베드로는 물 위로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위환경인 바람과 파도를 보고 그만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머뭇거리자 그는 물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마태복음 14:29-3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면 우리는 환경과 운명의 노예가 되고 세속의 물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여호수아 1장 9절)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그처럼 사랑했습니까 다윗이 윤리와 도덕적으로 정말 의롭고 거룩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윤리나 도덕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번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신 것은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인생을 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년 다윗은 양무리를 칠때 곰이나 사자가 공격을 할 때도 피하지 아니하고 담대히 대적했습니다. 다윗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의지하여 나가자 하나님의 천사가 함께 하여 주어서 사자와 곰같은 맹수들을 무찌를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장수 골리앗을 죽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 경험이 많고 훈련된 장수가 많았으나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기세에 눌려서 그와 대결해서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사무엘상 17:8-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년 목동 다윗은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야웨를 의지하고 강하고 극히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한 이방인 군대를 향해 나아가 싸우겠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재구에 물맷돌 다섯 개 넣고 물매에 돌을 넣어 골리앗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고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굴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웨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야웨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사무엘상 17:45-46)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물맷돌을 흔들어서 돌을 날려보내니 돌이 골리앗의 이마 정통을 때리자 골리앗이 돌에 맞아 거꾸러지자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뽑아 그 목을 베고 피가 흐르는 목을 높이 들자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그때야 용기와 힘을 얻고 일제히 일어나서 블레셋을 공격해 블레셋은 완전히 전멸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을 통해서 강하고 담대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알고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편에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사자도 곰도 거꾸러지고 골리앗도 거꾸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함을 가지고 우리의 운명과 환경에 도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7-9) 우리는 오직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한 형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우상도 못 만들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여호수아 1장 7절로 9절에 보면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웨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그 말씀을 또 깊이 묵상을 해서 내것으로 만들고 그말씀을 좇아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하나님이 같이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와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도 대화를 많이 해야 친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에 보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야웨께서는 모세와 대면하는 이야기가 친구와 대화하는 것과 같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모두 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그때가 하나님과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육신이 양식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자라고 힘을 얻는 것처럼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숙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읽지 않는 사람은 신앙이 형식적이며 의식적이 되므로 생명이 없는 신앙이 됩니다.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이 성숙한 신앙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명기 5장 33절에 "너희 하나님 야웨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의 삶이 복되고 우리의 삶도 장구하게 장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3절에도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했는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힘을 얻어 우리는 의롭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만이 영적으로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서 지식을 얻고 기도할 때 성령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리는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으로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기상천외한 곳에서 받으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엘리사가 호렙산 굴 앞에 서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기다릴 때 큰 폭풍우가 불어와서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돌이 날아가는데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지진이 일어나서 땅이 막 진동하고 바위가 깨지는데 그 속에 들어가보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불이 산을 가르고 지나가는데 혁력한 불이 확하고 지나가는데 보니 그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생각 속에서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엘리야야 엘리야야, 엘리야야, 네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느냐" 그는 그때에야 하나님이 자기의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 속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말씀하실 때 기상천외한 곳에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세미한 음성을 통해서 우리 생각을 통해서, 우리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받으면 얼마나 총명해 지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내가 받아들여서 내가 그것을 소유하면 바로 그것이 내 것이 됩니다. 시편 19편 7절로 11절에 "야웨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야웨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야웨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야웨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늘 말씀을 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접하게되면 하나님의 지혜있고 지식있고 총명하게 되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고 우둔한 일을 하지 않고 지혜롭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가 어느 곳에 있던지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개인이나 나라는 강성해지고 정복당하거나 패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의 역대 임금이나 역대 왕조는 언제나 강성하고 부귀영화가 충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날 때는 쇠퇴해지고 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이나 우리 나라가 강성해서 잘살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가지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과 늘 교제하면서 살아나갈 때,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우리는 성공적인, 승리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약속을 부여잡고 강하고 담대하게 행하며 말씀위에 굳게서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베푸시는 귀한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첫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약속이 있는 사람(1-4)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위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이 약속을 거부하였다면 버림당한 생애를 살아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마음속에 받아들였습니다. 성경 여호수아 1장 1절로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받아들이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웨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야웨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나아갈 약속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받아들이고 살 때 하나님이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약속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열왕기하 4장 1절로 7절에 보면 엘리사의 선지자 학교의 생도가 죽고 그 부인이 채주에게 몹시 고통을 당했습니다. 채주는 와서 그 빚 대신에 자녀들을 종으로 잡아다가 팔아야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당한 생도 부인이 엘리사에게 와서 도와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열왕기하 4:2) 그 부인은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왕하 4:2)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저가 가로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열왕기하 4:3-7) 이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 기름은 성령님의 역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는 그릇이 있어야 계속해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이 그릇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과 환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술로 '나는 약속이 없습니다. 나는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살 따름입니다' 이처럼 부정적으로 시인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더이상 역사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사도행전 2:17-18)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심으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여러가지 참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이 약속과 환상을 상실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연을 바라고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적당주의로 살아왔기 때문에 오는 이런 참사의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세상의 욕망을 쫑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분명한 약속을 가지고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정직, 성실, 근면 충성을 가지고 일한다면 하나님이 어찌 우리에게 이와 같은 참사를 당하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약속을 갖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와 더불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삶 속에 작은 삶이나 큰 삶이나 하나님께로 받은 약속을 가지고 가슴에 품고 뛰어 갈 때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함께 역사하셔서 끊임없이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자는 지치지 아니합니다. 범죄치 아니합니다. 유혹을 이길수 있습니다. 요셉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약속을 가지고 뜨거운 소원을 가질 때 우리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약속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여 주셔서 우리의 생각하는 것이나 약속꾸는 것 이상으로 큰 역사를 베풀어 주신다는 약속이십니다. 갈보리 교회의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의 약속을 붙듭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꿈을 가집시다. 하나님께서 나로 인하여 이루실 그 큰 꿈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둘째.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
(6)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없고 마음속에 늘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뒤로 물러서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0:38)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대다수 믿는 사람들은 감각적인 지식을 가지고 주위 환경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두려워해서 하나님 말씀을 저버릴 때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냄새 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들에 의해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풍랑 이는 바다 위에서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 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걸어나갈 때 베드로는 물 위로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위환경인 바람과 파도를 보고 그만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머뭇거리자 그는 물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마태복음 14:29-3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면 우리는 환경과 운명의 노예가 되고 세속의 물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여호수아 1장 9절)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그처럼 사랑했습니까 다윗이 윤리와 도덕적으로 정말 의롭고 거룩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윤리나 도덕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번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신 것은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인생을 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년 다윗은 양무리를 칠때 곰이나 사자가 공격을 할 때도 피하지 아니하고 담대히 대적했습니다. 다윗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의지하여 나가자 하나님의 천사가 함께 하여 주어서 사자와 곰같은 맹수들을 무찌를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장수 골리앗을 죽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 경험이 많고 훈련된 장수가 많았으나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기세에 눌려서 그와 대결해서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사무엘상 17:8-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년 목동 다윗은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야웨를 의지하고 강하고 극히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한 이방인 군대를 향해 나아가 싸우겠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재구에 물맷돌 다섯 개 넣고 물매에 돌을 넣어 골리앗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고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굴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웨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야웨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사무엘상 17:45-46)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물맷돌을 흔들어서 돌을 날려보내니 돌이 골리앗의 이마 정통을 때리자 골리앗이 돌에 맞아 거꾸러지자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뽑아 그 목을 베고 피가 흐르는 목을 높이 들자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그때야 용기와 힘을 얻고 일제히 일어나서 블레셋을 공격해 블레셋은 완전히 전멸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을 통해서 강하고 담대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알고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편에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사자도 곰도 거꾸러지고 골리앗도 거꾸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함을 가지고 우리의 운명과 환경에 도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7-9) 우리는 오직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한 형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우상도 못 만들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여호수아 1장 7절로 9절에 보면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웨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그 말씀을 또 깊이 묵상을 해서 내것으로 만들고 그말씀을 좇아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하나님이 같이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와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도 대화를 많이 해야 친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에 보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야웨께서는 모세와 대면하는 이야기가 친구와 대화하는 것과 같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모두 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그때가 하나님과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육신이 양식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자라고 힘을 얻는 것처럼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숙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읽지 않는 사람은 신앙이 형식적이며 의식적이 되므로 생명이 없는 신앙이 됩니다.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이 성숙한 신앙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명기 5장 33절에 "너희 하나님 야웨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의 삶이 복되고 우리의 삶도 장구하게 장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3절에도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했는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힘을 얻어 우리는 의롭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만이 영적으로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서 지식을 얻고 기도할 때 성령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리는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으로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기상천외한 곳에서 받으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엘리사가 호렙산 굴 앞에 서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기다릴 때 큰 폭풍우가 불어와서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돌이 날아가는데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지진이 일어나서 땅이 막 진동하고 바위가 깨지는데 그 속에 들어가보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불이 산을 가르고 지나가는데 혁력한 불이 확하고 지나가는데 보니 그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생각 속에서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엘리야야 엘리야야, 엘리야야, 네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느냐" 그는 그때에야 하나님이 자기의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 속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말씀하실 때 기상천외한 곳에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세미한 음성을 통해서 우리 생각을 통해서, 우리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받으면 얼마나 총명해 지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내가 받아들여서 내가 그것을 소유하면 바로 그것이 내 것이 됩니다. 시편 19편 7절로 11절에 "야웨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야웨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야웨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야웨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늘 말씀을 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접하게되면 하나님의 지혜있고 지식있고 총명하게 되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고 우둔한 일을 하지 않고 지혜롭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가 어느 곳에 있던지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개인이나 나라는 강성해지고 정복당하거나 패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의 역대 임금이나 역대 왕조는 언제나 강성하고 부귀영화가 충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날 때는 쇠퇴해지고 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이나 우리 나라가 강성해서 잘살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가지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과 늘 교제하면서 살아나갈 때,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우리는 성공적인, 승리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약속을 부여잡고 강하고 담대하게 행하며 말씀위에 굳게서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베푸시는 귀한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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