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 있는 가정 공동체 (신6:4-9,엡6:1-4)
본문
우리는 지난 주간에 세인을 놀라게 한 한 사건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무참하게 살해된 사건의 범인이 아들로 밝혀진 한약상부부의 피살 사건은 할말을 잃게 한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갖가지 끔찍한 폐륜이 빚어진바 있었으나 이번 사건만큼 충격적인 내용은 없었다. 더구나 어머니까지 함께 살해한다는 것은 존속살인사건중에서도 극히 드믄 경우다.
왜냐하면 부모살해가 우발적인 것이 아니고 계획적인 것이었고 살 해행위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각각 50,40곳이나 찌를 정도로 엽기적인 것이었으며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살해뒤에 불을 지를 정도로 가증스러 웠고 잔인했다. 대한한약협회 서울지부장 박순태(47)씨 부부살인방화사건의 범인은 박씨의 장남 박한상(23)군으로 경찰수사결과 1994.5. 26.에 박군으로 부터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범행에 사용한 등산용 칼을 증거품으로 압 수하고 6월 2일 현장검증을 끝으로 존속살인 및 방화협의로 구속했다. 박군은 90년 2월 서울 H고교를 졸업하고 지방모대학 토목과에 입학한 박한상군은 공부하기를 싫어했고 93년 7월 방위병으로 제대한 한상군 은 지방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빈둥거렸으며 보다못한 아버지 박씨는 자신이 다니던 서울 답십리 반석교회 박구하 목사와 상의하여 LA근교 프레르노 퍼시픽 칼리지를 다니게 됴다. 아버지가 보내준 월 500딸라 의 월세 아파트에서 2천딸라 생활비를 받으며 한국서 같은 이유로 미 국에 온 유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방탕의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도박에 빠진 한상군은 주말이며 아예 라스베가스로 가 도박을 즐겼다. 그러던 중 도박장의 포커로 하룻밤에 5천딸라(한화 400여만원)을 날렸고 계속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돈에 궁여지책을 당하자 지난 1월 귀국하여 아 버지 박씨에게 승용차를 사달라고 하여 1만 8천딸라(1천 400만원)을 받아 미국 라스베가스로 가 영어에 미숙한 그는 하룻밤에 전액을 다 탕진했다. 지난 4월 박군은 다시 귀국해서 조흥은행에서 은행카드를 발급받고 이카드로 사채업자에게 현금 200여만원을 빌린뒤 국내에서 사귄 오랜지족 친구들과 여자를 차에 태우고 다니며 호텔 나이트클럽 등에서 흥청망청 보냈지만 3일만에 부모에게 발각되 강제로 미국에 쫓 겨갔다. '아버지를 죽이면 막대한 재산이 장남인 나에게 다 돌아 올텐 데' 미국행 비행기에서 한상군은 미국에서 경찰관인 아버지와 아들을 죽이던 영화를 본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도 꾸지람만하는 부모를 살해 하기로 결심한다. 다시 지난 5월 13일 귀국한 한상군은 16일 세운상가등을 돌며 등산 용칼 플라스틱 기름통 휘발유등을 사 집안에 숨겨놓았고 같은 집에서 살던 이모부부가 석탄일을 맞아 수안보온천으로 관광간 18일 범행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밤 11시 침대커버로 피가 묻지 않도록 손을 감싸고 등산용칼과 과도 를 들고 안방에 들어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에 40,50번씩 차례로 찔 러 댔다. 온몸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자기방에 돌아온 한상군은 50분 쯤 지난뒤 다시 안방으로 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번 사건을 보편적인 세태의 반영이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성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 경종으로 받아야 한다. 이 나라의 수 많은 청소년들이 우리의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자라나고 있다. 이들은 부모에게 있어 가장 귀한 존재이며 또한 우리 사회에 있 어서도 모든 기대를 지닌 꽃봉오리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는 온갖 신 경을 자녀들에게 쏟고 있으며 사회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문제를 가장 중요한 일로 받아 들인다.
그러므로 5월 한달을 가정의 달, 가정의 해, 청소년의 달로 정하여 지내왔으나 그 기간에 이러한 끔찍한 사건 을 우리사회에 안겨 주었다. 우리속담에 '자식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자녀 를 부모의 뜻에 맞추어 양육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은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녀를 한 인격체요, 주께서 피흘려 사신 생명임을 생각 해야 한다. 따라서 자녀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부모는 바로 자녀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주 안에서 온전히 헌신 하는 생활을 함으로서 자녀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은 주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바르게 자라야 한다고 강요한다고 해서 자 녀가 바르게 자라는 것은 결코아니다. 그렇다고 과잉보호로 인하여 자 녀를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때문에 부모는 주의 교양과 훈계가 필요하다. 부모가 우선 주의 가르치심과 본을 스 스로 행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어질때 자식은 부모를 스스로 존경하고 순종하게 된다. 한편, 자녀된 자들은 부모공경하기를 예수께서 본을 보이신 대로 해 야 한다. 자신을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존경하고 부모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자녀된 도리이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했다 할지라 도 부모를 소홀히 여긴다면 그는 결코 성공한자가 아니다. 오늘날 가 정 공동체가 희박해지는 때에 더욱 강조되어야 할 덕목은 부모공경이다. 부모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하나도 없다. 주께서 구속으로 말 미암아 제 2의 탄생을 가져왔다면 부모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 게 하고 또 주님의 은혜를 누리도록 한 분이시다. 이렇게 불때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끈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이 있다. 부모와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부모와 자녀라는 인륜 (人倫)을 맺은 것이다. 때문에 부모와 자녀는 믿음의 증진을 위하여 서로 이끌어 주고 또 바르게 양육되는 관계에 있다. 이렇게 될때 자녀는 자연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주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주의 가르침으로 본을 보이고 본을 따 르는 것이다. 바로 '주안에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가정은 행복의 원천이요 하나님의 축복의 기반이다. 가정이 흔들 리면 개인이 흔들리고 축복의 터가 흔들린다. 사람이 가정에서 평안과 안정을 찾지 못하면 세상 어느곳에서도 행복을 찾을 길이 없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시고 최초로 가정을 창설하셨다. 오늘의 우리사회는 해체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나타내고 있다. 가정공동체가 붕괴되고 가정의 구조나 틀이 그리고 내용등이 변하고 다양해져서 더 이상 전통 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가정을 다시 찾고 가정의 길를 다시 제시하는 작업부터 하여 해체되어가는 가 정공동체를 재구축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의 건설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생활이다. 이사회가 행복하 고 건전한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의 노력과 책임이 있다. 그것에 대해 몇가지 제의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인생의 참다운 행복은 가정밖에 경험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가정의 가치와 존엄에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벧기의 극작가 메테를 링크가 쓴 작은 동화극 '파랑새'는 잘아는 이야 기이다. 그 내용은 가나한 나무꾼 집에서 태어난 치르치르와 미치르 오누이는 성탄절 전날 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꿈나라로 여행을 떠 난다. 밤의 궁전에 갔더니 비극과 재앙만이 있었다. 행복의 궁저에 갔 더니 물질과 돈의 허무만이 있었다. 미래의 궁전에 갔더니 태어날 어 린이가 있었다. 결국 행복의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행복의 파랑새는 자기집 처마끝에 매달린 새집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바로 자기 가정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로 가정의 주인이 분명해야 한다. 하워드(Lawrence Hawarth)박 사는 그의 저서 '좋은 도시'라는 책에서 '현대가정의 위기는 도시(The city)라는 것이 가정의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타락한 도시생활을 지적함이다.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도시가 가정의 주인이되는 세태가 우리의 현상이다.
셋째로 주안에 있는 가정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그 정신으로 자연을 보고 사물을 생각하며 역사와 이웃사람을 보고 판 단하고 행동하는 가정을 말함이다. 진실로 가정은 작은 사회요, 작은 교회요, 작은 국가, 소우주이다.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이요, 행복이 자라나는 요람이요, 행복이 보장되는 요새이다. 하나님은 가정 을 통하여 축복하신다. 이번 사건을 진단해 보면서 우리가 기도해야할 몇가지 점들을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요즘 신세대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긍정적인 측면이 많 이 부각되고 있지만 신세대의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 세대는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세대이다. 힘든것을 모 르고 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온 신세대는 참을성이 없고 즉흥적 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로인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온 갖 방법을 동원하여 부모라도 자신의 의견에 대립될 경우에는 제거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이로인해 인내를 통한 가정의 따뜻한 사랑과 대화 가 절실함을 기도해야 한다. 또한가지는 가치관의 전도현상으로 지상주의와 순간 쾌락주의를 지 양해야 한다. 가치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베푸는 충족한 물질과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이와같은 사회병리현상을 낳게 되므로 참다운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도록 기도해야 하며, 가족공동체 의 해체가 심화되고 있는 이유는 과보호로 인한 지나친 관심을 넘어 간섭으로 자기 기대치의 수준으로 개대감을 팽배 시키지 않도록 기도 해야 한다. 마지막 기도해야 할 우리의 자세는 오늘의 교육자체가 병들어 전인 교육의 장보다 이기주의적인 인간으로 키우는 학교교육,교회교육을 위 해 기도해야 할것이다. 오늘의 우리 모두는 다같은 책임을 갖고 우리 의 의식을 통회하고 진솔한 심정으로 기도하자. 착한 마음씨보다는 차디찬 인정, 씩씩한 생활보다는 눈치빠른 언동, 실력보다는 돈, 능력보다는 학벌과 문벌, 창의력보다는 순종과 반응, 비판력보다는 해석력, 친구보다는 권력, 공동체의식보다는 조직, 의리 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우리의 의식개선을 위해 회개의 기도가 있어 야 한다. 우리사회를 위해 오늘의 교회는 재를 뿌리고 통회하고 자복 하는 심정으로 주안에 있는 가정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자.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해서 유대인들이 하던 과일가게 채소가게 세탁소등을 점령했어도 유대인들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한다. 미국에 이민간 교포들의 65%가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자녀교육에는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유대인들이 자녀교육에 성공한 요소는 선민공동체, 가족공동체, 예배공동체라고 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학교나 어떤 교육기관이나 교육제도를 통한 교육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교육이 되고 특히 가정은 교육의 중심 이었다. 그들의 교육은 어릴때부터 가정에서 철저히 종교교육으로 시 작된다.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름을 지으며 40일이 되면 어린양 을 잡아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다. 이때부터 쉐마라고 하는 유대인의 최고 신앙고백인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을 암기 하 도록 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주안에서 가르치고 배우며 한 인간으로 기독교적 인생관, 가치관을 정립하고 가정공동체를 형성하여 미래를 여는 희망의 가정이 되어야 한다. 깨어지고 해체되는 가정 공동체를 구축하여 하나님의 동산을 이루어야 한다. 주 밖에 없나이다 성경
본문:시 73:25-28 시편 150편은 거의가 다 다윗의 저작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다른 사람 의 작품도 몇 편씩 끼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과 동시대의 인물로 보는 아삽이나 아굴 그리고 다윗와의 아들인 솔로몬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73편의 목적은 하늘과 땅 그 어느 곳에도 주와 같은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영원 히 찬양하며 경배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을 중심으로 아삽의 신앙과 고백을 찾아보겠습니다.
1. 오직 주님 한 분 뿐이라고 노래합니다 25절을 보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 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동남아에서 잡신이 많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약 200만개의 잡신을 섬긴다 고 합니다. 그 다음이 중국이고 그 다음이 한국입니다. 아삽이 이 시를 을 고 노래를 불렸던 그 시대의 중동지방 역시 우상과 잡신이 들끊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알,아세라, 아스다롯, 몰렉등 사람들이 신격화하고 숭배하는 우상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그러한 주변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받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유일 신이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이나 잡신에게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 황에서 아삽은 유일신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주 밖에 없으며 사모할 자가 없다"는 이 고백이야말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 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의 고백과 상통합니다. 주 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오직 한분이신 주님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링니다. 그러나 인정하는 것만으론 안됩니다. 그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 모한다는 것은 마음을 준다는 것이며 사랑의 대상으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찬송작가 프라이(C.W.FRY)는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고 노래했습니다. 하와를 만드신 하나님은 "너는 남편을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 이후 서 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깨진 부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주님과의 간격을 떼도록 하기 위해 온갖 유혹과 시험으로 다가옵니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다 오기도 하고 물질을 통해서 오기도 하고 명예를 통해서 오기도 하고 권력을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유혹과 시험이 갖는 공통점이 있습니다.그것은 달콤하고 감미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것이며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소근거립니다. 그러나 그 시험에 빠진 사람은 모두가 한결 같이 실패했거나 파멸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생명을 잃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 습니다. 가인은 질투와 시기 때무에 시험에 빠져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자 들릴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두눈이 뽑히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욕심의 유혹에 빠져 성령님을 속이려다가 한낱 한시 에 부부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고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복을 받았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다윗은 실수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유혹에 빠졌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했을 때 하나님 이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내가 섬기고 사랑하고 사모할 분은 주님뿐임을 믿고 고백 합시다.
2. 인간의 육체는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며 분깃이라고 노래 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육체를 쇠잔하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점점 약해지고 힘 이 없어지다가 결국 침상에 눕게 된다는 것은 전세계에서 매년 1,500만회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합니다. 그중 간진 (리히터 규모 6-9)이 100회 이상, 중진(4-6)이 1만5천회정도,나머지는 (1-4)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미진나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현대과학으로는 정확한 지진의 예측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물에서 거품이 끓어오르고 쥐가 쥐 구멍에서 기어나와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동면하던 뱀들이 기어나와 길에 서 열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일반 칸사이지방의 대지진이 있기 전 동남해에선 이상하리만큼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중국에서는 금년들어 닭,돼지,쥐,고양이 등이 유별난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유럽에서가는 외양간에 메어둔 황소가 하늘을 바라보고 유별나게 울면 지진이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거북이떼가 떼지어 기어나면 지 진이 일어났따고 합니다.그러나 최첨단의 과학을 자랑하는 미국이나 일본 도 지진예측에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며 무 력한가를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인간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고 사람은 잘 못알고 있는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이 대단한 존재이며 무엇이나 해 낼 수 있다는 것도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암이 걸렸을 경우 퍼지는 속도가 10-2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술은 몸 속의 세포들 뇌신경세 포, 위장세포, 간세포, 백혈구들의 저항력을 약하게 해서 암의 전이가 빨라 진다는 것이다. 샌디에고 의과대학의 암 전문인인 이기천교수는 병원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는 모습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동양인이나 서양인이 다른 점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두려움,공포, 아픔으로 인해 그 죽는 순간이 너무나 처절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경우는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죽는 사람 들은 모두가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더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인의 고백대로 나의 영원한 반석이며 피난처이신 주님을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노래합니다. 27절을 보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음녀같이 벌하신다"고 했고 28절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고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GNP는 1963년 100달러였습니다. 1989년에 5천달러를 돌파했고 드디어 1995년인 금년에 1만달러를 넘게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1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을 경우 발생할 문제들을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예견하고 있습니다. 승용차의 대형화 가전제품의 원색디자인과 대형화 독신자 용픔 시장 확대 교외에 세컨드 홈 전력소비의 급증 상품수요의 폭발 취미생활의 변화 투자패턴의 변화 자동화 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걱정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 태도의 변화입니다. 소 득이 높아지고 문화적 욕구가 충족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대신 세상을 의지하고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을 의지하게 됩니다.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교회는 빈자리가 많아지게 될 것 이고 찬송과 기도소리는 작아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7절을 보면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저를 음녀같이 멸하셨나이 다"라고 했습니다. 잘 산다는 것 그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소득이 높아진다는 것이 문제될 것 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 때문에 주님을 멀리 하거나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하거나 떠나면 망하고 멸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하나님이 계셔야할 자리에 과학문명을 대치시켰습니다. 그러나 세계도처에서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홍수와 전염병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과 문명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데 대한 심판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를 죽이기 위 해 강력한 살충제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모기만 죽은 것이 아니라 모기들과 함께 초가지붕에 서식하는 곤충들을 잡아 먹는 별들도 함께 죽었습니다. 결 과로 초가지붕 속에는 곤충이 들끓기 시작했고 얼마뒤 지붕이 곤충 때문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인간들의 무지와 교만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지금 지옥으로 만들어가 고 있습니다.국가도 가정도 개인도 하나님을 떠나거나 멀리 하면 안됩니다. 시인의 고백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최상의 복인 것입니다. 전 세계 인류가 하나님이 주셨던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날 이 세계는 파라다이스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시다. 성공하고 잘 산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나지 맙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4. 모든 행사를 전파하겠다고 노래합니다. 28절 끝을 보면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2월 15일 오전 한국통신회의실에서 가진 한국-러시아-일본 3개국 부총리간에는 해저 광케이블을 통한 영상회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홍보와 교류의 새로운 기 대가 열렸음을 시사합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지도자들이 한 곳에 모이지 않아도 국제회의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보시대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주의 행사를 전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입과 몸과 몸과 삶으로 전하겠다는 것 입니다. 제아무리 광케이블을 통한 정보교환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직접 만나 얼굴을 대하고 손을마주 잡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최대한 문명의 이기들을 선교도 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을 기계에서 맡길 수는 없습니다. 시인은 "주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전파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주 밖에 없나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영원히 찬양하고 섬길 분은 주 밖에 없습니다. 나의 반 석이며 피난처이신 분도 주 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까이하고 복받을 수 있는 분도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영원히 부를 노래도 주 밖에 없습니다. "주 외에 누가 있으리요주 밖에 없나이다영원히 가까이 할수록 행복하고 떠나면 죽는 분도 주님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 중심을 지키고 믿을 때 올바른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주님만 나의 구원,요새,산성,피난처시라는 다윗의 고백과 아삽의 노래는 그 맥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과 노래가 나의 고백이 되고 나의 노래가 되게 합시다. 그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주 밖에 없나이다" 아멘.
왜냐하면 부모살해가 우발적인 것이 아니고 계획적인 것이었고 살 해행위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각각 50,40곳이나 찌를 정도로 엽기적인 것이었으며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살해뒤에 불을 지를 정도로 가증스러 웠고 잔인했다. 대한한약협회 서울지부장 박순태(47)씨 부부살인방화사건의 범인은 박씨의 장남 박한상(23)군으로 경찰수사결과 1994.5. 26.에 박군으로 부터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범행에 사용한 등산용 칼을 증거품으로 압 수하고 6월 2일 현장검증을 끝으로 존속살인 및 방화협의로 구속했다. 박군은 90년 2월 서울 H고교를 졸업하고 지방모대학 토목과에 입학한 박한상군은 공부하기를 싫어했고 93년 7월 방위병으로 제대한 한상군 은 지방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빈둥거렸으며 보다못한 아버지 박씨는 자신이 다니던 서울 답십리 반석교회 박구하 목사와 상의하여 LA근교 프레르노 퍼시픽 칼리지를 다니게 됴다. 아버지가 보내준 월 500딸라 의 월세 아파트에서 2천딸라 생활비를 받으며 한국서 같은 이유로 미 국에 온 유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방탕의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도박에 빠진 한상군은 주말이며 아예 라스베가스로 가 도박을 즐겼다. 그러던 중 도박장의 포커로 하룻밤에 5천딸라(한화 400여만원)을 날렸고 계속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돈에 궁여지책을 당하자 지난 1월 귀국하여 아 버지 박씨에게 승용차를 사달라고 하여 1만 8천딸라(1천 400만원)을 받아 미국 라스베가스로 가 영어에 미숙한 그는 하룻밤에 전액을 다 탕진했다. 지난 4월 박군은 다시 귀국해서 조흥은행에서 은행카드를 발급받고 이카드로 사채업자에게 현금 200여만원을 빌린뒤 국내에서 사귄 오랜지족 친구들과 여자를 차에 태우고 다니며 호텔 나이트클럽 등에서 흥청망청 보냈지만 3일만에 부모에게 발각되 강제로 미국에 쫓 겨갔다. '아버지를 죽이면 막대한 재산이 장남인 나에게 다 돌아 올텐 데' 미국행 비행기에서 한상군은 미국에서 경찰관인 아버지와 아들을 죽이던 영화를 본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도 꾸지람만하는 부모를 살해 하기로 결심한다. 다시 지난 5월 13일 귀국한 한상군은 16일 세운상가등을 돌며 등산 용칼 플라스틱 기름통 휘발유등을 사 집안에 숨겨놓았고 같은 집에서 살던 이모부부가 석탄일을 맞아 수안보온천으로 관광간 18일 범행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밤 11시 침대커버로 피가 묻지 않도록 손을 감싸고 등산용칼과 과도 를 들고 안방에 들어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에 40,50번씩 차례로 찔 러 댔다. 온몸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자기방에 돌아온 한상군은 50분 쯤 지난뒤 다시 안방으로 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번 사건을 보편적인 세태의 반영이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성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 경종으로 받아야 한다. 이 나라의 수 많은 청소년들이 우리의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자라나고 있다. 이들은 부모에게 있어 가장 귀한 존재이며 또한 우리 사회에 있 어서도 모든 기대를 지닌 꽃봉오리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는 온갖 신 경을 자녀들에게 쏟고 있으며 사회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문제를 가장 중요한 일로 받아 들인다.
그러므로 5월 한달을 가정의 달, 가정의 해, 청소년의 달로 정하여 지내왔으나 그 기간에 이러한 끔찍한 사건 을 우리사회에 안겨 주었다. 우리속담에 '자식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자녀 를 부모의 뜻에 맞추어 양육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은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녀를 한 인격체요, 주께서 피흘려 사신 생명임을 생각 해야 한다. 따라서 자녀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부모는 바로 자녀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주 안에서 온전히 헌신 하는 생활을 함으로서 자녀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은 주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바르게 자라야 한다고 강요한다고 해서 자 녀가 바르게 자라는 것은 결코아니다. 그렇다고 과잉보호로 인하여 자 녀를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때문에 부모는 주의 교양과 훈계가 필요하다. 부모가 우선 주의 가르치심과 본을 스 스로 행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어질때 자식은 부모를 스스로 존경하고 순종하게 된다. 한편, 자녀된 자들은 부모공경하기를 예수께서 본을 보이신 대로 해 야 한다. 자신을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존경하고 부모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자녀된 도리이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했다 할지라 도 부모를 소홀히 여긴다면 그는 결코 성공한자가 아니다. 오늘날 가 정 공동체가 희박해지는 때에 더욱 강조되어야 할 덕목은 부모공경이다. 부모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하나도 없다. 주께서 구속으로 말 미암아 제 2의 탄생을 가져왔다면 부모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 게 하고 또 주님의 은혜를 누리도록 한 분이시다. 이렇게 불때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끈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이 있다. 부모와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부모와 자녀라는 인륜 (人倫)을 맺은 것이다. 때문에 부모와 자녀는 믿음의 증진을 위하여 서로 이끌어 주고 또 바르게 양육되는 관계에 있다. 이렇게 될때 자녀는 자연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주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주의 가르침으로 본을 보이고 본을 따 르는 것이다. 바로 '주안에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가정은 행복의 원천이요 하나님의 축복의 기반이다. 가정이 흔들 리면 개인이 흔들리고 축복의 터가 흔들린다. 사람이 가정에서 평안과 안정을 찾지 못하면 세상 어느곳에서도 행복을 찾을 길이 없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시고 최초로 가정을 창설하셨다. 오늘의 우리사회는 해체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나타내고 있다. 가정공동체가 붕괴되고 가정의 구조나 틀이 그리고 내용등이 변하고 다양해져서 더 이상 전통 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가정을 다시 찾고 가정의 길를 다시 제시하는 작업부터 하여 해체되어가는 가 정공동체를 재구축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의 건설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생활이다. 이사회가 행복하 고 건전한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의 노력과 책임이 있다. 그것에 대해 몇가지 제의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인생의 참다운 행복은 가정밖에 경험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가정의 가치와 존엄에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벧기의 극작가 메테를 링크가 쓴 작은 동화극 '파랑새'는 잘아는 이야 기이다. 그 내용은 가나한 나무꾼 집에서 태어난 치르치르와 미치르 오누이는 성탄절 전날 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꿈나라로 여행을 떠 난다. 밤의 궁전에 갔더니 비극과 재앙만이 있었다. 행복의 궁저에 갔 더니 물질과 돈의 허무만이 있었다. 미래의 궁전에 갔더니 태어날 어 린이가 있었다. 결국 행복의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행복의 파랑새는 자기집 처마끝에 매달린 새집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바로 자기 가정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로 가정의 주인이 분명해야 한다. 하워드(Lawrence Hawarth)박 사는 그의 저서 '좋은 도시'라는 책에서 '현대가정의 위기는 도시(The city)라는 것이 가정의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타락한 도시생활을 지적함이다.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도시가 가정의 주인이되는 세태가 우리의 현상이다.
셋째로 주안에 있는 가정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그 정신으로 자연을 보고 사물을 생각하며 역사와 이웃사람을 보고 판 단하고 행동하는 가정을 말함이다. 진실로 가정은 작은 사회요, 작은 교회요, 작은 국가, 소우주이다.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이요, 행복이 자라나는 요람이요, 행복이 보장되는 요새이다. 하나님은 가정 을 통하여 축복하신다. 이번 사건을 진단해 보면서 우리가 기도해야할 몇가지 점들을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요즘 신세대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긍정적인 측면이 많 이 부각되고 있지만 신세대의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 세대는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세대이다. 힘든것을 모 르고 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온 신세대는 참을성이 없고 즉흥적 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로인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온 갖 방법을 동원하여 부모라도 자신의 의견에 대립될 경우에는 제거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이로인해 인내를 통한 가정의 따뜻한 사랑과 대화 가 절실함을 기도해야 한다. 또한가지는 가치관의 전도현상으로 지상주의와 순간 쾌락주의를 지 양해야 한다. 가치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베푸는 충족한 물질과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이와같은 사회병리현상을 낳게 되므로 참다운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도록 기도해야 하며, 가족공동체 의 해체가 심화되고 있는 이유는 과보호로 인한 지나친 관심을 넘어 간섭으로 자기 기대치의 수준으로 개대감을 팽배 시키지 않도록 기도 해야 한다. 마지막 기도해야 할 우리의 자세는 오늘의 교육자체가 병들어 전인 교육의 장보다 이기주의적인 인간으로 키우는 학교교육,교회교육을 위 해 기도해야 할것이다. 오늘의 우리 모두는 다같은 책임을 갖고 우리 의 의식을 통회하고 진솔한 심정으로 기도하자. 착한 마음씨보다는 차디찬 인정, 씩씩한 생활보다는 눈치빠른 언동, 실력보다는 돈, 능력보다는 학벌과 문벌, 창의력보다는 순종과 반응, 비판력보다는 해석력, 친구보다는 권력, 공동체의식보다는 조직, 의리 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우리의 의식개선을 위해 회개의 기도가 있어 야 한다. 우리사회를 위해 오늘의 교회는 재를 뿌리고 통회하고 자복 하는 심정으로 주안에 있는 가정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자.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해서 유대인들이 하던 과일가게 채소가게 세탁소등을 점령했어도 유대인들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한다. 미국에 이민간 교포들의 65%가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자녀교육에는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유대인들이 자녀교육에 성공한 요소는 선민공동체, 가족공동체, 예배공동체라고 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학교나 어떤 교육기관이나 교육제도를 통한 교육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교육이 되고 특히 가정은 교육의 중심 이었다. 그들의 교육은 어릴때부터 가정에서 철저히 종교교육으로 시 작된다.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름을 지으며 40일이 되면 어린양 을 잡아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다. 이때부터 쉐마라고 하는 유대인의 최고 신앙고백인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을 암기 하 도록 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주안에서 가르치고 배우며 한 인간으로 기독교적 인생관, 가치관을 정립하고 가정공동체를 형성하여 미래를 여는 희망의 가정이 되어야 한다. 깨어지고 해체되는 가정 공동체를 구축하여 하나님의 동산을 이루어야 한다. 주 밖에 없나이다 성경
본문:시 73:25-28 시편 150편은 거의가 다 다윗의 저작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다른 사람 의 작품도 몇 편씩 끼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과 동시대의 인물로 보는 아삽이나 아굴 그리고 다윗와의 아들인 솔로몬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73편의 목적은 하늘과 땅 그 어느 곳에도 주와 같은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영원 히 찬양하며 경배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을 중심으로 아삽의 신앙과 고백을 찾아보겠습니다.
1. 오직 주님 한 분 뿐이라고 노래합니다 25절을 보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 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동남아에서 잡신이 많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약 200만개의 잡신을 섬긴다 고 합니다. 그 다음이 중국이고 그 다음이 한국입니다. 아삽이 이 시를 을 고 노래를 불렸던 그 시대의 중동지방 역시 우상과 잡신이 들끊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알,아세라, 아스다롯, 몰렉등 사람들이 신격화하고 숭배하는 우상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그러한 주변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받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유일 신이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이나 잡신에게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 황에서 아삽은 유일신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주 밖에 없으며 사모할 자가 없다"는 이 고백이야말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 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의 고백과 상통합니다. 주 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오직 한분이신 주님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링니다. 그러나 인정하는 것만으론 안됩니다. 그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 모한다는 것은 마음을 준다는 것이며 사랑의 대상으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찬송작가 프라이(C.W.FRY)는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고 노래했습니다. 하와를 만드신 하나님은 "너는 남편을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 이후 서 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깨진 부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주님과의 간격을 떼도록 하기 위해 온갖 유혹과 시험으로 다가옵니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다 오기도 하고 물질을 통해서 오기도 하고 명예를 통해서 오기도 하고 권력을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유혹과 시험이 갖는 공통점이 있습니다.그것은 달콤하고 감미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것이며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소근거립니다. 그러나 그 시험에 빠진 사람은 모두가 한결 같이 실패했거나 파멸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생명을 잃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 습니다. 가인은 질투와 시기 때무에 시험에 빠져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자 들릴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두눈이 뽑히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욕심의 유혹에 빠져 성령님을 속이려다가 한낱 한시 에 부부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고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복을 받았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다윗은 실수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유혹에 빠졌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했을 때 하나님 이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내가 섬기고 사랑하고 사모할 분은 주님뿐임을 믿고 고백 합시다.
2. 인간의 육체는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며 분깃이라고 노래 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육체를 쇠잔하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점점 약해지고 힘 이 없어지다가 결국 침상에 눕게 된다는 것은 전세계에서 매년 1,500만회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합니다. 그중 간진 (리히터 규모 6-9)이 100회 이상, 중진(4-6)이 1만5천회정도,나머지는 (1-4)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미진나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현대과학으로는 정확한 지진의 예측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물에서 거품이 끓어오르고 쥐가 쥐 구멍에서 기어나와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동면하던 뱀들이 기어나와 길에 서 열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일반 칸사이지방의 대지진이 있기 전 동남해에선 이상하리만큼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중국에서는 금년들어 닭,돼지,쥐,고양이 등이 유별난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유럽에서가는 외양간에 메어둔 황소가 하늘을 바라보고 유별나게 울면 지진이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거북이떼가 떼지어 기어나면 지 진이 일어났따고 합니다.그러나 최첨단의 과학을 자랑하는 미국이나 일본 도 지진예측에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며 무 력한가를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인간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고 사람은 잘 못알고 있는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이 대단한 존재이며 무엇이나 해 낼 수 있다는 것도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암이 걸렸을 경우 퍼지는 속도가 10-2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술은 몸 속의 세포들 뇌신경세 포, 위장세포, 간세포, 백혈구들의 저항력을 약하게 해서 암의 전이가 빨라 진다는 것이다. 샌디에고 의과대학의 암 전문인인 이기천교수는 병원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는 모습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동양인이나 서양인이 다른 점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두려움,공포, 아픔으로 인해 그 죽는 순간이 너무나 처절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경우는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죽는 사람 들은 모두가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더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인의 고백대로 나의 영원한 반석이며 피난처이신 주님을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노래합니다. 27절을 보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음녀같이 벌하신다"고 했고 28절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고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GNP는 1963년 100달러였습니다. 1989년에 5천달러를 돌파했고 드디어 1995년인 금년에 1만달러를 넘게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1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을 경우 발생할 문제들을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예견하고 있습니다. 승용차의 대형화 가전제품의 원색디자인과 대형화 독신자 용픔 시장 확대 교외에 세컨드 홈 전력소비의 급증 상품수요의 폭발 취미생활의 변화 투자패턴의 변화 자동화 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걱정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 태도의 변화입니다. 소 득이 높아지고 문화적 욕구가 충족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대신 세상을 의지하고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을 의지하게 됩니다.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교회는 빈자리가 많아지게 될 것 이고 찬송과 기도소리는 작아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7절을 보면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저를 음녀같이 멸하셨나이 다"라고 했습니다. 잘 산다는 것 그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소득이 높아진다는 것이 문제될 것 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 때문에 주님을 멀리 하거나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하거나 떠나면 망하고 멸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하나님이 계셔야할 자리에 과학문명을 대치시켰습니다. 그러나 세계도처에서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홍수와 전염병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과 문명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데 대한 심판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를 죽이기 위 해 강력한 살충제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모기만 죽은 것이 아니라 모기들과 함께 초가지붕에 서식하는 곤충들을 잡아 먹는 별들도 함께 죽었습니다. 결 과로 초가지붕 속에는 곤충이 들끓기 시작했고 얼마뒤 지붕이 곤충 때문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인간들의 무지와 교만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지금 지옥으로 만들어가 고 있습니다.국가도 가정도 개인도 하나님을 떠나거나 멀리 하면 안됩니다. 시인의 고백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최상의 복인 것입니다. 전 세계 인류가 하나님이 주셨던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날 이 세계는 파라다이스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시다. 성공하고 잘 산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나지 맙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4. 모든 행사를 전파하겠다고 노래합니다. 28절 끝을 보면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2월 15일 오전 한국통신회의실에서 가진 한국-러시아-일본 3개국 부총리간에는 해저 광케이블을 통한 영상회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홍보와 교류의 새로운 기 대가 열렸음을 시사합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지도자들이 한 곳에 모이지 않아도 국제회의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보시대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주의 행사를 전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입과 몸과 몸과 삶으로 전하겠다는 것 입니다. 제아무리 광케이블을 통한 정보교환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직접 만나 얼굴을 대하고 손을마주 잡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최대한 문명의 이기들을 선교도 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을 기계에서 맡길 수는 없습니다. 시인은 "주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전파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주 밖에 없나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영원히 찬양하고 섬길 분은 주 밖에 없습니다. 나의 반 석이며 피난처이신 분도 주 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까이하고 복받을 수 있는 분도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영원히 부를 노래도 주 밖에 없습니다. "주 외에 누가 있으리요주 밖에 없나이다영원히 가까이 할수록 행복하고 떠나면 죽는 분도 주님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 중심을 지키고 믿을 때 올바른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주님만 나의 구원,요새,산성,피난처시라는 다윗의 고백과 아삽의 노래는 그 맥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과 노래가 나의 고백이 되고 나의 노래가 되게 합시다. 그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주 밖에 없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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