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정로 (신5:29)
본문
하나님께서는 새 시대에 들어가서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패턴이 바꿔 질 때에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 지위에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 의 계명에 따라서 살아야 복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저 들 이스라엘 백성 이 꿈에도 동경했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서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 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 리니."(수 1:7) 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른 가나안의 새 문화에 접하 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불모지 광야 40년의 방 랑생활과도 전혀 다른 생활환경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새 시대 를 만나게 될 터이니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잘 준수하라는것 입니다. 모든 성공과 행복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윤리 성에 맞게 성취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망각하고 인간 중 심으로 나갔던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이나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그후 온데 간데없 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외면했던 우리 나라의 옛날 양반들도 그 자 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온갖 못된 일을 서슴지 않고 범했던 잔인무 도한 국가나 개인의 끝도 좋지 못했습니다. 다 예외없이 망하 고 말았 습니다. 마태복음 14:21이하에 보면, 제자들이 심한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풍랑중에서도 침착하게 한 쪽으로 밀어서 배가 전복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들은 배 타는 일에 익숙해서 승객이 좌우로 쏠리기 되면 위태한 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죽음의 공포를 억누르고 자기 위 치에 침착 하게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파도를 밟고 구조하시려고 접 근해 오시는 주님께 베드로는 물 위 로 주님께 가도록 요청했습니다. 오라 하시는 명령을 받들어 우리 주님만 바라보고는 물 위를 대로같이 걸어가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얼마 안가서 베드로는 바람과 파도를 보고 물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빠져 가는 베드로 를 구출하신 주님 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신앙의 대로를 걷는 자는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명을 어기고 우왕좌왕하는 신앙 은 적은 신앙이어서 실패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1453년 콘스탄티 노플이 회교도에 의해 포위 공격받을 때 사제들의 회의의 쟁점이 오염 되었을 까 파리가 성화되었을까였다고 합니다. 1917년 모스크바 향해 공산당이 쳐들어오던 날 사제들 의 격렬한 쟁점의 하나가 축도할 때 손 가락을 펴는 형식과 까운의 색상에 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지 나치게 이론에 과도하다 보니 신앙이 힘이 없고 무력화되었습니다. 그 런 사회가 어 찌 지탱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지엾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6.25사변이 일어나기 22개월전 우리 총회가 교권싸움으로 회의를 못하고 비정상화하고 말았습니다. 그후 전쟁으로 얼마나 고통받았 습니까 얼마나 뜨거운 회개를 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수 복해 주신 것 을 깊이 감사하며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선교 초기 우리 장로교 신도들은 하나님 말씀 중심이었습니다. 좌우 로 치우치지 않는 능력 있는 믿음으로 사회정의를 나타냈습니다.
복음 이 전해 온지 10여년이 지난 그 옛날에 정당한 재판 을 받지 않고 백성 을 유린하는 관리들의 횡포를 못하게 했습니다. 어떤 관리들은 크리스 천이 사는 불법적인 세금징수나 재산강탈을 못하게 했습니다. 어떤 관 리들은 크리스천이 사는 지방에 부임하는 것을 꺼리고 타처로 임지를 변경하는 일까지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1897년 경인데 당시 기독교인이 5,000명 내지 7,000명이었다고 합니다. 저들의 생활이 본 이 되었기에 큰 영향력을 과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러시아의 귀족 출신으로 유명한 문호이며, 인도주의자인 톨스토이는 만년에 자기의 재산을 몽 땅 다 팔아서 모스크바의 큰 길거리로 나가서 걸인들에게 일률적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없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소년 시절부터 적빈중에 자라난 도트스 예프스 키는 만일 그 돈을 내게 주었더라면, 나는 모스크바의 빈민지대 를 찾아가 가장 도움을 필요하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을 것 이라고 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무 이상에 치우치 지 아니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세계적인 시선은 페르시아 만을 호르므즈 해협에서 미국기를 단 쿠웨이트 유조선을 이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미군함이 호송하는 일입니다. 이란의 호메이니옹의 극단적인 지지파가 불과 10%밖에 안된더도 유조선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치우치는 정책은 회교 국에서 도 보다 싫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사회가 정 치, 경제, 문화, 그리고 종교에 이 르기까지 자유민주화의 격동기를 어 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너무 지나치지 않고 모 든 사람들 이 기대하는 이상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 의를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발전과 성장에는 장로님들의 치우치지 않는 헌신적 인 봉사가 있었습니다. 백 홍준, 서상륜,이승훈,이상재,조만식 장로님 과 같은 고명한 장로님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지금도 7,360 명의 시무장로님을 비롯해서 1,343명의 은퇴장로님, 도합 8,703명의 장로님들 의 건전한 신앙과 헌신적인 봉사가 우리 한국교회의 전성기를 재연하길 바랍니다. 신사참배 거부 로 옥고를 치루기 직전 이기선 목사 님은 "교도소에 수감되면 실천학교에 입학한 줄 알고 감사히 생각하겠 고, 일본 사람이 죽이겠다고 하면 천당으로 보내겠다는 말인줄 알고 기쁨으로 가겠다."고 한 신앙이 건전한 우리 교회의 참된 믿음입니다. 장로님들의 참된 신앙의 뒷받침이 없이 이런 말이 어디서 나왔겠습니 까이 목사님의 신앙이 바 로 우리 장로교의 신앙이며, 동시에 우리 당 회원의 신앙심임에 분명합니다. 하나님이여, 바른 신 앙에 터 닦은 우리 한국교회에 분명히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풍랑중에서도 침착하게 한 쪽으로 밀어서 배가 전복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들은 배 타는 일에 익숙해서 승객이 좌우로 쏠리기 되면 위태한 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죽음의 공포를 억누르고 자기 위 치에 침착 하게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파도를 밟고 구조하시려고 접 근해 오시는 주님께 베드로는 물 위 로 주님께 가도록 요청했습니다. 오라 하시는 명령을 받들어 우리 주님만 바라보고는 물 위를 대로같이 걸어가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얼마 안가서 베드로는 바람과 파도를 보고 물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빠져 가는 베드로 를 구출하신 주님 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신앙의 대로를 걷는 자는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명을 어기고 우왕좌왕하는 신앙 은 적은 신앙이어서 실패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1453년 콘스탄티 노플이 회교도에 의해 포위 공격받을 때 사제들의 회의의 쟁점이 오염 되었을 까 파리가 성화되었을까였다고 합니다. 1917년 모스크바 향해 공산당이 쳐들어오던 날 사제들 의 격렬한 쟁점의 하나가 축도할 때 손 가락을 펴는 형식과 까운의 색상에 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지 나치게 이론에 과도하다 보니 신앙이 힘이 없고 무력화되었습니다. 그 런 사회가 어 찌 지탱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지엾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6.25사변이 일어나기 22개월전 우리 총회가 교권싸움으로 회의를 못하고 비정상화하고 말았습니다. 그후 전쟁으로 얼마나 고통받았 습니까 얼마나 뜨거운 회개를 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수 복해 주신 것 을 깊이 감사하며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선교 초기 우리 장로교 신도들은 하나님 말씀 중심이었습니다. 좌우 로 치우치지 않는 능력 있는 믿음으로 사회정의를 나타냈습니다.
복음 이 전해 온지 10여년이 지난 그 옛날에 정당한 재판 을 받지 않고 백성 을 유린하는 관리들의 횡포를 못하게 했습니다. 어떤 관리들은 크리스 천이 사는 불법적인 세금징수나 재산강탈을 못하게 했습니다. 어떤 관 리들은 크리스천이 사는 지방에 부임하는 것을 꺼리고 타처로 임지를 변경하는 일까지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1897년 경인데 당시 기독교인이 5,000명 내지 7,000명이었다고 합니다. 저들의 생활이 본 이 되었기에 큰 영향력을 과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러시아의 귀족 출신으로 유명한 문호이며, 인도주의자인 톨스토이는 만년에 자기의 재산을 몽 땅 다 팔아서 모스크바의 큰 길거리로 나가서 걸인들에게 일률적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없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소년 시절부터 적빈중에 자라난 도트스 예프스 키는 만일 그 돈을 내게 주었더라면, 나는 모스크바의 빈민지대 를 찾아가 가장 도움을 필요하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을 것 이라고 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무 이상에 치우치 지 아니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세계적인 시선은 페르시아 만을 호르므즈 해협에서 미국기를 단 쿠웨이트 유조선을 이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미군함이 호송하는 일입니다. 이란의 호메이니옹의 극단적인 지지파가 불과 10%밖에 안된더도 유조선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치우치는 정책은 회교 국에서 도 보다 싫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사회가 정 치, 경제, 문화, 그리고 종교에 이 르기까지 자유민주화의 격동기를 어 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너무 지나치지 않고 모 든 사람들 이 기대하는 이상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 의를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발전과 성장에는 장로님들의 치우치지 않는 헌신적 인 봉사가 있었습니다. 백 홍준, 서상륜,이승훈,이상재,조만식 장로님 과 같은 고명한 장로님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지금도 7,360 명의 시무장로님을 비롯해서 1,343명의 은퇴장로님, 도합 8,703명의 장로님들 의 건전한 신앙과 헌신적인 봉사가 우리 한국교회의 전성기를 재연하길 바랍니다. 신사참배 거부 로 옥고를 치루기 직전 이기선 목사 님은 "교도소에 수감되면 실천학교에 입학한 줄 알고 감사히 생각하겠 고, 일본 사람이 죽이겠다고 하면 천당으로 보내겠다는 말인줄 알고 기쁨으로 가겠다."고 한 신앙이 건전한 우리 교회의 참된 믿음입니다. 장로님들의 참된 신앙의 뒷받침이 없이 이런 말이 어디서 나왔겠습니 까이 목사님의 신앙이 바 로 우리 장로교의 신앙이며, 동시에 우리 당 회원의 신앙심임에 분명합니다. 하나님이여, 바른 신 앙에 터 닦은 우리 한국교회에 분명히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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