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난 (마24:21-22)
본문
I. 대환난 마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A. 역사적 사건
B.C 170년경 시리아의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리고 성전 뜰에다 제우스의 신단을 세웠고 그 제단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불결히 여기는 돼지를 잡아 바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의 방과 성전의 작은 방들은 창녀의 방으로 삼아 성전을 모독했습니다. 주님은 이제 이와 같은 사건이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에 다가오고 있으며 좀 더 미래적이며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세상 끝날에 있을 것을 예언하십니다. 가까이는 A.D 70년에 성취되었으며 종말의 때에 전무후무한 대환난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 전쟁사라는 책에서 A.D 70년에 있었던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B. 그 때 그 때는 가까이는 70년을 의미하지만 다른 측면은 아무도 모르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시는 종말의 때입니다. 그 때의 환난은 그 날들을 감하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티투스 장군을 앞세운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습니다. 성 외부에는 로마군의 공격이 격심했고 내부에는 기근과 기아, 온역, 살육이 난무했습니다. 다락에는 기아로 죽어 가는 여자와 아이들이 가득했고 길거리에는 늙은이들의 시체가 가득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의 죽음이 오기 전에 미리 관속에 들어가 누웠다고 하며 굶주린 어떤 여인은 자기의 젖먹이 어린아이를 죽여서 불에 구워 먹었다고 역사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종말에 있을 환난 때에는 이보다 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C. 성도가 취할 자세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항은 우리에게 예언과 경고가 됩니다. 이 예언과 경고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로마군의 함락 때 그들은 산으로 도망하지 않고 오히려 성으로 몰려들었고 그리하여 죽은 자가 백만 명 이상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환난의 때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II. 구원받지 못할 육체 마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A. 말씀을 멸시하는 자 주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멸시한 사울이 비극적 파멸을 맞이했고 노아의 경고와 예언을 무시했던 그 시대 사람들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주님은 환난의 날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고 지붕 위에 있는 자들은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라들은 종종 롯의 아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세속적 애착 때문에 더욱 극심한 고난을 자초하거나 그로 안하여 파멸을 당하는 수가 많습니다.
B. 환난을 견디지 못하는 자 온전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 사자의 밥이 되거나 풀무불 속에 던져진다는 사실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지만 보통 사람이 돌에 맞아 죽는다거나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을 피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감내 해야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비극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두려움이나 무서움은 기도로 경감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할 준비를 항상 갖추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길을 열어 주십니다.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셨으며 기도의 힘으로 십자가의 잔을 능히 마실 수 있었습니다. 기도로 환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C. 준비하지 않는 자 준비하는 자는 당황하지 않습니다. 유비무환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도둑을 맞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준비는 종말의 때와 죽음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장에 극심한 환난이 오거나 죽음이 닥쳐와도 또는 종말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기쁨으로 순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가장 혹독한 고난의 때에 우리는 기도로써 이겨내야 합니다.
III. 택한 자를 위한 하나님의 선처 (마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A. 그 날을 경고하심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때에 노아에게 120년 전에 경고하시고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비웃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가 될 때에도 눈물의 선지자 예례미야를 통하여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기는커녕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고 심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종말의 때를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 때는 밤의 도적 같이 예기치 못하게 임할 것입니다. 너무 갑자기 임하여 도망갈 시간이나 수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경고에 기를 기울이는 성도들에게는 그것이 갑자기 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B. 환난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주심 하나님께서는 먼저 환난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그날을 준비케하십니다. 그러나 경고를 듣고 준비만 한다고 해서 환난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주의 더우심이 필요합니다. 환난은 들은 적도 본적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피할 수도 극복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주는 우리의 산성이시며 환난 날에 피난처이십니다. 주께서 힘을 주셔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보혜사이십니다.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가던 스데반이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령님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C. 그 날들을 감하심 이제까지의 환난은 국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전체적이며 우주적입니다. 그 강도도 에피파네스 안티오커스의 침략 때나 티투스의 함락 때보다도 극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함락 때 산이나 지붕 위로 도피한 신자들이 끊임없이 현재와 동포를 위해 기도함으로 그 날들이 감하여졌던 것처럼 그리고 인간의 생사 고락을 체감하신 그리스도의 탄원과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그 날들이 감하여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A. 역사적 사건
B.C 170년경 시리아의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리고 성전 뜰에다 제우스의 신단을 세웠고 그 제단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불결히 여기는 돼지를 잡아 바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의 방과 성전의 작은 방들은 창녀의 방으로 삼아 성전을 모독했습니다. 주님은 이제 이와 같은 사건이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에 다가오고 있으며 좀 더 미래적이며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세상 끝날에 있을 것을 예언하십니다. 가까이는 A.D 70년에 성취되었으며 종말의 때에 전무후무한 대환난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 전쟁사라는 책에서 A.D 70년에 있었던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B. 그 때 그 때는 가까이는 70년을 의미하지만 다른 측면은 아무도 모르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시는 종말의 때입니다. 그 때의 환난은 그 날들을 감하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티투스 장군을 앞세운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습니다. 성 외부에는 로마군의 공격이 격심했고 내부에는 기근과 기아, 온역, 살육이 난무했습니다. 다락에는 기아로 죽어 가는 여자와 아이들이 가득했고 길거리에는 늙은이들의 시체가 가득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의 죽음이 오기 전에 미리 관속에 들어가 누웠다고 하며 굶주린 어떤 여인은 자기의 젖먹이 어린아이를 죽여서 불에 구워 먹었다고 역사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종말에 있을 환난 때에는 이보다 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C. 성도가 취할 자세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항은 우리에게 예언과 경고가 됩니다. 이 예언과 경고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로마군의 함락 때 그들은 산으로 도망하지 않고 오히려 성으로 몰려들었고 그리하여 죽은 자가 백만 명 이상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환난의 때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II. 구원받지 못할 육체 마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A. 말씀을 멸시하는 자 주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멸시한 사울이 비극적 파멸을 맞이했고 노아의 경고와 예언을 무시했던 그 시대 사람들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주님은 환난의 날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고 지붕 위에 있는 자들은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라들은 종종 롯의 아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세속적 애착 때문에 더욱 극심한 고난을 자초하거나 그로 안하여 파멸을 당하는 수가 많습니다.
B. 환난을 견디지 못하는 자 온전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 사자의 밥이 되거나 풀무불 속에 던져진다는 사실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지만 보통 사람이 돌에 맞아 죽는다거나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을 피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감내 해야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비극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두려움이나 무서움은 기도로 경감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할 준비를 항상 갖추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길을 열어 주십니다.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셨으며 기도의 힘으로 십자가의 잔을 능히 마실 수 있었습니다. 기도로 환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C. 준비하지 않는 자 준비하는 자는 당황하지 않습니다. 유비무환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도둑을 맞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준비는 종말의 때와 죽음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장에 극심한 환난이 오거나 죽음이 닥쳐와도 또는 종말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기쁨으로 순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가장 혹독한 고난의 때에 우리는 기도로써 이겨내야 합니다.
III. 택한 자를 위한 하나님의 선처 (마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A. 그 날을 경고하심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때에 노아에게 120년 전에 경고하시고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비웃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가 될 때에도 눈물의 선지자 예례미야를 통하여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기는커녕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고 심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종말의 때를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 때는 밤의 도적 같이 예기치 못하게 임할 것입니다. 너무 갑자기 임하여 도망갈 시간이나 수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경고에 기를 기울이는 성도들에게는 그것이 갑자기 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B. 환난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주심 하나님께서는 먼저 환난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그날을 준비케하십니다. 그러나 경고를 듣고 준비만 한다고 해서 환난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주의 더우심이 필요합니다. 환난은 들은 적도 본적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피할 수도 극복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주는 우리의 산성이시며 환난 날에 피난처이십니다. 주께서 힘을 주셔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보혜사이십니다.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가던 스데반이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령님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C. 그 날들을 감하심 이제까지의 환난은 국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전체적이며 우주적입니다. 그 강도도 에피파네스 안티오커스의 침략 때나 티투스의 함락 때보다도 극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함락 때 산이나 지붕 위로 도피한 신자들이 끊임없이 현재와 동포를 위해 기도함으로 그 날들이 감하여졌던 것처럼 그리고 인간의 생사 고락을 체감하신 그리스도의 탄원과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그 날들이 감하여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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