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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신앙으로 가는 길 (고전10:1-13)

본문

성경은 신자가 걸어온 길을 논할 때 과거를 돌아보는 식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기록하면서 출애굽 사건에서 난관 하나 하나를 극복할 때마다 처음의 난관을 극복한 사람이 두번째, 세번째 난관에 서도 계속 걸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처음 관문을 통과했기 때문에 두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일에 있어 프리패스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함으로 신앙생활에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핵심이 12절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 말씀을 더 집약해 놓은 것이 빌립보서 3장 5-16절이다. “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 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 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 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 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 3:5-16)”
여기에서도 분명히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아직 내가 잡았다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말씀하고 있다. 신앙생활에 있어 성경이 말하는 자세와 우리 개인이 가지는 자세 사이에는 늘 충돌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괜찮은 일을 하는가 하면, 나는 원래 괜찮은 사림이었다는 것이 증거된 것으로 그 사건을 기억한다. 하나님 앞에 칭찬 받을 만한 신앙적인 어떤 승리를 하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 내가 본래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이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밖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과거에 집착하는 이유는 내가 과거에 잘한 일을 기억함으로 내가 원래 괜찮은 사람이라는 ‘안심’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착한 존재가 아니라 원래는 ‘마이너스’인생이라 말한다. 죄인으로 출발하여 죄악밖에 저지를 줄 몰랐던 상태로부터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함을 받고 의와 생명에 대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자라나고 도달한 지점이 다음을 향한 디딤돌이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어져서 다음 단계로의 도약이요, 이어짐이요, 자라남이요, 도달함에 관한 문제이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거로써 과거가 기억되기 시작하는 것 만큼 신앙에 무서운 유혹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 교회나 사람이나 자랑거리가 없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는 합격점이 되면 천국에 가게 되어 있지 여기 남아 있게 되어있지 않은 자들이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뒤를 돌아 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지만,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복음 안에 있어 보니까 그것이 모두가 필요없는 것이었더라’ 말한 뒤에 다음과 같은 바울의 고백이 나온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 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 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2-14)”
고린도후서 11장을 보면 신자들이 생각해야 하는 신앙상의 자세를 이렇게 쓰고 있다.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 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 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 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 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 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2-27)”
사도 바울이 이 말씀들을 나열한 것은 바울에게는 이것이 자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애를 썼으며, 그 많은 고생과 환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를 놓치지 않았는가’를 나열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 보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요 자세인 것이다. ‘누가 더 주를 위하여 매를 맞았느냐, 누가 더 고난을 당했느냐, 누가 더 많은 추억거리를 갖고 있느냐가 자랑이 아니다. 신자의 자랑은 어디에 있는가 수고하고 애쓰며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 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은 것이 자랑이 아니라 신자가 마땅히 와 있어야 할 자리, 해가 지면 달이 갈수록 신자가 커가야 하는 것은 내가 주를 위하여 고생을 했으며, 이런 업적을 남겼느냐’가 아니다. 28절을 보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내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이 자리에 와야 한다.
본문인 고린도전서 10장으로 되돌아가 보자. 그곳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나는 홍해도 건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를 섬길 때에도 나는 버티었다. 다 간음할 때도 나는 거부하고 버티었다.’ 그래서 누가 무슨 잘못을 하면 ‘나는 안 그랬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 이렇게 나오는 것은 교회에서 쌓아야 할 신앙의 본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자들이 서로 주고 받아야 할 신앙상의 가장 큰 격려와 나눔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나눔은 누가 무엇에 걸려 넘어졌든지 지금 누가 약하면 나도 약하고,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하는 것으로 와야 한다. 오늘 우리는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연약한 자가 갖는 믿음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갖지 못하고 그 앞에 심판자로 서 있지 않는가 잘못한 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잘난 척하는 교만한 자로서 그의 앞길을 막고 있지는 않는가 그것을 돌이켜 봐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주를 위하여 고생한 것을 자랑으로 쓰고 있지 않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왕 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 났노라(고후 11:30-33)”
사도 바울이 지금 우리에게 자신의 치사하고 연약하고 사람들에게 놀림 받기에 꼭 좋은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은 우리가 걷는 길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그가 분명히 알려주기 위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각자의 자존심을 세우고, 각자의 우월감을 증명하는 것이 신앙을 소유하는데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리고 얼마나 쉽게 우리가 거기에 말려 들어갈 수 있는 인간인가를 알기 때문에 그는 이 문제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 각 사람은 자신의 신앙을 주께서 요구한대로 갖기 위하여 참으로 큰 싸움을 해야 한다. 신자들 자신의 생애와 신앙생활과 실천과 자세로 가지기 위해 여기에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하는 커다란 신앙적인 결단과 애씀이 없이는 그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증명하기 위하여 하는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을 방해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영광까지도 가릴 수 있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가졌던 모든 신앙적인 경험들과 걸어온 길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 열매맺기 위하여 한 순간도 한 눈을 팔아서는 안되는 존재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이 요구하는 생명과 진리와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과 특권들을 놓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지나가는 시간들이, 앞으로 만들어질 경험들이 우리들 각자를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는 이 말씀으로 결론 내려지게 해야 한다. 남의 약한 것을 보면 나도 약해지고 남의 실족한 것을 인하여 내가 애태우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자리로 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참으로 시험에 약한 자들이다. 아차 하면 자존심의 도전을 받을 때 물러서지 못한다. 자신이 감춰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것이 신앙에서 제일 큰 시험거리이다. 우리는 쇠하여야겠고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한다. 나는 묻혀 하나의 씨앗이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힌다는 이 법칙을 놓치지 않는 그것이 우리의 중요한 풍토가 되는 교회를 만들어 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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