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보고 (민14:20-38)
본문
12 사람의 정탐군들이 40일동안 가나안을 둘러보고 돌아와 보고를 한 내 용은 여러분이 잘 알 것이다. 민 13:,14:은 12 명의 정탐군 이름과 그들이 살펴 본 가나안에 대한 보고서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각 지파 족장 한 사람씩을 선택하여 12 명의 정탐군을 보내라고 명하셨다. (민 13:1-2) 여호수아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다른 10 명은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였다는 것이다. 회중들은 여호수아 갈렙의 말 보다도 10사람의 말을 더 믿었다. 그래서 밤새도록 부르짖어 곡하였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우리가 애급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그 땅에 서 칼에 망하게 하고 처자가 사로잡히게 하는가 애급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 일반적으로 말해서 민주주의 방식을 택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가나안에 들 어가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가나안을 향하여 발 걸음을 옮겼고 요단을 건너 여리고를 점령하였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이 인간의 판단과 계획에 우선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탐군들이나 그들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을 그만 까맣게 잊어 버렸다. 백성들의 원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이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 버린데서 나온 것이다. 약속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인의삶을 규정하는 최대 공약수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들은 약속 때문에 지금까지 모진 고난을 참고 지냈다. 그런데 그만 가나안 땅 코 앞에서 이 약속을 짓밟아 버린 것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에 참예하는 성찬식을 가진다. 성찬식은 무엇인가 이것이 단순한 떡과 포도즙으로 끝나는 것인가 이 성찬식에서 우리가 가진 약속이 없는가 이 떡은 내 살이라, 이 잔은 내 피라 너희가 이것을 먹고 마실 때 마다 "나를 기념하라. 내가 주와 선생 이 되어서 너희의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내가 너희에게 새계명을 주 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우리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며 모일 때 마다 성찬식 을 가졌다.
그런데 이들의 모임을 싫어 하던 로마 병정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대하여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식인종으로 규정하여 핍박의 도구로 삼았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가나안에 대한 보고를 해야한다. 약속에 근거한 소망의 보고를 하던지, 현실에 기초한 절망의 보고를 하던 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상황에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작성하는 보고서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았으며, 어떻게 살아 왔는가 생각하라. 가나안을 정탐한 후의 엇갈린 보고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붙잡고 살 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현실만을 고집한다면 발전도 없고 희망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현실을 극복하며 영원한 미래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옮기 게 한다. 1620년 메이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102 명의 퓨리탄이 그 사람들 이고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아브라함이 걸어 간 길이 바로 그 길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아이젠하워는 내가 대 통령이 되면 한국에 가겠다는 말로 대중의 표를 얻었다고 한다. 훗날 닉슨 이 그를 본따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분쟁 중에 있는 중동에 가겠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를 상대한 케네디는 기선을 빼앗긴 셈이 되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백악관에 가겠다.' 고 말하여 열세를 만회하 였다는 것이다. 엇갈린 보고 속에서도 여러분은 무엇이든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 광야같은 현실 속에서 원망하다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약속의 땅 을 향하여 힘찬 도약을 할 것인가 "우리에게/우리교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이 인간의 판단과 계획에 우선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탐군들이나 그들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을 그만 까맣게 잊어 버렸다. 백성들의 원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이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 버린데서 나온 것이다. 약속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인의삶을 규정하는 최대 공약수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들은 약속 때문에 지금까지 모진 고난을 참고 지냈다. 그런데 그만 가나안 땅 코 앞에서 이 약속을 짓밟아 버린 것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에 참예하는 성찬식을 가진다. 성찬식은 무엇인가 이것이 단순한 떡과 포도즙으로 끝나는 것인가 이 성찬식에서 우리가 가진 약속이 없는가 이 떡은 내 살이라, 이 잔은 내 피라 너희가 이것을 먹고 마실 때 마다 "나를 기념하라. 내가 주와 선생 이 되어서 너희의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내가 너희에게 새계명을 주 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우리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며 모일 때 마다 성찬식 을 가졌다.
그런데 이들의 모임을 싫어 하던 로마 병정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대하여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식인종으로 규정하여 핍박의 도구로 삼았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가나안에 대한 보고를 해야한다. 약속에 근거한 소망의 보고를 하던지, 현실에 기초한 절망의 보고를 하던 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상황에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작성하는 보고서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았으며, 어떻게 살아 왔는가 생각하라. 가나안을 정탐한 후의 엇갈린 보고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붙잡고 살 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현실만을 고집한다면 발전도 없고 희망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현실을 극복하며 영원한 미래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옮기 게 한다. 1620년 메이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102 명의 퓨리탄이 그 사람들 이고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아브라함이 걸어 간 길이 바로 그 길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아이젠하워는 내가 대 통령이 되면 한국에 가겠다는 말로 대중의 표를 얻었다고 한다. 훗날 닉슨 이 그를 본따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분쟁 중에 있는 중동에 가겠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를 상대한 케네디는 기선을 빼앗긴 셈이 되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백악관에 가겠다.' 고 말하여 열세를 만회하 였다는 것이다. 엇갈린 보고 속에서도 여러분은 무엇이든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 광야같은 현실 속에서 원망하다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약속의 땅 을 향하여 힘찬 도약을 할 것인가 "우리에게/우리교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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