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여사는 무리 (민11,1-29)
본문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약 1년 정도 머무르는 동안 많은 계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내려오다가 금우상을 부수고 시내산을 떠났다. 산 마루턱까지 왔다. 그곳은 기브롯 핫다아와라는 곳이었다(민 11:34). 여기서 백성들은 날마다 먹는 만나에 싫증을 내고 고기를 먹고 싶다고 모세를 원망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에도 원망 하는 죄를 범하였었다(출14:11, 15:24, 16:2, 17:3등). 그리고 이제 또다시 원망의 죄악을 범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해 진 노하셨다. 그 진노는 화재였다.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으나 모세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메추라기도 주셨다. 하나님을 원망하여 진노를 사게 된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섞여 사는 무 리가 있었기 때문 이다. 섞여 사는 무리란 이방인들을 말한다. 이들 이 앞장서서 선동을 했다. 만나만 먹으려니 무미하며 기력도 쇠해졌 으므로, 애굽에서 먹던 고기와 그와 같은 것을 달라고 원망했을 것이다. 우리 심령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섞여 사는 무리가 있 을 때 이런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는 것이다.
1. 그들의 기원(애굽에서 출애굽 때 따라나온 잡종들이다 ) 애굽에서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나온 애굽사람들이다. 애굽을 떠날 때 순전히 이스라엘 사람들만 떠난 것이 아니라 잡민족 들이 섞여서 함께 출발했었다. 그런데 이때 섞여 따라온 잡종들이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꾸 충동질하고 흔들어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섞여 따라온 잡종들의 충동질 바람에 하나님을 자꾸 원망했다. 이 섞여 사는 무리는 애굽 에서 온 애굽인이요, 또 잡종 민족들이었다. 국적이 애굽에 있고, 또 국적도 없는 씨족들이었다. 이 섞여 사는 잡종들은 애굽에서 모세가 행하는 큰 이적을 보고 무슨 큰횡재나 생길까하고 따라나섰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섞여 사는 무리는 현세에 집착한다.
1)현세에서 의 예수를 강조한다. 저 천당에 가서 복을 받고 못 받고 하는 것은 나중일이고 당장 이 세상에서 예수의 덕을 보자는 현세주의 신앙이 바로 이 섞여사는 교인의 철학이다.
2)섞여 사는 무리는 지상축복을 제창한다. 고기를 달라! 메추라기를 달라! 현세의 축복을 달라! 복받으라, 받지 못한 것은 은혜받지 못한 증거라 하여 설교해 도, 좋다고 따라 가니 한심하다.
3)기독교는 이 현세에 그 뜻을 두고 있지 않다. 물론 현세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천당에 더 집착한다. 왜 세상은 잠칸 이고 이세상 것은 다 지나가고 썩어지는 헛된 수고이기 때문 이다 (요일2:15-17, 고전15:58).
2. 그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한마디로 (통혼한 잡족들)이다. 레24:10에 (이스라엘 여인 의 아들 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된다)라 말을 보아 애굽인과 이스 라엘인이 통혼하여 살았던 것 같다. 또한 각색 국적을 가진 자들로 당시 애굽의 강압적 건축노역에 불만하다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도피하여 나온 자들이다 (출12:38, 신29:11).
1)섞여 사는 무리는 이스라엘 본향인이 아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성 사람이 었기 때문에 자기 고향이 이 화염불에 불탈 때에 그것을 뒤돌아 볼수 밖에 없었다. 섞여 사는 무리는 이스 라엘 핏줄기가 아니며, 섞여 사는 교인은 천당의 핏줄기가 아니다. 때문에 가나안을 향한 목적의식이 없다. 섞여사는 교인은 천당에 대 한 강한 동경심이 없고 천당을 향한 확고한 신앙이 없다.
왜냐하면 천당은 자기의 본향이 아니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현세에만 집착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2)이 무리들은 탐욕을 품은 자들이다. 즉 만나제일주의를 배격한 자들이다. 이러한 무리들의 선동 했듯 이, 이들이 원망하게 된 동기는 탐욕 때문 이었다. 탐욕은 영적 구 미를 좌절시켜 버린다. 주를 멀리하게 한다. 영적인 은사를 맛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게 한다.
그러므로 이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약1:15).
3)섞여 사는 무리는 성령님으로 중생된 자가 아니고 종교심으로 예스 를 믿는 자이다. 종교심이 없는 민족은 없다하였다이 종교심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불교를 만나면불교인이라고 말하고, 힌두교를 만나면 힌두교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종교심이 예수를 만나면 예수교인이되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종교심에 의한 교인이지, 성령님 으로 재출생된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종교심과 성경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자부하면서도 아직까지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 남이 없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섞여사는 무리일 사람의 무관심과 무지로 인하여 (교인들) 이나 (교회의 일꾼들), 심지어는 소위 (목사)가 되도록 허락되었다. 이들은 진실한 교회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증가를 크게 혼란시키는 자들이다 (고후6:14, 고전15:33). 현대 교회는 이 섞여사는 무리 때문에 만나만을 싫다고 하는 불평 의 함정에 빠져가고 있다. 본문 11:4에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 며)라고 하였다. 그것은 작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부패적 요 소이다(고전5:6). 신자 의 마음속에 섞여 있는 세속이다. 이 섞여사는 무리의 모습이 유형교회에는 무형교회와 다르게 나타난다. 이 영 적인 무형교회는 하나님만이 아는 일이지만 유형교회는 택자와 유기 자가 섞여 있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는 식별이 힘들다(양과 염소, 가라지와 곡식, 알곡과 쭉정이). 그러나 섞인 것만은 사실이다. 천당식구가 아닌 사람이 교인의 탈 을 쓰고 교회 안에 섞여 산다. 그래서 교회의 중책도 맡고 있기 때문에 영적 이스라엘인 인지 잡종 애굽인인지 구별이 어렵다. 이 섞 여 사는 무리들 때문에 교회와 영적 이스라엘 성도들의 영적 손실이 크고 분쟁과 당 보자.
3. 그들의 원망(11:1비교, 출16:8, 욥15:11, 고전10:10, 빌2:14).
1)천국을 목적하지 못했기 때문에 왜 이 잡종들이 자주 원망하게 되었는가 하면, 이들에게는 가나 안 땅이 본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이 이 이 하 도 좋다 하니까 떠나기는 하였으나 출애굽해 서 7일이 면되는 길을 1년이 지나도 도착은 커녕 아직 보이지도 않으니, 애굽에서 노예노 릇을 하며 애굽 문화를 먹고 살던 생활이 광야보다 낫게 느껴졌던 것이다. 섞여 사는 무리들은 가나안에 대한 목적의 식이 없으니까 당장 하 늘의 좋은 일만 자주 찾으나 원망이 나올 수 밖없었던 것이다. 우리 가 진정 천국과 내세를 목적하지 않고 현실만 보는 현세주의자가 된 다면원망, 불평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을 목적하여 저 높은 곳을 믿음으로 희망하고 나감으로 환난 가운데 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2)섞여 사는 무리들의 목적이 물질에 있었기 때문 이다. 1년 동안 만나로만 먹고 육류고기는 한번도 못먹으니까 자연히 고 기를 달라는 원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질주의 교인은 세상 축복에 족함이 없을때, 원망의 독버섯이 싹튼다. 성경에는, 참된 성도 의 목적이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만족의 성경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무엇을 입을 까, 마실까, 먹을 까를 염려하지 말 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 하여 주신다고 약속 해 주셨다. (마6:33). 우리가 물질에 너무 애착을 두고 사랑하 고 좇을 때는 그것이 사라지고, 부족 할 때는 꼭 원망 이 나오는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자족의 비결을 배워 만족하는 삶을 성령님으로 누리시기 바란다(빌4:11-14).
3)섶가 여 사는 무리의 원망이 이스라엘 백성까지 원망케 했다
(4) 원망은 또 원망을 낳고 감사는 또 감사를 낳는다. 섞여 사는 무리 의 원망이 이스라엘 백성도 울며 원망하게 하였다. 이 원망은 큰 변 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려울 때라면 혹시 원망할 수 있다. 지만 지금은 기적인 하나님의 만나의 축복을 원망하고 있으니 하나님께 진노를 받을 만한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 전10:10에서는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원망하다가 복받은 후 망 하지 말라고 권면하며 우리의 거울로 삼으라고 하였다.
5. 그들의 부르짖음(민11:4-5)(육신의 정육)(하나님의 은혜를 잊 어버린 부르짖음이다 )
1)누가 우리를 위해 고기를 죽까
(4) 여기(누가 )란 말을 쓴 것은 이들이 이 신을 믿지 않았다는 증거 이다. 지금까지 1년 이상을 만나로 살아오는 데 (누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출16:15에서는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라고 하였고 마 6:32(아버지께서 쓸것을 미리 다 아신다)고 하였다. 왕상3:15에는 (구하지 않는 것까지 더 주겠다)고 하셨는데 이 무슨 불신의 말인 가
2)애굽을 생각하는 부르짖음이었다(15) 참 불행한 백성의 사고방식이다. 저들이 애굽의 생선과 과실 맛 을 기억하면 잊어버렸다. 저들은 애굽에서 먹던 부식들은 생각하면 서 애굽의 노예 생활은 잊어버렸다. 홍해의 기적과 불기둥, 구름기 둥, 만나의 은혜를 잊어버렸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육신의 정욕을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부르짖음이면, 홰개와 믿음의 부르짖음이면 얼마나 하나님이 이 기뻐하시고 저들의 부르짖 음에 그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셨겠다는가(약 4:2-3, 렘33:1-3).
3)불신앙의 부르짖음이었다
(6) 모세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코에 넘치도록 고기를 주겠 다)하시면서, 그래도 의심하는 모세에게 23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 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 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하셨다. 만나가 싫다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싫다는 불신앙의 소리이며 병든 소리이다. 원망과 애굽을 생각 한 것과 또 고기를 줄수 없다고 불평하는 소리는 저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외쳐진 것이다. 만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분실하는 그런 부르짖는 소리를 하지 말라. 만나를 주신 분은 더 좋은 것도 주실수 있는 분이다. 롬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 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5. 그들이 멸시한 것(민11:6-9)(만나를 멸시) 하나님이 이 내려주신 양식인 만나를 멸시했다. 만나는 그리스도 의 모형이다 (사53:3, 행13:41, 롬2:4, 눅10:16, 히10:29). 그들은 만나를 멸시하고
(1)육식을 달라고
(2)어류를 달라고
(3) 만나를 멸시하고 별미를 구한 것은 큰 죄이다. 그러면 왜 그들이 만나를 멸시하고 별미를 구했나
1)세상의 맛에 취했기에 애굽 종살이에서 먹던 그 버릇, 그 미각뿐이기 때문 이다. 가나안 을 향하는 자들이 옛애굽적 미각을 답습함은 죄이다.
그러므로 세상 의 맛, 쾌락, 정욕을 버려야 한다.
2)육신적인 것을 요구했기 에 그 욕구가 너무나도 육체적인 것이다. 마치 오늘의 신자들이 시각, 청각, 기타 관능적 피부 감각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려는 것과 같다. 즉 흥분하는 자극제를 좋아했다. 그러기에 입맛을 곧구는 파, 마늘을 구하고 있다. 오늘도 우리의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감각적이 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가
3) 만나의 진미를 몰랐기 때문에 (민11:7-9) 이 만나는 모든 종합 영양제이다. 민11:7-9에 (만나는 갓씨와 같 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다.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몰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섞인 과자맛 같았더라)고 하였다. 신령한 만나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영육의 종합영양제이다. 그는 과학적인 분석,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추리 이상의 것이다. 옛날이 나 오늘이나 만나의 맛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 때문에, 교만 때문에, 영적 구미가 변질되어 오늘도 그만 나의 맛을 모 르고 만나를 멸지하는 죄를 범한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나님 께서 그들 앞에 공급해 주신 귀한 양식 만나를 멸지할 뱝 뿐아니라, 우리들 중에 그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그것을 비판하고 등급을 매 기고 하는 것들이 잘못된 파악이다.
6. 그들의 결과
1)하나님의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끝을 사르셨 다(민11:9) 하나님은 불로써 이스라엘을 징벌하셨다. 이불은 나답과 아비후를 불살라 죽이던 그런 불꽃이었다(3:4). 하나님의 심판의 불 이 진영워끝의 천막에만 미쳤는지, 백성에게 미쳤는지 아니면 그 모 두에게 미쳤는지 확실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불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서 단순히 그의 권능만을 노이심으로 원망이 사라지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신 위엄에 대한 건 전한 두려움을 주입시키는 것이 이 불심판의 목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징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징계는 당신의 백성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려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다(고전11:32, 히12:7).
2)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힘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 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함(33-34)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냄으로 말미암아 그 들이 배불리 먹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원망)과 그들의 탐욕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만족을 채 우신 후 곧 이어 큰 재망으로 그들을 치셨다. 그래서 그곳의 지명은 기브롯 핫다이와라고 하였는데 이는 (욕망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33:16-17, 출16:13-20). 이와같은 사실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죄인의 번영이 무엇인가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즉 죄인의 번영은 멸망을 향히 면행진일 뿐이다 (잠23:17, 전2:26, 사1:18).
3)탐욕을 낸 백성은 거기 장사함이었더라(34) 섞여 사는 무리들이 탐욕을 품다가 도리어 거기서 죽어서 장사되 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멸망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인자와 공의를 뜻하는 것이 니, 근본이 사랑이시나 벌할 자는 벌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받지 말며, 하나님의 큰 재망을 받지 말 고, 죽어 장사되는 멸망을 당치 않기 위해, 섞여 사는 무리도 되지 말고 그들을 따라 같이 이 범죄하는 어리석은 자도 되지 말자.
7. 오직 만나로만 살자 주의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 (사람이 떡으로 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니라)(마4:4)고 하였다. 오직 만나만으로 산다는 뜻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만나는 무엇인가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인간의 사상이나 인본주의가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만 으로 살아가야 한다.
8. 결론 섞여 사는 무리들 처럼 만나만으로는 못 살겠다는 멸망의 소리를 하지 말고, 오직 만나로만 만족하고 사랑하며 살겠다는 믿음의 소리 를 하며 영생을 얻기를 바란다. 가나안의 축복과 영광을 누리시기 바란다.
1. 그들의 기원(애굽에서 출애굽 때 따라나온 잡종들이다 ) 애굽에서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나온 애굽사람들이다. 애굽을 떠날 때 순전히 이스라엘 사람들만 떠난 것이 아니라 잡민족 들이 섞여서 함께 출발했었다. 그런데 이때 섞여 따라온 잡종들이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꾸 충동질하고 흔들어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섞여 따라온 잡종들의 충동질 바람에 하나님을 자꾸 원망했다. 이 섞여 사는 무리는 애굽 에서 온 애굽인이요, 또 잡종 민족들이었다. 국적이 애굽에 있고, 또 국적도 없는 씨족들이었다. 이 섞여 사는 잡종들은 애굽에서 모세가 행하는 큰 이적을 보고 무슨 큰횡재나 생길까하고 따라나섰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섞여 사는 무리는 현세에 집착한다.
1)현세에서 의 예수를 강조한다. 저 천당에 가서 복을 받고 못 받고 하는 것은 나중일이고 당장 이 세상에서 예수의 덕을 보자는 현세주의 신앙이 바로 이 섞여사는 교인의 철학이다.
2)섞여 사는 무리는 지상축복을 제창한다. 고기를 달라! 메추라기를 달라! 현세의 축복을 달라! 복받으라, 받지 못한 것은 은혜받지 못한 증거라 하여 설교해 도, 좋다고 따라 가니 한심하다.
3)기독교는 이 현세에 그 뜻을 두고 있지 않다. 물론 현세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천당에 더 집착한다. 왜 세상은 잠칸 이고 이세상 것은 다 지나가고 썩어지는 헛된 수고이기 때문 이다 (요일2:15-17, 고전15:58).
2. 그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한마디로 (통혼한 잡족들)이다. 레24:10에 (이스라엘 여인 의 아들 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된다)라 말을 보아 애굽인과 이스 라엘인이 통혼하여 살았던 것 같다. 또한 각색 국적을 가진 자들로 당시 애굽의 강압적 건축노역에 불만하다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도피하여 나온 자들이다 (출12:38, 신29:11).
1)섞여 사는 무리는 이스라엘 본향인이 아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성 사람이 었기 때문에 자기 고향이 이 화염불에 불탈 때에 그것을 뒤돌아 볼수 밖에 없었다. 섞여 사는 무리는 이스 라엘 핏줄기가 아니며, 섞여 사는 교인은 천당의 핏줄기가 아니다. 때문에 가나안을 향한 목적의식이 없다. 섞여사는 교인은 천당에 대 한 강한 동경심이 없고 천당을 향한 확고한 신앙이 없다.
왜냐하면 천당은 자기의 본향이 아니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현세에만 집착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2)이 무리들은 탐욕을 품은 자들이다. 즉 만나제일주의를 배격한 자들이다. 이러한 무리들의 선동 했듯 이, 이들이 원망하게 된 동기는 탐욕 때문 이었다. 탐욕은 영적 구 미를 좌절시켜 버린다. 주를 멀리하게 한다. 영적인 은사를 맛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게 한다.
그러므로 이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약1:15).
3)섞여 사는 무리는 성령님으로 중생된 자가 아니고 종교심으로 예스 를 믿는 자이다. 종교심이 없는 민족은 없다하였다이 종교심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불교를 만나면불교인이라고 말하고, 힌두교를 만나면 힌두교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종교심이 예수를 만나면 예수교인이되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종교심에 의한 교인이지, 성령님 으로 재출생된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종교심과 성경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자부하면서도 아직까지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 남이 없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섞여사는 무리일 사람의 무관심과 무지로 인하여 (교인들) 이나 (교회의 일꾼들), 심지어는 소위 (목사)가 되도록 허락되었다. 이들은 진실한 교회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증가를 크게 혼란시키는 자들이다 (고후6:14, 고전15:33). 현대 교회는 이 섞여사는 무리 때문에 만나만을 싫다고 하는 불평 의 함정에 빠져가고 있다. 본문 11:4에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 며)라고 하였다. 그것은 작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부패적 요 소이다(고전5:6). 신자 의 마음속에 섞여 있는 세속이다. 이 섞여사는 무리의 모습이 유형교회에는 무형교회와 다르게 나타난다. 이 영 적인 무형교회는 하나님만이 아는 일이지만 유형교회는 택자와 유기 자가 섞여 있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는 식별이 힘들다(양과 염소, 가라지와 곡식, 알곡과 쭉정이). 그러나 섞인 것만은 사실이다. 천당식구가 아닌 사람이 교인의 탈 을 쓰고 교회 안에 섞여 산다. 그래서 교회의 중책도 맡고 있기 때문에 영적 이스라엘인 인지 잡종 애굽인인지 구별이 어렵다. 이 섞 여 사는 무리들 때문에 교회와 영적 이스라엘 성도들의 영적 손실이 크고 분쟁과 당 보자.
3. 그들의 원망(11:1비교, 출16:8, 욥15:11, 고전10:10, 빌2:14).
1)천국을 목적하지 못했기 때문에 왜 이 잡종들이 자주 원망하게 되었는가 하면, 이들에게는 가나 안 땅이 본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이 이 이 하 도 좋다 하니까 떠나기는 하였으나 출애굽해 서 7일이 면되는 길을 1년이 지나도 도착은 커녕 아직 보이지도 않으니, 애굽에서 노예노 릇을 하며 애굽 문화를 먹고 살던 생활이 광야보다 낫게 느껴졌던 것이다. 섞여 사는 무리들은 가나안에 대한 목적의 식이 없으니까 당장 하 늘의 좋은 일만 자주 찾으나 원망이 나올 수 밖없었던 것이다. 우리 가 진정 천국과 내세를 목적하지 않고 현실만 보는 현세주의자가 된 다면원망, 불평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을 목적하여 저 높은 곳을 믿음으로 희망하고 나감으로 환난 가운데 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2)섞여 사는 무리들의 목적이 물질에 있었기 때문 이다. 1년 동안 만나로만 먹고 육류고기는 한번도 못먹으니까 자연히 고 기를 달라는 원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질주의 교인은 세상 축복에 족함이 없을때, 원망의 독버섯이 싹튼다. 성경에는, 참된 성도 의 목적이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만족의 성경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무엇을 입을 까, 마실까, 먹을 까를 염려하지 말 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 하여 주신다고 약속 해 주셨다. (마6:33). 우리가 물질에 너무 애착을 두고 사랑하 고 좇을 때는 그것이 사라지고, 부족 할 때는 꼭 원망 이 나오는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자족의 비결을 배워 만족하는 삶을 성령님으로 누리시기 바란다(빌4:11-14).
3)섶가 여 사는 무리의 원망이 이스라엘 백성까지 원망케 했다
(4) 원망은 또 원망을 낳고 감사는 또 감사를 낳는다. 섞여 사는 무리 의 원망이 이스라엘 백성도 울며 원망하게 하였다. 이 원망은 큰 변 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려울 때라면 혹시 원망할 수 있다. 지만 지금은 기적인 하나님의 만나의 축복을 원망하고 있으니 하나님께 진노를 받을 만한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 전10:10에서는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원망하다가 복받은 후 망 하지 말라고 권면하며 우리의 거울로 삼으라고 하였다.
5. 그들의 부르짖음(민11:4-5)(육신의 정육)(하나님의 은혜를 잊 어버린 부르짖음이다 )
1)누가 우리를 위해 고기를 죽까
(4) 여기(누가 )란 말을 쓴 것은 이들이 이 신을 믿지 않았다는 증거 이다. 지금까지 1년 이상을 만나로 살아오는 데 (누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출16:15에서는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라고 하였고 마 6:32(아버지께서 쓸것을 미리 다 아신다)고 하였다. 왕상3:15에는 (구하지 않는 것까지 더 주겠다)고 하셨는데 이 무슨 불신의 말인 가
2)애굽을 생각하는 부르짖음이었다(15) 참 불행한 백성의 사고방식이다. 저들이 애굽의 생선과 과실 맛 을 기억하면 잊어버렸다. 저들은 애굽에서 먹던 부식들은 생각하면 서 애굽의 노예 생활은 잊어버렸다. 홍해의 기적과 불기둥, 구름기 둥, 만나의 은혜를 잊어버렸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육신의 정욕을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부르짖음이면, 홰개와 믿음의 부르짖음이면 얼마나 하나님이 이 기뻐하시고 저들의 부르짖 음에 그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셨겠다는가(약 4:2-3, 렘33:1-3).
3)불신앙의 부르짖음이었다
(6) 모세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코에 넘치도록 고기를 주겠 다)하시면서, 그래도 의심하는 모세에게 23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 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 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하셨다. 만나가 싫다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싫다는 불신앙의 소리이며 병든 소리이다. 원망과 애굽을 생각 한 것과 또 고기를 줄수 없다고 불평하는 소리는 저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외쳐진 것이다. 만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분실하는 그런 부르짖는 소리를 하지 말라. 만나를 주신 분은 더 좋은 것도 주실수 있는 분이다. 롬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 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5. 그들이 멸시한 것(민11:6-9)(만나를 멸시) 하나님이 이 내려주신 양식인 만나를 멸시했다. 만나는 그리스도 의 모형이다 (사53:3, 행13:41, 롬2:4, 눅10:16, 히10:29). 그들은 만나를 멸시하고
(1)육식을 달라고
(2)어류를 달라고
(3) 만나를 멸시하고 별미를 구한 것은 큰 죄이다. 그러면 왜 그들이 만나를 멸시하고 별미를 구했나
1)세상의 맛에 취했기에 애굽 종살이에서 먹던 그 버릇, 그 미각뿐이기 때문 이다. 가나안 을 향하는 자들이 옛애굽적 미각을 답습함은 죄이다.
그러므로 세상 의 맛, 쾌락, 정욕을 버려야 한다.
2)육신적인 것을 요구했기 에 그 욕구가 너무나도 육체적인 것이다. 마치 오늘의 신자들이 시각, 청각, 기타 관능적 피부 감각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려는 것과 같다. 즉 흥분하는 자극제를 좋아했다. 그러기에 입맛을 곧구는 파, 마늘을 구하고 있다. 오늘도 우리의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감각적이 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가
3) 만나의 진미를 몰랐기 때문에 (민11:7-9) 이 만나는 모든 종합 영양제이다. 민11:7-9에 (만나는 갓씨와 같 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다.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몰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섞인 과자맛 같았더라)고 하였다. 신령한 만나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영육의 종합영양제이다. 그는 과학적인 분석,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추리 이상의 것이다. 옛날이 나 오늘이나 만나의 맛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 때문에, 교만 때문에, 영적 구미가 변질되어 오늘도 그만 나의 맛을 모 르고 만나를 멸지하는 죄를 범한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나님 께서 그들 앞에 공급해 주신 귀한 양식 만나를 멸지할 뱝 뿐아니라, 우리들 중에 그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그것을 비판하고 등급을 매 기고 하는 것들이 잘못된 파악이다.
6. 그들의 결과
1)하나님의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끝을 사르셨 다(민11:9) 하나님은 불로써 이스라엘을 징벌하셨다. 이불은 나답과 아비후를 불살라 죽이던 그런 불꽃이었다(3:4). 하나님의 심판의 불 이 진영워끝의 천막에만 미쳤는지, 백성에게 미쳤는지 아니면 그 모 두에게 미쳤는지 확실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불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서 단순히 그의 권능만을 노이심으로 원망이 사라지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신 위엄에 대한 건 전한 두려움을 주입시키는 것이 이 불심판의 목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징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징계는 당신의 백성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려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다(고전11:32, 히12:7).
2)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힘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 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함(33-34)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냄으로 말미암아 그 들이 배불리 먹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원망)과 그들의 탐욕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만족을 채 우신 후 곧 이어 큰 재망으로 그들을 치셨다. 그래서 그곳의 지명은 기브롯 핫다이와라고 하였는데 이는 (욕망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33:16-17, 출16:13-20). 이와같은 사실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죄인의 번영이 무엇인가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즉 죄인의 번영은 멸망을 향히 면행진일 뿐이다 (잠23:17, 전2:26, 사1:18).
3)탐욕을 낸 백성은 거기 장사함이었더라(34) 섞여 사는 무리들이 탐욕을 품다가 도리어 거기서 죽어서 장사되 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멸망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인자와 공의를 뜻하는 것이 니, 근본이 사랑이시나 벌할 자는 벌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받지 말며, 하나님의 큰 재망을 받지 말 고, 죽어 장사되는 멸망을 당치 않기 위해, 섞여 사는 무리도 되지 말고 그들을 따라 같이 이 범죄하는 어리석은 자도 되지 말자.
7. 오직 만나로만 살자 주의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 (사람이 떡으로 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니라)(마4:4)고 하였다. 오직 만나만으로 산다는 뜻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만나는 무엇인가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인간의 사상이나 인본주의가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만 으로 살아가야 한다.
8. 결론 섞여 사는 무리들 처럼 만나만으로는 못 살겠다는 멸망의 소리를 하지 말고, 오직 만나로만 만족하고 사랑하며 살겠다는 믿음의 소리 를 하며 영생을 얻기를 바란다. 가나안의 축복과 영광을 누리시기 바란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