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소수 (민14:1-10,마26:6-12)
본문
인간의 역사는 많은 사람에 의해 진보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소수 의 신념과 용기에 의해 이룩된다.(토인비) 성서의 교훈도 이를뒷받침하고 있다.
(1) 이스라엘의 가나안 집인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홍해를 건너고 40년가까운 광 야의 시련을 겪은 이스라엘은 꿈에도 소원인 가나안 복지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주민과의 격돌에 대비하여 충분한 방안을 모색하고저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차출 적진을 탐색할 수색대를 조직 파견하였다. 이들 열 두명의 수색대원들이 제출한 보고서는 두가지였다. 통일된 보고서가 아니고 두 갈래로 갈라진 보고서였다. 열명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당신께서 보내신 땅에 가 보았더니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지방의 과실입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키가 장대같았습니다. 그리고 성과 도시들은 정말 굉장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 사람들 보기에도 그랬을 것입니다"(민수기13:25-공동번역) 이와 같은 비관적 보고에 접한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켰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 하며 옛날 노예시대, 애굽생활을 그리워하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른바 패배주 의적 기색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이런 현실을 목도한여호수아와 갈렙은 울분을 억 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옷을 찡으며 전혀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우리가 돌아다니며 정탐하고 온 땅은 기막히게 좋은 땅이오. 우리가야훼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우리는 그 땅으로 들어가 차지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는 야훼를 거역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마시오. 그들은 이미 우리의 밥이오"(민수기 14:7-)두 수색보고서는 가나안 땅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는 동일했다. 과연젖과 꿀이 흐르는 땅, 사람이 살기에 알맞는 땅이라는 사실에는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그 땅을 차지하려는 의지와 방법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시각을 보 여 주고 있었다. 열명은 "땅은 좋지만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기에는 역부족"(역부족) 이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사의 증언이나, 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모세와 아론은 다수의 의 견 보다는 소수이지만 하나님 신앙과 용기에 넘친 의견을 따라 가나안에 진입하였다. 진리는 수량에 의해서 밝혀 지는 것이 아니라 신념과 용기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다.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이 더 좋고 작은 것보다큰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크고 작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신앙과 그에 근거한 용기에 의해 구현된다는 것이 성서의 교훈 이다. 브라잇(J. Bright)은 "하나님 나라"라는 명저를 남겼다. 그는 이 저서에서 모세의 공헌을 세가지 측면에서 평가하였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것, 하나님을 형상 화(형상화)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님은 인간과 그역사의 섭리자라는 것을 밝혀 주었다.하나님을 인간역사의 주관자라고 믿는 사람은 수량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의존해야 한다. 그 명령을 수행하려는 용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2)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하고 있을 때 유대인 지도자 시몬 의 집에서 저녁 대접을 받으셨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한 여인이 참예하였다. 그 여인은 손에 옥합을 들고 있었다. 이 여인은 그 옥합에 든 기름을 예수의 머리에 쏟아 부 었다. 그 기름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소동 이 벌어졌다. 제자들은 어찌하여 이값진 기름을 허비하느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 누어 주었으면 얼마나 빛날일이겠는가 합리적인 항변임에 틀림없다. 예수의 머리에 바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값의 기름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초대한 시몬은 이 여 인의 정체에 대해 마땅치 않게 여기며 그런 부정한 여인을 상대하는 예수에 대해회 의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 자신은 전혀 다른 견해를 보이셨다. "이 여자는 나에게 기특한 일을 하였는데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가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나의 장례를 위하여 한 것이다. 나는 분명히말한다. 온 세상 어디 든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알려져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태 26:10-)예수는 공개적으로 인자의 고난의 비밀을 세번씩이나 언급하셨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이여 인 한 사람만이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때를 보아 예수의 장례에 대비하여 향유를 부은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장례예식에는 도유식이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법정에서 반로마, 반체제인사로 처형될 예수의 장례가 격식대로 이루어 질 수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에 이 여인은 예수의 생전에 도유식을 행한 셈이다. 신학자 틸리히(P. Tillich)는 이 여인의 행위를 "거룩한 낭비"라고 정의했다. 이 거룩한 낭비가 역사의 추진력이었다고 규명했다. 역사가 토인비(A. Toynbee)는 인류의 구원은 바로 이 여인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 성취된다고 언급하였다. 교회의 역사는 이 여인과 같은 전적인 헌신의 사람들에의해 존속되었고 또 부흥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 여인은 인자의 고난의 비밀에 대한 예수의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 으며 그에 대비하여 향유를 쏟아 부음으로써 주님의 장례를 위해큰 일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결과도 된 것이다. 모든사람들은 그 뜻을 몰랐지만 이 여인 한 사람만은 예수의 말씀의 뜻을 헤아려 그에 대비하며 살았던 것이다.
(3) 바울은 "예수-그리스도 구원론"을 체계화한 최초의 신학자였다. 그의신앙과 사 상에 근거하여 신약성서는 집필되고 편찬되었다. 그러나 그의생애의 전반부는 반 그리스도적인 삶이 바 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유대인들은바울의 전도에 반기를 들었으며 심지어는 살해모의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만큼 그는 반그리스도 박해운동에 주력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에항거하여 사울이 바울이 되는 다메섹 사건을 입증하며 바울을 보호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 나바였다. 바나바는 다메섹 사건의 진실을 믿고 바울을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옹 립하였다. 바울 이전의 사울에 대한 선입관 때문에 다메섹 사건 이후의 바울을 버 리려는 유대인들에 대항하여 바울을 지켜 준 사람이다. 그리고 그와 동역자가 되어 그리스도교의 기틀을 다진 것이다. 바울의 배후에는 두 사람의 인격이 있었다. 하나는 예수요 다른 하나는 바나바 였다. 예수는 바울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불러내시고 바나바는 그의 보호자가 되고 그의 길잡이가 된 것이다. 바나바가 바울을 비호하는일은 아무 도 찬동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위험만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바나바는 하나님의 역사에 충실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바울을 지켜 주었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 만남이 없었던들 오늘의 바울이 있을리 없는것처럼 바 나바 없는 바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바울은 예수로 말미암아거듭나고 바나바로 말미암아 성서적인 인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대한 인물의 배출에는 그만한 조연자(조연자)가 숨어 있게 마련이다. 그 조연자들은 많은 적대자들의 오 해와 반대에 부딛치며 그 일을 수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진실이 이 땅에 구현되며 위대 한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교 선교에 있어 바울이 없는 그리스도는 상상할 수 조차없다. 역 사적 예수가 그리스도로 승화 인류의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된 것은 바울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다메섹 사건과 바나바는 그리스도교 선교사(선교사) 의 두 기둥이라 해도 잘못되지 않는 견해이다. 가나안 진입에 있어서의 여호수아와 갈렙,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그의 몸에 부은 여인, 그리고 바울을 그리스도의 참 증인으로 끝까지 비호해 준 바나바, 이들의 경우 하나의 공통점은 그들은 다수편에 서지 않고 자신들의 신 앙대로 행동했다는 사실이요, 위험에 직면하여피해 가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하였다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1) 이스라엘의 가나안 집인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홍해를 건너고 40년가까운 광 야의 시련을 겪은 이스라엘은 꿈에도 소원인 가나안 복지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주민과의 격돌에 대비하여 충분한 방안을 모색하고저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차출 적진을 탐색할 수색대를 조직 파견하였다. 이들 열 두명의 수색대원들이 제출한 보고서는 두가지였다. 통일된 보고서가 아니고 두 갈래로 갈라진 보고서였다. 열명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당신께서 보내신 땅에 가 보았더니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지방의 과실입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키가 장대같았습니다. 그리고 성과 도시들은 정말 굉장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 사람들 보기에도 그랬을 것입니다"(민수기13:25-공동번역) 이와 같은 비관적 보고에 접한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켰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 하며 옛날 노예시대, 애굽생활을 그리워하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른바 패배주 의적 기색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이런 현실을 목도한여호수아와 갈렙은 울분을 억 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옷을 찡으며 전혀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우리가 돌아다니며 정탐하고 온 땅은 기막히게 좋은 땅이오. 우리가야훼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우리는 그 땅으로 들어가 차지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는 야훼를 거역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마시오. 그들은 이미 우리의 밥이오"(민수기 14:7-)두 수색보고서는 가나안 땅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는 동일했다. 과연젖과 꿀이 흐르는 땅, 사람이 살기에 알맞는 땅이라는 사실에는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그 땅을 차지하려는 의지와 방법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시각을 보 여 주고 있었다. 열명은 "땅은 좋지만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기에는 역부족"(역부족) 이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사의 증언이나, 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모세와 아론은 다수의 의 견 보다는 소수이지만 하나님 신앙과 용기에 넘친 의견을 따라 가나안에 진입하였다. 진리는 수량에 의해서 밝혀 지는 것이 아니라 신념과 용기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다.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이 더 좋고 작은 것보다큰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크고 작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신앙과 그에 근거한 용기에 의해 구현된다는 것이 성서의 교훈 이다. 브라잇(J. Bright)은 "하나님 나라"라는 명저를 남겼다. 그는 이 저서에서 모세의 공헌을 세가지 측면에서 평가하였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것, 하나님을 형상 화(형상화)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님은 인간과 그역사의 섭리자라는 것을 밝혀 주었다.하나님을 인간역사의 주관자라고 믿는 사람은 수량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의존해야 한다. 그 명령을 수행하려는 용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2)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하고 있을 때 유대인 지도자 시몬 의 집에서 저녁 대접을 받으셨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한 여인이 참예하였다. 그 여인은 손에 옥합을 들고 있었다. 이 여인은 그 옥합에 든 기름을 예수의 머리에 쏟아 부 었다. 그 기름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소동 이 벌어졌다. 제자들은 어찌하여 이값진 기름을 허비하느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 누어 주었으면 얼마나 빛날일이겠는가 합리적인 항변임에 틀림없다. 예수의 머리에 바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값의 기름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초대한 시몬은 이 여 인의 정체에 대해 마땅치 않게 여기며 그런 부정한 여인을 상대하는 예수에 대해회 의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 자신은 전혀 다른 견해를 보이셨다. "이 여자는 나에게 기특한 일을 하였는데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가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나의 장례를 위하여 한 것이다. 나는 분명히말한다. 온 세상 어디 든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알려져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태 26:10-)예수는 공개적으로 인자의 고난의 비밀을 세번씩이나 언급하셨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이여 인 한 사람만이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때를 보아 예수의 장례에 대비하여 향유를 부은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장례예식에는 도유식이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법정에서 반로마, 반체제인사로 처형될 예수의 장례가 격식대로 이루어 질 수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에 이 여인은 예수의 생전에 도유식을 행한 셈이다. 신학자 틸리히(P. Tillich)는 이 여인의 행위를 "거룩한 낭비"라고 정의했다. 이 거룩한 낭비가 역사의 추진력이었다고 규명했다. 역사가 토인비(A. Toynbee)는 인류의 구원은 바로 이 여인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 성취된다고 언급하였다. 교회의 역사는 이 여인과 같은 전적인 헌신의 사람들에의해 존속되었고 또 부흥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 여인은 인자의 고난의 비밀에 대한 예수의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 으며 그에 대비하여 향유를 쏟아 부음으로써 주님의 장례를 위해큰 일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결과도 된 것이다. 모든사람들은 그 뜻을 몰랐지만 이 여인 한 사람만은 예수의 말씀의 뜻을 헤아려 그에 대비하며 살았던 것이다.
(3) 바울은 "예수-그리스도 구원론"을 체계화한 최초의 신학자였다. 그의신앙과 사 상에 근거하여 신약성서는 집필되고 편찬되었다. 그러나 그의생애의 전반부는 반 그리스도적인 삶이 바 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유대인들은바울의 전도에 반기를 들었으며 심지어는 살해모의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만큼 그는 반그리스도 박해운동에 주력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에항거하여 사울이 바울이 되는 다메섹 사건을 입증하며 바울을 보호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 나바였다. 바나바는 다메섹 사건의 진실을 믿고 바울을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옹 립하였다. 바울 이전의 사울에 대한 선입관 때문에 다메섹 사건 이후의 바울을 버 리려는 유대인들에 대항하여 바울을 지켜 준 사람이다. 그리고 그와 동역자가 되어 그리스도교의 기틀을 다진 것이다. 바울의 배후에는 두 사람의 인격이 있었다. 하나는 예수요 다른 하나는 바나바 였다. 예수는 바울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불러내시고 바나바는 그의 보호자가 되고 그의 길잡이가 된 것이다. 바나바가 바울을 비호하는일은 아무 도 찬동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위험만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바나바는 하나님의 역사에 충실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바울을 지켜 주었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 만남이 없었던들 오늘의 바울이 있을리 없는것처럼 바 나바 없는 바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바울은 예수로 말미암아거듭나고 바나바로 말미암아 성서적인 인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대한 인물의 배출에는 그만한 조연자(조연자)가 숨어 있게 마련이다. 그 조연자들은 많은 적대자들의 오 해와 반대에 부딛치며 그 일을 수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진실이 이 땅에 구현되며 위대 한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교 선교에 있어 바울이 없는 그리스도는 상상할 수 조차없다. 역 사적 예수가 그리스도로 승화 인류의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된 것은 바울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다메섹 사건과 바나바는 그리스도교 선교사(선교사) 의 두 기둥이라 해도 잘못되지 않는 견해이다. 가나안 진입에 있어서의 여호수아와 갈렙,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그의 몸에 부은 여인, 그리고 바울을 그리스도의 참 증인으로 끝까지 비호해 준 바나바, 이들의 경우 하나의 공통점은 그들은 다수편에 서지 않고 자신들의 신 앙대로 행동했다는 사실이요, 위험에 직면하여피해 가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하였다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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