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을 나누고 (레23:9-22)
본문
올 해는 냉해로 수확이 삼분의 일이 줄어 든다고 합니다. 최근 대통령은 하늘이 노해 서 우리나라만 그런것이 아니고, 외국은 더 큰 피해를 입었고, 기상이변으로 인한 불 가항력적인 것이라고 누차 강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름이 가을 같이 서늘해서 좋긴 했지만 농사는 1/3이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현대과학이 최고도로 발달된 상황에서 각 나라들은 속수 무책이었습니다. 현대가 그러하니 옛날에는 자연에 대한 의존도와 외경심이 어떠했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력 팔월 십오일 우리 민족의 명절인 한 가위는 원래 여자들이 모여 길쌈놀이를 했습니다. 진 편이 이긴 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춤과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가위 날에는 햅쌀로 만든 송편,술, 햇과일,음식 등을 차려 놓고 조상들께 감사의 제사를 지 냈지요. 이것을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운명과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노력의 땀은 인간이 흘리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땅이요 자연입니다 땅과 자연이 열매를 맺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뒤에 누군가가 작용하고 있다고 믿는 데서 신앙이 싹틉니다. 옛날 부터 우리 조상들은 그 것을 지신(地神)이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신앙인들은 그것을 야훼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의 표시를 제사라는 형태를 통해서 하곤 했습니다. 첫 곡식단을 바치는 의미도 바로 그런 것의 표시이지요. 우리 민족들이 한가위 날에 햅쌀로 만든 송편,술, 햇과일,음식 등을 차려 놓고 조상들 께 감사의 제사를 지낸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도 추수한 첫 곡식단을 베어들고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무교절 기간 중에 드렸지요. (출23:18,34:28,신28:1-11) 땅에서 거둔 모든 햇곡식을 떼내어 먼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중에서 보리를 제일 먼저 추수했습니다. 보리는 곡식 종류 중 제일 먼저 추수했지 요. 제사를 드릴 때는 그 해 태어난 흠 없는 어린양 한마리에다, 곡식예물로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술을 드렸는 데 포도주를 드렸습니다. 그 포도 주는 사분의 일 힌(1힌은 6리터)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제사를 드리기 전에는 추수한 수확물의 어떤 것 그리고 나서 오십일이 지나서 추수를 마감하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을 칠칠절이 라고 하지요.(신16:8,출34:22) 이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에 해당했습니다. 이 때는 또 번제물,곡식예물,제주(祭酒)를 드렸고, 속죄제물, 친교제물도 드렸습니다. 전부 뜻이 있고 격식이 있었지요. 우리 민족의 제사 처럼 격식이 엄격했습니다. 여기에는 먼저 이런 뜻이 있었습니다.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내가 거둬들인 열매는 전부 내가 가꾸고 땀흘려서 얻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의 도움으로 된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내가 먼저 사용하기 전에 하나님께 바쳐져 야 한다고 한 것이지요. 우리 민족은 그 표시로 햇 곡식과 과일 그리고 햇곡식으로 빚은 술을 차려 놓고 조상들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조상의 음덕이라 했지요. 내것이니 내가 처분하면 된다고 하는 현대인의 논리 보다는 한결 따뜻한 냄새가 나지 요. 내것이 아니고, 내노력 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런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또 이웃들의 몫이기도 하다는 고백이지요. 자본주의의 요체는 사유재산에 있고, 사유재산의 기본정신은 내것을 내가 처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헌법이 보장해주고, 국가가 지켜주는 사회체제를 말합니다.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는 자기 것만 부풀리려는 탐욕과 이기심을 낳았습니다. 이 세상 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끌어 당기려는 욕망입니다. 이것을 루터는 자아에로의 굴 곡 이라고 했습니다. 폴 틸리히는 이것을 욕망 (concupiciense)라고 했습니다. 교만 과 이기심의 욕망 내것 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고백이 인간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내 것만이 아니고 이웃들의 것이다 라는 고백이 병든 역사를 치유하는 것이지요. 이것 이 성경의 정신입니다. 또 다음은 나의 것이 아니라 이웃들의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추수할 때는 아주 의미있는 규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정하신 규칙이었지요, 철저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 너희가 추수할 때에 곡식을 모조리 거두어 들이지 말고 거두고 남은 이삭도 줍지 말며 가난한 자와 외국인이 줍도록 남겨 놓아야 한다."(22절) 기독교의 윤리 중에 청지기 윤리가 있습니다. 내것은 모두 내 소유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맡겨준 것이니까, 소유권은 최종적으로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주인의 사용 위임 한도 내에서만 처분권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어차 나눔은 항상 나보다 못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고아와 나그네를 위해 이삭을 줍지 말라는 본 뜻도 그런 것입니다. 추수를 다하고 남은 이삭 까지 딸딸 긁어도 먹고 살기 힘든 데, 떨어진 이삭을 고아와 나그네에게 주라고 하면 어떻합니까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칭찬하는 세가지 일이 있답니다.
1. 가난한 사람이 물건을 주웠어도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일
2. 부자가 은밀히 자기 수입의 십분의 일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사람
3. 도시에 살고 있는 독신자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 요즈음 실명제가 되고 재산공개를 하게 되니까 재산을 가진 사람은 죄인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부 자체가 죄일 수는 없지요. 정당한 부는 죄가 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나눔을 실천하는 부는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부입니다. 가난하지만 나눔을 실천하지 않 으면 나눔을 실천하는 부자 보다도 못합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그 땅은 넓어지고, 불평은 하면 할수록 그땅은 좁아집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나누기를 하면 많아지고, 더하고 쌓아두면 적어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 나눔이 나온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감사와 나눔은 하나님 나라의 철학 가운데 두기둥입니다. 이것을 부정하고는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영어로 감사절을 Thangsgiving Day라고 합니다. 감사를 드리기도 하고 감사하니까 주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것이 감사 절입니다. 땀흘리는 열매 없이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진정 감사하는 마음 없 이 한가위를 보내고 추수감사절을 맞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나눔 없이 거둠을 축하하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그런데 현대과학이 최고도로 발달된 상황에서 각 나라들은 속수 무책이었습니다. 현대가 그러하니 옛날에는 자연에 대한 의존도와 외경심이 어떠했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력 팔월 십오일 우리 민족의 명절인 한 가위는 원래 여자들이 모여 길쌈놀이를 했습니다. 진 편이 이긴 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춤과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가위 날에는 햅쌀로 만든 송편,술, 햇과일,음식 등을 차려 놓고 조상들께 감사의 제사를 지 냈지요. 이것을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운명과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노력의 땀은 인간이 흘리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땅이요 자연입니다 땅과 자연이 열매를 맺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뒤에 누군가가 작용하고 있다고 믿는 데서 신앙이 싹틉니다. 옛날 부터 우리 조상들은 그 것을 지신(地神)이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신앙인들은 그것을 야훼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의 표시를 제사라는 형태를 통해서 하곤 했습니다. 첫 곡식단을 바치는 의미도 바로 그런 것의 표시이지요. 우리 민족들이 한가위 날에 햅쌀로 만든 송편,술, 햇과일,음식 등을 차려 놓고 조상들 께 감사의 제사를 지낸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도 추수한 첫 곡식단을 베어들고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무교절 기간 중에 드렸지요. (출23:18,34:28,신28:1-11) 땅에서 거둔 모든 햇곡식을 떼내어 먼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중에서 보리를 제일 먼저 추수했습니다. 보리는 곡식 종류 중 제일 먼저 추수했지 요. 제사를 드릴 때는 그 해 태어난 흠 없는 어린양 한마리에다, 곡식예물로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술을 드렸는 데 포도주를 드렸습니다. 그 포도 주는 사분의 일 힌(1힌은 6리터)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제사를 드리기 전에는 추수한 수확물의 어떤 것 그리고 나서 오십일이 지나서 추수를 마감하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을 칠칠절이 라고 하지요.(신16:8,출34:22) 이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에 해당했습니다. 이 때는 또 번제물,곡식예물,제주(祭酒)를 드렸고, 속죄제물, 친교제물도 드렸습니다. 전부 뜻이 있고 격식이 있었지요. 우리 민족의 제사 처럼 격식이 엄격했습니다. 여기에는 먼저 이런 뜻이 있었습니다.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내가 거둬들인 열매는 전부 내가 가꾸고 땀흘려서 얻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의 도움으로 된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내가 먼저 사용하기 전에 하나님께 바쳐져 야 한다고 한 것이지요. 우리 민족은 그 표시로 햇 곡식과 과일 그리고 햇곡식으로 빚은 술을 차려 놓고 조상들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조상의 음덕이라 했지요. 내것이니 내가 처분하면 된다고 하는 현대인의 논리 보다는 한결 따뜻한 냄새가 나지 요. 내것이 아니고, 내노력 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런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또 이웃들의 몫이기도 하다는 고백이지요. 자본주의의 요체는 사유재산에 있고, 사유재산의 기본정신은 내것을 내가 처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헌법이 보장해주고, 국가가 지켜주는 사회체제를 말합니다.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는 자기 것만 부풀리려는 탐욕과 이기심을 낳았습니다. 이 세상 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끌어 당기려는 욕망입니다. 이것을 루터는 자아에로의 굴 곡 이라고 했습니다. 폴 틸리히는 이것을 욕망 (concupiciense)라고 했습니다. 교만 과 이기심의 욕망 내것 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고백이 인간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내 것만이 아니고 이웃들의 것이다 라는 고백이 병든 역사를 치유하는 것이지요. 이것 이 성경의 정신입니다. 또 다음은 나의 것이 아니라 이웃들의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추수할 때는 아주 의미있는 규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정하신 규칙이었지요, 철저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 너희가 추수할 때에 곡식을 모조리 거두어 들이지 말고 거두고 남은 이삭도 줍지 말며 가난한 자와 외국인이 줍도록 남겨 놓아야 한다."(22절) 기독교의 윤리 중에 청지기 윤리가 있습니다. 내것은 모두 내 소유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맡겨준 것이니까, 소유권은 최종적으로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주인의 사용 위임 한도 내에서만 처분권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어차 나눔은 항상 나보다 못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고아와 나그네를 위해 이삭을 줍지 말라는 본 뜻도 그런 것입니다. 추수를 다하고 남은 이삭 까지 딸딸 긁어도 먹고 살기 힘든 데, 떨어진 이삭을 고아와 나그네에게 주라고 하면 어떻합니까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칭찬하는 세가지 일이 있답니다.
1. 가난한 사람이 물건을 주웠어도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일
2. 부자가 은밀히 자기 수입의 십분의 일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사람
3. 도시에 살고 있는 독신자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 요즈음 실명제가 되고 재산공개를 하게 되니까 재산을 가진 사람은 죄인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부 자체가 죄일 수는 없지요. 정당한 부는 죄가 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나눔을 실천하는 부는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부입니다. 가난하지만 나눔을 실천하지 않 으면 나눔을 실천하는 부자 보다도 못합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그 땅은 넓어지고, 불평은 하면 할수록 그땅은 좁아집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나누기를 하면 많아지고, 더하고 쌓아두면 적어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 나눔이 나온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감사와 나눔은 하나님 나라의 철학 가운데 두기둥입니다. 이것을 부정하고는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영어로 감사절을 Thangsgiving Day라고 합니다. 감사를 드리기도 하고 감사하니까 주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것이 감사 절입니다. 땀흘리는 열매 없이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진정 감사하는 마음 없 이 한가위를 보내고 추수감사절을 맞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나눔 없이 거둠을 축하하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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