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희년을 향한 남북의 행진 (레25:8-19,엡2,13-18)

본문

오늘은 남북교회는 물론이고 세계이 모든 교회가 우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 해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이렇게 특별한 주일을 설정하게 된 데에는 몇가지 과정이 있 었습니다. 1988년 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제37회 총회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이 "통일과 평화의 선언"은 분단된지 50년 이 되는 1995년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희년"을 삼고자 선포하였습니다. 그 후 북 쪽 교회는 물론이고 세계교회협의회,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세계개혁교회연맹 등도 이 에 동의 하였습니다. 동시에 매년 8월 15일 직전주일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희년 에 뜻을 모아 이 기도주일을 함께 지켜오고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세계교회들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할 것이며 남북교회는 같은 성경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고 예배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1.희년이란 무엇입니까
1)희년은 50년만에 베풀어지는 은혜의 해입니다. 레위기25장에 안식년이 일곱번 되풀이 되는 49년이 끝나는 50년째 되는 해가 희년으로 선포됩니다. "제 50년을 거룩 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다"(레25:10)
2)희년은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벗는 해입니다.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구년이 라 칠월십일은 속죄일이니 나팔을 크게 불지며"(레25:9) 어떻게 은혜의 해가 된다는 것입니까 무슨 죄를 벗는다는 것입니까 성경은 우리들이 죄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 들을 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남을 오래도록 종으로 부리는 것, 남의 땅을 사서 영 원히 제 것으로 만드는 것, 변리를 받고 돈을 꾸어준 것, 더 많은 소출을 얻기 위해 땅을 혹사한 것, 이런 것들이 성경이 지적하는 죄입니다. 희년에는 이런 일을 모두 중 단합니다. 그럼으로써 죄에서 만들고 그 결과 은혜의 삶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3)나아가 희년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해입니다. 희년이 되면 앞서 말한 땅은 원주인에게 돌려주고 종은 자유하게 하며 빗돈은 탕감하고 땅은 쉬게 합니다. 모든 것 을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곧 은혜입니다.
4)레위기에 쓰인 희년은 결국 평등, 정의, 자유, 사랑, 평화를 이루어 내는 해를 말합니다. 1천년전 평등의 구체적 내용은 오늘의 내용과 물론 다릅니다. 그 때의 자유의 내용과 오늘의 자유의 개념도 다릅니다. 그러나 평등과 정의와 자유와 사랑과 평 화를 이루어 내는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자는 것이 성경의 희년정신입니다. 새로운 시 대를 열어가는 것 그것이 은혜의 새 역사입니다.
2.그러면 오늘날 한반도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통일과 평화의 희년을 이루 어 갈 것입니까
1)우리의 평화와 통일의 희년은 먼저 우리의 죄를 깨달음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하나의 민족친 우리가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1945년에 이르러서는 두개의 나라가 아니될 수 없을만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온 민족이 갈라 져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념에 투철한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러나 있었다 하더라도 극소수였을 것입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해방이 되면 독립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독립된 나라가 두개일 것이라는 예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분단되었고 거의 50년을 싸워 왔습니다. 분단초기 사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공산 주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서도 자본주의자가 되고 공산주의 자가 되었습니다. 탄압과 박해가 일어났고 피해자가 생겼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자기 들의 이해를 위해 그어놓은 38선을 무슨 국경처럼 여겼습니다. 듣지도 보지고 못했던 사상싸움을 일으켰고 그것대문에 숙청하고 탄압하여 북에서는 무력혁명을 남에서는 멸 공통일을 숭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강토 빼앗기를 36년, 그리고 온갖 나쁜 짓을 다 한 일본보다도 남은 북을, 북은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반공한다면 쿠데 타도, 양민학살도, 부정선거도 모두 용납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서로 죽인 것입니다. 6.25전쟁을 일으켰고 남의 50만명, 북의 300만명을 죽였습니다. 더이상 동족이라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철천지 원수가 된 것입니다. 어느새 우리는 두 나라 두 민족 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리석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강대국이 두 동강을 내 려했더라도 우리가 거부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저놈들이 공산주의자니, 자본주 의자니 하더라도 한 민족, 한 형제자매로서 지켜야 했던 선을 지켰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죄요, 우리의 죄입니다.
2)이 죄를 어떻게 극복할 것입니까 우리의 어리석음과 죄를 깨닫는다 하더라도 용서하기란 도무지 쉽지 않습니다. 남 과 북 사이는 한없이 멉니다. 높고 높은 담이 있습니다. 서로 원수입니다. 온갖 법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될 수 있겠습니까 유태인들과 이방인들 사이가 그랬습니다. 한없이 멀고 담은 높았습니다. 계명의 율법이 있었고 서로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피를 흘리셔서 그 둘을 가까와지 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던지시어 계명과 율법과 담을 허시고 둘을 하나가 되 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끝내는 십자가를 지셔서 원수된 것을 소멸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받아들임으로써 결코 합해질 수 없었고 하나가 될 수 없었던 그들이 합해졌고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강제합니다. 남북-우리 모두를 하나되는 기적으로 몰아 넣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가 우리 남과 북 사이에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 까 자기 몸을 던지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믿음의 감각으로 보고 느끼 십시오.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남과 북은 가까와 집니다. 우리 사이에 놓인 담는 허 물어 집니다. 계명의 율법은 폐기됩니다. 원수가 아닙니다. 결코 합해질 수 없었던 우리가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어느새 둘이 아닙니다. 한 형제자매입니다. 한 민족입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3.자, 이제 희년을 향해 나아갑시다.
그런데 이 좋은 희년을 왜 일곱 안식년이 지난 해에야 선포하라 했을까요 매년 그렇게 하면 더 좋을텐에 말입니다. 사실 성경에 희년법이 있지만 그것이 실현된 흔적 은 없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전체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성 때문에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게 어디 말같이 쉽게 되겠습니까 자신의 고집, 선입견, 기득권을 고집하 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그 귀하신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6년 이 지나고 안식년이 올 때마다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다음 안식년에도, 또 그다음 안식년에도 노력을 쏟아부으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적어도 일곱번은 해야 그래야 희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작은 노력을 점점 쌓아야 그 토대 위에 희년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년조차 제대 로 못지켜 냈으니 희년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안식년이 일곱번 지나고 50년째가 되었다 해도 그해가 희년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91년보다 남과 북은 더 가까와졌습니까 담은 혈렸습니까 둘을 갈라놓은 법은 폐기되 었습니까 증오심은 없어졌습니까 불신은 사라졌습니까 원수지감은 없어졌습니까 용서하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포용하는 능력을 키웁시다. 믿는 훈련을 합시다. 총을 녹여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연습을 하여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기쁨, 하나가 되는 기쁨을 조금씩 맛봅시다. 91년보다 올해 우리들은 더 나아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1995년 평화와 통 일의 희년이 되었다 한들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93년 이날은 오늘보다 훨 씬 증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1995희년에 평등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새 시대 를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남과 북 사이에서 피를 흘리 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몸은 던지시어 악법을 폐하시고 담을 허시는 주님을 바라봅 시다. 우리가 원수지감을 떨쳐 내도록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그 앞에 남도 북도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믿게"(엡2:18)될 것입니다. 희년을 향한 남북의 행진 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가능합니다. 저를 바라보며 그 앞에 무릎을 꿇읍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32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