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 인간의 일 (출32:7-14,빌4:1-9,마22:1-14)
본문
본문의 배경이 되는 31장 끝부분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40일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증거판을 받게 되는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산 아래에서는 사납고 시끄럽고 방탕한 유흥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본문은 금송아지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모세가 없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백성들은 아론에게 와서 모세를 욕하고 매도함으로 우상을 만드는 일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아론은 백성에게 금고리를 가져오게 하고 아론은 그것으로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왜 송아지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는데,
첫째로, 애굽인에게 있어서 송아지는 아피스신을 대면하며, 가나안에서는 송아지가 바알을 상징하며,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간은 자신들을 인도하는 신을 구체적인 현장에서 보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욕망이 인간으로 하여금 우산을 만들에 합 것입니다. 단순한 인간의 욕심이 하나님께는 참으로 엄청난 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모세는 이 사건에 기도로 개입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완화시킵니다. 여기에서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시지만, 죄인에 대해서는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 성경 일과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기 위한 조건으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증거판을 받기 위해 가장 거룩한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게 하였고, 주님의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도 임금의 초대에 사람들이 바르게 응답하지 못함으로 임금을 노하게 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 하나님을 노엽게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사람인가
1.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출32:1-1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바로 신앙하게 하기 위하여 모세를 통해 증거 판을 주시게 되는데 산 위에와 산 아래가 너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증거판을 받기 위해 40주야를 금식하면서 준비하는데 반해, 이스라 엘 백성들은 모세가 돌아오는 데 지체함으로 그만 우상을 만들어 시끄러운 잔치를 벌리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진노 하사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시는데 모세의 중보기도로 화 를 거두시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강하게 심판하시지만 죄인에 대해서는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2.인간들이 하는 일마다 부패 하였습니다. (7-8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부패성을 지적합니다.
1).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낳다는 것입니다(출20:3-4)
1.우상을 많들지 말라는 일
2.만든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일, 즉 섬기다(여러분 마음에 우상을 만들고 섬기 고 있지나 않은지)
2).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자기를 위한 삶이 였다)
1.약속을 어긴다(사람과의 약속, 하나님과의 약속)
2.불의와 타협한다.
3.거짓을 행한다.
3).목이 곧은 백성이로다.(행7:51-)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는자는
1.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자(듣지 못한다, 즉 깨닫지 못하고) 할 례 (신약에서는 세례 ) 할례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확증 하신다. 이러한 관습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사이에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므로 할례가 영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언약의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롯됨니다. 그 의미를 중대하게 받아들였던 구약 시대의 사람들에게 할례는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 대한 복종의 표시였습니다. 종교적 상징주의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히브리인들은 이 깊은 영적 현실 의 표징을 점차 목적 자체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에 자동적 으로 들어가는 것의 표시로 잘못 알았던 것입니다. (33절) 선지자들은 이러한 왜곡을 깨달았고 단순한 육체의 할례, 즉 살아있는 믿음이 동반 되지 않은 할례에 반박하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예레미아는 마음의 할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의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렘4: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 (신30:6) 마22:36-40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 니,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모든 율법과 예언의 요점 사랑 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겔44:9)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2.항상 성령님을 거역한자,
3.핍박하는 자.
4.밀고하고, 살인하는자 14절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 키사 멸하기로 하신 부패한 백성에게 벌을 내리지 아니 한 것은 약속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한 약속입니다. 또 문설주의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재앙이 넘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은 예수님을 말하며,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빌은 백성은 약속대로 다 구원하십니다.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은 (마22:1-14)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 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 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5 저희가 돌아보 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6 그 남은 자들은 종들 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 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 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22:1-14절의 비유는 천국에 빗대어서 한 혼인찬치의 비유로서 (사25장)의 메시아를 대망 하는 시온산의 예배의 축제를 연상케 합니다. (눅14:16-24) 본 비유의 알레고리 적인 면을 정리해 보면
1.임금은 하나님,
2.청함을 받았으나 합당치 않은 자는 유대인과 지도자,
3.혼인 잔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
4.그리고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이 멸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점을 고려해야 이 비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11절의 왕이 손님을 보러 오신 것은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또 12절의 친구는 신약 성경에서 마태만이 사용한 독특한 어휘로서 항상 잘못한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했습니다. 마태복음 22:1-14절의 메시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제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는데 이 제안이 응답하는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대와 인간의 응답이 만날 때 진정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임금이 아들을 위해서 천국 잔치를 베푸시고 잔치에 참석할 사람들을 그의 종을 통해서 부르시게 되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형편을 대면서 청함을 거절하게 되며, 급기야는 임금의 종들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 사실을 접하자 임금은 노하여 그들을 심판하게 되며, 새로운 사람을 청하게 됩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이 조화를 이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아멘-빌립보서 4:1-9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8 종말로 형제 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 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 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맨 끝장에서 바울은 그의 마지막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개의 작은 단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호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1절 말씀은 3장에 속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울이 주 안에 확고히 서라고 교회에 촉구한 3장 내용의 결론이 되기 때문입니다. (살2: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주안에서 기뻐해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이것은 빌3:1 과 병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빌0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5절에서 바울은 주의 재림이 가깝다고 믿고 있습니다. (고전15:51-54)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 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러한 구절들로부터 명료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은 자신의 생전에 주님이 오실 것으로 기대하고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살전4:13-18)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자는 자들도 하나님 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 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 하리라,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 라
첫째로, 애굽인에게 있어서 송아지는 아피스신을 대면하며, 가나안에서는 송아지가 바알을 상징하며,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간은 자신들을 인도하는 신을 구체적인 현장에서 보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욕망이 인간으로 하여금 우산을 만들에 합 것입니다. 단순한 인간의 욕심이 하나님께는 참으로 엄청난 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모세는 이 사건에 기도로 개입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완화시킵니다. 여기에서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시지만, 죄인에 대해서는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 성경 일과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기 위한 조건으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증거판을 받기 위해 가장 거룩한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게 하였고, 주님의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도 임금의 초대에 사람들이 바르게 응답하지 못함으로 임금을 노하게 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 하나님을 노엽게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사람인가
1.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출32:1-1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바로 신앙하게 하기 위하여 모세를 통해 증거 판을 주시게 되는데 산 위에와 산 아래가 너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증거판을 받기 위해 40주야를 금식하면서 준비하는데 반해, 이스라 엘 백성들은 모세가 돌아오는 데 지체함으로 그만 우상을 만들어 시끄러운 잔치를 벌리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진노 하사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시는데 모세의 중보기도로 화 를 거두시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강하게 심판하시지만 죄인에 대해서는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2.인간들이 하는 일마다 부패 하였습니다. (7-8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부패성을 지적합니다.
1).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낳다는 것입니다(출20:3-4)
1.우상을 많들지 말라는 일
2.만든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일, 즉 섬기다(여러분 마음에 우상을 만들고 섬기 고 있지나 않은지)
2).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자기를 위한 삶이 였다)
1.약속을 어긴다(사람과의 약속, 하나님과의 약속)
2.불의와 타협한다.
3.거짓을 행한다.
3).목이 곧은 백성이로다.(행7:51-)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는자는
1.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자(듣지 못한다, 즉 깨닫지 못하고) 할 례 (신약에서는 세례 ) 할례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확증 하신다. 이러한 관습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사이에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므로 할례가 영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언약의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롯됨니다. 그 의미를 중대하게 받아들였던 구약 시대의 사람들에게 할례는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 대한 복종의 표시였습니다. 종교적 상징주의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히브리인들은 이 깊은 영적 현실 의 표징을 점차 목적 자체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에 자동적 으로 들어가는 것의 표시로 잘못 알았던 것입니다. (33절) 선지자들은 이러한 왜곡을 깨달았고 단순한 육체의 할례, 즉 살아있는 믿음이 동반 되지 않은 할례에 반박하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예레미아는 마음의 할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의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렘4: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 (신30:6) 마22:36-40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 니,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모든 율법과 예언의 요점 사랑 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겔44:9)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2.항상 성령님을 거역한자,
3.핍박하는 자.
4.밀고하고, 살인하는자 14절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 키사 멸하기로 하신 부패한 백성에게 벌을 내리지 아니 한 것은 약속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한 약속입니다. 또 문설주의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재앙이 넘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은 예수님을 말하며,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빌은 백성은 약속대로 다 구원하십니다.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은 (마22:1-14)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 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 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5 저희가 돌아보 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6 그 남은 자들은 종들 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 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 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22:1-14절의 비유는 천국에 빗대어서 한 혼인찬치의 비유로서 (사25장)의 메시아를 대망 하는 시온산의 예배의 축제를 연상케 합니다. (눅14:16-24) 본 비유의 알레고리 적인 면을 정리해 보면
1.임금은 하나님,
2.청함을 받았으나 합당치 않은 자는 유대인과 지도자,
3.혼인 잔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
4.그리고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이 멸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점을 고려해야 이 비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11절의 왕이 손님을 보러 오신 것은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또 12절의 친구는 신약 성경에서 마태만이 사용한 독특한 어휘로서 항상 잘못한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했습니다. 마태복음 22:1-14절의 메시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제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는데 이 제안이 응답하는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대와 인간의 응답이 만날 때 진정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임금이 아들을 위해서 천국 잔치를 베푸시고 잔치에 참석할 사람들을 그의 종을 통해서 부르시게 되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형편을 대면서 청함을 거절하게 되며, 급기야는 임금의 종들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 사실을 접하자 임금은 노하여 그들을 심판하게 되며, 새로운 사람을 청하게 됩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이 조화를 이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아멘-빌립보서 4:1-9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8 종말로 형제 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 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 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맨 끝장에서 바울은 그의 마지막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개의 작은 단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호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1절 말씀은 3장에 속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울이 주 안에 확고히 서라고 교회에 촉구한 3장 내용의 결론이 되기 때문입니다. (살2: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주안에서 기뻐해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이것은 빌3:1 과 병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빌0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5절에서 바울은 주의 재림이 가깝다고 믿고 있습니다. (고전15:51-54)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 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러한 구절들로부터 명료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은 자신의 생전에 주님이 오실 것으로 기대하고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살전4:13-18)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자는 자들도 하나님 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 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 하리라,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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