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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중보자 (출32:1)

본문

출애굽기는 애굽탈출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성막건축기라고 볼 수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것은 첫 째, 아브라함-이삭-야곱과 맺은 언약을 이루기 위함이며 둘째, 이스라엘 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만방에 알리기 위함이며 세째,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어떤 제도를 세우시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의 주인이시요 다스리시는 분임을 알려주기 위해 먼저 이스라엘과 율법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항상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주기 위하여 성막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이 성막 건설이 출애굽기 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성막이 완성되는 것으로 출애굽기가 끝나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것이 곧 성막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 이며 앞으로 성막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 게 될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식양대로 성막을 건설하도록 모세에게 설계도를 계시하고 있는 동안에 시내산 아래에서는 가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40여일 동안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질 않자 이스라엘은 모세가 죽은 줄로 알았던지 아 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라"(출 32:1)고 하면서 자기들의 신을 만들 것을 종용하였던 것입니다. 아론은 혹시 자기에게 어떤 화가 오지 않을까 두려워서인지 각 사람의 금고 리를 빼어 가져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론의 생각은 그들이 금고리를 아까워하 여 가져오지 않을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자신의 이익 을 위해서는 눈알이 벌개지도록 다투다가도 어떤 명분만 생긴다면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놓아 그 이름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품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아론이 그들을 인도할 신을 만든다고 하자 그들은 각기 금고리를 빼어 다가 아론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그처럼 자발적으로 헌신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론은 그 금붙이를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 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라"(출 32:4)고 하였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 애굽 사람들이 소를 신으로 섬기는 것 을 보고 모방한 것 같습니다. 애굽은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멤피스 라는 지방에서는 '프타'라는 신을 섬겼는데 이는 황소였습니다. 메베스에서는 '아몬'이란 신을 섬겼는데 이는 암소였습니다. 하늘의 신이라고 하는 '호러 스'는 매였고, 태양의 신이라는 '라'(Ra) 역시 매였습니다. 죽음의 신 '오리 시스'는 염소였고, 그 아내 '이시스' 여신은 암소였습니다. 지혜의 신 '도드'는 원숭이였고, 그 아내 '헤카'라는 여신은 개구리였습니다. 그밖에도 뱀이나 독수리들도 그들의 신으로 섬겼고 특히 바로는 태양신 '라'의 아들이라고 하 여 신으로 받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10재앙을 내리실 때 그 재앙의 대상이 이런 신들과 깊은 연관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을 깡그리 깨부수 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들의 신이라고 하였다는 것은 참 으로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비록 애 굽에서 구원받아 나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여 전히 애굽의 관습 아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10재앙을 내리시면 서 천상천하에 오직 유일한 한 분 하나님만 계심을 보여 주셨습니다만 이스라 엘은 아직도 옛 것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로운 피조물이 되었어도(고후 5:17) 여전히 옛 사람의 성품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가 항상 자신을 죽여 그리스도 앞에 순종하도록 채찍질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수 많은 금송아지를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처럼 패역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하리라"(출 32:9-10)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해 버리며 동물을 그들의 신으로 섬기는 행위야말로 진정 죽어 마땅할 죄악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행한 죄악은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죄악은 극에 달하고 있었는데 곧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먼저 모세에게 그 사 실을 말하고 허락을 구하기까지 하심을 볼 때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 심이 큰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언약을 파기해버리는 배은망 덕한 이스라엘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도 무지 입술을 열지도 못할 만큼 얼굴이 뜨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중 보자로서의 자격으로 감히 하나님께 말씀을 올렸습니다. "주의 종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사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 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 이다"(출 32:13-14) 이 간절한 중보기도는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약속의 언약"에 근 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언약은 이스라엘도 지켜야 하지만 하나님도 지키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언약을 파기해버린 이스라엘을 두고서 하나님께 언약을 근거로 모세가 떼를 쓰는 것은 억지입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새롭게 변화시켜서라도 언약을 이루어 나가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간절하 고 그러면서도 억지를 쓰는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 의 무한하신 은혜요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맺으신 새 언약에 근거하여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 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 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 의 법을 그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1-33) 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체결하심으로 우리가 새 언약 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마 26:26-29; 눅 22:14-20 참고).
그러므로 우리가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이 새 언약에 참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며, 이것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언약 안에 있는 성도들이 할례를 받아 그 표로 정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세례를 받아 그 표로 정하고 성찬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새 언약 안에 참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우리를 새 언약 안에 거하게 하신 것처럼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자가 됨으로써 이스라엘이 여전히 언약 안에 있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보자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 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중보자였다면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이 구약 성도보다 우리가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증 거입니다. 우리가 모세를 중보자라고 할 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대상은 모세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모세 역시 이스라엘의 한 일원으로서 언약의 대상자이긴 하지만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언약이 체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단지 이스라엘의 대표 자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중보자라는 점에서 모세의 중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중보자란 하나님의 요구에 이스라엘이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반면 하나님의 축복을 이스라엘에게 전달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먼저 모세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정결케 하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모세는 즉시 아론을 나무래고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 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이날에 백성 중에 삼천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32:27-28)고 정화작업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로 3천명 가량이 죽어야 했습니다. 왜 레위인들이 나섰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보다 회개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 습니다. 반면에 타지파 사람들은 죄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레위인을 두렵게 만듬으로 레위인들이 칼을 들고 도륙할 때 감히 맞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먼저 이스라엘의 죄를 질책하고 모세는 하나님께 또 다시 기도합니다.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데 주의 기록하신 책 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32:32)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 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돌비를 새겨 주셨습니다. 다시 산에서 내려 온 모세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을 입어서인지 광채로 가득하여 사람들이 감히 쳐다보지 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받아 변화된 얼굴을 바라다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얼굴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이나마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대단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장차 거할 하나님의 나라는 온통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가득하고 우리가 그 영광 가운데 살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중보자는 모세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라는 사실에서 더욱 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와 예수님과 비 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모세 를 바라보는 것과는 천지차이가 있으며 그마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가깝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어야 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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