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사막에서 드리는 예물 (출36:3-7)

본문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전진하다가 시내 산에서 성막을 건축할 때의 일입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즉 부사렐 과 오홀리압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 이스라엘 백성 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가져왔고 또 그 예물이 남음이 있음으로 모세가 명을 내려 예물을 다시 드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 본문의 기사 입니다. 본문 내용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몇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사막에다 성막을 짓게 하셨는가 하는 점이요, 그리고 그만 가져오라고 부탁해야 할 만큼 감사의 마음이 넘친 이유가 무엇이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막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사람이 오래 머물수도 없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그네로서 잠시 이 사막에 머물고 있는 것이 지 영원히 여기에 정착하려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이러한 사막에 정막을 짓기 위해서 많은 예산을 투자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않는 일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에 있었다는 것은 역경속에 있었다는 뜻인데 사 막은 특별한 수입원이 없는 곳입니다. 낮에는 뜨거워서 일할 수도 없고 저녁에는 추워서 할동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있는 것도 아껴 서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가져온 예물은 넘쳐서 후에 가져온 것은 집으로 다시 돌려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사막에서 드린 예물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 서 우리에게 감사의 조건과 감사의 이유를 찾기를 바랍니다. '
1. 애굽에서 구원된 구원의 기쁨 때문에 넘치는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질병이나 혹은 두려움과 공포에 오래동안 시달리다 가 그러한 것들에서 해방을 받았다면 뛸것같이 기뻐서 누구에겐가 나누 어 주고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50년간 종살이 할 때 저들의 힘으로 구원될 가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자 아이들은 태어날때 모 두 죽여야 하는 비극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어른들은 중노동에 날마다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은혜로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저들의 구원은 정치를 잘 해서도 아니요, 국방력이 튼튼해서도 아니요, 경제력이 뛰어나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구원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33:29절 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는 백성이 누구뇨"라고 했습니다. 강팍한 바로의 마음을 징계하시고 초자연적으로 홍해를 건너 구원된 사실을 생각할 때 언제나 감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43:11절에는 "여호와는 구원자"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께서 특별히 구원의 하나님되심을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 에서 구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과 앗수르나라에서 또한 본문 에서는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 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죄악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행위가 옭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된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24절에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 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리라"고 했습니다. 이 처름 하나님의 구원의 대한 감격,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신대 대한 감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속에 넘쳤기 때문에 어느 장소,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왜 감사해야 합니까 내가 죄악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가 구원받은 이런 감사 감격이 얼마나 있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
첫째가 구원에 대한 감격 감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감사하는 생활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무엇인지 잘 못된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감격에 젖어 일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14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탕자 가 아버지의 재산을 당진하고 거지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다시 아들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셨고 반겨주셨습니다. 이 아들의 마음속에는 무슨 마음으로 가득찼겠습니까 그리고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주님 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았을때 어떤 마음으로 가득찼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드려야 할 의무요 책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마음은 기독교의 충성의 동기가 되기 때문 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믿어 구원받은 감격 찾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2. 광야에서 주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넘치는 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힘만으로는 행군의 여정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정한 수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날 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그들과 함 께하고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보호했습니다. 날마다 만나와 일용할 앙 식을 삼고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이 런 은혜속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사막에서도 넘치는 예물과 감사를 드릴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인 시편24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 이 없으리로다"라고한 고백이 곧 저들의 간증이기도 합니다. 감사의 찬송이 물질이 넘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러나 실상은 그 영혼이 하나님의 것으로 가득차 넘칠때 일어나는 감정인 것입니다. 그렇 기 때문에 시편4:6-7절에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 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포도주의 풍성할 때 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은 곡식과 포도주의 풍성 할 때 보다 더 기쁨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게 계시고 나를 아신다고만 하면 어떤 경우에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 셨다는 것은 성령님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영적인 은혜를 말하며 만나와 메 추라기를 주셨다는 것은 육신적인 은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육간에 은혜를 주셔서 살게 하신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광야 와 같은 힘과 지식으로 살아온 것같이 생각되어도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로 살아온 것입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은 비록 나그네로서 광야에 있지만 가나안 복지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감사가 넘친 것입니다. 소망있는 삶은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광야의 힘겨운 그나 네의 삶을 살았지만 가나안 복지에 대한 소망이 넘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가나안 을 생각하며 또한 이 땅에 포도원과 감란원에 풍성한 과실을 생각하며 감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았 고, 괴로워도 괴롭지 않았습니다. 항상 소망과 감사로 가득찾습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받을 상급과 족히 비고할 수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난중에서도 감사했고 감옥속에서도 감사 했습니다. 성도의 유일한 소망은 영원한 천국입니다. 맺는말)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항상 감사하십시다. 감사하되 자원하는 마음으 로 그리고 넘치는 감사를 드립시다. 왜 감사해야 합니까 애굽에서 구원 한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기 때문이며, 가나안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324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