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호 (출15:22)
본문
홍해를 건너 죽음 직전에서 새롭게 태어난 이스라엘은 즉시로 가나안 땅으 로 인도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남쪽 길로 사흘길을 가서 마라에 도착했습니다. 광야길에서는 물을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라에 도착하자 그들은 물 을 찾아 기뻐하였으나 그 물은 써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사흘 전에 홍해를 건넌 그들이었지만 하나님께 물을 구하기 보다는 모세를 원망하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홍해를 건넜으나 죄악의 본성은 여전히 남 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고쳐져야 할 과제 였습니다. 하나님은 물을 달게 한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 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니라"(15:26) 이 말씀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무엇을 연단받아야 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바로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바뀌어지게 하기 위해 그들은 훈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야 이스라엘은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말씀대로 행하기만 한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복지에 들 어갈 것입니다. 마라는 샘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이스라엘 이 인도된 엘림에는 무려 샘이 12개나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광야생활의 처음과 끝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귀를 기울이게 되는 날 그들은 마라에서 엘림으로 옮기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 야생활의 시작은 벌써부터 광야생활이 복된 생활인 것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한 때는 마치 홍해를 건넌 것과 같은 감격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가 완 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앞에는 수 많은 마라의 쓴 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풍성함이 있는 엘림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훈련을 받은 후에 말입니다. 이렇게 훈련을 받음으로 써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됨으로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점차적으로 그 신분에 맞도록 장성해지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우리 신앙 인격이 성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야 가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광야생활에서 어떻게 그의 백성을 연단시키고 성장시키는 지 관심을 가져봅시다. 엘림을 떠나 20여일이 지났습니다. 애굽에서 나온지 한 달이 되었을 때입니다.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이 이때 쯤에는 완전히 바닥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 들은 그때 신광야에 있었습니다. 예정대로 한다면 적어도 보름 혹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일이면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엉뚱한 곳에 와 있었습니다. 양식이 떨어진 그들은 즉시 본성이 나타났습니다. 16:2-3을 보십시오. 무엇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 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 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16:4)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 저녁에는 메 추라기를,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 주시어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양식은 꼭 하루분만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 시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안식일 전날에만 이틀분 것을 주셨습니다. 안식일만은 먹을 것을 위해 애쓰지 아니하고 오직 이 날을 거룩히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 하나 내가 시험하리라"(16:4)는 말씀은 이미 마라에서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15:26) 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이 광야생활 동안에 이스라엘은 특별히 훈련 을 받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는 물이 없었습니다. 다시 이스라엘은 모세와 다투며 마실 물을 찾았습니다(17:1).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이 시 험해 보기 위한 의도였음이 드러났습니다(17:2). 과연 하나님은 우리를 가나 안까지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신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물을 내어 보라는 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반석 위에 대하여 서리니 반석을 치면 물이 날 것 을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17:6).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하시지 않고 그들의 요구대로 반석에서 물을 품어내 주셨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왜 이것은 우리 가 두고두고 음미해 볼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때에 아말렉 군대가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라면 조금 전에 하나님 앞에서 행하던 이스라엘의 파렴치한 행위를 어떻게 하 시겠습니까 아말렉이 쳐들어올 때 "거봐라! 너희가 내 말을 순종치 않으려는 악심이 있는 한 너희는 이렇게 혼날줄 알아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아말렉과 싸우셨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 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17:11)라는 말씀은 모세에게 특별한 권능이 있어서 마술을 부리기 때문이 아닌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싸우십니다. 모세는 그저 두 손을 들고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것을 간청할 뿐입니다. 이상을 볼 때 광야생활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일까요 몰론 광야생활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보면 광야생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숙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미 하나님 의 자녀가 되었으나 이제는 그 자격에 알맞는 성숙된 자녀로 자라야 하는 것 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음을 보여 주십니다. 만나가 그것을 대변해 줍니다. 광야는 양식과 물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광야에서 살 아 갈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하늘만 바라보면서 살도록 훈련이 되고 있는 것 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어떤 외적이 쳐들어와도 하나님이 친히 물리쳐 주십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어떤 세력도 하나님이 물리 쳐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세력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도저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가장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됨으로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점차적으로 그 신분에 맞도록 장성해지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우리 신앙 인격이 성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야 가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광야생활에서 어떻게 그의 백성을 연단시키고 성장시키는 지 관심을 가져봅시다. 엘림을 떠나 20여일이 지났습니다. 애굽에서 나온지 한 달이 되었을 때입니다.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이 이때 쯤에는 완전히 바닥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 들은 그때 신광야에 있었습니다. 예정대로 한다면 적어도 보름 혹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일이면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엉뚱한 곳에 와 있었습니다. 양식이 떨어진 그들은 즉시 본성이 나타났습니다. 16:2-3을 보십시오. 무엇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 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 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16:4)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 저녁에는 메 추라기를,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 주시어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양식은 꼭 하루분만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 시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안식일 전날에만 이틀분 것을 주셨습니다. 안식일만은 먹을 것을 위해 애쓰지 아니하고 오직 이 날을 거룩히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 하나 내가 시험하리라"(16:4)는 말씀은 이미 마라에서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15:26) 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이 광야생활 동안에 이스라엘은 특별히 훈련 을 받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는 물이 없었습니다. 다시 이스라엘은 모세와 다투며 마실 물을 찾았습니다(17:1).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이 시 험해 보기 위한 의도였음이 드러났습니다(17:2). 과연 하나님은 우리를 가나 안까지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신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물을 내어 보라는 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반석 위에 대하여 서리니 반석을 치면 물이 날 것 을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17:6).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하시지 않고 그들의 요구대로 반석에서 물을 품어내 주셨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왜 이것은 우리 가 두고두고 음미해 볼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때에 아말렉 군대가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라면 조금 전에 하나님 앞에서 행하던 이스라엘의 파렴치한 행위를 어떻게 하 시겠습니까 아말렉이 쳐들어올 때 "거봐라! 너희가 내 말을 순종치 않으려는 악심이 있는 한 너희는 이렇게 혼날줄 알아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아말렉과 싸우셨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 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17:11)라는 말씀은 모세에게 특별한 권능이 있어서 마술을 부리기 때문이 아닌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싸우십니다. 모세는 그저 두 손을 들고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것을 간청할 뿐입니다. 이상을 볼 때 광야생활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일까요 몰론 광야생활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보면 광야생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숙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미 하나님 의 자녀가 되었으나 이제는 그 자격에 알맞는 성숙된 자녀로 자라야 하는 것 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음을 보여 주십니다. 만나가 그것을 대변해 줍니다. 광야는 양식과 물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광야에서 살 아 갈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하늘만 바라보면서 살도록 훈련이 되고 있는 것 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어떤 외적이 쳐들어와도 하나님이 친히 물리쳐 주십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어떤 세력도 하나님이 물리 쳐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세력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도저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가장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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