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히5:5-10)
본문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제사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드려서는 안됩니다. 반 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바 른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은 제사장을 임명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제사장은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 세 가지 의 자격이 요구됩니다.
1) 제사장은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취급하도록 임 명되는 것입니다.
(히 5:1)"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 니" 이것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의 대표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 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려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이를 화목제로 말미암아 관계 를 회복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화목케 하는 대표자가 제사장입니다.
2) 제사장은 사람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히 5:2)"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제사장은 인간의 아픔이나 괴로움을 자신의 경험으로 느껴야 하며 인간을 마음으로부터 동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인격적인 면에 있어서도 흠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며, 제사장은 인간으로서 인간의 감정을 알며 인간의 높은 면과 낮은 면을 알 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연약한 인간을 위한 동정 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로부터 임명을 받은 자여야 합니다.
(히 5:4)"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제사장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임명을 받 은 소명인 것입니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이 일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본 장에서 이렇게 대제사장을 설명 것은 구약의 제사 제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대제사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그래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전자에 말한 마지막 조건을 먼저 지적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임명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히 5:5-6)"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 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 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시2:7과 시110:4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 2: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증거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구약의 대제사장이었던 아론과 비교가 되고 있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도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대제사장이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제사장에 임명이 되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경험하셨으며, 인간의 모든 것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있으시 다는 것입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 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 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본문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시면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예수님의 사역중 이렇게 기도하신 적이 겟세마네에서 한번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본문 7 절 말씀은 예수님의 전생애적 사역을 말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는 말씀은 헬라어 '프로세넹카스'는 희 생 제물을 '바치다'는 제사적인 용어입니다. 본문 1절에서 대제사 장이 속죄를 위하여 드린 '제물'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올린 '간 구와 소원'을 의미합니다.
"기도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기도와 외침과 눈물입니다. 기도는 조용한 것이며, 외침은 소리를 내는 것이며, 눈물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인간을 위하여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바로 나를 위한 제물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 부족함 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가 자신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 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 즉 인간을 위해 그렇게 간구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증거 합니다.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막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예수님의 이 기도는 고난의 잔을 옮기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었으므로 그 기도는 받아들여 진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도 고난을 피하는 기도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3.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경외하심과 완전한 순종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히5:8-9)"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 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 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인 류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과정이 말로다 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루셨고, 이제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거가 되십니다.
우리는 이상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임명 받으셔서 어떻게 그 직분을 감당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심"과 그리고 "순종"입니다. 여 기에 예수님의 경외하심과 순종에는 "완전"이라는 단어가 합당 합니다. 완전한 순종입니다. 이러한 순종은 하나님을 경외하심에 서 나온 것입니다.
본문 9절에는(히5:9)"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도 순종이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순종의 근거는 "경외하 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 받을만한 믿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 종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 야고보서는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 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 겠느냐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 라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직분 에 임명되고 순종을 다하는 것은 그들에게 참 믿음이 있기 때문 입니다. 성도의 삶은 순종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참 인간 답게 살수 있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 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순종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통로입니다.
순종의 방법론
1.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자는 그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순종은 먼저 말씀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복음을 전 파하시는데 마침 시몬 베드로가 고기 잡기를 포기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에 올라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고 하셨습니다. (눅5:5)"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 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5: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말씀 을 의지하는 자는 그 말씀의 권세와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순종은 자기 부인을 필요로 합니다.
내 뜻을 앞세우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따 르기로 결단하십니다. 주님을 따르고 순종하는 길은 자기를 부인 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마16:24)"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 니라"-고 하십니다.
자기 부인은 기독교 신앙을 떠나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경험 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여러 민족의 표현으로 번역하기에는 적 잖은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류 사상에 자기 부인 이라는 사상은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부 멕시코의 쑥 인디언은 "자기 부인은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이라 합니다. 더 북쪽 지방에 거주하는 마사텍 족은 "자기를 싸서 감추는 것"이라합니다. 멕시코 티텔씽고의 아즈텍 족은 "자 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를 승인하지 않는 것" 이라 합니다. 이 말들은 모두 자신의 거절 혹은 자기 배제를 의미한다.
중부 멕시코의 파메 홍인종은 좀더 특수합니다. 그들은 "자기 가 하고자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라고 말합니다.
자기 부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순종의 삶이 시작됩니다. 순종은 자기 부인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3.순종은 자기 희생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최고의 순종은 자기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자신의 희생 이 없이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 매를 맺느니라 (요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 존하리라 한 알의 썩어지는 밀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희생은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루터는 "나는 이적을 행하기 보다는 순종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자 신의 희생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희생이 두려운 사람은 하나님의 큰 뜻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요크셔에 있는 챔프니 홀에서 80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었다. 그 날 연주회는 대 성황을 이루었는데 지휘는 바비롤리(John Barbirolli)가 맡았습니다. 그 연주회에 참석했던 관객이 친구인 개신교 목사에게 물었다.
"자네는 언제쯤에나 이 챔프니 홀을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로 꽉 채울 수 있을 것 같나" 그러자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존 바비롤리 처럼 내게도 그리스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든 명만 있다면 문제 없지" 순종은 연주자가 지휘자의 지휘대로 순종하여 강약과 리듬과 빠르기와 악기 연주의 순서대로 순종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원하시는 데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고의 가치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은 방학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방학을 생각해 보니까 다른 숙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방학 마지막날 밤을 새워서 할 수 있었는데 일기를 쓰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고 이번에는 꾀를 내어 한달치 일기를 미리 써 놓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기를 미리 쓰다 보니 막상 어떤 일들이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좋 은 일들을 많이 적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일, 내일은 저런 일, 그런데 이 학생은 일기는 거짓말을 쓰면 안된다고 알았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한달치 일기를 미리 썼기 때문에 자신 의 일기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기록해서는 않되기 때문에 날 마다 자신의 일기대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처음에 미 리 써놓고 놀려고 했던 생각과는 정 반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일 기대로 살지 못한 날은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자신이 일기에 쓴 착한 일들을 날마다 행하기 위하여 수 고하다가 한달 방학동안에 몸무게가 3kg 이나 줄었고,정말로 착 한 학생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한달만 성공하는 책이 아니라 금생과 내세에 있어 서도 성공할 수 있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 대한 믿음 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기 부인과 자기희생을 통하여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순종으로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순 종하는 자들의 구원의 근거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 을 경외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믿음이 순 종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만큼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만큼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때문에 절 대적인 완전한 순종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많이 순종하고 하나님 을 적게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적게 순종합니다. 대강대강 신 앙생활합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주님의 약 속하신 말씀대로 이 땅에서도 내세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은 12:28절에 순종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했고, 빌2:9절에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높이신다고 하셨으며, 요12:24절에는 순종하는 자에게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하 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제사장은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 세 가지 의 자격이 요구됩니다.
1) 제사장은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취급하도록 임 명되는 것입니다.
(히 5:1)"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 니" 이것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의 대표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 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려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이를 화목제로 말미암아 관계 를 회복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화목케 하는 대표자가 제사장입니다.
2) 제사장은 사람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히 5:2)"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제사장은 인간의 아픔이나 괴로움을 자신의 경험으로 느껴야 하며 인간을 마음으로부터 동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인격적인 면에 있어서도 흠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며, 제사장은 인간으로서 인간의 감정을 알며 인간의 높은 면과 낮은 면을 알 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연약한 인간을 위한 동정 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로부터 임명을 받은 자여야 합니다.
(히 5:4)"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제사장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임명을 받 은 소명인 것입니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이 일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본 장에서 이렇게 대제사장을 설명 것은 구약의 제사 제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대제사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그래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전자에 말한 마지막 조건을 먼저 지적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임명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히 5:5-6)"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 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 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시2:7과 시110:4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 2: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증거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구약의 대제사장이었던 아론과 비교가 되고 있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도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대제사장이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제사장에 임명이 되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경험하셨으며, 인간의 모든 것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있으시 다는 것입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 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 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본문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시면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예수님의 사역중 이렇게 기도하신 적이 겟세마네에서 한번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본문 7 절 말씀은 예수님의 전생애적 사역을 말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는 말씀은 헬라어 '프로세넹카스'는 희 생 제물을 '바치다'는 제사적인 용어입니다. 본문 1절에서 대제사 장이 속죄를 위하여 드린 '제물'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올린 '간 구와 소원'을 의미합니다.
"기도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기도와 외침과 눈물입니다. 기도는 조용한 것이며, 외침은 소리를 내는 것이며, 눈물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인간을 위하여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바로 나를 위한 제물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 부족함 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가 자신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 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 즉 인간을 위해 그렇게 간구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증거 합니다.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막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예수님의 이 기도는 고난의 잔을 옮기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었으므로 그 기도는 받아들여 진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도 고난을 피하는 기도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3.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경외하심과 완전한 순종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히5:8-9)"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 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 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인 류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과정이 말로다 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루셨고, 이제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거가 되십니다.
우리는 이상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임명 받으셔서 어떻게 그 직분을 감당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심"과 그리고 "순종"입니다. 여 기에 예수님의 경외하심과 순종에는 "완전"이라는 단어가 합당 합니다. 완전한 순종입니다. 이러한 순종은 하나님을 경외하심에 서 나온 것입니다.
본문 9절에는(히5:9)"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도 순종이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순종의 근거는 "경외하 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 받을만한 믿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 종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 야고보서는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 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 겠느냐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 라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직분 에 임명되고 순종을 다하는 것은 그들에게 참 믿음이 있기 때문 입니다. 성도의 삶은 순종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참 인간 답게 살수 있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 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순종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통로입니다.
순종의 방법론
1.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자는 그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순종은 먼저 말씀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복음을 전 파하시는데 마침 시몬 베드로가 고기 잡기를 포기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에 올라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고 하셨습니다. (눅5:5)"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 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5: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말씀 을 의지하는 자는 그 말씀의 권세와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순종은 자기 부인을 필요로 합니다.
내 뜻을 앞세우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따 르기로 결단하십니다. 주님을 따르고 순종하는 길은 자기를 부인 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마16:24)"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 니라"-고 하십니다.
자기 부인은 기독교 신앙을 떠나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경험 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여러 민족의 표현으로 번역하기에는 적 잖은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류 사상에 자기 부인 이라는 사상은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부 멕시코의 쑥 인디언은 "자기 부인은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이라 합니다. 더 북쪽 지방에 거주하는 마사텍 족은 "자기를 싸서 감추는 것"이라합니다. 멕시코 티텔씽고의 아즈텍 족은 "자 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를 승인하지 않는 것" 이라 합니다. 이 말들은 모두 자신의 거절 혹은 자기 배제를 의미한다.
중부 멕시코의 파메 홍인종은 좀더 특수합니다. 그들은 "자기 가 하고자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라고 말합니다.
자기 부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순종의 삶이 시작됩니다. 순종은 자기 부인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3.순종은 자기 희생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최고의 순종은 자기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자신의 희생 이 없이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 매를 맺느니라 (요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 존하리라 한 알의 썩어지는 밀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희생은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루터는 "나는 이적을 행하기 보다는 순종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자 신의 희생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희생이 두려운 사람은 하나님의 큰 뜻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요크셔에 있는 챔프니 홀에서 80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었다. 그 날 연주회는 대 성황을 이루었는데 지휘는 바비롤리(John Barbirolli)가 맡았습니다. 그 연주회에 참석했던 관객이 친구인 개신교 목사에게 물었다.
"자네는 언제쯤에나 이 챔프니 홀을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로 꽉 채울 수 있을 것 같나" 그러자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존 바비롤리 처럼 내게도 그리스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든 명만 있다면 문제 없지" 순종은 연주자가 지휘자의 지휘대로 순종하여 강약과 리듬과 빠르기와 악기 연주의 순서대로 순종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원하시는 데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고의 가치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은 방학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방학을 생각해 보니까 다른 숙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방학 마지막날 밤을 새워서 할 수 있었는데 일기를 쓰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고 이번에는 꾀를 내어 한달치 일기를 미리 써 놓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기를 미리 쓰다 보니 막상 어떤 일들이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좋 은 일들을 많이 적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일, 내일은 저런 일, 그런데 이 학생은 일기는 거짓말을 쓰면 안된다고 알았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한달치 일기를 미리 썼기 때문에 자신 의 일기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기록해서는 않되기 때문에 날 마다 자신의 일기대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처음에 미 리 써놓고 놀려고 했던 생각과는 정 반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일 기대로 살지 못한 날은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자신이 일기에 쓴 착한 일들을 날마다 행하기 위하여 수 고하다가 한달 방학동안에 몸무게가 3kg 이나 줄었고,정말로 착 한 학생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한달만 성공하는 책이 아니라 금생과 내세에 있어 서도 성공할 수 있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 대한 믿음 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기 부인과 자기희생을 통하여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순종으로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순 종하는 자들의 구원의 근거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 을 경외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믿음이 순 종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만큼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만큼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때문에 절 대적인 완전한 순종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많이 순종하고 하나님 을 적게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적게 순종합니다. 대강대강 신 앙생활합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주님의 약 속하신 말씀대로 이 땅에서도 내세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은 12:28절에 순종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했고, 빌2:9절에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높이신다고 하셨으며, 요12:24절에는 순종하는 자에게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하 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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