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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단절과 회복 (호4:6-10,마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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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정 시리즈'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90년대 초 등장한 '최 불암 시리즈'는 기성세대의 무능함, 고지식함을 풍자했다면, 작년 11월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사오정 시리즈'는 세대간의 대화 단절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사오정'은 국산 만화 영화인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조연급 주연 의 이름입니다. <날아라 슈퍼보드>는 90년에서 92년 KBS가 방영해 큰 인기 를 끌었던 만화 영화인데 <서유기>를 변형하여 만든 것입니다. 8년 전에 인 기를 끌었던 만화에 등장하는 사오정이 무엇 때문에 98년 한국 사회에서 유 머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부활했을까요 사오정은 온몸이 쭈글쭈글 주름으로 덮여 있는데, 특히 귀가 주름으로 덮여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여 언제나 동문서답을 하는 것이 그의 특 징입니다. 신세대들은 기성 세대를 '가는귀먹은 사오정'에 비유를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는 사오정에게 동생이 칭얼댑니다. "형, 냉장고에 있는 우 유 마셔도 돼"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려 대답이 없자, 동생은 사오정을 흔 들며 우유를 마셔도 되느냐고 재차 물었습니다. 이에 화를 버럭 내며 사오 정이 하는 말. "조용히 하고 냉장고에 있는 우유나 꺼내 먹어." 이 같은 사오정의 모습에서 신세대는 자기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 고 공부나 하라며 채근하는 기성 세대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이런 대화의 단절은 때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해결을 부르는 것입니다. 레스토랑에 간 사오정 친구들은 '나는 콜라' '나는 주스'라며 각각 다른 메 뉴를 주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맨 나중에 주문하는 사오정은 "여기 커피 셋 이요"라고 제멋대로 주문하였습니다.
국민들의 원성과 문제는 아랑곳없이 계속 싸움질만 하는 국회를 풍자하여 '사오정 국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대화 단절은 세대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세대간에도 있는 것입니다. 사오정이 오토바이 뒤에 애인을 태우고 신나게 달리자 뒤에 타고 있던 애인이 "나 무서워"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사오정은 더욱 속 도를 높였습니다. 다시 애인이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자 사오정이 하는 말. "나도 사랑해"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대화 단절 대화의 단절은 일찍이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된 현상입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였던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은 책임을 전가한 아담. 그러자 그 책임을 뱀에게 떠넘긴 하와.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에덴 동 산에서 쫓겨난 사람들. 여기에 깊은 단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 아담과 하와 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피조세계 사이에 극복하기 힘든 단절이 깃들여 있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기 때문에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난 형제인 가인과 아벨 사이에 도 대화가 없었기에 형이 아우를 죽이는 비극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부부 사이에, 형제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화가 없으면 한 가정 이 불행해지고 깨어지게 마련입니다. 지역 사이에, 세대 사이에, 계층 사이 에 대화가 없으면 그 사회는 갈등으로 혼란해지고 고통을 받게 마련입니다. 고용주와 근로자 사이에 대화가 없으면 그 기업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정 부와 국민 사이에 대화의 통로가 없으면 그 나라는 독재적 통치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 사이에도 대화가 없으면 결국 전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학교 평준화에 따라 나타난 지진아(遲進兒)에 대하여 정밀 분석 결과 한 가지 공통된 점은 그 부모나 가정 환경이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가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말을 많이 나누지 못한 갇힌 환경에서 자란 결과로 머리가 깨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사람은 자기 혼자 중얼거리게 되기 쉽고, 그런 사람은 편견에 사로잡 히거나 잔인하며, 자기의 주장만을 고집하여 상대방에게 강요하며, 상대방 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화 단절의 원인 이렇게 중요한 대화가 왜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끊어져 비극을 불러 오는 것일까요 몇 가지 나타난 현상을 통해 우리 자신을 진단해 볼 수 있 을 것입니다. 먼저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으로의 변화가 대화의 단절을 가져왔습니다. 대가족 제도에서는 3세대 내지 4세대가 한 집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세 대간의 갈등이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부딪치면서 서로를 이 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핵가족화 하면서 가장 가까워야 할 부 모 자식 사이에도 대화가 끊어져 서로 오해하며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부모 에 대한 존경이 사라지고 모두가 각각 자기 살길만을 찾아 흩어지게 된 것 입니다. 대가족 제도에서는 그 가정이 함께 간직할 수 있는 전통이 있어서 그 전 통을 통해 한 가족임을 인식할 수 있었지만, 핵가족화 되면서는 그런 전통 들이 맥을 잇지 못하여 모두가 제 나름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특히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오면서 우리는 과거의 아름다웠던 전 통들을 모두 버리면서 같은 민족, 한겨레라는 공동체 의식을 잃어버리게 되 었습니다. 함께 나눌 전통이 없을 때 대화는 끊어지게 마련입니다.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제일 어려운 것이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화제를 찾는 것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같은 고향 사람일 경우 쉽게 대화가 이루어지 게 되는 것은 고향이 같다는 공통분모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이 간직해온 전통을 되살리는 것은 남북 평화 통일을 위해서나 동서화합을 위해서 대단 히 중요한 일입니다. 전통이 살아나면 같은 고향 사람 만난 것처럼 술술 대 화가 풀려갈 것입니다. 대화가 이루어지면 갈등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서로가 경험한 문화가 다르면 대화가 어렵습니다. 할아버지 세대와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에 대화가 어려운 것은 그들이 겪은 문화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령 지금 세대들은 컴퓨터 세대라고 하겠 습니다. 이들이 만나면 게임이 어떠니 PC 통신이 어떠니 인터넷에 무엇이 있다는 둥 신나게 이야기할 때 그 옆에서 듣는 부모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 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세대는 흘러간 옛노래에 귀를 기울 이는데 손자 세대는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팝송을 들으며 자라는 것입니다. 이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깊은 간격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들을 함께 묶 어줄 공동의 화제가 없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대화 단절은 모든 세대, 모든 문화, 모든 민족, 모든 피조계 를 함께 묶어줄 공동의 신앙, 공동의 전통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 해서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대화의 단절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말씀에 따를 때 비로소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되며, 거기에서 모든 갈등을 극복하면서 평화롭 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만을 섬기는 신 앙이 없으면 하나의 세계는 깨어지고 평화는 사라져 버리게 마련입니다. 호세아서 말씀에 보면 하나님 지식이 없으므로 그 백성이 망한다고 하였 습니다.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 네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내 가 가르쳐 준 것을 버리니, 나도 너를 버려서 네가 다시는 나의 성 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겠다.
네 하나님의 율법을 네가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네 아들딸들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 호 4:6 사탄이 우리 속에 불어넣은 것이 바로 이기심이요 탐욕으로, 이것은 다 른 사람과 특히 하나님과의 대화를 끊어지게 만들어, 갈등과 전쟁과 파괴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그래서 문화가 달라져도 어느 시대 어느 문화 속 에서나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으면 그 진리 안에서 모든 세계가 하나로 뭉 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랍권의 국가들이 이슬람 신앙을 통해서 하나로 묶 어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며, 이스라엘 민족이 2천년 동안 세계 방방곡곡 에 흩어져 있어도 사라지지 않고 한 민족으로 살아남은 것은 바로 야훼 신 앙 때문입니다. 대화 단절을 촉진하는 표피적 문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없이 그 시대의 표피적인 문화만이 발전하게 되면 대화의 단절은 더욱 깊어지면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은 이념 때문에 남북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념은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이념을 고 집할 때 우리는 영원히 하나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는 군사정권이 30년 이상 집권하면서 생각 없이 전 통을 파괴하는 무모함을 저질렀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욕심 때문에 지역 갈 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으며, 표피적 문화를 보급하므로 대중을 우매하게 만 들었습니다. 이런 군사 문화가 오늘 이 사회의 갈등을 깊게 만들어 놓은 것 입니다. 이 나라의 교육은 오로지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 무한 경쟁만을 최 고의 가치로 삼았으며, 그것은 남을 짓밟고서라도 출세하여야 한다는 권력 지향적인 인간들만을 양산해 낸 것입니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획일적인 교 육은 바로 군사문화의 산물입니다. 다양성을 잃어버릴 때 진정한 문화가 형 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며 함께 나눌 문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오늘 우리 사회는 모두 사오정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들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텔레비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지 만, 모두가 일방 통행일 뿐입니다. 지금 이 정부는 국민을 하나로 엮을 사 상이나 신념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껏 내세운 것이 "다시 뛰자"나 "하 면 된다"는 박정희 시대의 구호를 재탕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궁하던 참에 박세리가 우리를 구해 주었습니다. 그가 맨발로 물 속에 들어가 골프공을 처내어 마침내 우승을 한 것이 우리에게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얼마나 궁했으면 한 여자 골퍼의 우승을 이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내세웠겠 습니까 그러나 그 박세리도 영국 골프장 바람에는 맥을 못 추고 주저앉고 말았으니 박세리 신드롬도 별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 게 일시적인 것, 잠깐 반짝 하는 것을 우리의 사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 나 허무한 것인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경제 문제가 급해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전통문화를 되살리고 정신문화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여가지 않으면 이 정권도 결국 은 무능한 정권으로 낙인 찍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대화가 끊어진 원인을 찾아서 그 원인을 제거하여 다시 이 사회의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할 과제가 이 정권에 주어진 최대의 과제가 아니겠습 니까 화해를 이룩하시는 그리스도 이렇게 곳곳이 막혀 있는 세계를 하나로 만드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 도 듣지 못하는 세계를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 입니다. 대화의 단절로 갈등하는 세계를 화해하여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떠났던 창조주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게 하시려고 하늘의 보좌를 떠나 종의 몸을 입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미국교회가 제정한 1967년 신앙고백에 보면 "그는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로 화해의 사업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고, 우리 가운데 사셨다. 그는 화해의 사업을 계속하시고 완성하시기 위해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교회 안에 임재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는 화해의 종교, 대화의 종교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들은 아직 이런 화해의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오 히려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대화의 토대 가 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 까닭이며,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교회마저 세상 풍조를 따라 성장 일변도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26일('98) 새벽, 제주시 화복동 원명선원에서 화강암으로 만든 작은 불상 750점의 머리부분이 잘리는 '무례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금동 불과 관음상, 불단에 비치된 촛대와 경전 등은 선원 마룻바닥에 아무렇게 널브러졌습니다. 현장에서 잡힌 범인은 경찰조사에서 "절을 교회로 바꾸기 위해 불상을 파괴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평소에도 그는 사찰에 자주 들러 "부처는 하나님의 제자다. 절을 교회로 바꾸어야 한다"며 과잉 선교 활동을 하였답니다. 이런 행위는 화해의 종교 대화의 종교인 기독교의 모습을 훼손 하는 일이며, 선교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벽을 쌓는 일입니다. 우리는 유대교가 아니라 기독교입니다. 유대교는 이방인을 차별하고 자 기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폐쇄적인 신앙을 고집하였지만, 기독교는 이 런 유대교의 폐쇄성을 깨고 이방의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하였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라는 놀라운 신앙을 확립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가 다시 유대교처럼 독선적인 신앙에 몰입한다면 쓸모 없는 교회로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좀더 열린 자세로 타종교와의 대화를 트며, 사회 곳곳에 대 화의 물꼬를 트도록 노력해 가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복음의 가 장 강력한 무기인 사랑을 들고 나가면 어디에서나 대화의 물꼬가 터질 것입니다. 나를 주장하기보다는 낮추고, 섬기며, 나 자신을 내어 줄 때 대화가 이루어지며 거기에 화해와 평화의 새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대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습 니까 교회에서는 대화가 잘 되고 있습니까 잘 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신앙에 문제가 있음을 뜻합니다.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형제자매라면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도 그 대화가 끊어졌다면 그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경쟁 사회에 길들여져 신앙 생활 에서도 경쟁을 일삼게 되면 우리는 하나가 되기보다는 서로를 경쟁상대로 이해하면서 결국 싸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대중문화에 길들여져 유 행에 민감하다 보면, 우리의 신앙이 얄팍해져서 이리저리 흔들려 떠내려가 게 될 것입니다. 이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 각각 다른 세대들이 함께 모이지만, 우리 가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내리기만 한다면 다양함에도 불구 하고 일치를 이루며, 세대가 다름에도 갈등 대신 이해와 협력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서 율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자라나 며, 함께 회당에 나가 예배를 드린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오전 시간은 내내 토라 즉 율법을 공부하는 시간이고, 오후 시간에 일반 학문을 공부한 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교육에 의해서 그들은 세대간의 차이를 극복하며 민족의 동질성을 지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양 성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갈등은 가정 교육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 다분히 많습니다. 학교의 지식 위주의 교육에만 의존한 결과입니다. 이제는 우리 가정 들이 자녀들에게 지식이나 기술 위주의 교육 대신에 지혜의 교육, 신앙 교 육, 도덕 교육을 시켜야 하겠습니다. 루엘 하우는 대화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인간이 서로 가 다시 융합하여 진리를 알고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인격을 불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제 우리는 가족과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교회에 와서도 예배만 드 리고 돌아가지 말고 교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내 가 안동교회에 출석하면 이 교회의 공동체성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함께 나누려고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이 교회의 역사에 관 심을 가져야 하며, 이 교회의 전통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그것을 보다 더 잘 보존하며 가꾸어 가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대화는 우리 의 인격과 신앙을 자라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과 대화인 기도에 힘쓸 뿐 아니라 성도간의 대화를 통하여 서로의 관심사를 함께 나눌 때 신 앙이 자라며 이 교회가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특히 양파나 쭉정이처럼 껍데기뿐인 대중문화에 몰입하기보 다는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전통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그 문화 속에 간직된 하나님의 질서와 원리를 찾아 그 사상 그 신학을 몸에 익혀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젊은이들은 세대간의 차이를 극복하면서 새로 운 문화를 창조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서로 나뉘어 갈등하는 사회와 가정을 고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 며 그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면서 가족과 이웃과 성도들과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와 대화를 나누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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