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해결하는 비결 (출14:10-14)
본문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는 역사적인 사건을 중심 으로 하여 우리 인생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런지 그 방법을 본문을 통해서 찾아보려고 한다. 이스라 엘 민족은 많은 수난을 겪어오면서 더 훌륭한 민족이 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두터운 종교적인민족이 되었고 자신들을 재 발견하여 정화해 나가는 강한 민족이 되었고 불굴의 신념과 정신으로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것과 서로 합심하여 단결해 나가는 민족이 되었다. 이 이스라엘 민족이 위기를 극복하게된 그 비결이 과연 무엇에 있 었겠는가
첫째, 신앙적인 통찰력이었다. 통찰력이란 난관은 바로 관찰하고 처리해 나가는 신앙적인 안목과 지 식을 의미한다.신앙적인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려움만 보인다. 그래서 어려움이 생기면 먼저 겁부터 집어먹고 원망하고 좌절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되고 그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며 이끌어 주신다고 하는 신앙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는 위대한 손길을 보게 되는 것이다.
둘째, 긍정적인 신앙이었다. 우리 신앙의 성격과 형태를 정리해 보면 긍정적인 신앙과 부정적인 신앙으로 분류할 수가 있다. 긍정적인 신앙은 만사에 적극적이며 낙관 적이며 소망적이라고 한다면 부정적인 신앙은 소극적이요, 비관적이요 현상유지로 만족하는 것이다. 모세의 신앙을 긍정적이고 한다면 이스라엘 민중의 신앙은 부정적이 었다. 이스사엘 민중의 부정적인 신앙을 고찰해 보면 두려워하고 당황 하고 불평하고 원망했고 절망했다.그러나 모세의 긍정적인 신앙 태도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했다. 어려움중에도 실망하지 않고 소망중에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확신하고 앞으로 전지해 나갔다. 이러한 태도 야말로 문제 해결의 비결이며 승리의 첩경인 것이다. 긍정적인 신앙, 이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삶을 성공시키는 비결인 것이다.
셋째, 하나님이 방법을 택하라 하나님의 방법이란 모세로 하여금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로 홍해위에 내밀이 바다를 갈라지게 하는 말씀 순종의 방법인 것이다. 인간적인 방법은 질서를 파괴하고 화평을 깨트리고 역사를 후퇴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이나 신앙의 방법은 질서를 확립하고 화평을 유지하고 계 속 인생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말씀에 순종한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 최대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뒤쫓아오던 애굽 군인들은 모두 홍해바다 속에 묻혀 죽고 말았다. 이처럼 무슨 일을 하던지 항상 하나님의 방법 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성경
본문:삼상 17:31-49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에 대해 두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은 전혀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은 질병과 죄와 죽음만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세상을 가치없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육신은 악하고 영은 선하기 때문에 하루 빨리 육과 영혼이 분리되어 죽음의 관문을 넘어 저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고 절식하며 금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의미에서 방법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육체가 악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상요하여 쾌락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유형은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는데서 비롯한 것입니다. 두번째로,"이 세상은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는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생각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 기사가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보시기 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일곱번이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만족하셨 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고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기고 자연이 파괴되었습니다. 사탄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인간은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 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바울의 말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 나고 새사람이 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죤 칼브래어박사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세상은 문화가 발전해서 사람들의 질이 향상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와, 경제,문화 모든 면에 있어서 인류의 앞깊은 불확 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핵 전쟁이 일어나면 인류의 종국은 죽음 이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의 종말이 오고,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다 하더라도 현실에 충실하게 살라고 강조합니다. 두 사람이 매를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 한다고 하는 말씀에서 주 오실 때가지 사람들의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적극적이고 충실하게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인은 이제 이 세상 의 백성이 아닌 영원한 천국의 시민으로 이 세상에 파견되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17장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에 대하여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골리앗을 선봉장으로 해서 블레셋 군대 가 개미떼와 같이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이를 이기기가 어려웠 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 일곱살난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는 그 전쟁의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 성도들이 영적인 전쟁을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인 가에 대해서 몇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익숙지 못한 것에 손대지 마십시오 골리앗은 머리에 놋 투구를 쓰고 놋으로 만든 단창을 메었습니다. 그는 갑 옷을 입고 베틀채와 같은 큰 창자루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 골리앗이 이스 라엘 백성들에게 싸우자고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인 사우가 은 매우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싸울 결심을 했습니다. 사울 왕은 대견하게 생각했지만 다윗은 겨우 열 일곱살의 어린 소년이었기 때문에 크게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쓴 투구와 갑옷 을 벗어 다윗에게 입혔습니다. 본문 39-40절을 보면, 다윗이 칼을 차고는 익숙지 못해서 시험적으로 걸아 보다가 사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익 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와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보통 우리는 이 말씀에서 별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든 신앙생활을 하든 절대로 익숙 하지 못한 것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는 말이고 주어진 달란트를 익숙하 게 사용할 수 있도록 먼저 준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보다 엄청나게 큰 사울의 군복과 투구를 뒤집어 쓰고 전쟁을 한다는 것은 위허믈 무릅쓴 일이었습니다. 사무엘상에 사울 왕의 키가 모든 사람보다 어깨위는 더하다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보면 사울 왕도 거구였던 것 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거구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나간다는 것은 죽음 을 자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갑옷과 투구를 벗어버리 고 막대기 하나를 들었스빈다. 그리고 시냇가에서 주운 매끄러운 돌 다섯개 와 제구와 물매를 들고서 전쟁에 나갔습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도구이지만 돌과 막대기는 다윗에게만은 어려서부터 사용 한 매우 익숙한 최고의 무기였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렇게 자신에게 익숙한 재능을 살려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무엇입니까 공부입니까 장사입니까 그것 을 계속하십시오. 오늘날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능력이 부족하여 실패하기 보다는 익숙치 못한 일에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익숙지 못한 갑옷을 빌려 입은 다윗처럼 오늘날 이 세상에는 남의 두뇌나 기술, 자본을 빌어 입고서는 그것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빙자하여 익숙하지 못한 일에 여기 저기 손대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믿음까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맞는 독특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때문에 각자 의 재넝을 살려야지 다른 사람이 성공한다고 나도 따라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적성을 찾아 보십시오.익숙한 일을 찾으십시외.
2. 용기를 가지고 뛰어드십시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발견되면 용기를 가지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익숙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용기가 없으면 절대로 이세상에서 성공적인 삶 을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꾸 팔자타령을 합니다. 그런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용기를 가지고 일하는 일 에 뛰어드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뜨거운 용기는 그에게 이적을 낳게 했습니다. 거대한 골리앗도 그의 용기있는 도전 앞에 무너졌습니다. 본문 36절을 보면 "어찌 할례없는 블레셋 백성이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리요" 하고 용기있게 나갔는데 이러한 나의 용기는 자신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군대를 모욕하리요"하고 용기를 있게 나갔는데 이러한 다윗의 용기는 자신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산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지금도 우리의 삶 전체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 뢰하고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용기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바로 신앙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용 기를 보시고 그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투 경험이 없는 열일곱살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다윗도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용기를 가지지 못하는 부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아무리 돈이 있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용기잇는 사람은 당할 수 없스빈다. 거인 골리앗도 용기잇는 다윗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용기를 가지십시 오. 실패하고 좌절에 빠졌어도 다시한번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은 도우시는 분입니다.
3. 기회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48-49절에 보면 다윗은 돌을 던질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정확하게 포 착했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회를 선용하지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골리앗은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만 약 그 기회를 놓쳤더라면 다윗은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성공의 기회가 일년에 한 두번은 온다고 합니다. 공부도 그 기회를 놓치면 아무리 공부하려해도 현실여건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결혼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잘나 보이는데 상대방은 부족해 보여서 결혼을 못합니다. 결혼은 서로 불완전하지만 기회를 잘 이용해서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 입니다. 은혜받는 것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부흥회, 성경공부, 기도모임, 새벽기도가 모두 은혜받을 기회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은헤를 받으 십시오. '인간의 극한 상황은 하나님의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햇볕이 쨍쨍 내려 쪼일때 건초를 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쇠가 벌겋게 달아 오늘때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기회를 포착하십시오. 내게 승리의 기회가 올 것인가, 이 일에 내게 기회인가' 하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사십시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익숙지 못한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 외. 용기를 가지고 현실에 매어 달리십시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 오. 이 세가지를 꼭 잊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실패하지 않는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성경
본문:엡 5:15-21 복음을 증거하다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된 바울이 에베소 교회와 빌립보 교회,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을 향해 쓴 글이 옥중 서신을 불리는 에베소 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라는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의 복음을 듣고서 은혜를 받아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에바브라 가 골로새 지방에 교회를 세웠는데, 어느 날 교회가 시험에 들게 되자 답 답한 에바브라는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 사도를 찾아가게 되고 그때 바울 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바로 골로새서입니다. 한편, 자기의 상전을 배반하고 로마로 도망했던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는 데 이 삶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고 회개하자 바울이 그 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쓴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이 빌레몬서에는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때 빌레몬서와 함께 쓰여진 편지가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소 아시아의 대표적인 교회였으나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이 함께 신앙생활을 함으로 말미암아 생활의 습관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삶의 철학과 색깔이 다르다 보니까 분열의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것을 바울 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를 기록할 때 교회론을 중심으 로 한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모두 6장으로 되어 있는데 전반부 1장에서 3장까지는 교리를 강조하고 있고, 4장에서 6장까지는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3장 까지의 교리 편에서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구원론과,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인 교회란 어떤 곳인가 하는 교회론을 말씀합니다. 4장에서 6장 까지의 실천 편에서는 교회는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 안에서는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 까 성격이 안 맞아서, 지방색이 강해서, 의견이 달라서 서로 불일치하는 가운데 처했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향해 에베소서는 하나 되는 문제에 대해 강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개인 생활과 가정 생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은 에베소서 5장 15-21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그리스도 인의 생활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 중에는 말과 행동, 믿음과 생활이 다름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신앙을 포기한 다는 것은 잘못이지만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험악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 것인가 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그런즉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런즉"은 14절,15절의 전반부 후반부를 연결해 주는 중 요한 접속사 역할을 합니다. 14절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 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내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잠자는 자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로 형식 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죽은 자는 에베소에서 사는 예수를 믿지 않고 죄짓는 불신자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죄악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불신자들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지칭하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으로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라는 말씀이 나 옵니다. 이 말씀은 정확하게 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여"라는 말은 헬라 원문에 '불레포'라는 말로써 '본다'는 뜻입니다. 캄캄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빛이 비취므로 볼 수 있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 말은 번역하면 "주의한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은 어둡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인답게 주의하며 정확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벤자민 후랭크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먹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먹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삶다운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삶을 위해 무 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허비한다면 참다운 생활 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 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전도서 9장 10절에 보면 '무릇 네손이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도 일도 없고 계호 기도 없고 지식도 지혜도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죽기 전에 참다 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바이런이란 시인은 "최선의 생활은 그저 생활에 취해 있는 것'이라고 말 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분의 생활에 완전히 도취 되어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 의 삶에 도취되지 못한 채 그날 그날을 보낸다면 그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 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질과 양이 있습니다. 양에 입각한 삶은 어떻게 하면 고픈 배를 채울 것인가를 생각하는 삶입니다. 1차원적인 삶인 것입니다. 짐승들 이 삶이 여기에 속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렇나 1차원적인 욕구 충족 에만 만족하며 살수는 없습니다. 배가 부르고 옷을 따뜻이 입게 되면 이제는 어떤 것을 먹을까, 어떤 종류의 옷을 입을까 하는 욕구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질에 입각한 삶입니다. 오늘날 많은 미혼 여성들이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을 살펴보면 경제력 만 뛰어난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의 경제력과 함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 란의 여유가 있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인생의 많이 치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 말씀에서 강조하는 삶은 위에서 말한 그런 종류의 삶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5장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함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 신자들은 세상을 정확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인생을 살고 마무 리할 때에 바울처럼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이제 선한 싸움을 싸웠다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의 상급이 기다릴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 을 만큼 정확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과연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가 돈만 쫓아가서 할 것인가 질적인 삶을 추구하고 만족할 것인가 본 문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가장 적절하고 정확한 생활은 다음의 세 가지 생활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1.세월을 아끼며 사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선용하라는 의미입니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낭 비하지 말고 시간을 잘 나누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12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도가 나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에게 적절한 시간을 주셨을 뿐이지 오랜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셨음을 알아 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일 입니다. 무엇이 성공이며 무엇이 실패입니까 사람들은 유물적으로 생각합니다. 돈 많이 벌고 권력 있고 하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의 하나의 부분이지 성공이나 실패의 과정이 아닙니다. 시간을 활용하는 자가 성공자이고, 헛되게 낭비하는 자가 실패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선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16절에서 바울은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대가 악하므로, 이 악한 세상에서 시간 을 낭비한다면 그냥 악한 시대 속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선용하기 위해서는
첫째, 부지런해야 합니다.
둘째,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셋째,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넷째,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다섯째,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2.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 엇인가 이해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엇을 이해해야 합니까 주님의 뜻 입니다. 조지 트루엣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 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목적을 달성하고 하늘나라로 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가 '블레' 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움직여지지 않는 절대적 인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기도를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딜레마'입니다. 이것은 소원적인 뜻, 허용될 수 있는 뜻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뜻을 정해 놓으셨지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쌍 히 여기사 우리의 기도를 허락하시는 뜻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그는 의인이 50명만 있으 면 용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델레마를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독일에 베냐민 스몰크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심방을 하고 집 에 돌아와 보니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집이 불타 버렸습니다. 어린 아들 둘도 그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히 고 슬픈 가운데서도 그 목사님은 "오 주여, 뜻대로 행하옵소서, 온몸과 온 영혼을 다 주께 드립니다.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 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찬송가가 되어 우리들에게 불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뜻대로 살려면 고통이 뒤따릅니다. 잃어 버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뜻대로 살 때 축복 받는 것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3. 성령님 충만하여 사는 것입니다. 바울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 라"고 말씀한 이유는 그 당시 에베소에서는 포도 농사를 지어서 포도주를 많이 만들어 먹고 술이 취해 무감각해지고 쾌락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 보면 결국 죄의 자리로 갈 수밖에 없지만 성령님 충만을 받으면 그런 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죄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성령님 충만을 한번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성령님 충만을 받 고 마음 속에 성령님이 가득해져야만 죄를 물리칠 수 있는 강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령님 충만을 받게 되면 찬양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감사의 생활 을 하게 됩니다. 순종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악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철학은 세 가지 입니다. 시간을 선용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뜻대로 순종하며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에 이 세 가지 철학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떻게 결혼할 것인가 성경
본문:창 24:1-9 성경에는 결혼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면서 우리 인간에게 결혼의 중요 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 라"(고전 7:2) 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 인간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 루고 살아가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는 결혼을 부정하는 독신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독신주의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결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과연 결혼은 고독에 대 한 하나님의 최고의 처방인 것입니다. 결혼은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집 없이 살 수 없듯이, 결 혼하지 않고는 올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렇듯 결혼은 중요한 문제인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배우자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행복은 그 사람의 돈이나 지식 등 부수적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혼의 대상 그자체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떤 사람을 선택마하느냐는 것입니다. 어 떠한 인생을 사느냐 하는 것은 결국 내가 어떠한 사람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중요한 세가지 선택을 합니다.
첫째는 누구와 일평생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배우자의 선택입니다. 두번째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하는 영원세계의 선택, 곧 신앙의 선택입니다. 이 세가지 선택은 우리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배 우자에 대한 선택은 우리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도비니다. 만약 우리가 오백년 정도 산다고 하면 한번 결혼해 살아보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 다시 한번 결혼하여 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은 아침안개와 같이 짧습니다. 인생은 연습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 한번의 생애만을 허락하셨으며 이 짧 은 인생 동안 내가 어떠한 반려자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행복과 직결된, 둘도 없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현대 젊은이들 주에는 '연애는 꿈이고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개념이 팽배해져갑니다. 그래서 1980년 이후의 젊은이들은 일생을 사랑이라는 일시적인 감정에 맡기기보다는 중매를 통해 조건적으로 안정 된 선택을 하겠다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배우자 선택기준을 능력,배경,성격,학벌,돈 이렇게 다섯가지로 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남자들은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를 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가하면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집안배경이 좋은 남자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이러한 선택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날의 이런 그릇된 선택기준에 대해 경종 을 울리면서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을 통해서 올바른 선택의 기준을 제 시하고 있습니다. = 성경적인 배우자 선택의 세가지 기준 = 성경속에서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만큼 행복한 가정은 없었습니다. 아 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입니다.하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생활에는 성공했 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생활에서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리브가 와 함께 믿음생활에도 성공하고 가정생활에도 성공한, 진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행복한 가정생활이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올바른 대상을 선택한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미인만 좋아합니다. 옛말에 "미인은 보는 것이지 결 혼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미인은 우리가 눈 으로 보고 즐길 수 있어도 결혼의 대상은 될 수 없다는 말인데 이 말 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선택의 기준을 외적인 것에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행복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배우자를 선택하느냐에 달 려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배우자 선택의 세가지 기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신앙적인 기준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늙어 죽음에 임박하자 온 재산을 관리 하는 종 엘리에셀을 불렀습니다. 그 종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로 하늘 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 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해서 아내를 택하라."고 부탁합니다. 이 말씀은 신앙적인 기준으로 배우자 를 선택한 것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자녀의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불신자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신자의 결혼은 불행의 지름 길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원리대로 신앙적인 기준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결혼생활에서 신앙은 부부의 중심측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남편과 믿음이 있는 아내에게는 믿음이 공동의 핵 이 되어 하나의 가치관을 갖게 하고,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갖게하고, 같은 철학을 갖게하며, 같은 생할과 습관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같이 교회를 다녀도 남편은 적당주의 신자이고 아내는 열성적 인 신자라면 둘이 가치관이 다른 것입니다.하물며 불신자와 신자가 부부가 되었을 때에는 가치관이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가치관과 생각 과 행동과 모든 삶의 방법이 다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부부가 과연 얼마나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그래서 제일 먼저 신 앙적인 선택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종 엘리에셀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아들을 우해서 가나안 여자를 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절대로 불신 자와 결혼시키지 말라. 결혼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불신자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는 것입니다.왜 가나안 여자를 택하 지 말라고 했습니까그들은 다 우상을 섬기는 여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도뼈에 손을 얹고 맹세까지 시킨 것입니다. 바울은 골니 도후서 6장 14절에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농사를 지을 때 소는 소끼리, 말은 말끼리 멍에를 같이 매줍니다. 소와 말은 멍에를 같이 매지 못합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방향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와 신자의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와 말처럼 별 것 아닌 일을 가지고도 싸웁니다. 남편은 등산가 고 아내는 교회에 오고 이것은 뜻이 맞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할 수 없이 사는 것입니다. 믿음없는 사람과의 결혼은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처녀때 믿음 좋던 여자가 돈많은 불신 남자에게 시집가고나니 돈만 아는 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결혼하면 예수를 잘 믿을 것이라는 기대로 결혼했다가 결혼 후에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안믿는 사람은 사람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고, 생활의 재미와 방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과는 물과 기름인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베 틀채의 북소리와 같다고 탕하고 잠깐 지나는 것같이 짧습니다. 부부의 인생도 많이 살아야 평균 40-50년입니다. 그 짧은 세월을 눈물로 보내 서야 되겠습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로 미루어 볼 때, 예수가 잘 믿는 남자, 예수 잘 믿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복을 쏟아부어 주십니다.
2. 조건적인 理想적인 기준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 63절과 64절에 보면 "이삭이 저물 때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 을 들어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라 고 합니다. 리브가가 약대를 타고 먼 길을 걸어오더니 이삭도 바라 보고 리브가도 바라보았습니다. 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서로 바라볼 때 사랑이 생기는 것입니다. 돈도 많고 이상적인 사람을 만나면 좋지 만 이 세상을 살다보면 다 갖춘 사람과 결혼하기는 힘이 듭니다. 비록 돈은 없고, 부족하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 주님을 위한 꿈, 그리고 앞 으로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과 만나면 행복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 빈다. 지식의 수준도 맞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각자에게 이상적인 대상을 우리 스스로가 찾을 수 있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러 니 눈을 들고 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이상적인 짝을 찾을 때까지 자꾸 보고 데이트도 해야 합니다. 창세기 27장에서 30장을 보면 야곱과 라 헬은 데이트를 한 후 결혼했습니다. 남녀의 데이트가 왜 중요할까요
첫째, 사회적, 정서적,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중요합니다.
둘째, 이성과 대화를 잘하기 위해 중요하빈다.
셋째,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요합니다.
넷째,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중요합니다. 다섯째, 이상적인 배우자가 되고 미래의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중요합니다. 데이트를 안하거나 못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인격구성의 결함이 생 깁니다. 결과적으로 결혼 대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남녀가 이 상적인 대상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의무입니다.
3.기도하며 선택하며 합니다. 12절에서 14절을 보면 엘리에셀은 저녁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어떤 곳 에 유숙할지 모든 것이 막막하고 당황스러울 때 엘리에셀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오늘도 결혼적령기에 이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결혼시켜야 할지 막막한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결혼의 기회를 놓친 청 년들도 막막합니다. 바로 그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고, 사람 앞에서 웃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역사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기도할까요
첫째로,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하십시오. 본문 12절에 보면 엘리에셀은 하나님을 먼저 불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배우자를 택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2절 이하를 보면 보면 "순적히 만나게 하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에는 순조롭게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15 절과 16절의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라는 말은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 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 처녀는 보기에 심히 아 리답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대상을 보내 주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사람에게 부탁 하는 것은 별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중매하시면 오십 억 사람 중에 서 중매하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행복의 가정이 될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선택하십시오. 이상적으로 선택하십시오. 기도하며 선택 하십시오. 이 세가지 원리대로 배우자를 만나 하나님께 복받는 결혼생활이 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신앙적인 통찰력이었다. 통찰력이란 난관은 바로 관찰하고 처리해 나가는 신앙적인 안목과 지 식을 의미한다.신앙적인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려움만 보인다. 그래서 어려움이 생기면 먼저 겁부터 집어먹고 원망하고 좌절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되고 그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며 이끌어 주신다고 하는 신앙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는 위대한 손길을 보게 되는 것이다.
둘째, 긍정적인 신앙이었다. 우리 신앙의 성격과 형태를 정리해 보면 긍정적인 신앙과 부정적인 신앙으로 분류할 수가 있다. 긍정적인 신앙은 만사에 적극적이며 낙관 적이며 소망적이라고 한다면 부정적인 신앙은 소극적이요, 비관적이요 현상유지로 만족하는 것이다. 모세의 신앙을 긍정적이고 한다면 이스라엘 민중의 신앙은 부정적이 었다. 이스사엘 민중의 부정적인 신앙을 고찰해 보면 두려워하고 당황 하고 불평하고 원망했고 절망했다.그러나 모세의 긍정적인 신앙 태도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했다. 어려움중에도 실망하지 않고 소망중에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확신하고 앞으로 전지해 나갔다. 이러한 태도 야말로 문제 해결의 비결이며 승리의 첩경인 것이다. 긍정적인 신앙, 이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삶을 성공시키는 비결인 것이다.
셋째, 하나님이 방법을 택하라 하나님의 방법이란 모세로 하여금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로 홍해위에 내밀이 바다를 갈라지게 하는 말씀 순종의 방법인 것이다. 인간적인 방법은 질서를 파괴하고 화평을 깨트리고 역사를 후퇴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이나 신앙의 방법은 질서를 확립하고 화평을 유지하고 계 속 인생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말씀에 순종한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 최대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뒤쫓아오던 애굽 군인들은 모두 홍해바다 속에 묻혀 죽고 말았다. 이처럼 무슨 일을 하던지 항상 하나님의 방법 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성경
본문:삼상 17:31-49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에 대해 두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은 전혀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은 질병과 죄와 죽음만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세상을 가치없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육신은 악하고 영은 선하기 때문에 하루 빨리 육과 영혼이 분리되어 죽음의 관문을 넘어 저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고 절식하며 금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의미에서 방법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육체가 악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상요하여 쾌락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유형은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는데서 비롯한 것입니다. 두번째로,"이 세상은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는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생각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 기사가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보시기 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일곱번이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만족하셨 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고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기고 자연이 파괴되었습니다. 사탄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인간은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 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바울의 말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 나고 새사람이 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죤 칼브래어박사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세상은 문화가 발전해서 사람들의 질이 향상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와, 경제,문화 모든 면에 있어서 인류의 앞깊은 불확 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핵 전쟁이 일어나면 인류의 종국은 죽음 이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의 종말이 오고,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다 하더라도 현실에 충실하게 살라고 강조합니다. 두 사람이 매를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 한다고 하는 말씀에서 주 오실 때가지 사람들의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적극적이고 충실하게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인은 이제 이 세상 의 백성이 아닌 영원한 천국의 시민으로 이 세상에 파견되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17장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에 대하여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골리앗을 선봉장으로 해서 블레셋 군대 가 개미떼와 같이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이를 이기기가 어려웠 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 일곱살난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는 그 전쟁의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 성도들이 영적인 전쟁을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인 가에 대해서 몇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익숙지 못한 것에 손대지 마십시오 골리앗은 머리에 놋 투구를 쓰고 놋으로 만든 단창을 메었습니다. 그는 갑 옷을 입고 베틀채와 같은 큰 창자루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 골리앗이 이스 라엘 백성들에게 싸우자고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인 사우가 은 매우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싸울 결심을 했습니다. 사울 왕은 대견하게 생각했지만 다윗은 겨우 열 일곱살의 어린 소년이었기 때문에 크게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쓴 투구와 갑옷 을 벗어 다윗에게 입혔습니다. 본문 39-40절을 보면, 다윗이 칼을 차고는 익숙지 못해서 시험적으로 걸아 보다가 사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익 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와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보통 우리는 이 말씀에서 별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든 신앙생활을 하든 절대로 익숙 하지 못한 것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는 말이고 주어진 달란트를 익숙하 게 사용할 수 있도록 먼저 준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보다 엄청나게 큰 사울의 군복과 투구를 뒤집어 쓰고 전쟁을 한다는 것은 위허믈 무릅쓴 일이었습니다. 사무엘상에 사울 왕의 키가 모든 사람보다 어깨위는 더하다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보면 사울 왕도 거구였던 것 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거구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나간다는 것은 죽음 을 자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갑옷과 투구를 벗어버리 고 막대기 하나를 들었스빈다. 그리고 시냇가에서 주운 매끄러운 돌 다섯개 와 제구와 물매를 들고서 전쟁에 나갔습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도구이지만 돌과 막대기는 다윗에게만은 어려서부터 사용 한 매우 익숙한 최고의 무기였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렇게 자신에게 익숙한 재능을 살려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무엇입니까 공부입니까 장사입니까 그것 을 계속하십시오. 오늘날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능력이 부족하여 실패하기 보다는 익숙치 못한 일에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익숙지 못한 갑옷을 빌려 입은 다윗처럼 오늘날 이 세상에는 남의 두뇌나 기술, 자본을 빌어 입고서는 그것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빙자하여 익숙하지 못한 일에 여기 저기 손대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믿음까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맞는 독특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때문에 각자 의 재넝을 살려야지 다른 사람이 성공한다고 나도 따라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적성을 찾아 보십시오.익숙한 일을 찾으십시외.
2. 용기를 가지고 뛰어드십시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발견되면 용기를 가지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익숙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용기가 없으면 절대로 이세상에서 성공적인 삶 을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꾸 팔자타령을 합니다. 그런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용기를 가지고 일하는 일 에 뛰어드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뜨거운 용기는 그에게 이적을 낳게 했습니다. 거대한 골리앗도 그의 용기있는 도전 앞에 무너졌습니다. 본문 36절을 보면 "어찌 할례없는 블레셋 백성이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리요" 하고 용기있게 나갔는데 이러한 나의 용기는 자신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군대를 모욕하리요"하고 용기를 있게 나갔는데 이러한 다윗의 용기는 자신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산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지금도 우리의 삶 전체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 뢰하고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용기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바로 신앙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용 기를 보시고 그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투 경험이 없는 열일곱살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다윗도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용기를 가지지 못하는 부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아무리 돈이 있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용기잇는 사람은 당할 수 없스빈다. 거인 골리앗도 용기잇는 다윗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용기를 가지십시 오. 실패하고 좌절에 빠졌어도 다시한번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은 도우시는 분입니다.
3. 기회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48-49절에 보면 다윗은 돌을 던질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정확하게 포 착했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회를 선용하지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골리앗은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만 약 그 기회를 놓쳤더라면 다윗은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성공의 기회가 일년에 한 두번은 온다고 합니다. 공부도 그 기회를 놓치면 아무리 공부하려해도 현실여건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결혼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잘나 보이는데 상대방은 부족해 보여서 결혼을 못합니다. 결혼은 서로 불완전하지만 기회를 잘 이용해서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 입니다. 은혜받는 것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부흥회, 성경공부, 기도모임, 새벽기도가 모두 은혜받을 기회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은헤를 받으 십시오. '인간의 극한 상황은 하나님의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햇볕이 쨍쨍 내려 쪼일때 건초를 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쇠가 벌겋게 달아 오늘때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기회를 포착하십시오. 내게 승리의 기회가 올 것인가, 이 일에 내게 기회인가' 하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사십시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익숙지 못한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 외. 용기를 가지고 현실에 매어 달리십시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 오. 이 세가지를 꼭 잊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실패하지 않는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성경
본문:엡 5:15-21 복음을 증거하다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된 바울이 에베소 교회와 빌립보 교회,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을 향해 쓴 글이 옥중 서신을 불리는 에베소 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라는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의 복음을 듣고서 은혜를 받아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에바브라 가 골로새 지방에 교회를 세웠는데, 어느 날 교회가 시험에 들게 되자 답 답한 에바브라는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 사도를 찾아가게 되고 그때 바울 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바로 골로새서입니다. 한편, 자기의 상전을 배반하고 로마로 도망했던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는 데 이 삶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고 회개하자 바울이 그 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쓴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이 빌레몬서에는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때 빌레몬서와 함께 쓰여진 편지가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소 아시아의 대표적인 교회였으나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이 함께 신앙생활을 함으로 말미암아 생활의 습관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삶의 철학과 색깔이 다르다 보니까 분열의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것을 바울 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를 기록할 때 교회론을 중심으 로 한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모두 6장으로 되어 있는데 전반부 1장에서 3장까지는 교리를 강조하고 있고, 4장에서 6장까지는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3장 까지의 교리 편에서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구원론과,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인 교회란 어떤 곳인가 하는 교회론을 말씀합니다. 4장에서 6장 까지의 실천 편에서는 교회는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 안에서는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 까 성격이 안 맞아서, 지방색이 강해서, 의견이 달라서 서로 불일치하는 가운데 처했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향해 에베소서는 하나 되는 문제에 대해 강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개인 생활과 가정 생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은 에베소서 5장 15-21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그리스도 인의 생활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 중에는 말과 행동, 믿음과 생활이 다름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신앙을 포기한 다는 것은 잘못이지만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험악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 것인가 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그런즉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런즉"은 14절,15절의 전반부 후반부를 연결해 주는 중 요한 접속사 역할을 합니다. 14절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 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내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잠자는 자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로 형식 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죽은 자는 에베소에서 사는 예수를 믿지 않고 죄짓는 불신자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죄악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불신자들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지칭하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으로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라는 말씀이 나 옵니다. 이 말씀은 정확하게 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여"라는 말은 헬라 원문에 '불레포'라는 말로써 '본다'는 뜻입니다. 캄캄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빛이 비취므로 볼 수 있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 말은 번역하면 "주의한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은 어둡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인답게 주의하며 정확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벤자민 후랭크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먹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먹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삶다운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삶을 위해 무 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허비한다면 참다운 생활 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 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전도서 9장 10절에 보면 '무릇 네손이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도 일도 없고 계호 기도 없고 지식도 지혜도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죽기 전에 참다 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바이런이란 시인은 "최선의 생활은 그저 생활에 취해 있는 것'이라고 말 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분의 생활에 완전히 도취 되어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 의 삶에 도취되지 못한 채 그날 그날을 보낸다면 그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 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질과 양이 있습니다. 양에 입각한 삶은 어떻게 하면 고픈 배를 채울 것인가를 생각하는 삶입니다. 1차원적인 삶인 것입니다. 짐승들 이 삶이 여기에 속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렇나 1차원적인 욕구 충족 에만 만족하며 살수는 없습니다. 배가 부르고 옷을 따뜻이 입게 되면 이제는 어떤 것을 먹을까, 어떤 종류의 옷을 입을까 하는 욕구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질에 입각한 삶입니다. 오늘날 많은 미혼 여성들이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을 살펴보면 경제력 만 뛰어난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의 경제력과 함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 란의 여유가 있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인생의 많이 치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 말씀에서 강조하는 삶은 위에서 말한 그런 종류의 삶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5장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함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 신자들은 세상을 정확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인생을 살고 마무 리할 때에 바울처럼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이제 선한 싸움을 싸웠다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의 상급이 기다릴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 을 만큼 정확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과연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가 돈만 쫓아가서 할 것인가 질적인 삶을 추구하고 만족할 것인가 본 문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가장 적절하고 정확한 생활은 다음의 세 가지 생활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1.세월을 아끼며 사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선용하라는 의미입니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낭 비하지 말고 시간을 잘 나누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12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도가 나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에게 적절한 시간을 주셨을 뿐이지 오랜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셨음을 알아 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일 입니다. 무엇이 성공이며 무엇이 실패입니까 사람들은 유물적으로 생각합니다. 돈 많이 벌고 권력 있고 하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의 하나의 부분이지 성공이나 실패의 과정이 아닙니다. 시간을 활용하는 자가 성공자이고, 헛되게 낭비하는 자가 실패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선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16절에서 바울은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대가 악하므로, 이 악한 세상에서 시간 을 낭비한다면 그냥 악한 시대 속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선용하기 위해서는
첫째, 부지런해야 합니다.
둘째,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셋째,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넷째,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다섯째,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2.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 엇인가 이해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엇을 이해해야 합니까 주님의 뜻 입니다. 조지 트루엣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 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목적을 달성하고 하늘나라로 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가 '블레' 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움직여지지 않는 절대적 인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기도를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딜레마'입니다. 이것은 소원적인 뜻, 허용될 수 있는 뜻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뜻을 정해 놓으셨지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쌍 히 여기사 우리의 기도를 허락하시는 뜻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그는 의인이 50명만 있으 면 용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델레마를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독일에 베냐민 스몰크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심방을 하고 집 에 돌아와 보니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집이 불타 버렸습니다. 어린 아들 둘도 그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히 고 슬픈 가운데서도 그 목사님은 "오 주여, 뜻대로 행하옵소서, 온몸과 온 영혼을 다 주께 드립니다.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 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찬송가가 되어 우리들에게 불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뜻대로 살려면 고통이 뒤따릅니다. 잃어 버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뜻대로 살 때 축복 받는 것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3. 성령님 충만하여 사는 것입니다. 바울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 라"고 말씀한 이유는 그 당시 에베소에서는 포도 농사를 지어서 포도주를 많이 만들어 먹고 술이 취해 무감각해지고 쾌락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 보면 결국 죄의 자리로 갈 수밖에 없지만 성령님 충만을 받으면 그런 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죄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성령님 충만을 한번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성령님 충만을 받 고 마음 속에 성령님이 가득해져야만 죄를 물리칠 수 있는 강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령님 충만을 받게 되면 찬양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감사의 생활 을 하게 됩니다. 순종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악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철학은 세 가지 입니다. 시간을 선용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뜻대로 순종하며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에 이 세 가지 철학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떻게 결혼할 것인가 성경
본문:창 24:1-9 성경에는 결혼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면서 우리 인간에게 결혼의 중요 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 라"(고전 7:2) 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 인간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 루고 살아가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는 결혼을 부정하는 독신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독신주의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결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과연 결혼은 고독에 대 한 하나님의 최고의 처방인 것입니다. 결혼은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집 없이 살 수 없듯이, 결 혼하지 않고는 올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렇듯 결혼은 중요한 문제인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배우자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행복은 그 사람의 돈이나 지식 등 부수적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혼의 대상 그자체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떤 사람을 선택마하느냐는 것입니다. 어 떠한 인생을 사느냐 하는 것은 결국 내가 어떠한 사람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중요한 세가지 선택을 합니다.
첫째는 누구와 일평생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배우자의 선택입니다. 두번째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하는 영원세계의 선택, 곧 신앙의 선택입니다. 이 세가지 선택은 우리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배 우자에 대한 선택은 우리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도비니다. 만약 우리가 오백년 정도 산다고 하면 한번 결혼해 살아보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 다시 한번 결혼하여 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은 아침안개와 같이 짧습니다. 인생은 연습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 한번의 생애만을 허락하셨으며 이 짧 은 인생 동안 내가 어떠한 반려자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행복과 직결된, 둘도 없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현대 젊은이들 주에는 '연애는 꿈이고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개념이 팽배해져갑니다. 그래서 1980년 이후의 젊은이들은 일생을 사랑이라는 일시적인 감정에 맡기기보다는 중매를 통해 조건적으로 안정 된 선택을 하겠다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배우자 선택기준을 능력,배경,성격,학벌,돈 이렇게 다섯가지로 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남자들은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를 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가하면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집안배경이 좋은 남자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이러한 선택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날의 이런 그릇된 선택기준에 대해 경종 을 울리면서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을 통해서 올바른 선택의 기준을 제 시하고 있습니다. = 성경적인 배우자 선택의 세가지 기준 = 성경속에서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만큼 행복한 가정은 없었습니다. 아 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입니다.하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생활에는 성공했 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생활에서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리브가 와 함께 믿음생활에도 성공하고 가정생활에도 성공한, 진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행복한 가정생활이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올바른 대상을 선택한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미인만 좋아합니다. 옛말에 "미인은 보는 것이지 결 혼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미인은 우리가 눈 으로 보고 즐길 수 있어도 결혼의 대상은 될 수 없다는 말인데 이 말 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선택의 기준을 외적인 것에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행복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배우자를 선택하느냐에 달 려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배우자 선택의 세가지 기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신앙적인 기준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늙어 죽음에 임박하자 온 재산을 관리 하는 종 엘리에셀을 불렀습니다. 그 종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로 하늘 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 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해서 아내를 택하라."고 부탁합니다. 이 말씀은 신앙적인 기준으로 배우자 를 선택한 것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자녀의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불신자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신자의 결혼은 불행의 지름 길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원리대로 신앙적인 기준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결혼생활에서 신앙은 부부의 중심측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남편과 믿음이 있는 아내에게는 믿음이 공동의 핵 이 되어 하나의 가치관을 갖게 하고,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갖게하고, 같은 철학을 갖게하며, 같은 생할과 습관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같이 교회를 다녀도 남편은 적당주의 신자이고 아내는 열성적 인 신자라면 둘이 가치관이 다른 것입니다.하물며 불신자와 신자가 부부가 되었을 때에는 가치관이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가치관과 생각 과 행동과 모든 삶의 방법이 다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부부가 과연 얼마나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그래서 제일 먼저 신 앙적인 선택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종 엘리에셀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아들을 우해서 가나안 여자를 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절대로 불신 자와 결혼시키지 말라. 결혼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불신자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는 것입니다.왜 가나안 여자를 택하 지 말라고 했습니까그들은 다 우상을 섬기는 여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도뼈에 손을 얹고 맹세까지 시킨 것입니다. 바울은 골니 도후서 6장 14절에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농사를 지을 때 소는 소끼리, 말은 말끼리 멍에를 같이 매줍니다. 소와 말은 멍에를 같이 매지 못합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방향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와 신자의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와 말처럼 별 것 아닌 일을 가지고도 싸웁니다. 남편은 등산가 고 아내는 교회에 오고 이것은 뜻이 맞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할 수 없이 사는 것입니다. 믿음없는 사람과의 결혼은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처녀때 믿음 좋던 여자가 돈많은 불신 남자에게 시집가고나니 돈만 아는 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결혼하면 예수를 잘 믿을 것이라는 기대로 결혼했다가 결혼 후에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안믿는 사람은 사람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고, 생활의 재미와 방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과는 물과 기름인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베 틀채의 북소리와 같다고 탕하고 잠깐 지나는 것같이 짧습니다. 부부의 인생도 많이 살아야 평균 40-50년입니다. 그 짧은 세월을 눈물로 보내 서야 되겠습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로 미루어 볼 때, 예수가 잘 믿는 남자, 예수 잘 믿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복을 쏟아부어 주십니다.
2. 조건적인 理想적인 기준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 63절과 64절에 보면 "이삭이 저물 때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 을 들어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라 고 합니다. 리브가가 약대를 타고 먼 길을 걸어오더니 이삭도 바라 보고 리브가도 바라보았습니다. 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서로 바라볼 때 사랑이 생기는 것입니다. 돈도 많고 이상적인 사람을 만나면 좋지 만 이 세상을 살다보면 다 갖춘 사람과 결혼하기는 힘이 듭니다. 비록 돈은 없고, 부족하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 주님을 위한 꿈, 그리고 앞 으로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과 만나면 행복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 빈다. 지식의 수준도 맞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각자에게 이상적인 대상을 우리 스스로가 찾을 수 있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러 니 눈을 들고 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이상적인 짝을 찾을 때까지 자꾸 보고 데이트도 해야 합니다. 창세기 27장에서 30장을 보면 야곱과 라 헬은 데이트를 한 후 결혼했습니다. 남녀의 데이트가 왜 중요할까요
첫째, 사회적, 정서적,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중요합니다.
둘째, 이성과 대화를 잘하기 위해 중요하빈다.
셋째,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요합니다.
넷째,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중요합니다. 다섯째, 이상적인 배우자가 되고 미래의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중요합니다. 데이트를 안하거나 못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인격구성의 결함이 생 깁니다. 결과적으로 결혼 대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남녀가 이 상적인 대상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의무입니다.
3.기도하며 선택하며 합니다. 12절에서 14절을 보면 엘리에셀은 저녁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어떤 곳 에 유숙할지 모든 것이 막막하고 당황스러울 때 엘리에셀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오늘도 결혼적령기에 이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결혼시켜야 할지 막막한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결혼의 기회를 놓친 청 년들도 막막합니다. 바로 그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고, 사람 앞에서 웃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역사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기도할까요
첫째로,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하십시오. 본문 12절에 보면 엘리에셀은 하나님을 먼저 불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배우자를 택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2절 이하를 보면 보면 "순적히 만나게 하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에는 순조롭게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15 절과 16절의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라는 말은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 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 처녀는 보기에 심히 아 리답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대상을 보내 주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사람에게 부탁 하는 것은 별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중매하시면 오십 억 사람 중에 서 중매하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행복의 가정이 될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선택하십시오. 이상적으로 선택하십시오. 기도하며 선택 하십시오. 이 세가지 원리대로 배우자를 만나 하나님께 복받는 결혼생활이 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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