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적인 감사생활 (출15:1-2)
본문
믿는 사람들은 해마다 감사절 예배를 여호와 하나님께 정성되게 드립니다. 이것이 성도의 온전한 신앙의 태도입니다. 사람은 감사하고 살게 되어니다. 감사는 인간 본연의 자세입니다. 감사하고 감사하지 않는데서 그 믿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내가 은혜를 압니다. 하는 것과 같 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는 피조물 로써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 을 받고 보호와 섭리에서 살기 때문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사람들에게는 일반은혜와 특별은혜가 있습니다. 일반은혜는 자연의 헤택을 입어서 되어진 것에 대한 고마움이며 특별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절의 유래를 살피면 영국에서 믿음의 박해를 받던자들이 1608년에 마음에 결정하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로 건너간 것입니다. 이들이 12 년간 방황 유리하던 차에 1620년에 네덜란드에 서 메이푸라워(May-Flower)라는 배를 102명이 타고 66일간의 항해 끝에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인 미국 동 부 해안인 푸리머어스(Primouth)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은 추운 11월 21일 에 도착하여 "푸리머어스" 언덕 위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며 그들은 시편에 있는 말씀중에 "우리 가 감사하는 기도를 들리며 그들은 시편에 있는 말씀중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 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 95:2-7)는 감사의 시로 하나님 께 감사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언덕에다 맨 처음으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그들을 기념하는 교회당이 돌로 크게 지어 있습니다. 그 들은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기기 위하여서 천신만고 죽음을 무릎쓰고 대륙으 로 이민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감사 감격은 진 정한 감사의 표현이였습니다. 그들은 먼저 교회를 짓고 그 다음에 학교를 지어서 교육에 열정을 기울 였습니다. 끝으로 자기들이 사는 집을 지어서 삶을 개척한 것이 청교도들의 신앙의 첫 발걸음 이였습니다. 지금도 그들의 역사를 남기면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메이푸라워" 라는 배의 모형이 꼭같 이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습니다. 배의 내부와 그 당 시의 사용했던 기구들을 생각하여 모든 기구들 을 내부에 배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의상들을 입은 선원과 여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미국 역사에 기리 빛날 일입니다. 미국의 역사와 믿음의 조상 은 청교도들의 믿음과 그들의 땀, 눈물, 피와 헌신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미국의 타락과 부패가 사람들 보기에는 비참한 것 같으나 내면에 흐르는 믿음,정신,법에는 청교도적 인 정신과 믿음의 건전이 흐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통령선거 때가 되면 대통령의 신분이 작 은 것 까지도 거짓이 있거나 부정한 행실이 있다면 그런 것을 파헤치며 지도자의 자격을 제한하며 불신 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진정 미국의 근본은 청교도적인 믿음의 뿌 리가 계속 뻗어 나 아가고 있습니다.
1, 구약의 청교도적인 믿음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인물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로 시작이 된 것 입니다. 아벧의 믿음은 하나님께 깨끗한 생활에서 감사가 앞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그의 일상생활에서 감사가 끊어지지 않았던 것 입니다. 제단을 쌓은 일 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표시를 이렇게 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 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출 15:1-2). 시인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할 이유는 "모든 죄악 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 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시 103:3-4). 신약에서 깨끗한 믿음의 감사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것을 알고 감사한 것을 보면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 음은 그 계집 중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눅 1:4
5). 예루살렘에 예수님 오시기 전에 살던 시므온은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 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28-29) 예수님 당시에 감사할 줄 모르는 문둥병자들이 있었으니 예수님이 열 문둥 병자를 다 고쳐주었지만 한 사람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하고 아홉명은 그냥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 에게 그 아홉은 어디 갔느 냐고 물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감사가 있게 됩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만이 감사합니다.
2. 감사의 내용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이 있습니다. 감사의 이유는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이 세상 의 만사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할 내용을 바르게 찾아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니 크신 하나님임을 감사 찬송했습니다. 크신 하나님은 창조의 주 하나님 이시 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크신 하나님입니다. 시편 106편 1-2절에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히며 그 인자 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뉘 능히 여호와의 능하신 사적을 전파하며 그 영예를 다 광포할꼬"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한 말씀입니다.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십니다. 이 세상 만물이 그의 소유이기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땅의 깊은 곳과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 이며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 이 지으셨도다"라는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내용이자 이유입니다. 하나님만이 감사를 받으실 수 있으십니다.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유의 주가 되심으로 우리는 마땅히 감사할 뿐입니다. 시인은 본문 6-7절에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 이며 그 손의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감사 내용이 충만한 다윗은 항 상 감사한 것입니다. 지난 일년동아니 지난 일들 중에 무엇이 감사하게 생각됩니까 생명의 유 지, 믿음 안의 삶, 육신 의 건강, 가정의 평안, 자녀들의 무고, 사업의 번영 과 여러가지의 감사할 조건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하여서 무조건 감사하여야 합니다. 감사할 내용이 없다는 사라 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지지 못한 자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깨 닫지 못하는 자들 입니다. 내가 무엇으로 그 은혜를 보달할꼬 하는 마음으 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믿음에 의한 감사는 지극히 작은 것 까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축복 받을 믿음입니다.
3.감사자는 축복을 받는다 모든 사람은 축복을 원합니다. 그 축복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세상의 보통 축복은 장수, 부귀, 강녕, 수호덕, 고종명 등입니다. 이러한 복은 다 원하는 것인데 이 것이 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사람들은 복을 원하는 것입니다. 믿는사람들의 복은 육적인 것만 아니라 신령한 복으로 죄를 사함 받는 것 과 사망에서의 구원이며 영생의 축복입니다. 이러한 축복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데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신령한 복음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분명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 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도 사랑 안에서 그 앞에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는 말씀으로 신령한 복을 설명하였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살 수 없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내면 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사람의 양심의 청결과 영원한 영생이 보장된 자만이 행복합니다. 감사의 표현 은 정성을 다하여 내 몸과 의무를 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생활은 믿음이 있는 증거이며 충 실한 믿음의 결실입니다. 감사절을 믿음으로 지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제목:감사하는 사람 사무엘 죤슨 보스웰은 "감사는 훌륭한 교양의 열매이기 때문에 천한 사람 들이 세계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아 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 일에 대하여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과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고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정서가 풍부한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의 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도 열 사람의 나환자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 사람은 불치의 병을 고침받고서도 그 병을 고쳐주신 분에 대하여 아무런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괘씸한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길목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한 후 실의에 빠져서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서 주 님 앞에 무릎을 꿇고 새로운 힘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한다 면 그가 예수님을 만난 길은 "실패로"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건강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으나 불치의 병에 걸려 인간의 힘으 로는 고치기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선고를 받은 후 에 하나님 앞에 돌아와 지난 날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 로 주님께 기도한다면 그는 "病路"에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자기 주장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슴을 무시하고 주의 종이 타일러 주는 권고가지 못 들은 체 하 고 제 멋대로 살다가 거듭되는 실패와 역경 속에서 한숨을 쉬면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거듭되는 근심과 걱정 속에서 주님의 인자하심에 의지하여 새로운 결단을 보이면서 하나님 의 품에 안기어서 지난 날을 회개하며 기쁨을 맛보 기를 원합니다.따라서 그들은 "근심로 걱정로 고통로"를 통해서 주님을 만 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침을 받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은 주님께 감사 하기 위해서 달려 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따라서 그는 "감사로" 에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실패로, 근심로, 병로, 고통로 등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세상의 어두운 길목을 헤매이다가 주님 앞에 돌아와 나의 고통을 짜내어 주님을 부를 때에 주님을 만 나는 것과 감사함으로 주님 을 만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걱정과 근심을 통해서 주님을 만날 때에는 뼈아픈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를 통해서 주님을 만날 때에는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수가 있으며 또한 감사로를 통하여 주님을 만날 때에는 우리가 찾아 가기 전에 예수님께서 미리 응답을 가지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길목에서 나를 만나시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주님을 생각하고 감사가 생활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그 "감사로"에서 주님을 만나는 비결을 깨닫고 항상 감사 속에서 주 님을 만나서 기쁨을 나 누고 고통을 나구고 주님을 만나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생활을 영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러면 주님께 감사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께 감사한 사람은 특권을 가지고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이 아 닙니다. 이방 사람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미라이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조금도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유대인들은 교만한 마음에 있기 때문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특권에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병고침을 받는 것도 은혜를 받는 것도 모두 당연 한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받 았고 나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할 마음이 생기지 아니했던 모양입니다. 나만 특별한 은혜를 받아야지만 감사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족 한 사람입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입니다. 주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도 내가 탈락되지 않은 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라리아인은 자기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병고침을 받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기대 이상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헨리 워드 비쳐 목사님은 "교만은 감사하는 마음을 죽인다.그러나 겸손한 마음은 감사가 자연히 자라게 하는 토양이다. 자긍하는 자는 좀처럼 감사할 줄 모른다. 그는 결코 자기가 받을 만큼 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감사도 잘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자신은 감당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 자신은 기대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임을 아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 때 뜨겁게 감사합니다. 결국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가 죄스러웠고 불행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과 무능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람이 감사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감사하게 됩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귀한 것을 아는 사람만이 감사할 줄 압니다. 은혜 를 은혜로 아는 자만이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은혜를 깨달은 자만이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이 평범한 것이 아 니라고 느낄 때 감사하게 됩니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렸습니다. 보는 눈과 생각을 바로 가져야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내게 이루 어진 일을 엄청난 큰 축복을 받아들이는 자는 감사 합니다. 그것이 축복인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 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 나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그는 어떻게 감사했습니까 사라리아인은 자신이 병고침을 받은 사실을 아는 순간 감사했습니다. 언젠 가 예수를 우연히 만나 게 되면 감사를 드리겠다고 미루거나 기다리지 않았 습니다. 지금의 일을 나중으로 미루면 감사의 마음이 반감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사의 마음은 곧 늙는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마음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의 뜻을 표하는 순간 감사를 받을 사람이 진정 으로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줄 때 진정한 감사 가 됩니다. 병고침을 받은 사마리안은 즉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께 돌아와서 엎드 려 사례했습니다. 감사는 외적으로 포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찬송함으로 표현합니다. 경배함으로 표현합니다. 사례함으로 표현합니다. 은혜를 자랑함으로 표현합니다. 정성이 담긴 예물을 표현합니다. 섬기고 봉사함으로 표현합니다. 은혜는 값이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갚아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은 값어치를 따질 수 있는 것이나 뇌물이 아닙니다. 또한 감사를 할 때는 반대 급부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감사는 순수한 감사로 끝내 야 합니다. 감사하는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덧붙 이거나 형식적인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은혜를 입힌 사람이 요구를 하지 않아도 받은 자가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 와서 하는 사례일 뿐입니다. 의무가 아닙니다. 자원하여 드리는 것 뿐입니다. 사마리이안이 이렇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감사가 복받는 감사이며, 순수한 감사인 것입니다.
3. 감사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임했습니까 감사하는 사람은 더욱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그 때가 바로 하늘 문이 열리면서 나에게 구원의 은총과 함께 풍성한 하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사를 생활화하는 사람에게는 늘 응답이 있습니다. 이 응답을 알 기 때문에 감사가 끝날 줄을 모릅니다. 감사가 주는 기쁨과 감격은 감사를 생활화하는 사람만이 경험해 볼 수 있는 신앙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움을 받습니다. 행복 한 삶을 삽시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마음은 황량한 광야와 같습니다. 감사는 마음에 기쁨을 일으키는 기쁨 바람의 진원지 가 되기도 합니다. 은혜와 감사와 기쁨은 언어나 상태가 서로 비슷합니다. 헬라어로 은혜,감사,기쁨은 같은 어원인 "기뻐하다"에서 나왔습니다. 감사와 기쁨은 동시적인 것입니다. 은혜를 깨달으면 감사하고 감사에는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여러분 각자에게 주님께서는 "그 아홉은 어디 있느 냐"라고 질문하실 지도 모릅니다. "작년에 생명 연장의 축복을 준 사람이 많건만 지금 그들이 다 어디 있느 냐사업을 번창케 해 주었고 올 해도 더 많은 것으로 채움을 받았던 사람 중 에 지금 여기 있지 않은 사람이 많은데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물질의 축복을 내려 주었고 자녀의 축복을 내려 주었던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런 말슴이 우리에게 향하신 예수님의 근심스러운 질문이 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며 항상 감사 하는 마음으로 "감사로"에서 주님을 만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구약의 청교도적인 믿음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인물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로 시작이 된 것 입니다. 아벧의 믿음은 하나님께 깨끗한 생활에서 감사가 앞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그의 일상생활에서 감사가 끊어지지 않았던 것 입니다. 제단을 쌓은 일 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표시를 이렇게 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 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출 15:1-2). 시인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할 이유는 "모든 죄악 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 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시 103:3-4). 신약에서 깨끗한 믿음의 감사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것을 알고 감사한 것을 보면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 음은 그 계집 중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눅 1:4
5). 예루살렘에 예수님 오시기 전에 살던 시므온은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 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28-29) 예수님 당시에 감사할 줄 모르는 문둥병자들이 있었으니 예수님이 열 문둥 병자를 다 고쳐주었지만 한 사람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하고 아홉명은 그냥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 에게 그 아홉은 어디 갔느 냐고 물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감사가 있게 됩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만이 감사합니다.
2. 감사의 내용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내용이 있습니다. 감사의 이유는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이 세상 의 만사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할 내용을 바르게 찾아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니 크신 하나님임을 감사 찬송했습니다. 크신 하나님은 창조의 주 하나님 이시 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크신 하나님입니다. 시편 106편 1-2절에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히며 그 인자 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뉘 능히 여호와의 능하신 사적을 전파하며 그 영예를 다 광포할꼬"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한 말씀입니다.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십니다. 이 세상 만물이 그의 소유이기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땅의 깊은 곳과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 이며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 이 지으셨도다"라는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내용이자 이유입니다. 하나님만이 감사를 받으실 수 있으십니다.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유의 주가 되심으로 우리는 마땅히 감사할 뿐입니다. 시인은 본문 6-7절에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 이며 그 손의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감사 내용이 충만한 다윗은 항 상 감사한 것입니다. 지난 일년동아니 지난 일들 중에 무엇이 감사하게 생각됩니까 생명의 유 지, 믿음 안의 삶, 육신 의 건강, 가정의 평안, 자녀들의 무고, 사업의 번영 과 여러가지의 감사할 조건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하여서 무조건 감사하여야 합니다. 감사할 내용이 없다는 사라 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지지 못한 자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깨 닫지 못하는 자들 입니다. 내가 무엇으로 그 은혜를 보달할꼬 하는 마음으 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믿음에 의한 감사는 지극히 작은 것 까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축복 받을 믿음입니다.
3.감사자는 축복을 받는다 모든 사람은 축복을 원합니다. 그 축복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세상의 보통 축복은 장수, 부귀, 강녕, 수호덕, 고종명 등입니다. 이러한 복은 다 원하는 것인데 이 것이 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사람들은 복을 원하는 것입니다. 믿는사람들의 복은 육적인 것만 아니라 신령한 복으로 죄를 사함 받는 것 과 사망에서의 구원이며 영생의 축복입니다. 이러한 축복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데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신령한 복음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분명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 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도 사랑 안에서 그 앞에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는 말씀으로 신령한 복을 설명하였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살 수 없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내면 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사람의 양심의 청결과 영원한 영생이 보장된 자만이 행복합니다. 감사의 표현 은 정성을 다하여 내 몸과 의무를 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생활은 믿음이 있는 증거이며 충 실한 믿음의 결실입니다. 감사절을 믿음으로 지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제목:감사하는 사람 사무엘 죤슨 보스웰은 "감사는 훌륭한 교양의 열매이기 때문에 천한 사람 들이 세계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아 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 일에 대하여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과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고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정서가 풍부한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의 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도 열 사람의 나환자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 사람은 불치의 병을 고침받고서도 그 병을 고쳐주신 분에 대하여 아무런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괘씸한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길목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한 후 실의에 빠져서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서 주 님 앞에 무릎을 꿇고 새로운 힘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한다 면 그가 예수님을 만난 길은 "실패로"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건강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으나 불치의 병에 걸려 인간의 힘으 로는 고치기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선고를 받은 후 에 하나님 앞에 돌아와 지난 날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 로 주님께 기도한다면 그는 "病路"에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자기 주장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슴을 무시하고 주의 종이 타일러 주는 권고가지 못 들은 체 하 고 제 멋대로 살다가 거듭되는 실패와 역경 속에서 한숨을 쉬면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거듭되는 근심과 걱정 속에서 주님의 인자하심에 의지하여 새로운 결단을 보이면서 하나님 의 품에 안기어서 지난 날을 회개하며 기쁨을 맛보 기를 원합니다.따라서 그들은 "근심로 걱정로 고통로"를 통해서 주님을 만 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침을 받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은 주님께 감사 하기 위해서 달려 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따라서 그는 "감사로" 에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실패로, 근심로, 병로, 고통로 등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세상의 어두운 길목을 헤매이다가 주님 앞에 돌아와 나의 고통을 짜내어 주님을 부를 때에 주님을 만 나는 것과 감사함으로 주님 을 만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걱정과 근심을 통해서 주님을 만날 때에는 뼈아픈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를 통해서 주님을 만날 때에는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수가 있으며 또한 감사로를 통하여 주님을 만날 때에는 우리가 찾아 가기 전에 예수님께서 미리 응답을 가지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길목에서 나를 만나시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주님을 생각하고 감사가 생활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그 "감사로"에서 주님을 만나는 비결을 깨닫고 항상 감사 속에서 주 님을 만나서 기쁨을 나 누고 고통을 나구고 주님을 만나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생활을 영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러면 주님께 감사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께 감사한 사람은 특권을 가지고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이 아 닙니다. 이방 사람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미라이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조금도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유대인들은 교만한 마음에 있기 때문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특권에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병고침을 받는 것도 은혜를 받는 것도 모두 당연 한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받 았고 나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할 마음이 생기지 아니했던 모양입니다. 나만 특별한 은혜를 받아야지만 감사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족 한 사람입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입니다. 주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도 내가 탈락되지 않은 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라리아인은 자기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병고침을 받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기대 이상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헨리 워드 비쳐 목사님은 "교만은 감사하는 마음을 죽인다.그러나 겸손한 마음은 감사가 자연히 자라게 하는 토양이다. 자긍하는 자는 좀처럼 감사할 줄 모른다. 그는 결코 자기가 받을 만큼 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감사도 잘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자신은 감당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 자신은 기대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임을 아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 때 뜨겁게 감사합니다. 결국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가 죄스러웠고 불행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과 무능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람이 감사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감사하게 됩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귀한 것을 아는 사람만이 감사할 줄 압니다. 은혜 를 은혜로 아는 자만이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은혜를 깨달은 자만이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이 평범한 것이 아 니라고 느낄 때 감사하게 됩니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렸습니다. 보는 눈과 생각을 바로 가져야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내게 이루 어진 일을 엄청난 큰 축복을 받아들이는 자는 감사 합니다. 그것이 축복인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 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 나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그는 어떻게 감사했습니까 사라리아인은 자신이 병고침을 받은 사실을 아는 순간 감사했습니다. 언젠 가 예수를 우연히 만나 게 되면 감사를 드리겠다고 미루거나 기다리지 않았 습니다. 지금의 일을 나중으로 미루면 감사의 마음이 반감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사의 마음은 곧 늙는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마음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의 뜻을 표하는 순간 감사를 받을 사람이 진정 으로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줄 때 진정한 감사 가 됩니다. 병고침을 받은 사마리안은 즉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께 돌아와서 엎드 려 사례했습니다. 감사는 외적으로 포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찬송함으로 표현합니다. 경배함으로 표현합니다. 사례함으로 표현합니다. 은혜를 자랑함으로 표현합니다. 정성이 담긴 예물을 표현합니다. 섬기고 봉사함으로 표현합니다. 은혜는 값이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갚아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은 값어치를 따질 수 있는 것이나 뇌물이 아닙니다. 또한 감사를 할 때는 반대 급부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감사는 순수한 감사로 끝내 야 합니다. 감사하는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덧붙 이거나 형식적인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은혜를 입힌 사람이 요구를 하지 않아도 받은 자가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 와서 하는 사례일 뿐입니다. 의무가 아닙니다. 자원하여 드리는 것 뿐입니다. 사마리이안이 이렇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감사가 복받는 감사이며, 순수한 감사인 것입니다.
3. 감사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임했습니까 감사하는 사람은 더욱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그 때가 바로 하늘 문이 열리면서 나에게 구원의 은총과 함께 풍성한 하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사를 생활화하는 사람에게는 늘 응답이 있습니다. 이 응답을 알 기 때문에 감사가 끝날 줄을 모릅니다. 감사가 주는 기쁨과 감격은 감사를 생활화하는 사람만이 경험해 볼 수 있는 신앙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움을 받습니다. 행복 한 삶을 삽시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마음은 황량한 광야와 같습니다. 감사는 마음에 기쁨을 일으키는 기쁨 바람의 진원지 가 되기도 합니다. 은혜와 감사와 기쁨은 언어나 상태가 서로 비슷합니다. 헬라어로 은혜,감사,기쁨은 같은 어원인 "기뻐하다"에서 나왔습니다. 감사와 기쁨은 동시적인 것입니다. 은혜를 깨달으면 감사하고 감사에는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여러분 각자에게 주님께서는 "그 아홉은 어디 있느 냐"라고 질문하실 지도 모릅니다. "작년에 생명 연장의 축복을 준 사람이 많건만 지금 그들이 다 어디 있느 냐사업을 번창케 해 주었고 올 해도 더 많은 것으로 채움을 받았던 사람 중 에 지금 여기 있지 않은 사람이 많은데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물질의 축복을 내려 주었고 자녀의 축복을 내려 주었던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런 말슴이 우리에게 향하신 예수님의 근심스러운 질문이 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며 항상 감사 하는 마음으로 "감사로"에서 주님을 만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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